편집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이 편집을 되돌리려면 아래의 바뀐 내용을 확인한 후 게시해주세요.
최신판 | 당신의 편집 | ||
9번째 줄: | 9번째 줄: | ||
===노동법 개악저지 총파업 투쟁=== | ===노동법 개악저지 총파업 투쟁=== | ||
[[1994년]] 노·경총합의 실패와 [[OECD]] 가입조건으로 [[세계노동기구]]가 요구하는 노동법 개정요구 속에서 문민정부는 해고요건 완화·생리휴가폐지 등 노동유연성정책을 제도화 하려는 한편 민주노총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문민정부의 방식은 노사정합의 보다는 민주화 이전의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되었고 노동법 날치기 통과로 그 정점을 찍기 이르었다. 이 노동법 날치기 통과는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참가를 망설이며 정부와 협상을 할 것이냐 아니면 총파업을 할 것이냐로 혼란에 빠진 민주노총 내부문제를 한 방에 종식 시켜버렸고(...) 결국 총파업을 실시하게 되었다. [[1996년]] [[12월 26일]]부터 [[1997년]] [[1월 17일]]까지 계속된 총파업은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총파업으로 연인원 350만여명이 참가하였다. 그러나 [[1월 18일]]부로 유연한 파업이란 이름으로 수요파업으로 전환하며 사실상 무력화 되었고 결국 [[3월]]에 개정 노동법이 통과되었다. 노개투 총파업은 민주노총 파업의 리즈시절으로 그 이후 파업은 노개투를 넘지 못했다. | [[1994년]] 노·경총합의 실패와 [[OECD]] 가입조건으로 [[세계노동기구]]가 요구하는 노동법 개정요구 속에서 문민정부는 해고요건 완화·생리휴가폐지 등 노동유연성정책을 제도화 하려는 한편 민주노총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문민정부의 방식은 노사정합의 보다는 민주화 이전의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되었고 노동법 날치기 통과로 그 정점을 찍기 이르었다. 이 노동법 날치기 통과는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참가를 망설이며 정부와 협상을 할 것이냐 아니면 총파업을 할 것이냐로 혼란에 빠진 민주노총 내부문제를 한 방에 종식 시켜버렸고(...) 결국 총파업을 실시하게 되었다. [[1996년]] [[12월 26일]]부터 [[1997년]] [[1월 17일]]까지 계속된 총파업은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총파업으로 연인원 350만여명이 참가하였다. 그러나 [[1월 18일]]부로 유연한 파업이란 이름으로 수요파업으로 전환하며 사실상 무력화 되었고 결국 [[3월]]에 개정 노동법이 통과되었다. 노개투 총파업은 민주노총 파업의 리즈시절으로 그 이후 파업은 노개투를 넘지 못했다. | ||
===현대중공업노동조합 제명=== | ===현대중공업노동조합 제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