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문자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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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한자]], [[가나 (문자)|가나]] 등의 문자가 사용된다.
[[일본]]에서 사용되는 [[문자]]에는 [[한자]], [[가나 (문자)|가나]]가 있다.


== 구성 ==
== 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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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라가나]]
* [[히라가나]]
* [[가타카나]]
* [[가타카나]]
* [[알파벳]]/[[로마자]]<ref>[https://books.google.co.kr/books?id=xywDMwAACAAJ&dq=%E5%9B%BD%E8%AA%9E%E5%AD%A6%E6%A6%82%E8%AB%96&hl=ko&sa=X&ei=W6uTVeO7LITp8AWch4-QCw&ved=0CCIQ6AEwAQ {{일본어=|国語学概論 (白藤禮幸, 杉浦克己 저)}}] 출처</ref>
* [[알파벳]]/[[로마자]]<ref>[https://books.google.co.kr/books?id=xywDMwAACAAJ&dq=%E5%9B%BD%E8%AA%9E%E5%AD%A6%E6%A6%82%E8%AB%96&hl=ko&sa=X&ei=W6uTVeO7LITp8AWch4-QCw&ved=0CCIQ6AEwAQ 国語学概論 (白藤禮幸, 杉浦克己 저)] 출처</ref>
이렇게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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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개 ==
== 전개 ==
=== 한자의 도입 ===
=== 한자의 도입 ===
{{참고|일본어/한자}}
{{참조|일본어/한자}}
본래 일본어는 음성언어로만 존재하고, 문자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다. 한자가 도입된 것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고사기]]》에서 [[오진 덴노]](応神天皇) 때에 [[백제]]가 《[[논어]]》와 《[[천자문]]》을 바쳤다고 하며 이를 한자 전래의 시초로 보고 있다. 이와 별도로 이미 중국에서 문자가 전래됐다고 여러 유물에서 나타나는 흔적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본래 일본어는 음성언어로만 존재하고, 문자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다. 한자가 도입된 것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고사기]]》에서 [[오진 덴노]](応神天皇) 때에 [[백제]]가 《[[논어]]》와 《[[천자문]]》을 바쳤다고 하며 이를 한자 전래의 시초로 보고 있다. 이와 별도로 이미 중국에서 문자가 전래됐다고 여러 유물에서 나타나는 흔적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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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요가나 ===
=== 만요가나 ===
{{참고|만요가나}}
{{참조|만요가나}}
한자를 본래의 의미와 무관하게 일본어의 음절을 표기하기 위해 사용하는 문자다. 한자의 소리만을 빌려서 일본어를 나타내는 가나 문자의 초기 형태를 만들게 되었다. 만요가나가 초서체와 일부 획 생략과 같은 간략화를 거쳐서 지금의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자를 본래의 의미와 무관하게 일본어의 음절을 표기하기 위해 사용하는 문자다. 한자의 소리만을 빌려서 일본어를 나타내는 가나 문자의 초기 형태를 만들게 되었다. 만요가나가 초서체와 일부 획 생략과 같은 간략화를 거쳐서 지금의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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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츠루기타치 이요요토구베시 이니시에유 사야케쿠오이떼 키니시소노나조|오오토모 고지히노(大伴家持)|[[만엽집]](만요슈, 万葉集) 제 20권 4467수}}
(읽기) 츠루기타치 이요요토구베시 이니시에유 사야케쿠오이떼 키니시소노나조|오오토모 고지히노(大伴家持)|[[만엽집]](만요슈, 万葉集) 제 20권 4467수}}


이와 같은 사례를 보면 한자의 읽기 음대로 읽으면 시를 그대로 읊을 수 있다. 물론 《[[만요슈]]》에 이런 표기 방법이 널리 쓰이긴 했지만, 한자 뜻으로만 지어진 노래도 있어서 《만요슈》의 표기 방법이 곧 만요가나와 동일하다고 보긴 어렵다. 만요가나는 [[5세기]] 철검에서 최초로 발견되었으며, [[7세기]]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오사카시]] 주오구 [[나니와궁]] 터에서 발굴된 목간에도 이와 같은 표기가  쓰여서 이 표기가 당시 체계를 갖추고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례를 보면 한자의 읽기 음대로 읽으면 시를 그대로 읊을 수 있다. 물론 《[[만엽집]]》에 이런 표기 방법이 널리 쓰이긴 했지만, 한자 뜻으로만 지어진 노래도 있어서 《만엽집》의 표기 방법이 곧 만요가나와 동일하다고 보긴 어렵다. 만요가나는 [[5세기]] 철검에서 최초로 발견되었으며, [[7세기]]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오사카시]] 주오구 [[나니와궁]] 터에서 발굴된 목간에도 이와 같은 표기가  쓰여서 이 표기가 당시 체계를 갖추고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한자를 한자의 음만 빌려서 나타냈다는 점에서 가나(仮名), 즉 빌려온(가짜) 이름이라는 뜻의 명칭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이에 상대되는 의미로 한자를 마나(真名, 진짜 이름)라고 불렀다.
이렇게 한자를 한자의 음만 빌려서 나타냈다는 점에서 가나(仮名), 즉 빌려온(가짜) 이름이라는 뜻의 명칭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이에 상대되는 의미로 한자를 마나(真名, 진짜 이름)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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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는 중국어와 달리 [[교착어]]<ref>실질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 또는 [[어간]]에 [[문법]]적인 기능을 가진 요소가 차례로 결합함으로써 문장 속에서의 문법적인 역할이나 관계의 차이를 나타내는 [[언어]]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한국어]], [[터키어]], [[일본어]], [[핀란드어]] 등이 예시다.</ref>이므로, [[조사]]나 [[조동사]] 또는 [[어미|활용 어미]]를 한자의 표의성에 더해야만 한다. 가나가 이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게 했다.
일본어는 중국어와 달리 [[교착어]]<ref>실질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 또는 [[어간]]에 [[문법]]적인 기능을 가진 요소가 차례로 결합함으로써 문장 속에서의 문법적인 역할이나 관계의 차이를 나타내는 [[언어]]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한국어]], [[터키어]], [[일본어]], [[핀란드어]] 등이 예시다.</ref>이므로, [[조사]]나 [[조동사]] 또는 [[어미|활용 어미]]를 한자의 표의성에 더해야만 한다. 가나가 이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게 했다.


일단 한자를 수입하여 그것을 발음에 대입하여 문자화 시키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문제는 그 빌려온 문자(仮名)가 진짜문자(真名)와 혼동되기 쉬웠다는 것이 문제였다. 특히나 대륙에서 가져온 여러모로 시대를 앞서는 문헌들을 번역할 때 그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중국어와 일본어는 문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른바, '''표음문자'''로 구분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만요가나만으로는 해석, 번역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다. 따라서 일본인들은 음을 표기하기 위한 문자체계를 별도로 연구하였고, 더불어 진짜 문자는 놔두고 임시 문자의 귀찮은 획수를 획기적으로 줄여서 빠른 필기가 가능하도록 하는 노력이 일본 가나 발전의 토대가 된다.
일단 한자를 수입하여 그것을 발음에 대입하여 문자화 시키는 것 까지는 좋았으나, 문제는 그 임시문자(仮名)가 진짜문자(真名)와 혼동되기 쉬웠다는 것이 문제였다. 특히나 대륙에서 가져온 여러모로 시대를 앞서는 문헌들을 번역할 때 그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중국어와 일본어는 문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른바, '''표음문자'''로 구분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만요가나만으로는 해석, 번역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다. 따라서 일본인들은 음을 표기하기 위한 문자체계를 별도로 연구하였고, 더불어 진짜 문자는 놔두고 임시 문자의 귀찮은 획수를 획기적으로 줄여서 빠른 필기가 가능하도록 하는 노력이 일본 가나 발전의 토대가 된다.


일본의 중국산 한자/한문 수입은 일시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국에 [[한나라]]가 세워지고 [[당나라]]가 망할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간헐적으로) 자주 유학을 보내 당시의 신문물을 가져왔고, 그때마다 당시 유행하는 "중국어"의 유입이 꾸준히 이루어졌다. 때문에 같은 한자를 두고도 수많은 읽기방식이 탄생함은 몰론, 뜻을 이용하기 위해 일본 고유어를 대입하는 방식까지 이뤄지는데 이것이 지금 일본어의 난제라 할 수 있는 난해한 한자표기법의 원인이다.
일본의 대륙산 한자/한문 수입은 일시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륙에 [[한나라]]가 세워지고 [[당나라]]가 망할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간헐적으로) 자주 유학을 보내 당시의 신문물을 가져왔고, 그때마다 당시 유행하는 "중국어"의 유입이 꾸준히 이루어졌다. 때문에 같은 한자를 두고도 수많은 읽기방식이 탄생함은 몰론, 뜻을 이용하기 위해 일본 고유어를 대입하는 방식까지 이뤄지는데 이것이 지금 일본어의 난제라 할 수 있는 난해한 한자표기법의 원인이다.


가령 生을 적더라도 통용 한자표에는 せい・しょう・いかす・いきる・いける・うまれる・うむ・おう・はえる・はやす・き・なま 이와 같이 12개의 음과 훈이 '''기본적으로''' 있으므로 아무 단서 없이 문맥 속의 정확한 읽기 방법을 찾긴 어렵다. (전부 모아보면 100여 가지가 넘는다(...)) 따라서 어떠한 뜻으로 해당 한자가 쓰여졌는지 오쿠리가나(送り仮名)를 붙여 명확한 읽기 방법을 제시해주는 형태가 정립되었다. 예로 生きる라 적으면, "生=い(きる) ※일본고유어"라는 읽기 방법 하나로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가령 生을 적더라도 통용 한자표에는 せい・しょう・いかす・いきる・いける・うまれる・うむ・おう・はえる・はやす・き・なま 이와 같이 12개의 음과 훈이 '''기본적으로''' 있으므로 아무 단서 없이 문맥 속의 정확한 읽기 방법을 찾긴 어렵다. (전부 모아보면 100여 가지가 넘는다(...)) 따라서 어떠한 뜻으로 해당 한자가 쓰여졌는지 오쿠리가나(送り仮名)를 붙여 명확한 읽기 방법을 제시해주는 형태가 정립되었다. 예로 生きる라 적으면, "生=い(きる) ※일본고유어"라는 읽기 방법 하나로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히라가나의 성립 ===
=== 히라가나의 성립 ===
{{참고|히라가나}}
{{참조|히라가나}}


만요가나로 문서화할 때 한자의 많은 획수는 빠르게 적어 옮기기엔 매우 불편했다. 이러한 점에서 가나(仮名)<ref>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본래 "가나"란 임시(仮)로 만든 글자(名)라는 의미에서 시작했다.</ref>의 탄생에는 두 종류의 분파가 있었는데 만요가나를 중국 [[초서체]]처럼 심하게 흘려쓰는 방식이 헨타이가나로 간략화가 되었고 메이지 유신 이후 한 번 더 간추려진 글자들이 히라가나다.
만요가나의 글자체를 문서화하면서 한자의 글자체에 너무 많은 획수는 빠르게 적어 옮기기엔 매우 불편했다. 이러한 점에서 가나(仮名)<ref>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본래 "가나"란 임시(仮)로 만든 글자(名)라는 의미에서 시작했다.</ref>의 탄생에는 두 종류의 분파가 있었는데 일단 모든 획수를 적고는 볼 수 있도록 중국 [[초서체]]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 독자적인 연구를 하였고, 어느 부분에서 획수를 '''서예(書道)로서 아름답게''' 줄일 수 있는가, 라는 방면으로 발달한 특유의 문체가 바로 히라가나이다.


특히 예술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고위직 자녀들, 그 중에서 유난히 궁녀들 사이에서 일기를 쓰거나 글을 짓는 등에 활용되었기에 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글자체가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9세기]] 경부터 [[히라가나]]는 사실상 독립적인 문자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고킨와카슈》(古今和歌集)와 같은 곳에서 이것이 주 표기 방법으로 쓰이게 되었다. 특히 [[헤이안 시대]]를 거치면서 여류 문학의 다양한 수필과 이야기가 모두 히라가나로 쓰여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예술활동에 잉여(...)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고위직 자녀들, 그 중에서 유난히 궁녀들 사이에서 일기를 쓰거나 글을 짓는 등에 활용되었기에 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글자체가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9세기]] 경부터 [[히라가나]]는 사실상 자립된 문자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고킨와카슈》(古今和歌集)와 같은 곳에서 이것이 주 표기 방법으로 쓰이게 되었다. 특히 [[헤이안 시대]]를 거치면서 여류 문학의 다양한 수필과 이야기가 모두 히라가나로 쓰여졌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글자 자체의 인상에서 여성적인 느낌이라 여성에게 해방된 문자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은 맞는 말이더라도, 히라가나 자체가 단지 여성만을 위한 문자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글자 자체의 인상에서 여성적인 느낌이라 여성에게 해방된 문자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은 맞는 말이더라도, 히라가나 자체가 단지 여성만을 위한 문자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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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타카나의 성립 ===
=== 가타카나의 성립 ===
{{참고|가타카나}}
{{참조|가타카나}}


글자 기원의 자획을 생략하는 것을 통해 만들어진 글자로, 헤이안 시대 초기 한문 훈독의 장에서 한문의 텍스트와 좁은 글자 사이 또는 행간에 읽기 위한 메모로서 쓰이면서 한자를 일부 생략하면서 만들어졌다. 한반도에서 쓰이던 구결자와 비슷하다. 마가나(真仮名)라는 만요가나의 다른 이름과 대칭되는 이름으로 가타(かた)는 불완전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 때까지는 한자의 보조문자격으로, 훈점<ref>훈점(訓点)은 한문을 훈독하기 위하여 찍은 부호를 가리킨다. 오쿠리점(한자의 전후좌우 모서리 등 점을 찍는 위치에 따라 읽는 법을 표시하는 방법), 오쿠리가나와 후리가나, 오코토점(ヲコト点)(한자의 전후좌우 모서리 등 점을 찍는 위치에 따라 읽는 법(후속 어미)을 표시하는 방법이다) 같은 것을 포함한다. 주로 불경에 쓰여서 가타카나를 아예 승려의 문자라고도 불렀다.</ref> 자료로 붙었고 자립한 문자 체계가 아니었다.
글자 기원의 자획을 생략하는 것을 통해 만들어진 글자로, 헤이안 시대 초기 한문 훈독의 장에서 한문의 텍스트와 좁은 글자 사이 또는 행간에 읽기 위한 메모로서 쓰이면서 한자를 일부 생략하면서 만들어졌다. 마가나(真仮名)라는 만요가나의 다른 이름과 대칭되는 이름으로 가타(かた)는 불완전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 때까지는 한자의 보조문자격으로, 훈점<ref>훈점(訓点)은 한문을 훈독하기 위하여 찍은 부호를 가리킨다. 오쿠리점(한자의 전후좌우 모서리 등 점을 찍는 위치에 따라 읽는 법을 표시하는 방법), 오쿠리가나와 후리가나, 오코토점(ヲコト点)(한자의 전후좌우 모서리 등 점을 찍는 위치에 따라 읽는 법(후속 어미)을 표시하는 방법이다) 같은 것을 포함한다. 주로 불경에 쓰여서 가타카나를 아예 승려의 문자라고도 불렀다.</ref> 자료로 붙었고 자립한 문자 체계가 아니었다.


한자와 가타카나의 수적 비율 관계가 역전되면서, 헤이안시대 후기에는 가타카나를 주로 하는 문장이 점차 쓰여지게 되었다.
한자와 가타카나의 수적 비율 관계가 역전되면서, 헤이안시대 후기에는 가타카나를 주로 하는 문장이 점차 쓰여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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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일본어 ==
== 현대 일본어 ==
어간은 한자로, 오쿠리가나<ref>{{일본어=|{{루비|送|おく}}り{{루비|仮名|かな}}}}한자 훈독을 한자로 쓰지 않고 뒤로 빼낸 가나.</ref>를 히라가나로 뒤에 붙여서 쓰는 것이 일반적인 표기가 되었다. [[21세기]] 현대에도 일본어에서 [[한자]]와 [[가나 (문자)|가나 문자]]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다만 한자가 어렵다보니 [[당용한자]]가 정해져서 무조건 범위 내의 한자를 쓰도록 제한한 적도 있었는데, 나중에는 [[일본의 상용한자|상용한자]]가 도입되어 생활에 필요한 한자의 범위와 읽는 법을 지정하되 '''제한하지는 않는''' 가이드라인 역할만을 하게 되었다.
어간은 한자로, 오쿠리가나를 히라가나로 뒤에 붙여서 쓰는 것이 일반적인 표기가 되었다. [[21세기]] 현대에도 일본어에서 [[한자]]와 [[가나 (문자)|가나 문자]]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다만 한자가 어렵다보니 [[당용한자]]가 정해져서 무조건 범위 내의 한자를 쓰도록 제한한 적도 있었는데, 나중에는 [[일본의 상용한자|상용한자]]가 도입되어 생활에 필요한 한자의 범위와 읽는 법을 지정하되 '''제한하지는 않는''' 가이드라인 역할만을 하게 되었다.


상용한자로 인해 우리나라와 같은 단어임에도 한자 표기가 단순화된 경우를 볼 수 있다. [[양서류]]({{일본어=|両棲類|r=りょうせいるい}})를 일본어 음이 똑같은 양생류({{일본어=|両生類|r=りょうせいるい}})로 바꿔버린 경우가 그 사례다.
상용한자로 인해 우리 나라와 같은 단어임에도 한자 표기가 단순화된 경우를 볼 수 있다. [[양서류]]({{루비|両棲類|りょうせいるい}})를 일본어 음이 똑같은 양생류({{루비|両生類|りょうせいるい}})로 바꿔버린 경우가 그 사례다.


히라가나가 주요 표기 문자로 떠올랐다. 여성적인 표기라는 점에서 [[20세기]] 초반까지만해도 공식 문서에서 널리 가타카나가 사용되었던 것이, [[1945년]] 전후로 분위기가 전환되면서 지위가 반전되었다고 한다. 현재 가타카나는 [[외래어]] 표기와 고유 명사, 학명 등 학술적인 분야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다.<ref>승려의 문자였다는 과거 역사를 비춰봐도 학술적이고 {{ㅊ|진지 먹는}} 문자라는 인식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ref> 물론 가타카나가 다른 발음을 갖고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므로 문자에 근본적인 기능적인 차이가 있다고 오해할 필요는 없다. {{ㅊ|어디까지나 마음가짐의 차이랄까}}
히라가나가 주요 표기 문자로 떠올랐다. 여성적인 표기라는 점에서 [[20세기]] 초반까지만해도 공식 문서에서 널리 가타카나가 사용되었던 것이, [[1945년]] 전후로 분위기가 전환되면서 지위가 반전되었다고 한다. 현재 가타카나는 [[외래어]] 표기와 고유 명사, 학명 등 학술적인 분야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다.<ref>승려의 문자였다는 과거 역사를 비춰봐도 학술적이고 {{ㅊ|진지 먹는}} 문자라는 인식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ref> 물론 가타카나가 다른 발음을 갖고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므로 문자에 근본적인 기능적인 차이가 있다고 오해할 필요는 없다. {{ㅊ|어디까지나 마음가짐의 차이랄까}}


외래어의 사용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19세기]]와 [[20세기]]에도 신문명어가 지속적으로 번역되어 사용되었지만, 현대 일본어는 이를 한자 어휘로 번역하기보다는 외래어로 받아들여, [[가타카나]]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더 넘어가 외래어를 본래 [[일본어/문법#동사의 활용|일본어 어휘처럼 활용]]하는 경우도 생겼다<ref>サボる: {{프랑스어|sabotage}}를 줄인 サボ에 동사 어미인 る가 붙었다.</ref>.
외래어의 사용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19세기]]와 [[20세기]]에도 신문명어가 지속적으로 번역되어 사용되었지만, 현대 일본어는 이를 한자 어휘로 번역하기보다는 외래어로 받아들여, [[가타카나]]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더 넘어가 외래어를 본래 [[일본어/문법#동사의 활용|일본어 어휘처럼 활용]]하는 경우도 생겼다<ref>サボる: {{llang|fr|sabotage}}를 줄인 サボ에 동사 어미인 る가 붙었다.</ref>.


정보통신의 발달로 문자의 새로운 용법이 생기기도 했는데, 한국어의 '''<span style="font-family:궁서">지금 궁서체다</span>'''처럼,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일부러 가타카나로만 표기하거나, 외국인의 어눌한 일본어를 가타카나로 표기하기도 하고, [[아스키 아트]]에 가나 문자나 한자를 사용하기도 한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문자의 새로운 용법이 생기기도 했는데, 한국어의 '''<span style="font-family:궁서 옛한글">지금 궁서체다</span>'''처럼,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일부러 가타카나로만 표기하거나, 외국인의 어눌한 일본어를 가타카나로 표기하기도 하고, [[아스키 아트]]에 가나 문자나 한자를 사용하기도 한다.


== 신대문자? ==
== 신대문자? ==
신대문자({{일본어=|神代文字}})는 신대(神代)에 쓰인 글자라는 의미로 한자, 가나 이전부터 써왔다던 표음문자 여럿<ref>사실상 가공의 문자</ref>을 합쳐서 부르는 명칭이다. 항목을 참고하면 알 수 있지만, 전근대 시대 역사 왜곡의 결과물과 같다. [[일본어 위키백과]]에선 긍정부정의 견해를 모두 적어놓고 중립적인 척을 하지만 실은 긍정적인 견해를 적어놓고 반박하는 식으로 적어놓았다. 중세 일본에서 쓰였던 가나(헨타이가나, 역사적 가나표기법)는 같은 발음에 여러 글자가 쓰였지만 신대문자는 한 글자에 한 발음이 대응되고(오십음도) 있다.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역시 부정되고 있다.
신대문자(神代文字)는 신대(神代)에 쓰인 글자라는 의미로 한자, 가나 이전부터 써왔다던 표음문자 여럿<ref>사실상 가공의 문자</ref>을 합쳐서 부르는 명칭이다. 항목을 참고하면 알 수 있지만, 전근대 시대 역사 왜곡의 결과물과 같다. [[일본어 위키백과]]에선 긍정부정의 견해를 모두 적어놓고 중립적인 척을 하지만 실은 긍정적인 견해를 적어놓고 반박하는 식으로 적어놓았다. 중세 일본에서 쓰였던 가나(헨타이가나, 역사적 가나표기법)는 같은 발음에 여러 글자가 쓰였지만 신대문자는 한 글자에 한 발음이 대응되고(오십음도) 있다.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역시 부정되고 있다.


{{각주}}
{{각주}}
[[분류:일본의 문자| ]]
[[분류:일본의 문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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