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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다. 조선 말 손꼽히던 부자 집안의 6형제중 넷째.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설명하는데에 거론되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다. 조선 말 손꼽히던 부자 집안의 6형제중 넷째.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설명하는데에 거론되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 ||
1910년 국권피탈이후 | 1910년 국권피탈이후 재산 처분 이후 만주로 이주하였는데 그때 전재산을 급처하였다. 급처한 전재산은 당시 40만원 정도로 현재 시세로 환산한다면 600억원에 육박한다. 이마저도 급하게 처분한 재산이고 급처하지 못한 재산은 그냥 버리고 갔다고. | ||
이후 이회영 형제는 남만주 삼원보에 신한민촌을 만들고 신흥 강습소를 세워 무료오 운영하며 독립운동과 민족 교육과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 이후 이회영 형제는 남만주 삼원보에 신한민촌을 만들고 신흥 강습소를 세워 무료오 운영하며 독립운동과 민족 교육과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