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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근데 태묘는 무덤이 아니다. 태묘太廟의 묘는 무덤을 가리키는 묘墓 가 아니라 위패를 모신 사당을 가리킨다. 태묘는 곧 종묘宗廟를 말한다. 서울 종로 변, 창덕궁 바로 아래에 있는 왕실의 사당 이다. 이덕일은 태묘를 태조의 무덤으로 왜곡해서 사도세자가 자신의 거처 바로 앞에 있는 종묘에 간 것을 수십 킬로미터는 떨어진 건원릉에 간 것이라 선동했다.<ref>정병설, 길 잃은 역사 대중화, 역사비평 2011년 봄호 참고</ref> | 그러나 근데 태묘는 무덤이 아니다. 태묘太廟의 묘는 무덤을 가리키는 묘墓 가 아니라 위패를 모신 사당을 가리킨다. 태묘는 곧 종묘宗廟를 말한다. 서울 종로 변, 창덕궁 바로 아래에 있는 왕실의 사당 이다. 이덕일은 태묘를 태조의 무덤으로 왜곡해서 사도세자가 자신의 거처 바로 앞에 있는 종묘에 간 것을 수십 킬로미터는 떨어진 건원릉에 간 것이라 선동했다.<ref>정병설, 길 잃은 역사 대중화, 역사비평 2011년 봄호 참고</ref> | ||
== | == 관련항목 == | ||
*[[유사역사학]] | *[[유사역사학]] | ||
*[[환단고기]] | *[[환단고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