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하고 있지 않습니다. 편집하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적으로 기록됩니다. 계정을 만들고 로그인하면 편집 시 사용자 이름만 보이며, 위키 이용에 여러 가지 편의가 주어집니다.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전쟁 정보 |전쟁이름 = 영국-스페인 전쟁 |원어이름 = |그림 = |그림설명 = |포괄사건 = |날짜 = 1567년~1604년 |위치 = [[대서양]] 영국 인근 해역 |결과 = 영국의 승리. |단체1 = [[영국]] |지휘관1 = 프랜시스 드레이크, 하워드 경 |병력1 = |피해1 = |단체2 = [[스페인]] |지휘관2 = 메디나 시도니아 공<ref>본래 산타 크루즈 제독이었으나 침공 직전에 사망하여 교체되었다.</ref> |병력2 = |피해2 = |단체3 = |지휘관3 = |병력3 = |피해3 = |단체4 = |지휘관4 = |병력4 = |피해4 = |민간피해 = |비고 = }} *Anglo-Spanish War ==배경== [[대항해 시대]] [[포르투갈]]과 함께 신항로의 개척에 가장 앞장섰던 [[스페인]]은 유럽의 다른 국가들보다 일찍 [[신대륙]]에 [[식민지]]를 개척하고 경제적인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특히 [[펠리페 2세]]의 시대에 스페인은 [[네덜란드]], [[밀라노]], [[나폴리]], [[시칠리아]] 등을 영유하고, 남미의 [[브라질]]과 아시아의 [[필리핀]]까지 식민지로 두는 명실공히 유럽 최강의 패자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스페인은 해외 식민지의 유지와 금과 은을 수송하는 상선을 보호하며, 동시에 [[지중해]]에서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세력을 막기 위해 그 유명한 [[무적함대]](Invinvible Armada)를 건설하게 되었다. 문제는 당시 스페인의 통치 아래 있던 네덜란드는 펠리페 2세의 종교적인 탄압과 경제적 착취에 항거하여 1566년부터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었는데 이 당시 영극의 국왕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는 스페인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자국의 안정과 번영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 네덜란드의 반란군에게 정치적, 재정적 지원을 하였으며, [[사략선]]을 통하여 스페인의 해상교통롤 교란하도록 하였다. 당시 스페인이 네덜란드의 통치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간의 [[프랑스]] 영토를 지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지상군은 물론 무기와 보급을 모두 해상을 통해 수송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해상 교통로가 바로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영국해협과 도버해협이었던 것이다. 즉 영국의 사략선이 손쉽게 스페인의 보급선들을 털어먹기 좋은 환경이었던 것. 여기에 영국은 스페인에 대하여 꽤나 공세적인 전략을 취하였는데, 여오앙을 비롯한 무역상, 은행가 등 투자가들이 협력체계를 유지하고 아예 국가적 차원에서 약탈행위를 장려하고 나섰던 것. 또한 스페인의 네덜란드쪽 보급선을 교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대서양]]을 건너오는 스페인 식민지의 금과 은을 약탈하기 위하여 선체는 낮지만 항해성이 뛰어나고 현측에 중포를 설치한 전투함을 잔뜩 건조하여 대서양의 스페인 수송선들까지 털어먹으면서 스페인의 신경을 제대로 긁어놓고 있었던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종교적인 이유로 갈등을 격고 있던 양국 관계에 이런 사략선으로 신경이 거슬리던 스페인을 정말로 빡치게 만드는 사건이 하나 일어났으니, 이는 1585년에 아에 7천의 병력을 네덜란드에 파병하고 드레이크에게 작위를 주어서 [[카리브 해]] 일대의 스페인 영토에 대한 공격을 허가하였던 것. 1585년에 드레이크는 29척의 함선과 2,300명의 병력으로 구성된 함대를 이끌고 신대륙으로 출항하여 스페인과 포르투갈 식민지를 탈탈 털어먹은 다음 1586년에 귀환하였다. 또한 네덜란드에 파병된 영국군은 네덜란드군과 함께 네덜란드 연안의 수심이 깊은 항구를 통제하면서 네덜란드의 독립을 직접적으로 지원하게 되었던 것. 거기에 1585년 영국이 네덜란드와 동맹까지 맺게 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판단한 펠리페 2세는 [[일본을 공격한다|영국을 직접 공격하여]] 영국에 정치적 종교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동시에 네덜란드에 대한 통치를 지속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자신의 무적함대를 동원하기에 이르게 된다. ==무적함대의 패배== 펠리페 2세의 요구에 따라 1586년 3월에 무적함대의 지휘관이던 산타 크루즈 제독이 영국 침공을 위한 전력의 견적을 제출하였다. 그의 견적에 의하면 최소 50척의 대형 갤리온과 100척의 무장상선, 40척의 대형 수송선, 연안작전용 보조선 320척, 승조원 25,000명, 지상군 60,000명의 병력이 요구되었다. 이는 수십년 동안의 해전의 경험을 가진 산타 크루즈의 판단과 영국의 지리적 환경 및 영국의 저항을 고려할 때는 현실적인 요소였으나 문제는 이 정도의 견적서는 스페인의 동원능력을 훨씬 초과하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때문에 펠리페 2세는 무적함대가 영국해협을 항해하여 플랑도르 근처에서 네덜란드에 주돈한 파르마 공의 병력3만여명을 수송하는 바지 함대를 상봉한 다음 이 함대를 영국의 템즈강 입구로 호송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또한 무적함대가 19,000명의 병력을 수송하여 스페인군의 상륙작전을 엄호하고 파르마군의 항로를 확보하는 동시에 영국의 함대를 격퇴하는 전략을 수립하게 되었다. ===드레이크의 선제공격=== 1857년에 스페인 무적함대의 전쟁준비를 방해하기 위하여 드레이크의 지휘 아래 전투함 16척과 경무장 함선 7척으로 구성된 영국의 소규모 전대가 출동하였다. 이 출동에서 드레이크는 카디즈 만을 기습하여 스페인 함선 37척을 나포하거나 불태워 버렸으며, 이후로도 몇 주동안 스페인의 [[이베리아 반도]] 남서쪽 해역을 돌다아니면서 다수의 소형 선박을 나포하고 화물들을 불태워 버렸다. 드레이크가 불태운 화물의 대부분은 선박용 나무통을 제작하는 재료가 되는 목재로 단순 무게로만 따지면 1,700여톤에 불과한 양이었지만 이들 재료가 나무통으로 만들어 졌을 경우 저장 가능한 식량의 양은 최대 3만톤에 이르는 양이었다. 스페인측이 잘 말려놓은 나무통 재료가 모조리 불에 타 버리면서 스페인측은 어쩔 수 없이 조잡한 나무통 재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식품이 상하거나 음료수가 새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드레이크의 기습으로 인해 펠리페 2세는 무적함대의 출동을 1년간 연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무적함대의 출항=== 펠리페 2세는 무적함대의 사령관으로 여러 차례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투에 참여했고, [[레판토 해전]]에도 참여했었던 산타 크루즈 제독을 이명했다. 산타 크루즈는 영국을 침공하기 위한 전력이 매우 불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왕의 명령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산타 크루즈는 무적함대가 출항하기 전에 사망하게 되었다. 이에 펠리페 2세는 무적함대의 사령관으로 메디나 시도니아 공작을 임명하였다. 그는 성실하지만 해상경험이 적은 사람이었다. 1588년 5월 23일 총 130척의 함정으로 구성된 무적함대가 [[리스본]]을 출항하였다. 이 함대에는 대형 갤리온 20척, 무장상선 44척, 수송선23척, 보조선 35척, 갈래아스 4척, 갤리선4척으로 구성된 함대였다. 함선에 실린 대포만 2,431문이었으며 이 중 중포는1,100문이었다. 또한 함선의 승조원 8,500명과 보병 19,000명이 함께 승함하였다. 무적함대는 적선의 현측에 접근하여 함상 백병전을 수행한다는 [[레판토 해전]]에서의 전술을 사용할 계획이었다. 이에 맞서는 영국 함대는 하워드 경과 드레이크가 지휘하는 2개 전대의 전투함 68척, 소형 함선 50척이 있었으며, 또 다른 2개 전대의 전투함 53척이 도버 근해에서 파르마군의 영국해협 횡단에 대비하고 있었다. 영국 함대는 스페인보다 수는 적었지만 중포는 1,600문으로 스페인의 중포보다 많았으며, 또한 스페인의 전투함보다 속력이 빨랐으며, 포의 성능과 함포 운용요원의 경험도 모두 앞서있었다. ===칼레 해전=== 무적함대는 8월 6일 영국에 상륙할 병력인 파르마군 4만명을 수송하는 바지를 호송하기로 예정하였던 곳이자 중립항구인 [[프랑스]]의 [[칼레]] 외해에 투묘하였다. 스페인군은 플랑드르 연안에 수심이 좋은 항구를 하나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연안은 전체적으로 수심이 깊고 사주가 널려있어서 함대의 정상적인 항해가 불가능한 해역이었다. 더욱이 네덜란드의 낫소공이 지휘한 중무장의 쾌속 평저선이 무적함대의 함포 사거리 밖에서 파르마군의 바지선을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대기하면서 스페인의 신경을 긁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평저선이 부족한 무적함대는 파르마군을 딱히 지원할 방법이 없어서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8월 7일 야음을 틈타 영국의 함대가 투묘중이던 무적함대에 대하여 8척의 화공선을 출격시켜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 때 영국은 심리전을 병행하였는데 그것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화공선 기술자 지암벨리{{ㅈ|앤트워프의 지옥화염으로 유명한 폭발하는 화공선을 설계하여 스페인에 막대한 피해를 입힘}}를 고용하였다고 오래전부터 선전함으로써 스페인군이 화공에 대하여 부담감을 느끼게 하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의 화공선이 접근해 오자 공포감에 휩싸인 무적함대의 많은 함장들이 닻줄을 절단하고 도피하면서 무적함대의 전열이 완전히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물론 실제로 이 화공선은 폭발물이 실리지 않은 그냥 평범한 화공선에 불과하였지만 영국의 심리전에 말려들어버린 상황에서 이미 제대로 된 대처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 난장판 때문에 시도니아는 현장에서 함장 한 명을 교수형에 처하기까지 하였지만 이미 공황상태의 함선을 제대로 통제하기는 불가능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의 함대가 공격을 가해오면서 무적함대가 계속해서 두드려 맞으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영국 함대는 전열이 무너진 스페인 함선으로 접근전을 펼쳐{{ㅈ|약 50m거리까지 접근하여 포격을 하였다}} 철저하게 스페인 함선을 두들겼다. 영국 함대가 코앞까지 접근하여 자신들의 함정들을 두들겨 패는 와중에도 공포감에 사로잡혀 우왕좌왕 하면서 대형을 유지하지 못한 스페인의 함대는 첫 침몰선이 발생하면서 사방으로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인근에서 신경을 긁던 [[네덜란드]]의 함선들이 가세하여 도주하는 스페인 함선들을 하나씩 잡아서 각개격파하기까지 하였는데 이는 스페인 함선을 약탈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심지어 네덜란드측의 함선이 영국 함대보다 더 격렬한 포격을 가하기도 하였을 정도. 결국 8시간 동안이나 지속된 이 전투는 영국함대의 탄약이 다 떨어지면서 철수하게 되면서 종결되었으며, 남풍이 불었기 때문에 양측 함대는 모두 북쪽으로 항해하였다. ===무적함대의 패주=== 칼레 인근에서 대판 두들겨맞고 북쪽으로 항해하던 메디나 시도니아는 다시 도버를 통과하기는 부담스러워서 결국 영국 북쪽의 [[북해]]를 경유하여 [[브리튼섬]]을 한 바퀴 도는 경로로 귀환하기로 결심하였다. 문제는 앞서 전쟁 초반 드레이크의 기습으로 어쩔 수 없이 불량한 나무통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 이 덕분에 무적함대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연안을 일주하여 귀국할 때까지 상한 식량과 식수 덕분에 기아와 갈증, 거기에 [[전염병]]까지 돌면서 엄청난 비전투 손실을 겪었다. 거기에 시도니아의 명령에 불복하고 많은 함선이 아일랜드의 항구로 입항하려다 난파하는 바람에 추가적인 손실까지 입고 말았다. 거기에 이전 칼레 해전에서 급하게 잘라낸 닻줄을 다시 보급받지 못하여서 북해의 험한 바다에서의 대응이 사실상 불가능하여 비전투 손실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패주한 무적함대는 그 해 9월 말에 귀환하였는데 130척의 함선 중 44척을 상실하였다. 주력 전투함은 64척 가운데 44척이 귀환하였지만 대부분 임무수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한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함정의 손실보다 더 뼈아픈 것은 수천명의 승조원과 보병을 그대로 수장시켜버렸다는 점이다. ===이후의 전개=== 이 해에 영국은 사실상 전투능력을 상실하고 항구에 짱박혀있던 무적함대를 완전히 격파할 기회를 잡게 되었다. 1598년 드레이크의 지휘 아래 83척의 전투함과 60척의 수송선, 그리고 19,000명의 병력과 함께 강력한 함대가 출동하였다. 그런데 이 출동의 본래 목적인 스페인의 잔여 함선을 격파한다는 목표가 갑자기 리스본 원정으로 규모가 커지면서 [[포루투갈]]을 [[스페인]]으로부터 분리하려는 대규모 원정 작전으로 전개되는 바람에 시기가 늦어지고 리스본의 탈취계획도 실패로 끝나면서 완전히 숨통을 끊어놓을 수 있었던 무적함대를 격파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수리를 마치고 재기한 무적함대가 절치부심하여 1596년과 1597년 두 차례 출동하였는데 이 두 번의 출동은 모두 폭풍으로 인해 실패로 끝나고 만다. ==결과== 1604년에 영국과 스페인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영국-스페인 전쟁은 끝이 나게 된다. 무적함대가 박살이 나면서 스페인의 국위가 실추된 것은 물론 이 전쟁 이후로 스페인의 국력은 점차 내리막길을 걸어 이후 벌어진 [[30년 전쟁]]을 겪으면서 [[합스부르크 왕가]]는 사실상 몰락하게 된다. 또한 30년 전쟁 이후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네덜란드]]까지 완전히 독립하게 되면서 스페인은 유럽 최강국에서 유렵의 2등 국가로 내려앉게 된다. 반면에 영국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이후 대영제국까지 발전하는 첫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전쟁사적 측면에서 보면 이 전투로 기존 노선시대의 전투방식인 함상백병전이 사실상 종식을 고하게 되고 범선시대의 전투방식인 포격전이 새로운 해전의 방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주석}} [[분류:해전]] [[분류:세계사]] [[분류:전쟁]] [[분류:영국의 사건]] [[분류:스페인의 사건]] [[분류:1567년 분쟁]] 요약: 리브레 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로 배포됩니다(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브레 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글이 직접 작성되었거나 호환되는 라이선스인지 확인해주세요. 리그베다 위키, 나무위키, 오리위키, 구스위키, 디시위키 및 CCL 미적용 사이트 등에서 글을 가져오실 때는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여야 하고, 만약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라는 증거가 없다면 그 문서는 불시에 삭제될 수 있습니다.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 () [] [[]] {{}} {{{}}} · <!-- --> · [[분류:]] · [[파일:]] · [[미디어:]] · #넘겨주기 [[]] · {{ㅊ|}} · <onlyinclude></onlyinclude> · <includeonly></includeonly> · <noinclude></noinclude> · <br /> · <ref></ref> · {{각주}} · {|class="wikitable" · |- · rowspan=""| · colspan=""| · |} {{lang|}} · {{llang||}} · {{인용문|}} · {{인용문2|}} · {{유튜브|}} · {{다음팟|}} · {{니코|}} · {{토막글}} {{삭제|}} · {{특정판삭제|}}(이유를 적지 않을 경우 기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드시 이유를 적어주세요.) {{#expr:}} · {{#if:}} · {{#ifeq:}} · {{#iferror:}} · {{#ifexist:}} · {{#switch:}} · {{#time:}} · {{#timel:}} · {{#titleparts:}} __NOTOC__ · __FORCETOC__ · __TOC__ · {{PAGENAME}} · {{SITENAME}} · {{localurl:}} · {{fullurl:}} · {{ns:}} –(대시) ‘’(작은따옴표) “”(큰따옴표) ·(가운뎃점) …(말줄임표) ‽(물음느낌표) 〈〉(홑화살괄호) 《》(겹화살괄호) ± − × ÷ ≈ ≠ ∓ ≤ ≥ ∞ ¬ ¹ ² ³ ⁿ ¼ ½ ¾ § € £ ₩ ¥ ¢ † ‡ • ← → ↔ ‰ °C µ(마이크로) Å °(도) ′(분) ″(초) Α α Β β Γ γ Δ δ Ε ε Ζ ζ Η η Θ θ Ι ι Κ κ Λ λ Μ μ(뮤) Ν ν Ξ ξ Ο ο Π π Ρ ρ Σ σ ς Τ τ Υ υ Φ φ Χ χ Ψ ψ Ω ω · Ά ά Έ έ Ή ή Ί ί Ό ό Ύ ύ Ώ ώ · Ϊ ϊ Ϋ ϋ · ΐ ΰ Æ æ Đ(D with stroke) đ Ð(eth) ð ı Ł ł Ø ø Œ œ ß Þ þ · Á á Ć ć É é Í í Ĺ ĺ Ḿ ḿ Ń ń Ó ó Ŕ ŕ Ś ś Ú ú Ý ý Ź ź · À à È è Ì ì Ǹ ǹ Ò ò Ù ù · İ Ż ż ·  â Ĉ ĉ Ê ê Ĝ ĝ Ĥ ĥ Î î Ĵ ĵ Ô ô Ŝ ŝ Û û · Ä ä Ë ë Ï ï Ö ö Ü ü Ÿ ÿ · ǘ ǜ ǚ ǖ · caron/háček: Ǎ ǎ Č č Ď ď Ě ě Ǐ ǐ Ľ ľ Ň ň Ǒ ǒ Ř ř Š š Ť ť Ǔ ǔ Ž ž · breve: Ă ă Ğ ğ Ŏ ŏ Ŭ ŭ · Ā ā Ē ē Ī ī Ō ō Ū ū · à ã Ñ ñ Õ õ · Å å Ů ů · Ą ą Ę ę · Ç ç Ş ş Ţ ţ · Ő ő Ű ű · Ș ș Ț ț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Ref (원본 보기) (준보호됨)틀:ㅈ (편집) 틀:각주 (원본 보기) (준보호됨)틀:전쟁 정보 (편집) 틀:정보상자 주제칸 (원본 보기) (준보호됨)틀:정보상자 칸 (원본 보기) (준보호됨)틀:정보상자 큰칸 (원본 보기) (준보호됨)틀:주석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