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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는 서울교구에서도 김기리 미리암 부제가 여성 최초로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1988 서울 올림픽]] 주제가인 <손에 손 잡고>의 작사자이자 서울대학교 미학과 교수를 지낸 김문환 교수이며, 형제로는 오빠가 1명 있다. 본래 한국기독교장로회 경동교회에 다녔으나 성공회에 매료되어 종파를 옮겼고, 성공회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성직 서품을 받는 길은 쉽지 않았고, 여성의 서품을 반대하는 제도 및 사람들과 싸운 끝에 어렵게 서품을 받을 수 있었다. | 2004년에는 서울교구에서도 김기리 미리암 부제가 여성 최초로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1988 서울 올림픽]] 주제가인 <손에 손 잡고>의 작사자이자 서울대학교 미학과 교수를 지낸 김문환 교수이며, 형제로는 오빠가 1명 있다. 본래 한국기독교장로회 경동교회에 다녔으나 성공회에 매료되어 종파를 옮겼고, 성공회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성직 서품을 받는 길은 쉽지 않았고, 여성의 서품을 반대하는 제도 및 사람들과 싸운 끝에 어렵게 서품을 받을 수 있었다. | ||
성공회 성직자는 자신의 의사에 따라 결혼할 수도 있고, 독신으로 살아갈 수도 | 성공회 성직자는 자신의 의사에 따라 결혼할 수도 있고, 독신으로 살아갈 수도 있는데, 박미현 신부와 김기리 신부는 결혼하여 자녀를 두고 있으며 남편도 성공회 신부이다. | ||
2007년에는 대한성공회 최초의 여성 수도사제도 탄생했다. 성가수녀회(聖架修女會)의 오인숙 카타리나 수녀이다. [[한국전쟁]] 중에 부모를 잃고 여동생과 함께 성공회 고아원에서 자란 그녀는, [[서강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자마자 성가수녀회에 입회하여 수녀가 되었다. 이후 [[성공회대학교]] 영문과 교수 및 수녀원장을 지내며 활약했던 오인숙 수녀는, 사제로서의 부르심을 받고 준비를 시작하여 2007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성직자의 결혼을 허용하는 [[정교회]]와 성공회 역시 수도자(수사/수녀)의 결혼만큼은 금하고 있으며, 수도자 겸 성직자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단 가톨릭과 정교회에는 남성 수도사제만 있으나{{ㅈ|‘수사신부’, ‘성직수사’라고도 한다.}}, 성공회에는 여성 수도사제도 있는 것이다. | 2007년에는 대한성공회 최초의 여성 수도사제도 탄생했다. 성가수녀회(聖架修女會)의 오인숙 카타리나 수녀이다. [[한국전쟁]] 중에 부모를 잃고 여동생과 함께 성공회 고아원에서 자란 그녀는, [[서강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자마자 성가수녀회에 입회하여 수녀가 되었다. 이후 [[성공회대학교]] 영문과 교수 및 수녀원장을 지내며 활약했던 오인숙 수녀는, 사제로서의 부르심을 받고 준비를 시작하여 2007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성직자의 결혼을 허용하는 [[정교회]]와 성공회 역시 수도자(수사/수녀)의 결혼만큼은 금하고 있으며, 수도자 겸 성직자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단 가톨릭과 정교회에는 남성 수도사제만 있으나{{ㅈ|‘수사신부’, ‘성직수사’라고도 한다.}}, 성공회에는 여성 수도사제도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