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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위의 주장이 모두 근대 시기에 들어 내셔널리즘이 대두되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는 데 반해, 근대 초기(16~17세기)나 중세, 혹은 아예 고대에서 그 기원을 찾는 학자도 많다.<ref>장문석 (2011) 『민족주의』 서울: 책세상. pp. 55-66</ref> | 한편 위의 주장이 모두 근대 시기에 들어 내셔널리즘이 대두되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는 데 반해, 근대 초기(16~17세기)나 중세, 혹은 아예 고대에서 그 기원을 찾는 학자도 많다.<ref>장문석 (2011) 『민족주의』 서울: 책세상. pp. 55-66</ref> | ||
그러나 '내셔널리즘(nationalism)'이란 단어는 19세기만 해도 | 그러나 '내셔널리즘(nationalism)'이란 단어는 19세기만 해도 대부분의 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미루어 본다면 이 말이 정착한 것은 [[19세기]] 말의 일인 것으로 생각된다.<ref name="오마"> 오사와 마사치 (2010) "머리말," 『내셔널리즘론의 명저50』 서울:일조각. 엮은이 오사와 마사치. 옮긴이 김영작, 이이범 외. </ref> 또한 내셔널리즘이 학문적 탐구의 대상이 된 것은 20세기 이후이다. <ref name="오마"></ref> | ||
프랑스 같은 경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집권하면서 민족주의 사상이 생겨났다. 그는 [[나폴레옹 전쟁]] 시기 유럽 주변 지역을 침략 하면서 프랑스가 패권을 장악하려고 했지만 러시아 원정에서 실패해서 그의 야심은 한풀 꺾이고 말았다. | 프랑스 같은 경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집권하면서 민족주의 사상이 생겨났다. 그는 [[나폴레옹 전쟁]] 시기 유럽 주변 지역을 침략 하면서 프랑스가 패권을 장악하려고 했지만 러시아 원정에서 실패해서 그의 야심은 한풀 꺾이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