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성왕 편집하기


편집하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적으로 기록됩니다. 계정을 만들고 로그인하면 편집 시 사용자 이름만 보이며, 위키 이용에 여러 가지 편의가 주어집니다.

편집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이 편집을 되돌리려면 아래의 바뀐 내용을 확인한 후 게시해주세요.

최신판 당신의 편집
1번째 줄: 1번째 줄:
'''고주몽'''(高朱蒙, 기원전 58년~기원전 19년)은 [[고구려]]의 초대 임금이다.
{{토막글}}
고구려를 세운 사람(=동명왕)
기원전 59년-기원후 19년 사람으로 부여의 왕자였다.
주몽의 형제들이 주몽을 죽이려하자 주몽은 졸본으로 내려와 고구려를 세웠다. 알에서 태어났다고 언플을 시전한다. 전설이니 실제로 태어나지는 않았다고 추정중이다


== 이름 ==
성은 고씨이고 이름은 주몽인데, 이름은 추모, 중해 등 다양한 표기가 존재한다. 주몽이란 이름은 부여말로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왕호는 '''동명성왕'''(東明聖王)이다.
== 건국 설화 ==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및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 등을 통해 그 출생 및 건국 설화가 전해진다. 강의 신 [[하백]]은 자신의 딸 딸 유화가 사사로이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정을 통한 것에 분노해 그녀를 우발수로 귀양 보냈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던 [[부여]]의 금와왕이 그녀를 발견하여 거두었다. 이후 햇빛이 방안에 들어와 유화를 비추었고, 곧 임신을 하게 된 유화는 다섯 되쯤 되는 크기의 알을 낳았다. 이를 괴이하게 여긴 금와왕은 알을 개와 돼지의 먹이로 던져주었으나 개돼지들은 먹지 않았고, 길에 던져두었으나 소와 말이 피해서 갔고, 들에 버리자 새들이 알을 덮어주었다. 알을 쪼개려 해도 쪼개지지 않자, 마침내 금와왕은 알을 유화에게 돌려주었다. 그 알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주몽이다.
활솜씨를 비롯한 재능이 뛰어났던 주몽은 곧 대소 왕자를 비롯한 금와왕의 자식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고, 목숨을 위협받자 친구인 오이, 마리, 협보와 함께 부여를 떠났다. 이후 모둔곡에서 재사, 무골, 묵거라는 세 명의 인재를 만나 그들에게 각자 극씨, 중실씨, 소실씨 성을 내리고 수하로 삼았으며, 졸본에 이르러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막 자리를 잡을 무렵엔 궁궐을 세울 여력이 없어 비류수 물가에 초막을 짓고 지냈다.
이후 [[비류국]]의 왕 송양과 활솜씨를 겨루고 그를 굴복시켜 그 땅을 얻어냈으며, 그 뒤로도 행인국과 북옥저 등을 정벌하며 영토를 확장했다.
《논형》의 <길험편>이나 《삼국지》 동이전에 주석으로 언급된 《위략》 등에 '동명'이 고리국을 떠나 부여의 왕이 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동명성왕 주몽의 고구려 건국설화와 몹시 흡사하다. 이 때문에 고구려에서 후에 부여의 건국 설화를 차용했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각주}}
[[분류:고구려의 왕]]
[[분류:고구려의 왕]]
[[분류:전설 속의 인물]]
리브레 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로 배포됩니다(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브레 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글이 직접 작성되었거나 호환되는 라이선스인지 확인해주세요. 리그베다 위키, 나무위키, 오리위키, 구스위키, 디시위키 및 CCL 미적용 사이트 등에서 글을 가져오실 때는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여야 하고, 만약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라는 증거가 없다면 그 문서는 불시에 삭제될 수 있습니다.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 () [] [[]] {{}} {{{}}} · <!-- --> · [[분류:]] · [[파일:]] · [[미디어:]] · #넘겨주기 [[]] · {{ㅊ|}} · <onlyinclude></onlyinclude> · <includeonly></includeonly> · <noinclude></noinclude> · <br /> · <ref></ref> · {{각주}} · {|class="wikitable" · |- · rowspan=""| · colspan=""| · |}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