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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인 광화문의 좌우에는 해태상이 세워져 있는데, 원래는 현재 위치에서 8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왕 외의 사람은 말에서 내리라는 표식이었다고. | 정문인 광화문의 좌우에는 해태상이 세워져 있는데, 원래는 현재 위치에서 8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왕 외의 사람은 말에서 내리라는 표식이었다고. | ||
<br />전면 담장의 두 모퉁이에 망루인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을 설치했는데, 서십자각은 [[일제 강점기]]에 철거되었고 동십자각은 [[세종로]] 확장을 위해 성벽이 이전되면서 혼자 동떨어진 길 한복판에 있게 되었다.(...) | |||
광화문 역시 수난을 피해가지 못했는데,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을 때 철거될 예정이었다가 극심한 반대에 부딪쳐서 [[건춘문]] 근처로 이전하는 것으로 계획이 수정되었다. 대표적으로 '''일본인'''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일본이 타국의 식민지가 되어 [[에도성]]이 파괴된다면 어떠하겠는가'며 반발하는 내용의 글을 썼다. | |||
광화문 역시 수난을 피해가지 못했는데,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을 때 철거될 예정이었다가 극심한 반대에 부딪쳐서 [[건춘문]] 근처로 이전하는 것으로 계획이 수정되었다. 대표적으로 '''일본인''' | |||
그렇게 옮겨간 광화문은 [[6.25 전쟁]] 와중에 결국 파괴되었고, [[1968년]]에야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되었다. 하지만 조선총독부 정문 자리로 옮겨 놓은 탓에 원래 위치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고,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한글 현판 역시 말이 많았다. | 그렇게 옮겨간 광화문은 [[6.25 전쟁]] 와중에 결국 파괴되었고, [[1968년]]에야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되었다. 하지만 조선총독부 정문 자리로 옮겨 놓은 탓에 원래 위치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고,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한글 현판 역시 말이 많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