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하고 있지 않습니다. 편집하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적으로 기록됩니다. 계정을 만들고 로그인하면 편집 시 사용자 이름만 보이며, 위키 이용에 여러 가지 편의가 주어집니다.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고통 받는 아내 == [[일본 왕실]]과 [[궁내청]]에서는 노총각 나루히토 왕세자를 하루빨리 장가보내기 위해 애썼고, 나루히토 왕세자는 그토록 사모하던 마사코와의 결혼에 성공했지만, [[마사코 왕세자비]]는 보수적인 왕실의 입맛에 맞는 며느리가 아니었다. 마사코 왕세자비가 기자회견에서 나루히토 왕세자보다 고작 19초 더 길게 이야기한 것도,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분명히 이야기한 것도, [[일본]]에서는 비난거리가 되었다. “왕세자가 3마디를 말하면 왕세자비는 1마디만 해야 한다”거나, “이렇게 남편을 깎아내리고 남편보다 설쳐대서는 안 된다”라는 등등의 전근대적이고 남존여비적인 잣대들이 [[마사코 왕세자비]]를 검열했다. 특히 그녀는 오랫동안 서양 문화권에서 성장하여 개방적이고 현대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했기에, 이러한 일본 문화와 더욱 많이 부딪히며 혼란스러워했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결혼을 앞둔 소감을 묻는 질문에 “온 힘을 다해 마사코를 지키겠습니다!”라고 선언했지만, 그의 사랑만으로는 아내를 향한 공격들을 완벽하게 막아낼 수 없었다. 결혼 이듬해인 1994년과 그 이듬해인 1995년, 왕세자 부부는 [[중동]]의 여러 나라들을 순방했다. 이곳에서 [[마사코 왕세자비]]는 [[하버드대학교]]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공부한 경험, [[유럽]]과 [[미국]]에서의 오랜 생활, 다양한 외국어 실력, 전직 외교관 출신다운 외교적 지식과 예법 등의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나루히토 왕세자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여 가진 기자회견에서 “왕세자비가 이번 순방을 정말로 잘 해냈습니다.”라고 말하며 아내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왕실에서 [[마사코 왕세자비]]에게 가장 기대하는 것은 ‘아들 출산’이었다. 그리고 왕실에서는 남편보다 더 돋보이는 아내를 원하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남편을 보필하고 내조하며 복종하는 아내’만을 바랐다. 이후로 왕실에서는 [[임신]] 준비를 위하여 마사코 왕세자비의 해외순방을 자제시켰다. 그러나 왕세자 부부는 좀처럼 아이를 갖지 못했다. 불임의 원인은 나루히토 왕세자에게 있다는 것이 거의 정설이었으나, 비난의 화살은 마사코 왕세자비에게만 쏟아졌다. 그러한 비난과 함께 유산을 반복하면서, 마사코 왕세자비의 심신은 병들어갔다. 그러다가 2001년 초반에 [[마사코 왕세자비]]는 다시 임신했고, 2001년 12월 1일 [[궁내청]]병원에서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를 낳았다. 왕세자 부부가 결혼 8년 만에 마침내 아이를 낳았지만 [[공주]]에게는 왕위 계승권이 없기에, 일본에서는 아이코 공주의 탄생을 축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왕자]]가 아님을 아쉬워했다. [[아키히토]] 일왕 내외도 마찬가지였다. 손녀를 보아 기뻐하면서도, 오래지 않아 “다시 임신해서 아들을 낳아라”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나루히토 왕세자는 “아이코 공주가 3살이 될 때까지는 기다려 달라”고 청했다. 아내의 심신 회복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갓 태어난 딸에게 충분한 관심과 애정을 쏟아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는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씻기고, 놀아주는 등등 손수 육아를 했는데, 이는 [[일본]]의 남성 왕족으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행보였다. [[마사코 왕세자비]]는 여전히 왕실에서 힘들어했다. 그러다가 2004년 여름, 나루히토 왕세자는 기자회견에서 충격적인 발언을 한다. 예정 시간보다 30분 늦게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그의 입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인용문|왕실에 마사코 왕세자비의 경력과 인격을 부정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러한 의견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해 추론했다. 왕실에서 왕세자비의 경력과 인격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란, 일왕 내외밖에 없을 것이 분명했다. 즉 나루히토 왕세자의 발언은 시부모(일왕 내외)와 큰며느리([[마사코 왕세자비]]) 사이의 갈등을 드러내고 인정한 것이며, 또한 왕실의 수장이자 아버지인 [[아키히토]] 일왕에게 반발한 것이었다. 이는 위계와 효를 강조하는 동양 문화에 어긋나는 행위이자 하극상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궁내청]]에서는 즉시 나루히토 왕세자의 발언을 진화하고자 애썼고, 나루히토 왕세자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왕자도 “형님은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부모님과 상의했어야 한다.”라며 비판했다. 후미히토 왕자는 차남이라 의무와 부담감도 덜했고, 이전부터 부모의 비위도 잘 맞추어, 왕세자 부부와 달리 일왕 내외와 원만하게 지내고 있었다. [[마사코 왕세자비]]는 [[우울증]], 적응장애, [[대상포진]] 등의 각종 병으로 인하여, 2003년 무렵부터 공식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왕세자궁에 칩거하며 요양하기 시작했다. [[일본 왕실]], [[궁내청]], 우익들과 여론은 그녀를 ‘[[세금]]으로 놀고먹는 세금도둑’이라며 비난했다. 어렵게 얻은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에 대해서도 ‘[[자폐]]아가 아니냐?!’는 악의적인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에 나루히토 왕세자는 그러한 헛소문을 잠재우고자, 3살배기 아이코 공주가 부모와 활발하게 뛰어노는 장면을 손수 촬영하여 공개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평일 대낮에도 아기와 놀아줄 수 있는 아버지’와 ‘우울증을 이유로 몇 년이고 휴식할 수 있는 어머니’라며 왕세자 부부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던졌다. 한편 2002년에는 나루히토 왕세자와 친했던 5촌 당숙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왕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노리히토 왕자는 경직되고 보수적인 분위기의 [[일본 왕실]]에서 드물게 개방적이고 활달한 성품으로, [[2002 한일 월드컵]] 당시에는 아내 [[히사코 비]]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여 그때의 견문을 책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5촌 당숙이라지만 나루히토 왕세자보다 고작 6년 연상(1954년생)이라 어른이라기보다 형님 같았던 노리히토 왕자가 사망함에 따라, 왕세자 일가의 의지처가 하나 더 줄어들었다. 노리히토 왕자의 소생으로는 1986년생인 장녀 [[쓰구코 공주]], 1988년생인 차녀 [[노리코 공주]], 1990년생인 3녀 [[아야코 공주]]가 있고, 아들은 없다. 요약: 리브레 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로 배포됩니다(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브레 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글이 직접 작성되었거나 호환되는 라이선스인지 확인해주세요. 리그베다 위키, 나무위키, 오리위키, 구스위키, 디시위키 및 CCL 미적용 사이트 등에서 글을 가져오실 때는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여야 하고, 만약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라는 증거가 없다면 그 문서는 불시에 삭제될 수 있습니다.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 () [] [[]] {{}} {{{}}} · <!-- --> · [[분류:]] · [[파일:]] · [[미디어:]] · #넘겨주기 [[]] · {{ㅊ|}} · <onlyinclude></onlyinclude> · <includeonly></includeonly> · <noinclude></noinclude> · <br /> · <ref></ref> · {{각주}} · {|class="wikitable" · |- · rowspan=""| · colspan=""| · |} {{lang|}} · {{llang||}} · {{인용문|}} · {{인용문2|}} · {{유튜브|}} · {{다음팟|}} · {{니코|}} · {{토막글}} {{삭제|}} · {{특정판삭제|}}(이유를 적지 않을 경우 기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드시 이유를 적어주세요.) {{#expr:}} · {{#if:}} · {{#ifeq:}} · {{#iferror:}} · {{#ifexist:}} · {{#switch:}} · {{#time:}} · {{#timel:}} · {{#titleparts:}} __NOTOC__ · __FORCETOC__ · __TOC__ · {{PAGENAME}} · {{SITENAME}} · {{localurl:}} · {{fullurl:}} · {{ns:}} –(대시) ‘’(작은따옴표) “”(큰따옴표) ·(가운뎃점) …(말줄임표) ‽(물음느낌표) 〈〉(홑화살괄호) 《》(겹화살괄호) ± − × ÷ ≈ ≠ ∓ ≤ ≥ ∞ ¬ ¹ ² ³ ⁿ ¼ ½ ¾ § € £ ₩ ¥ ¢ † ‡ • ← → ↔ ‰ °C µ(마이크로) Å °(도) ′(분) ″(초) Α α Β β Γ γ Δ δ Ε ε Ζ ζ Η η Θ θ Ι ι Κ κ Λ λ Μ μ(뮤) Ν ν Ξ ξ Ο ο Π π Ρ ρ Σ σ ς Τ τ Υ υ Φ φ Χ χ Ψ ψ Ω ω · Ά ά Έ έ Ή ή Ί ί Ό ό Ύ ύ Ώ ώ · Ϊ ϊ Ϋ ϋ · ΐ ΰ Æ æ Đ(D with stroke) đ Ð(eth) ð ı Ł ł Ø ø Œ œ ß Þ þ · Á á Ć ć É é Í í Ĺ ĺ Ḿ ḿ Ń ń Ó ó Ŕ ŕ Ś ś Ú ú Ý ý Ź ź · À à È è Ì ì Ǹ ǹ Ò ò Ù ù · İ Ż ż ·  â Ĉ ĉ Ê ê Ĝ ĝ Ĥ ĥ Î î Ĵ ĵ Ô ô Ŝ ŝ Û û · Ä ä Ë ë Ï ï Ö ö Ü ü Ÿ ÿ · ǘ ǜ ǚ ǖ · caron/háček: Ǎ ǎ Č č Ď ď Ě ě Ǐ ǐ Ľ ľ Ň ň Ǒ ǒ Ř ř Š š Ť ť Ǔ ǔ Ž ž · breve: Ă ă Ğ ğ Ŏ ŏ Ŭ ŭ · Ā ā Ē ē Ī ī Ō ō Ū ū · à ã Ñ ñ Õ õ · Å å Ů ů · Ą ą Ę ę · Ç ç Ş ş Ţ ţ · Ő ő Ű ű · Ș ș Ț 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