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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만일 한국이 중립화에 기초하여 통일된다면 관련국들이 사전에 모든 조건과 안보조항 그리고 보장사항들을 해결하고 동의한다는 것을 남한 지도자들은 알아야 한다.}} 장면 정부는 한국의 전략적 위치나 현재 공산권과 대치하고 있는 현실 등에 있어서 오스트리아와는 국내외의 제 조건이 다르며 정치 사회경제 문화적 조건들도 오스트리아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들어 중립화를 반대하였다 이에 대해 김용중은 주변 열강들이 한국에서의 세력균형에 대해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있다는 점과 한국은 주변의 특정국가에 대해 선택적으로 우호적이거나 대립할 수 없는 위치임을 지적하며 오스트리아 못지않게 중립을 요하는 위치라는 상반되는 분석을 하였다. 즉 한반도는 주변국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어야 통일이 가능하기 때문에 통일을 위한 가장 합리적인 선택으로서 그는 중립을 논했던 것이다 그리고 중립을 추진하기에 앞서 내부적으로 민족의 화합이 우선 요구되므로 남북은 상호불신과 적의를 버리고 협상을 통해 화해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자유선거를 통한 중립적 통일정부의 수립을 호소하였으며 공산주의자들과 직접 대화하고 협상할 것을 강조하였다. 1961년 1월 14일, 김용중은 장면 총리에게 편지를 보내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과 동서독의 예를 들어 남한 정부가 북한과 협상할 것을 강조헀다. {{인용문2|10년간의 피와 눈물의 경험은 어느 한 쪽도 상대에게 그 뜻을 무력으로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남과 북 전체가 아닌 어느 한쪽은 전체의 이익을 만족시킬 수 없다. 북한과의 협상은 개인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비난하듯이 공산주의에 항복하거나 친 공산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상호간의 동의에 의해 합법적 협정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와 민족의 화합을 위해서 정치가다운 교섭을 하는 것이 국내외적으로 남한의 역량을 강화시켜줄 것이다 서구 민주주의가 상호간의 이익증진을 위해 공산국가들과 지속적으로 협상하는 것과 동서독이 서로간의 무역협정을 쇄신하고 있는 것은 주목해야 할 일이다. 어떠한 외국의 제도도 우리의 조국에 완벽할 수는 없다 전 국민의 자유와 독립을 구현하기 위해서 한국주의 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한국 정치가들의 과제이다. (중략) 우리의 합일된 의지와 노력이 없이는 어떤 강대국도 통일된 우리의 조국을 은쟁반에 담아 가져다 주지 않을 것이다 민족의 통일이 없이는 우리의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통일이라는 가장 중요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길을 다 찾아보며 할 수 있는 노력을 완전히 기울이는 것이 우리의 궁극의 사명이다 우리 민족은 희생양으로서 이 불행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 김용중은 1961년 1월 19일 김일성에게도 공개 서한을 보내 한국인의 정체성으로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 차이를 극복하자고 제안하기도 헀다. {{인용문2|나는 공산주의자이건 자본주의자이건 간에 '한국인은 한국인이다' 라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었고 조국의 운명이 위기에 처한 상태에서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무시하고 공산주의자와 함께 조국의 심각한 문제를 토론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한국의 정치 경제 체제가 바뀌고 전 세계의 정치 경제체제가 바뀐다고 하여도 한국인에게 한국은 고향이다. 나는 당신들의 선전기관이 평화적 통일에 대한 호소를 강조하면서도 왜 남한 지도자들과 민주국가 특히 미국에 대해 근거 없는 비난과 욕설을 퍼붓는지 이해할 수 없다. 화해를 이루기 위하여 상대방을 더욱 가깝게 끌어당기는 대신 그러한 적대적 전술을 쓰면 상대는 오히려 멀어지게 될 수 있다. 만일 그것이 당신의 정책이라면 냉전이라는 저주에서 우리 민족이 일찍이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이 당신의 의도라는 것을 나는 믿지 않는다 당신네의 비양심적인 선전가들이 당신과 당신 국가의 품위를 손상시킨다고 생각한다 나는 당신이 예의 없는 언동을 몹시 싫어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분단된 조국을 통일하기 위해서는 한국은 두 개의 적대적 정권의 통합뿐 아니라 미국 러시아 중국이라는 강대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문제에 깊숙이 개입되어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들 북의 지도자들이 우리 민족의 번영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면 당신들은 누구에게도 종속적이어서는 안 되며 누구에게도 적대적이어서는 안 된다 여러분들은 우리 민족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대의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이제 당신의 애국심이 조국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 인민 대중들에게 밝혀야 할 때가 아닌가? 당신에게 있어서 당신 조국의 자유보다 공산주의가 더욱 소중할 것이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우리는 한 혈통이고 한 민족이다 남과 북 어느 곳도 상대편의 약점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나는 우리가 국제적인 힘의 정치에 가담함으로써 우리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 걱정이다 우리 민족의 생존 문제는 어떤 문제보다 우선 고려되어야 한다.}} 김용중의 한반도 중립화 통일 방안은 한국 언론에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1961년 3월 7일 <서울신문>은 "김용중씨의 통한제언"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그의 통일론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인용문2|1. 상호 비방, 간첩행위 중지 2. 남북간 연락부 설치. 3. 유엔 주선하 중립국가에서 통일문제회담 개최 3-1. 동서 양 진영 불가담 국가로 군사정전위원회 대체. 3-2. 위 위원단 감시 하에 인구비례 전국총선거로 제헌국회 창설, 전 한국 정부 수립, 유엔, 인접국가들 독립, 주권, 영토권 보호 하에 한국 중립 통일. 4. 남북 군대 총 10만 명으로 감축. 5. 남북 단독 체결한 기존의 국제조약 협정 협약 무효화. 6. 통일회담으로 해결되지 못하면 동서양진영 불가담국가로 조정위원단 창설 7. 과도기에 조정위원단 통해 상호 교역 우편물과 이산가족 교류 개시}} 1961년 2월 25일 결성된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는 일본에서 통일운동을 벌이고 있던 김삼규 등과 함께 김용중을 명예의장에 추대했다. 민족통일연맹(민통련) 역시 김용중의 이름을 빌렸는데, 이는 김용중의 동의를 얻지 못한 것이었다. 1961년 3월 2일 중립화조국통일운동총연맹 발기준비위원회의 대변일 김기철은 김용중에게 중립화통일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국내?국외에 강력한 유대를 맺도록 하자는 공개장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용중은 국내와 아무런 연계를 맺지 못했고, 또한 적극적인 관계를 맺고자 하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그의 중립화 통일방안은 한국 정부에게 별다른 힘을 끼치지 못했다. 요약: 리브레 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로 배포됩니다(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브레 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글이 직접 작성되었거나 호환되는 라이선스인지 확인해주세요. 리그베다 위키, 나무위키, 오리위키, 구스위키, 디시위키 및 CCL 미적용 사이트 등에서 글을 가져오실 때는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여야 하고, 만약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라는 증거가 없다면 그 문서는 불시에 삭제될 수 있습니다.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 () [] [[]] {{}} {{{}}} · <!-- --> · [[분류:]] · [[파일:]] · [[미디어:]] · #넘겨주기 [[]] · {{ㅊ|}} · <onlyinclude></onlyinclude> · <includeonly></includeonly> · <noinclude></noinclude> · <br /> · <ref></ref> · {{각주}} · {|class="wikitable" · |- · rowspan=""| · colspan=""| · |} {{lang|}} · {{llang||}} · {{인용문|}} · {{인용문2|}} · {{유튜브|}} · {{다음팟|}} · {{니코|}} · {{토막글}} {{삭제|}} · {{특정판삭제|}}(이유를 적지 않을 경우 기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드시 이유를 적어주세요.) {{#expr:}} · {{#if:}} · {{#ifeq:}} · {{#iferror:}} · {{#ifexist:}} · {{#switch:}} · {{#time:}} · {{#timel:}} · {{#titleparts:}} __NOTOC__ · __FORCETOC__ · __TOC__ · {{PAGENAME}} · {{SITENAME}} · {{localurl:}} · {{fullurl:}} · {{ns:}} –(대시) ‘’(작은따옴표) “”(큰따옴표) ·(가운뎃점) …(말줄임표) ‽(물음느낌표) 〈〉(홑화살괄호) 《》(겹화살괄호) ± − × ÷ ≈ ≠ ∓ ≤ ≥ ∞ ¬ ¹ ² ³ ⁿ ¼ ½ ¾ § € £ ₩ ¥ ¢ † ‡ • ← → ↔ ‰ °C µ(마이크로) Å °(도) ′(분) ″(초) Α α Β β Γ γ Δ δ Ε ε Ζ ζ Η η Θ θ Ι ι Κ κ Λ λ Μ μ(뮤) Ν ν Ξ ξ Ο ο Π π Ρ ρ Σ σ ς Τ τ Υ υ Φ φ Χ χ Ψ ψ Ω ω · Ά ά Έ έ Ή ή Ί ί Ό ό Ύ ύ Ώ ώ · Ϊ ϊ Ϋ ϋ · ΐ ΰ Æ æ Đ(D with stroke) đ Ð(eth) ð ı Ł ł Ø ø Œ œ ß Þ þ · Á á Ć ć É é Í í Ĺ ĺ Ḿ ḿ Ń ń Ó ó Ŕ ŕ Ś ś Ú ú Ý ý Ź ź · À à È è Ì ì Ǹ ǹ Ò ò Ù ù · İ Ż ż ·  â Ĉ ĉ Ê ê Ĝ ĝ Ĥ ĥ Î î Ĵ ĵ Ô ô Ŝ ŝ Û û · Ä ä Ë ë Ï ï Ö ö Ü ü Ÿ ÿ · ǘ ǜ ǚ ǖ · caron/háček: Ǎ ǎ Č č Ď ď Ě ě Ǐ ǐ Ľ ľ Ň ň Ǒ ǒ Ř ř Š š Ť ť Ǔ ǔ Ž ž · breve: Ă ă Ğ ğ Ŏ ŏ Ŭ ŭ · Ā ā Ē ē Ī ī Ō ō Ū ū · à ã Ñ ñ Õ õ · Å å Ů ů · Ą ą Ę ę · Ç ç Ş ş Ţ ţ · Ő ő Ű ű · Ș ș Ț 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