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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4월|2007년 4월]] 재보궐 대전 서 을에서는 아예 후보를 내지 않고 국민중심당에게 협조했다.</ref> 결국 열린우리당이 해산할 때까지 지역기반이라고는 전북이 유일했으며 그마저도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전국정당을 목표로 삼는다고 했으나, 수도권의 경우 인구 상당수가 삼남 지방에서 올라온 상경자들이거나 상경 2~3세대고, 아직 친척과 가족간의 연이 튼튼한 한국에선 지역의 민심이 바로 수도권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이러한 지역기반의 부실은 수도권에서의 고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역민들은 중앙정계에서 확실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으면 지역정당대신 세력이 보다 강한 다른 정당을 택하기도 하는데 그나마 우리당을 지지하던 호남 및 영남 지지층들도 이런 이유로 각각 민주당과 한나라당으로 이탈했다. 특히 호남의 경우 호남 홀대론과 부산 우대에 대한 불만으로 우리당 지지를 철회했다. 물론, 전국정당으로 가고자 하는 노력은 80년대 이후 민주당계 정당 중에서는 독보적일 정도로 열심히 하긴 했다. 영남권에 계속해서 의미있는 후보들을 내세웠고, 어느 정도 의미있는 성적을 내긴 했다. 대표적으로 17대 총선에서 '''경북 구미 을'''에 출마한 추병직('''40.3%''')이나 [[2005년]] 10.26 재보궐에서 '''대구 동 을'''에 출마한 이강철('''44.0%'''<ref>역대 민주당계 정당 후보가 대구에서 거둔 최고득표율이다. 김부겸이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40.4%였다. 물론 수성구가 동구보다 더 보수성이 강한 점은 감안해야 하지만, 재보궐에서 보통 민주당계 정당 후보가 고전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대단한 성적인건 분명하다.</ref>)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국지적이었고, 무엇보다 확실한 지지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영남에만 공을 기울이는 모습은 전국정당이 아니라 '''영남의 2등 정당'''같다는 평가를 들었다. === 지도부의 단명 등으로 인한 구심점 부족 === 열린우리당은 3년 9개월여동안 당 의장만 11명에 달할 정도로 지도부가 오래가지 못했는데, 이로 인해 당 내 권력이 계속해서 흔들리며 뚜렷한 리더십이 서지 못했고 내부에서 갈팡질팡 우왕좌왕을 거듭했다. 그 약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1. 김원기 : 창당준비위원회 임시의장. 임기 약 3달. 그래도 창당준비위 임시의장이니 큰 문제는 없다. * 2. 정동영 : 초대 의장. 임기 약 4달. 창당 첫 의장. 입각을 위해 사퇴 * 3. 신기남 : 상임중앙위원으로 승계. 임기 약 3달. 부친 친일파 의혹으로 사퇴 * 4. 이부영 : 상임중앙위원으로 승계. 임기 약 4달. 4대입법 실패로 사퇴 * 5. 임채정 : 당 의장 권한을 갖는 임시집행위원회의장. 임기 약 3달. * 6. 문희상 : 제2차 전국대의원대회로 선출. 임기 약 8달. [[2005년]] 하반기 10.26 재보궐 패배로 사퇴 * 7. 정세균 : 비상집행위원회 체제하 임시 당의장. 임기 약 2달.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입각위해 사퇴 * 8. 유재건 : 정세균의 뒤를 잇는 임시 당의장. 임기 약 1달. * 9. 정동영 : 2006. 2.18 임시전당대회로 선출. 임기 약 4달.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참패로 사퇴. * 10. 김근태 :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 임기 약 8달. * 11. 정세균 : 신임 의장으로 추대. 임기 약 6달. 최후의 지도부 창당준비위원장인 김원기를 빼도 무려 10명에 달하는 의장이 3년 6개월을 책임졌으며 그중 가장 긴 지도부가 8개월에 불과했다. 잦은 선거패배로 인한 책임론에 휩싸이기도 했고, 당 지도부를 입각시키기 위해 자진사퇴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잦은 교체는 당 지도부가 허울에 불과하다는 인식만을 심어주었다. 이는 안 그래도 취약한 열린우리당 원내구조에 악영향을 끼치며 악순환을 만들었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17대 총선으로 당선된 의원 152명 중 '''초선이 108명'''에 달할 정도로 지나치게 초선 비율이 높았다. 이를 두고 '''108번뇌'''라고 비야냥거리기도 했다. 물론 열린우리당이 총선 기준으로 신당인데다 기존 정당의 현역 의원들이 추가적으로 합류하지 않았기 때문이긴 하지만, 여의도 정치를 처음 경험하는 이들은 자기들의 목소리를 높이는데 정신이 팔려 제대로 통제되지 못해 당의 분란을 가속시켰고 이는 허약한 지도부와 함께 상쇄효과를 일으켰다. 우리당으로선 총선때 너무 많은 의석을 획득한 것이 독이 된 셈이다. 그 와중에 차기대권주자로 유력하던 정동영과 김근태는 요직 중의 요직인 통일부 장관을 차지하기 위해 대립하여 국민들의 실망감만 키웠다. 이 싸움에서 패하는 쪽은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게 되었는데, [[2015년]] 현재 통일부의 위상이 크게 내려가고 보건복지부의 위상이 높아진 것을 생각하면 참... 결국 정동영이 이겨서 통일부 장관을, 김근태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았다. 요약: 리브레 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로 배포됩니다(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브레 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글이 직접 작성되었거나 호환되는 라이선스인지 확인해주세요. 리그베다 위키, 나무위키, 오리위키, 구스위키, 디시위키 및 CCL 미적용 사이트 등에서 글을 가져오실 때는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여야 하고, 만약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라는 증거가 없다면 그 문서는 불시에 삭제될 수 있습니다.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 () [] [[]] {{}} {{{}}} · <!-- --> · [[분류:]] · [[파일:]] · [[미디어:]] · #넘겨주기 [[]] · {{ㅊ|}} · <onlyinclude></onlyinclude> · <includeonly></includeonly> · <noinclude></noinclude> · <br /> · <ref></ref> · {{각주}} · {|class="wikitable" · |- · rowspan=""| · colspan=""| · |} {{lang|}} · {{llang||}} · {{인용문|}} · {{인용문2|}} · {{유튜브|}} · {{다음팟|}} · {{니코|}} · {{토막글}} {{삭제|}} · {{특정판삭제|}}(이유를 적지 않을 경우 기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드시 이유를 적어주세요.) {{#expr:}} · {{#if:}} · {{#ifeq:}} · {{#iferror:}} · {{#ifexist:}} · {{#switch:}} · {{#time:}} · {{#timel:}} · {{#titleparts:}} __NOTOC__ · __FORCETOC__ · __TOC__ · {{PAGENAME}} · {{SITENAME}} · {{localurl:}} · {{fullurl:}} · {{ns:}} –(대시) ‘’(작은따옴표) “”(큰따옴표) ·(가운뎃점) …(말줄임표) ‽(물음느낌표) 〈〉(홑화살괄호) 《》(겹화살괄호) ± − × ÷ ≈ ≠ ∓ ≤ ≥ ∞ ¬ ¹ ² ³ ⁿ ¼ ½ ¾ § € £ ₩ ¥ ¢ † ‡ • ← → ↔ ‰ °C µ(마이크로) Å °(도) ′(분) ″(초) Α α Β β Γ γ Δ δ Ε ε Ζ ζ Η η Θ θ Ι ι Κ κ Λ λ Μ μ(뮤) Ν ν Ξ ξ Ο ο Π π Ρ ρ Σ σ ς Τ τ Υ υ Φ φ Χ χ Ψ ψ Ω ω · Ά ά Έ έ Ή ή Ί ί Ό ό Ύ ύ Ώ ώ · Ϊ ϊ Ϋ ϋ · ΐ ΰ Æ æ Đ(D with stroke) đ Ð(eth) ð ı Ł ł Ø ø Œ œ ß Þ þ · Á á Ć ć É é Í í Ĺ ĺ Ḿ ḿ Ń ń Ó ó Ŕ ŕ Ś ś Ú ú Ý ý Ź ź · À à È è Ì ì Ǹ ǹ Ò ò Ù ù · İ Ż ż ·  â Ĉ ĉ Ê ê Ĝ ĝ Ĥ ĥ Î î Ĵ ĵ Ô ô Ŝ ŝ Û û · Ä ä Ë ë Ï ï Ö ö Ü ü Ÿ ÿ · ǘ ǜ ǚ ǖ · caron/háček: Ǎ ǎ Č č Ď ď Ě ě Ǐ ǐ Ľ ľ Ň ň Ǒ ǒ Ř ř Š š Ť ť Ǔ ǔ Ž ž · breve: Ă ă Ğ ğ Ŏ ŏ Ŭ ŭ · Ā ā Ē ē Ī ī Ō ō Ū ū · à ã Ñ ñ Õ õ · Å å Ů ů · Ą ą Ę ę · Ç ç Ş ş Ţ ţ · Ő ő Ű ű · Ș ș Ț 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