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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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조 제럴드 패터슨(Lorenzo Jerald Patterson, 1969년 6월 16일~ ) 또는 MC 렌미국래퍼, 작곡가, 음반 제작자, 빌런 엔터테인먼트 설립자이자 소유주이다. 그는 1980년대 후반을 풍미했던 갱스터 랩 그룹 N.W.A의 멤버로 알려져있다.

또한 솔로 활동으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왔으며, 동료들에 비해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그들에게 비견될만한 그만의 랩 스타일과 훌륭한 작사력으로 서해안 갱스터 랩의 고참으로 인정받아왔다. 주로 랩에서 자신을 악당으로 칭한다.

1 유년기[편집]

1969년 6월 16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 군 콤프턴 시에서 태어난 패터슨은 보모와 두 명의 형제, 자매와 함께 그곳에서 자랐다. 패터슨의 고향은 미국 내에서 살벌한 지역으로 손꼽히는 곳이라 유년기가 유복하지는 못했다. 집안 형편 때문에 패터슨에게 있어 최고의 음악 동료인 이지-E와 같은 켈리 파크 콤프턴 크립스 갱단에 입단하여 살림을 해결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별 소득이 없어서 갱단을 탈퇴하고 이발소를 열었다.

1983년 도밍게즈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훗날 다시 만나게 되는 음악 동료인 DJ 트레인, MC 칩과 인연을 맺으며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특히 그곳에서 오만가지 주제에 대해 가사를 많이 써봤으며, 어떤 때는 수학 공식에 대해 가사를 써본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살림 문제 때문인지 군 입대도 고려해봤지만 이지-E와의 만남으로 진로를 래퍼로 잡기로 결심한다.

2 N.W.A 활동[편집]

1986년에 루스리스 레코드에 들어가 N.W.A에 영입된 후, 멤버 중 아라비안 프린스가 이지-E와의 반목으로 나갔지만 그는 아이스 큐브와 함께 묵묵히 작사와 랩에 열중하였다. 그 결과 《Straight Outta Compton》이라는 사회적 이슈와 논란을 불러일으켜온 명반이 탄생하고, 동료들과 전설이 되고, 투어도 여러 번 다니고, 이전과는 달리 성공도 맛보고, 가사 때문에 동료들이랑 경찰서 정모도 가보고(...), FBI조지 H. W. 부시 당시 대통령에게 경고장도 받고(...) 하여튼 가난한 삶에서 구제되어 동료들과 함께 빛을 본 셈이다.

이후 그룹의 이지-E의 데뷔 앨범 《Eazy-Duz-It》에서 대필가로 활약해 이 앨범도 흥행에 성공한다. 그러나 멤버 중 아이스 큐브가 수입 배분 문제에 불만을 제기하여 그룹은 분열되고, 결국 아이스 큐브는 탈퇴하여 2집 솔로 앨범 《Death Certificate》에서 자신을 포함한 멤버들 전원을 대차게 비판한다. 그래서 그룹의 2집 《Niggaz4Life》에서 멤버들과 함께 아이스 큐브를 비난했지만, 이지-E와 N.W.A의 매니저 제리 헬러 둘 만의 수입 횡령 사실은 이미 들통났고, 설상가상으로 아이스 큐브는 압도적인 작사력과 랩 스킬을 두루 갖추었으며, 디스곡이 수록된 문제의 2집 앨범 《Death Certificate》는 서해안 힙합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무시할 수 없는 명반이기에 결국 아이스 큐브와의 싸움에선 본인을 포함한 N.W.A 전원의 패배로 끝나버렸다. 훗날 이지-E가 죽은 뒤에 화해는 했다.

3 솔로 활동[편집]

아이스 큐브와의 불화가 끝나고 이지-E의 지원 아래 1992년 6월 20일에 Kizz My Black Azz라는 EP 앨범으로 데뷔했다. 부기 다운 프로덕션스의 명곡 《The Bridge Is Over》를 리메이크한 싱글인 《Final Frontier》로 유명해졌으며 1993년 11월 16일 《Shock of the Hour》로 본격적인 스튜디오 앨범 데뷔를 한다. 자신의 갱스터리즘, 정치 비판, 이슬람 성향으로 점철된 이 앨범은 백인 여성, 유대인 비하 논란이 있었지만 빌보드 200에서 22위, 탑 R&B/힙합 앨범 1위에 올라 플래티넘을 따낸다. 싱글들인 《Same Ol' Shit》과 《Fuck What Ya Heard》는 빌보드 핫 100위권에 진입하여 핫 R&B/힙합 싱글 & 트랙 62위, 핫 랩 싱글 7위에 진입한다.

1996년 4월 9일, 이지-E가 죽은 뒤 그의 푸시가 끊겼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칭을 제목으로 삼은 《The Villain in Black》은 이전처럼 정치 비판, 갱스터리즘으로 점철되었지만, G-펑크의 창시자격 프로듀서들의 영향으로 G-펑크 사운드 성향을 띠어 앨범이 서해안 힙합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게 되었다. 그러나 전작과는 달리 비판이 많았으나, 빌보드 200에서 31위를 거둬 전작보다는 못하지만 준수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이지-E의 아내의 루스리스 레코드 막장 운영에 대부분의 소속 아티스트들이 불만을 느끼고 떠나는 사태가 벌어진다. 본인도 인터뷰에서 이지-E의 아내에게 비판을 한 적이 있었다. 결국 그는 1998년 6월 30일 루스리스 레코드에서의 마지막 앨범 《Ruthless for Life》을 발매한다. 이 앨범 또한 데뷔 앨범과 함께 서해안 갱스터 랩 명반으로 손꼽히며 전작보다 더 앞선 기록을 선보였다. 빌보드 200에서 100위, 탑 R&B/힙합 앨범 14위를 거두고 첫 주간 21,000장, 전국적으로 175,000장, 세계적으로 220,000장의 판매고를 달성한다. 특히 예전에 죽일 듯이 싸우던 아이스 큐브, 친구인 이지-E와 죽일 듯이 싸우던 스누프 도그와 RBX, 남부 힙합의 중견 듀오 8볼 & MGJ를 섭외하는 등 초호화 피처링진이 특징이다.

루스리스 레코드를 떠난 뒤론 1999년 빌런 엔터테인먼트를 세우고 그곳에서 활동하였다. 2009년 10월 31일에 오랜만에 《Renincarnated》란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4 음악 스타일[편집]

대개 N.W.A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아이스 큐브, 서해안 힙합 역사상 최고의 프로듀서 닥터 드레, 특유의 인상적인 캐릭터를 내세운 N.W.A의 리더 이지-E에 비해 딱히 드러나는 점이 없어 동료들에 비해 과소평가 받고 병풍 취급을 당하기는 하지만 이래봬도 이지-E가 그룹 내에서 최고로 평가하는 래퍼다. 단지 그룹 내에서 과묵하고 뒤에서 활동하여 대중들에게 부각되지 않은 점이 아쉬울 뿐이다.

아이스 큐브의 호전적이고 폭력적인 랩핑과는 다르게 중저음의 샤프하고 간지나는 랩핑이 특징이다. 특히 《Final Frontier》에서 선보인 속사포 랩핑은 그야말로 진국이다. 데뷔 이전에 별별 것을 다 주제로 작사를 했었던 만큼 작사 실력 또한 대단하다. 주로 계급 투쟁, 사회주의, 빈곤, 종교, 정부, 제국주의와 제도적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가사를 쓴다. 이런 가사를 쓰는 이유는 이슬람 교도인 그의 확실한 종교적 가치관이 원천인 듯하다. 그리고 크립스 갱단 출신이니만큼 기본적으로 갱스터나 범죄에 관한 가사도 쓰기도 한다. 고향인 콤프턴의 환경 또한 그의 직설적이고 암울한 가사 세계관을 형성한 데 한 몫을 한 듯하다.

5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