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4 셔먼

M4 Sherman
M4 Sherman 1.jpg
M4 셔먼 by D. Miller@flickr (M4A3 기준)
차량 정보
제조사 미국
디자이너 미국
정원 5명
제원
엔진 콘티넨탈 R-975-C1 9기통 공랭식 디젤엔진
최고출력 400마력
주무장 75mm M3 or 76mm M1
보조무장 M2 중기관총 1정 브라우닝 M1919A4 2정
전장 5.89m
전폭 2.62m
전고 2.74m
무게 30.3톤

M4 셔먼(Sherman)은 미국의 중형전차이다.

1 개발[편집]

유럽에서 진행되던 프랑스 침공을 보던 미 육군은 자신들이 새로 뽑으려던 M2 중형전차가 시대에 격하게 뒤떨어진 잉여한 물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독일의 4호 전차를 본 미 육군은 '시대에 맞추려면 우리도 포탑에 75mm를 달고 다닐 수 있어야한다'라는 생각을 했고, 만들려던 M2 중형전차의 생산량을 확 까내린 후 병기국에 쳐들어가서 '우리도 75mm 포탑에 단 전차 주세요.빼애액'를 시전했으나... 자신들이 원하는걸 얻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는 당시 미국의 기술력으로는 75mm 포가 장착가능한 포탑과 포탑링의 설계가 불가능해서 연구를 해야했기 때문인데, 그런다고 해서 M2 중형전차를 그때까지 써먹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결국 잔머리를 굴려서 '당장에 필요한 75mm 포 탑재 전차는 날림으로라도 대충 만들어서 써먹고, 75mm포를 포탑에 달고 돌아다닐 수 있는 전차를 그 사이에 날래날래 만들어서 배치하자!'라는 결론을 내렸고, 전자가 M3 리 후자가 M4 셔먼이 된다.

75mm를 탑재 가능한 포탑을 장착한 새로운 시험 모델이 바로 T6 중형전차였다, 이 T6 중형전차는 75mm 주포를 장착 가능한 포탑을 장착했고, M3처럼 볼트 접합/용접식 외형이 아닌 완전 주조형이었다.

이 T6은 시제차 운행을 정상적으로 마치고 미 육군에 정식 채용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M4 셔먼이다.

2 활약[편집]

기본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기록된 사례가 가장 많으나, 전후에는 의외로 2선급 장비로도 국공내전,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그리스 내전, 중동전쟁, 한국전쟁, 수에즈 위기, 인도-파키스탄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레바논 내전, 쿠바, 니카라과 내전까지 합쳐 40여년 가까이 전투를 치렀다. 그리고 아직도 운용되고 있을 거라고 추측된다고 한다.

2.1 초기[편집]

셔먼은 1942년에 처음 실전배치가 되었는데, 앞서 말한 M3 리보다 우수한 성능을 자랑하면서 엘 알라메인 전투와 횃불 작전 등에서 3호 전차와 4호 전차로 구성된 독일군들을 상대로 나쁘지 않은 전적을 거둔다. 태평양에서 얼마나 많은 일본군들을 갈아버렸는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태평양의 셔먼 운용부대는 일본군의 전차가 하도 종이장갑이었기에 철갑탄이 아니라 고폭탄을 써서 때려잡는 쪽을 선호했다고 한다. 오히려 철갑탄은 일본군의 벙커를 파괴하는데 주로 이용되었다.

2.2 유럽전선[편집]

그러나 유럽전선부터 잘못 설계된 종래의 전차개발사상과 안이한 작전계획[1]으로 인해 많은 피를 보게 되는데, 1944년 서부전선의 독일군들에게는 티거와 판터, 쾨니히스티거 등의 신예 전차는 물론 어떻게든 구식 차체로 전투효율을 대거 끌어올린 구축전차가 대거 배치되었고, 또한 보병들에게 판저파우스트가 대거 지급되기 시작한 시점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영국군의 졸렬한 운용으로 캉 일대에서 독일 티거 에이스들에게 단체로 꼬라박고 큰 피해를 본 뒤로 연합군은 독일군의 어떤 전차를 봐도 티거라고 보고할 정도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2] 피해가 누적되자 그동안 다수 장성들의 반대로 배치되지 못한 M26 퍼싱의 배치가 이뤄졌으나 이때 독일군은 단체로 붕괴한지 오래였으며, 1945년부터는 독일군의 전차보다 판저파우스트가 더 큰 위협으로 평가받게 되고 75mm 셔먼 도태에 대한 비판을 받게 된다.

소련군에는 대략 4천여대의 셔먼 전차가 렌드리스로 인도되었는데 소련군은 이들의 일부를 76.2mm F1 주포로 환장해보기도 했으나, 곧 미국에서 75mm 포와 포탄이 너무 많이 들어와(...) 주포변환 바리에이션은 극소수에 속한다. 절반은 75mm, 나머지 절반은 76mm 무장형이었으며, 소련군은 셔먼에 대해 T-34에 비해 유폭에 안전하고 시야 확보의 용의함과 내부공간의 확보에 칭찬했지만 전고와 무게중심이 높아 전복위험이 높음을 지적하였다. 1944-45년 동안 제1,3,9 근위기계화군단이 이들 렌드리스 셔먼으로 무장했다.

2.3 대전후[편집]

이스라엘군 소속으로 무려 105mm 구경 주포를 장착하는 마개조를 거쳐 중동전쟁에서 대활약하였다.

3 계열형[편집]

A1에서 A4까지 정식 계열형이 존재하나, 이는 용도에 따라 다른 생산방식과 추진기관을 채용한 것일 뿐 제식명이 바뀐 것이 개량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M4는 기본형, M4A1은 해외생산용 주물차체형, M4A2는 해병대 및 랜드리스 지급용 디젤기관형, M4A3는 포드 V8 엔진형, M4A4는 크라이슬러 멀티뱅크 엔진을 탑재하기 위한 연장차체형이다. M4A1은 차체외부에 각이 없이 매끈하며 M4A4는 보기륜 사이의 간격이 넓다.

또한 각기 76mm 장포신포 탑재를 위해 포탑을 교체한 것, 현가장치를 HVSS로 교체한 것 등 업그레이드가 각 계열 별로 각자 이루어진 경향이 크며, 이 경향은 이런 소소한 개량점이 모든 계열형에서 일관되게 적용된 E8형, 속칭 이지에잇 셔먼이 도입되고 나서야 끝나게 되지만, 그렇다고 대전 말까지 모든 셔먼에 개량이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76mm 장포신포의 고폭탄 화력 부족, 기동성 제한때문에 75mm를 고수한 셔먼도 많았던 것이 그 예이다.

4 개조형[편집]

4.1 셔먼 파이어플라이[편집]

주포를 영국제 대전차포인 17파운더로 교체한 셔먼. 셔먼의 기계적 신뢰성 및 우월한 시야와 17파운더 대전차포의 절륜한 펀치력을 조합해 기존 75mm 셔먼의 고질적인 낮은 대전차전 능력을 보충해줄 헌터킬러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가벼운 탄두 대비 무식한 장약량 하나로 승부를 보는 17파운더 대전차포의 특성상 반동과 포구화염이 지나치게 심할 뿐만 아니라 중장거리 명중률이 가챠 수준으로 형편없어서 사실상 궤도달린 근접 대전차포나 마찬가지로 운용되었다. 그래도 연합군 전차 중에서는 그나마 독일군 중전차 전면에 유효타격을 입힐 수있는 얼마 안되는 기갑전력이었으므로 울며 겨자먹기로 썼고 독일군도 이게 꽤나 성가셨는지 이 '주포가 이상하리만치 긴 셔먼'을 우선적으로 공격하게 되었다. 대전 후반기 쯤 되면 그냥 셔먼으로 충분히 격파할 수있을 4호 전차급에 대해서도 파이어플라이만 탔다 하면 '초탄이 자꾸 빗나가서' 역공 위험에 빠지는 경우가 속출하여 전차병들이 파이어플라이 수령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4.2 점보 셔먼[편집]

5 각주

  1. 당시 연합군 수뇌부는 독일의 신예 전차들이 셔먼보다 강력하다 할지라도 그 수량이 적어 물량전과 소모전을 강제하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보았다. 물론 포탑이 달린 일반적인 4호전차나 티거같은 것에 한해서는 맞는 예상이었으나, 문제는 독일군이 러시아군에게 피흘리며 배워온 전측면 경사장갑과 장거리 화력에 몰빵한 구축전차를 속속 개발해 배치했다는데 있다. 안그래도 당시의 피모철갑탄이나 경심철갑탄은 구축전차 특유의 경사장갑에 도탄되기 쉬웠는데다 곡사포 기반의 75mm 셔먼 주포는 말할것도 없거니와 강력해졌다는 76mm 후기형 주포도 위력이 신통찮아서 더 문제였다. 야크트판터가 자리잡고 장거리에서 주포를 쏴대기 시작하면 셔먼 부대는 그냥 맞고 터져나가야했고, 어떻게든 잡아보려고 접근하면 장포신 3호 돌격포와 헷처가 나타나 취약한 측면을 두드려대니 그야말로 기약없이 소모만 당하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2. 다만 군사전문가 잘로가의 분석에 따르면, 미군들이 교차검증상 진짜 6호 전차 티거와 조우했던 것이 확실했던 적은 단 세번에 불과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