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86 세이버

노스 아메리카 F-86 세이버
F86F Sabres - Chino Airshow 2014 (cropped).jpg
F-86F
항공기 정보
종류 제공 전투기
설계 노스 아메리카
운영 미국
생산연도 1949년~1956년
사용연도 1949년~1965년
생산량 9,860대
정원 1명
엔진 J47-GE-27 터보제트 엔진
출력 26.3kN
속도 음속의 0.8배
무장 12.7mm M3 브라우닝 기관총 ×6
AIM-9 사이드와인더(B형/중화민국 공군)
길이 11.30m
11.91m
높이 4.29m

F-86 세이버(F-86 Sabre)는 미국의 1세대 제트 제공 전투기다.

대전기 제트 전투기를 이어 미국의 노스 아메리카에서 개발된 F-86 세이버는, 오늘날 제트기 시대를 연 1세대 제트 전투기 중 하나로, 한국전쟁에서 최초로 제트기 간 공중전을 펼친 기종이기도 하다.

별칭인 세이버[1]는 기병용 칼을 의미한다.

개발[편집 | 원본 편집]

F-86의 원형이 되는 기체는 노스 아메리카의 첫 제트 전투기인 FJ-1퓨리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으며 1944년에 개발된 이 제트 전투기는 XP-86이란 신형기 개발의 기반이 된다.

그러나 퓨리를 확대한 XP-86로는 경쟁 기종인 F-80 슈팅스타와 F-84 썬더제트에게 성능적으로 열세에 있었고 노스 아메리카는 이런 XP-86을 가지고는 경쟁 기종들을 상대론 승리하긴 힘들다고 보았지만 마땅한 해결책도 없이 시간만 흐르며 XP-86의 개발도 취소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던 중, 전쟁이 끝나고 입수하게 된 독일의 항공 연구 자료들과 함께 노획된 후퇴익 제트 시제기인 Me P.1101를 확인한 기술진들은 후퇴익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이를 바탕로 기존 직선익 설계를 후퇴익으로 변경하게 되면서 목표한 성능을 달성하게 되었다.

이 결정은 XP-86의 비약적인 성능 향상을 가져왔으며 미 육군항공대[2]의 전투기로 정식 채용되어 F-86이란 정식 명칭을 부여받게 된다.

운용[편집 | 원본 편집]

1949년부터 미 공군에 배치되기 시작한 F-86 세이버는 미 본토에 있는 항공 부대에 우선 배치되었고 제1전투비행단 94소대가 처음으로 세이버 운용 부대가 되었다.

세이버는 기존 주력기인 F-80 슈팅스타나 F-84 썬더제트보다 우세한 성능으로 1950년대 미 공군의 주력기로 자리매김 하였고 1950년대 발발한 한국전쟁과 제2차 대만해협 위기에서 실전을 겪으며 그 성능을 입증했고 각각 최초의 제트 공중전과 최초의 공대공 미사일 사용이란 의의를 지니며 항공 역사에 한 획을 긋기도 하였다.

활약[편집 | 원본 편집]

한국전쟁[편집 | 원본 편집]

MiG-15 문서의 활약 문단도 참고바람.

한국전 당시 수원 기지의 F-86

한국전쟁에서 MiG-15와 같이 세계 최초로 제트 전투기간 공중전을 벌인 전투기로, 압록강 상공의 이른바 '미그기 골목'(미그 앨리,MiG Alley)에서 인민군과 중공군(그리고 비밀리에 참전한 소련군)의 MiG-15와 접전을 펼쳤다.

중공의 개입과 함께 11월부터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미그15는 출격 금지명령이 내려올 만큼, 유엔군의 제공권을 크게 위협하였다. 이에 신예기를 탑재한 항공모함이 태평양 건너 일본으로 파견되었고 그 항공모함에 실린 세이버 전투기들은 그해 12월 13일부터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전개되어 제4전투요격 비행단에 우선 배치되었고 17일에 압록강 상공에서 벌어진 첫 공중전에서 미그15 한대가 격추되며 휴전 직전까지 이어지는 사상 최초의 제트 항공전이 시작되었다.

17일에 첫 출격을 감행해 압록강 상공에 도달한 미군 세이버 전투기들은 F-80의 행동을 모방하며 만주에 주둔한 미그15편대를 꾀어내는데 성공했고 여기서 브루스 힌톤 소령의 세이버가 최초로 미그15를 격추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첫 교전 이후 세이버와 미그15의 공중전은 압록강 일대를 폭격하는 미 공군의 B-29폭격기 부대들을 요격하면서 그 과정에서 세이버와 접전을 벌이는 양상을 띄었다. 이 시기 확전을 우려했던 공산군은 한만 국경 일대를 넘어 진출하지 않고 압록강 인근에 접근하는 미군기를 요격하는데 집중했고 공세적 입장인 미 공군 역시 압록강 이북으로 진출해 미그15가 주둔한 만주를 공격하는 것을 피했기에 자연스럽게 청천강부터 압록강으로 한정되는 좁은 지역에서만 공중전이 전개되었고 이렇게 형성된 한정된 전역을 미군에선 미그기 골목 '미그 엘리'라고 불렀다.

격추되는 미그15[3]

전투는 1951년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앞전같은 폭격기 요격전과 달리, 제공권 쟁탈전 처럼 세이버만을 상대로 출격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한정된 지역에서 수십 대의 전투기들이 한번에 출격하며 전장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종전 때까지 미군은 224기의 세이버를 손실하였다. 여기서 순수 공대공 격추 기록은 104대, 이중 미그15에게 당한 것은 78대로 파악된다. 반면 세이버는 556기의 미그15를 격추하여 우세를 점하였는데,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상대적으로 실력이 부족한 북한, 중공군 조종사들이 대부분인 것이 크게 작용했으며 정예라 할 수 있는 소련 공군 소속의 미그15 조종사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으로, 독소전에 참전 경험이 있는 소련 조종사들은 미군 세이버들을 상대로 거의 대등한 대결을 펼쳤다.

한때 10:1이란 과장된 교환비로 압도적인 전적을 거두었다 오판되기도 했지만 냉전 이후 공개된 자료들과의 교차 비교로 5:1에서 요즘은 2:1 까지 내려가기도 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데는 세이버의 부족한 화력으로 손상만 입은 채 전장을 이탈하는 미그15도 모두 격추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공격을 받으면 급강하로 전장을 이탈해버리는 미그15를 보고 완전히 추락한 것인지 고공에서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위 같은 전과 확대가 발생했고 실재로는 격추 스코어에 집계된 미그15 중 상당수는 수리 후 다시 전장으로 복귀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2차 대만해협 위기[4][편집 | 원본 편집]

중화민국 공군에서 운용된 F-86F

1958년 있었던 금문도 충돌에서 대만 공군의 F-86F가 사상 최초로 공대공 미사일을 이용하여 중국군의 MiG-17을 격추시킴으로써 공중전 역사에 획기적인 이정표를 기록하였다.

2차 금문도 충돌에서 중화민국 공군의 F-86F은 신예기인 MiG-17을 포함한 중공의 미그기 대편대와 대만 해협 상공에서 격돌한다. 대만 해협에 출몰한 미그기 100여대에 맞서 출격한 32대의 세이버는 수적으로도 열세인데다가 중공이 소련으로부터 도입한 미그17은 세이버를 모든 면에서 능가하는 최신예기로, 대만 해협의 세이버 편대는 수적,질적 열세를 극복해야만 했다.

하지만 중화민국 공군은 미군의 지원을 받고 있었으며 이에 대비해 전개된 블랙 매직 작전으로 세이버는 앞으로의 공중전의 판세를 바꿀 무장을 장착하고 있었으니 그것이 AIM-9B 사이드와인더, 즉 공대공 미사일이었다. 미그기와 격돌한 세이버 조종사들은 고전적인 방식으로 적기의 꼬리를 잡아야만 미사일을 발사할수 있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사이드와인더를 이용한 적극적인 선제 공격을 통해 미그기들의 진형을 흐트려 놓았고 세이버는 기총사격으로 미그기들을 격추시켜 나갔다.

비록 사이드와인더의 전과는 3대가 전부였지만 미그기 조종사들은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미사일을 회피하면서 허점을 드러냈고 결국 20여대가 격추된 반면에 세이버는 2~3대만이 손실되며 공중전은 중화민국 공군의 압승으로 끝이 난다.

대한민국 공군 운용사[편집 | 원본 편집]

F86F2.jpg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된 국군의 F-86F. 지상공격기용 도색이다.

대한민국 공군에 F-86 세이버가 도입된것은 1955년 4월로, 이로써 제트기 한국 공군 시대를 열었다.

초기 도입기종은 주간(晝間) 기종인 F-86F였고, 종전의 P-51 머스탱을 빠르게 대체했다. 도입 초기에는 제트기를 운용한 경험도 전무하다 보니 정비사 부족으로 미군 소속 정비사가 파견되기도 했으며, 2년 뒤 우리 공군 정비사들도 능숙하게 정비할 수 있게됨에 따라 차차 철수하였다. 초기에는 이런저런 트러블이 있었으나 도입 이후 곧 1만시간 무사고 비행을 기록하며 북한군의 MiG-15를 견제하기 위한 주요 전력으로 활약하였다.

한편 북한군은 50년대에 IL-28 제트 폭격기를 도입하였다. 이 폭격기는 23mm 기관포를 발사하는 후방 사수석이 있는 경폭격기 체급으로 폭탄 적재량은 3톤 남짓으로 당대 폭격기들에 비하면 그리 많은 탑재량을 가지진 않았다. 그러나 항법장비를 이용하여 야간에도 침투가 가능하였으므로, 우리 공군은 61년부터 야간전투능력을 가진 F-86D를 도입하기로 했다. F-86D는 특유의 기수 모양으로 '독 파이터'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후 F-86 시리즈는 F-4, F-5 같은 초음속 전투기가 속속 도입됨에 따라 공중전 보다는 지상공격임무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부터 F-86은 퇴역이 진행되었으며, 1992년에 가상적기로 운용하던 F-86을 마지막으로 우리공군의 F-86은 모두 퇴역하였다. 이후 퇴역한 기체들은 공군 부대나 학교, 각종 전시관에 야외 전시용으로 옮겨졌다.

한국 공군에서 총 162대의 F-86가 활약하였으며, 보존 상태도 나쁘지 않았기에 전국 곳곳에 있는 퇴역 무기 전시관이나 박물관, 혹은 전투 비행단 전시물로 만나 볼 수 있다.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도 F-86F 2기, F-86D 1기가 전시되어 있다.

또한 한국 공군은 F-86F으로 구성된 최초의 제트 공중곡예팀 블루 세이버(Blue Sabre)를 창설했는데 이는 현재 T-50 골든이글을 운용하는 대한민국 공군 곡예팀 블랙 이글스(Black Eagles)의 모태가 되었다. 어쨌든 공군 내에서 쌕쌕이[5]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사랑받았고, 1964년 제작된 영화 <<빨간 마후라>>에 P-51 머스탱의 대역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설계 및 성능[편집 | 원본 편집]

F-86은 F-80 슈팅스타, F-84 썬더제트와 달리 적극적으로 후퇴익을 채용한 기체라는 것이 특징이다. 주익은 뒤로 35도 젖혀진 단발의 J35-GE-7 터보제트 엔진은 -3기준 5,200Ibf의 추력(A형 기준)을 제공하여 마하 0.9라는 음속에 근접한 보다 고속의 비행 성능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당대 제트 전투기들이 그러하였듯 엔진으로의 공기 흡입이 원활하도록 세이버 역시 기수 정면에 공기 흡입구가 위치하여 마치 동강 잘린 형태를 띠고 있다.

화력은 12.7밀리 M3 브라우닝 기관총을 3정씩 기수 양측에 배치하여 모두 6정의 기총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제트기 시대에는 부족하다는 평이 대다수였고 실전에서도 적기를 완전 격추시키지 못하는 일들이 자주 발생했다.[6]

미그15와의 비교[편집 | 원본 편집]

변형[편집 | 원본 편집]

  • XF-86: 시제 시험용 기체이다.
  • F-86A: 최초 양산형이다.
  • F-86B: A형의 개량 사항
  • F-86D/K/L: 일명 '세이버 독'이라고도 불렸던 전천후 형 세이버로 레이더 장착을 위해 특징이던 공기흡입구가 기수 아랫부분으로 축소되었으며 레이돔이 신설되었다. 기체 크기도 증가하였으며 기존 12.7밀리 기총 대신 기수 하부의 공대공 로켓을 주 무장으로 사용하거나 20밀리 M24 기총(K/L형)을 장착했다.
  • F-86F: 엔진이 개량되었고 익면적의 증가로 선회 성능 등 기동성 향상이 있었다. 금문도 무력분쟁 등 실전에 투입된 전적이 있다.
  • F-86F-2: F형의 개량 사항
  • FJ-2/3 퓨리: 세이버의 함재형 사항으로 함상 운용을 위한 개량을 거쳤다. 함내 수납을 위해 날개가 접히는 개량점과 함께 착함을 위해 어레스팅 후크가 추가되었으며 기체 외형도 전반적으로 두꺼워진 편이다.
  • Canadaair Sabre: 캐나다에서 면허 생산한 세이버.

운용 국가[편집 | 원본 편집]

미국

대한민국

호주

중화민국

포르투갈

스페인

독일

캐나다

태국

필리핀

사우디아라비아

덴마크

노르웨이

터키

남아공

일본

파키스탄

베네수엘라

각주

  1. 프랑스어로는 샤브르라고 읽는다. 펜싱의 샤브르가 바로 그것
  2. 1947년까지 존속한 미 육군의 항공부대로 1947년 이후 미 공군으로 독립한다.
  3. F-86 세이버의 건캠(GunCam) 영상.
  4. 금문도 무력분쟁, 금문도 포격전 등.
  5. 제트 엔진 소리 때문에 붙은 별명.
  6. 위 한국전쟁에서의 스코어 과장도 부족한 화력으로 적기를 완전히 격추시키지 못한 탓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