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utschlandlied

독일의 노래》(독일어: Deutschlandlied 도이칠란틀리트) 또는 《독일인의 노래》(독일어: Das Lied der Deutschen 다스 리트 데어 도이첸)은 하이든의 《황제 찬가》 멜로디에 아우구스트 하인리히 호프만 폰 팔러슬레벤이 가사를 붙여 만든 노래이다. 현대 독일국가로 채택되었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본디 하이든은 이 노래를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황제에게 바쳤는데, 여기에 '하느님, 프란츠 황제를 지켜 주시옵소서'라는 가사를 붙여 국가로 부르고 있었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고 오스트리아는 이 노래를 개사해 국가로 부르다가 《산의 나라, 강의 나라》를 새로이 채택한다.

1841년 8월 26일, 독일에 민주화의 움직임이 보일 때 독일의 시인이자 대학교수인 팔러슬레벤이 《황제 찬가》의 선율에 독일민족주의를 찬양하는 가사를 붙여 만든 《독일인의 노래》에서 시작되었다. 그 이후 이 노래를 포함한 3~4개의 곡이 국가로써 불리다가 제1차 세계 대전 후에 1922년 8월 11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독일의 국가로 공식 채택되었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할 때까지 나치 독일 치하에서 《독일, 모든 것에 군림하는 독일이여》(독일어: Deutschland, Deutschland über alles 도이칠란트, 도이칠란트 위버 알레스)라는 제목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독일에서는 연합군 군정이 나치즘에 관련된 상징이나 노래 등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국가로 쓰이던 노래까지도 내치게 되었다. 그러나 공식 국가가 없으면 외교 의전 등에 문제가 있으므로 서독 정부는 1952년에 원래 노래 중 3절만을 국가로 채택하였다. 1절은 민족주의 및 배외주의, 2절은 성차별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국가에서 제외된 것.

1990년 독일의 통일 이후에 국가 지정에 대해 논의가 있었으나 서독이 동독을 흡수한 만큼 그대로 국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가사[편집 | 원본 편집]

독일어 한국어 번역
1절 Deutschland, Deutschland über alles,

Über alles in der Welt,
Wenn es stets zu Schutz und Trutze
Brüderlich zusammenhält,
Von der Maas bis an die Memel,
Von der Etsch bis an den Belt –
𝄆 Deutschland, Deutschland über alles,
Über alles in der Welt! 𝄇

독일이여, 무엇보다 우선하는 독일이여

세상 어느 것보다도 우선인 독일이여,[1]
보호하고 방어하자,
언제나 형제같은 끈끈함으로.
마스(마스 강)에서 메멜(네만 강)까지
에치(아디제 강)에서 벨트(페마른벨트 해협)까지
𝄆 독일이여, 무엇보다 우선하는 독일이여
세상 어느 것보다도 우선인 독일! 𝄇

2절 Deutsche Frauen, deutsche Treue,

Deutscher Wein und deutscher Sang
Sollen in der Welt behalten
Ihren alten schönen Klang,
Uns zu edler Tat begeistern
Unser ganzes Leben lang –
𝄆 Deutsche Frauen, deutsche Treue,
Deutscher Wein und deutscher Sang! 𝄇

독일의 여자, 독일의 신의,

독일의 와인, 독일의 노래.
이들을 세상에서 지켜 나가야 하리라.
그 고귀하고 아름다운 울림은
우리가 사는 한 계속되리라.
우리가 더 고귀한 삶을 살도록 영감을 주리라.
𝄆 독일의 여자, 독일의 신의,
독일의 와인, 독일의 노래. 𝄇

3절 Einigkeit und Recht und Freiheit

Für das deutsche Vaterland!
Danach lasst uns alle streben
Brüderlich mit Herz und Hand!
Einigkeit und Recht und Freiheit
Sind des Glückes Unterpfand –
𝄆 Blüh’ im Glanze dieses Glückes,
Blühe, deutsches Vaterland! 𝄇

단결과 정의와 자유를

독일인의 조국에!
우리 모두 형제처럼
마음과 손을 모으자!
단결과 정의와 자유는
즐거움의 바탕이라네;
𝄆 이 즐거운 빛에서 피어라,
피어라, 독일인의 조국이여! 𝄇

1절과 2절[편집 | 원본 편집]

《독일의 노래》 1절과 2절은 독일연방공화국 국가로 불리지 않는다. 1절은 본래 범게르만주의적 시점에서 '독일'의 영역을 바라본 가사이지만, 나치당에 의해 대독일주의적·팽창주의적으로 오용된 역사가 있어 과거를 반성하는 차원에서 가사로 쓰이지 않게 되었다. 2절은 독일의 여성을 칭찬하는 것이 성평등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전부터 꾸준히 국가로 불리기에는 내용이 좋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법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인 이유도 있고 가사가 현대적 가치관과 백만 광년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1절과 2절을 공공장소에서 가창하거나 하면 주위의 미묘한 시선을 받기에 좋다. 국가대표전 이기고 얼큰하게 취한 애들이 삼색기를 흔들면서 불러대는 건 허허 녀석들 취하려면 곱게 취해야지 정도로 보는 듯 하다

나치 치하에서는 1절이 가장 적극적으로 가창되었으며, 3절의 가창은 금기시되었다고 한다. 물론 2절은 그때나 지금이나 좀 거시기한 가사라 잘 불려지지 않았다고. 지금은 3절만 가창되고 1절의 가창이 사실상 금지 수준에 간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독일의 노래》 1절이 독일연방공화국에서 법적으로 금지되었다는 오해는, 미군 점령으로 나치의 노래가 금지되었을 때 이 노래가 (여전히 독일에서 불법인)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 등과 함께 금지당한 것에서 오해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독일의 노래》는 미군정 지역에서만 공공 장소에서의 가창이 금지되었을 뿐이고, 프랑스군 및 영국군 점령지에서는 금지조차 되지 않았다.

변형[편집 | 원본 편집]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노래를 가져다가 한국 개신교에서는 신나게 찬송가로 변형해서 쓰고 있다.

찬송가[편집 | 원본 편집]

이 곡은 한국 개신교 찬송가 2곡으로 번안되어 있다(통일찬송가 기준). 새찬송가에서는 통일찬송가 127장이 빠져있다.

예수님의 귀한 사랑[편집 | 원본 편집]

  • 통일찬송가 127장

새찬송가에서 이 곡은 빠져있다. 이유는 불명. 독일 국가여서 뺄 것이었으면 아래 "시온성과 같은 교회"도 빠졌어야 하는데 그건 또 아니다. 다만 동명의 곡이 워낙에 많아서 혼동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빠졌을 가능성은 있다.(사실 찬송가 문서를 보면 나오는 얘기인데, 그냥 교회에서 잘 안불렀다고 뺐다고 한다... 이거 뭥미...)

  • 가사

"예수님의 귀한 사랑"
1절
예수님의 귀한 사랑 심히 사모합니다
허물된 일 하나없이 원수에게 잡혀가
십자가에 죽으실 때 귀한사랑 변찮고
원수 위해 기도하니 주의 사랑 크도다

2절
예수님의 크신 권능 심히 사모합니다
사십일을 금식하고 마귀에게 끌려가
크게 시험 받았으나 한번지지 않고서
넉넉하게 이겼으니 주의 권능 크도다

3절
예수님의 밝은 영광 심히 사모합니다
사망권세 이기시고 무덤에서 나와서
하늘 위로 오르셔서 주 하나님 우편에

영광중에 앉으시니 주의 영광 빛나네

시온성과 같은 교회[편집 | 원본 편집]

  • 통일찬송가 : 245장
  • 새찬송가 : 210장
  • 가사

"시온성과 같은 교회"
1절
시온성과 같은 교회 그의 영광 한없다
허락하신 말씀대로 주가 친히 세웠다
반석 위에 세운 교회 흔들자가 누구랴
모든 원수 에워싸도 아무 근심 없도다

2절
생명샘이 흘러나와 모든 성도 마시니
언제든지 솟아나와 부족함이 없도다
이런 물이 흘러가니 목마를자 누구랴
주의 은혜 풍족하여 넘치고도 넘친다

3절
주의 은혜 내가 받아 시온백성 되는 때
세상 사람 비방해도 주를 찬송하리라
세상 헛된 모든 영광 아침 안개 같으니
주의 자녀 받을 복은 영원무궁 하도다

아멘

각주

  1. 물론 이 유명한 가사는 직역하면 "독일, 모든 것에 군림하는 독일이여/세상 모든 것에 군림하는 독일"이 되며, 실제로 나치 일당이 직접적인 의미를 따다가 팽창주의를 정당화하고 미화했다. 여기서는 가사가 처음 쓰여진 독일 제국 수립 이전의 역사적 관점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의역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