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 랜서

Rockwell B1 Lancer

B-1 랜서미국의 전략 폭격기로, 폭격과 핵투발을 위한 전략 병기에 속한다. 이명인 랜서는 창기병이란 의미이며, 미 공군에서 이 폭격기를 운용하고 있다. 21세기, 순수한 의미의 폭격기로는 몇 남지 않은 기종 중 하나이기도 하다. 초음속 순항이 가능하며, 초저고도로 고속비행해 방공망을 무력화하고 적의 주요 전략 목표를 공격하는 개념으로, 냉전시대 소련 영공을 침투하기 위한 폭격기이다. 그러나 미그31같은 소련의 신형 요격기들이 등장하자 빛을 바래게 되고, ALCM같은 장거리 공격수단으로 전환되어 가까운 미래까지 미군의 폭격기 전력으로 남을 예정이다.

1 개발[편집]

1.1 초기[편집]

개발 당시, 폭격기는 여전히 주요한 핵투발 수단이였지만, 느리고 덩치도 큰 B-52 스트라토 포트리스 같은 폭격기들은 날이 가면 갈수록 발달하는 방공망에 의해 점차 의미가 퇴색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내놓은 방법은, 냉전시대 답게도 속도가 느려 생존성이 떨어지면 방공망이 대응하기 힘들도록 빠른 폭격기를 만들면 된다 였고, 이에 대한 결과물이 음속의 3배정도의 속도를 내는 폭격기인 XB-70 발키리다. 근데 정작 만들고 보니 비효율적인데다 ICBM이라는 놈이 개발되면서 핵폭격기의 실효성에 부정적 인식이 늘어났고 결국 발키리는 취소된다. 그래도 핵폭격기가 필요했던 미 공군은, 이를 대신해 핵무기를 소련 영공에 침입해 투하할 수 있는 전략 폭격기에 대한 요구 성능을 낮추어 새로운 가변익 폭격기를 구상했고 저공 비행과 빠른 속력으로 방공망에 노출되는 정도를 최소화 하는 개념의 폭격기를 개발하는 것으로 선회한다. 그렇게 랜서의 개발이 진행되고, 마침내 1974년 12월 23일, 첫 처녀비행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캡슐형 탈출장비와 같은 신형 기술의 적용으로 5년만에 4000만 달러에서 7000만 달러로 단가가 폭등하게 된다. 결국 랜서는 수많은 기체들이 그랬듯이 취소 위기를 맞이한다.

1.2 취소 위기와 B형의 개발[편집]

그러나 1970년대 벌어진 여러 전쟁과 다양한 저강도 분쟁에서 신속한 병력의 전개가 필요함을 느낀 미군은 이를 위해선 공군력이 필수이며, 전투기들에 비해 장거리 폭격이 가능한 항공기를 원하게 된다. 그렇다고 B-52 스트라토 포트리스 폭격기를 출격시킬수도 없으니 결국 답은 랜서 하나뿐인데 문제는 랜서가 가지는 단점들도 많았기에 선택은 어려워졌고 1980년 대통령에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 역시 이 문제에 직면하였다. 레이건은 공약 중 이 랜서 폭격기의 재개발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만큼 당선되고 직면한 이 재개발 문제에 골머리를 썩혔다.

하지만 갈수록 발달하는 소련의 방공망과, 이에 취약성을 보이는 B-52의 한계를 절감했고, 새로 개발중인 스텔스 폭격기 등장 이전까지의 전력 공백을 막을 폭격기를필요로 B형 랜서의 개발이 22억 달러의 계약과 함께 개발이 시작되었고 1984년 9월 4일 B형이 첫 비행에 성공하고 이후 실전배치가 진행된다.

1.3 이후[편집]

2 성능[편집]

3 실전[편집]

4 그외[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