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형 랴오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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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중인 요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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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정보 | |
종류 | 항공모함 |
건조 | 1척 |
운영 | 중국 |
진수 | 1척 |
취역 | 단함 |
정원 | 2000여 명 |
모항 | 대련 |
제원 | |
엔진 | 재래식 추진 |
속도 | 30노트 |
항공기 | 선양 J-15 ×30 |
전장 | 302m |
선폭 | 72m |
흘수 | 10.4m |
배수량 |
56000톤 67000톤 (만재) |
001형 랴오닝(001形 遼寧)은 중국의 항공모함으로 중국군이 보유한 첫 번째 항모이다. 함명의 유래는 중국 동북의 랴오닝성이다. 본디 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 항공모함의 2번함으로 건조 중이던 바랴그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항모로, 바랴그는 랴오닝으로 함명이 바뀌었다. 일각에선 어드미럴 쿠츠네초프급 2번함 랴오닝으로 보기도 한다.
중국이 항모를 보유하면서 중국은 항모전단을 보유하고 해양패권 경쟁에서 원양에서의 작전이 가능해 졌고 남중국해를 비롯하여 이어도와 조어도 일대의 대한민국 인접 해역에서도 위협적인 전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주력 무장으론 J-15를 60대 탑재하여 운용한다. 취역 이후 지속적인 무력 시위로 주변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건조[편집 | 원본 편집]
바랴그, 랴오닝의 이야기를 하기 앞서 바랴그란 함명을 가진 군함의 기구한 운명부터 말하고자 한다. 발틱 해의 용사란 의미인 바랴그란 이름은 의외로 우리와도 인연이 있다. 바로 러일전쟁 당시의 일로, 일본 제국이 인천에 정박한 러시아 군함을 공격하며 러일전쟁에서 첫 번째로 격침당한 군함이 되었다.[1]
그러나 바랴그의 수난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는데, 의외로 상태가 양호했던 바랴그를 일본 제국에서 노획해 오노라는 이름을 붙여 전리품으로 취했다가 제1차 세계 대전 때에 다시 러시아 제국에 되팔린다. 다시 고국에 돌아온 그녀는 이름답게 발트해에서 독일과 싸웠지만 큰 피해를 입고 영국에 수리를 위해 보내졌으나 러시아 제국의 붕괴로 갈 곳이 없어진 바랴그는 영국이 소유하게 되고 독일에 고철로 팔려 용광로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런 한 맺힌 군함에 대해 러시아인 들은 많은 애착을 가지고 대양 진출의 희망인 항공모함으로 바랴그를 부활시키지만 이번 생애도 그녀에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초창기[편집 | 원본 편집]
2012년 9월 25일에 취역했으며 많은 이들이 1990년대 중국의 급격한 경제성장 이후 부각된 중화 제국주의의 일환으로 항공모함이 도입되었다 알고 있지만, 사실 중국의 항모 도입은 대한민국 해군처럼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숙원사업이었다. 그것이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팽창과 겹치며 이뤄진 것이었고 항모 관련 연구는 꾸준하게 진행되어 왔다.
중국은 1950년대 국공내전이 끝난 이후부터 양안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태평양에 존재하는 미 해군의 항모전단에 대해 이에 대응하고자 항모를 보유하려 한 의지는 1960년대 이전부터 내포되어 있었다. 그렇게 항모 보유에 대한 의지를 가지곤 중국은 항모에 대한 연구를 1950년대 이후부터 꾸준히 진행해 왔다. 특히 1985년 오스트레일리아로부터 항공모함 멜버른을 고철로 들여와 이를 1985년 중국선박공업사가 재도입하여 중국 해군에 의해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이로서 중국은 항공모함 연구에 상당한 진척이 있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1990년에 소련이 폭삭 망하며 그 뒤를 이어 들어선 러시아연방은 사실상 패망한거나 다를바 없던 당시 국내 상황중 경제 분야는 거의 파탄 났고 소련 해군이 해체되면서 반 강제적으로 퇴역한 군함들을 고철로 타국에 팔게 된다. 이때 키예프급 항공모함인 키예프를 중국은 해상 카지노라는 명분으로 구매했고 뒤이어 한국에 고철로 매각되었던 민스크를 재매입하며 이를 멜버른과 같이 샅샅이 조사하여 항모 연구에 사용했다. 그렇게 야금야금 기술을 축척한 중국은 이들 항모를 바탕으로 러시아의 네브스키 설계국과 항공모함의 설계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근데 문제는 이렇게 운용 연구도 하고 설계 연구도 하며 중국은 항모 보유의 꿈을 키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정작 군함 건조 기술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만 해도 7000톤급 수준의 대형 군함들을 찍어내곤 있지만 이렇게 된 것도 불과 십 몇 년도 되지 않았고 당시로선 항공모함이라는 거함 자체를 건조해 본 경험도 없던 중국은 항공모함이란 전략병기의 보유로 괜히 주변국들을 자극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들과 같이 중국 내에서도 회의적인 시각들이 나왔고 항모라는 것이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니 차라리 항모를 도입하느니 다른데 투자하자는, 왠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야기들이 오갔다.[2] 특히 당시 중국 주석 장쩌민과 항모 보유론자 군사위원회장 류화칭과 사이가 좋지 않아 항모 보유에 대한 진척은 저지되었고 역시 한국 상황과 같이 실용론자(반대파)와 이상주의자(찬성파)의 대립으로 그렇게 말로만 항모 보유니 항모전단 창설이니 같은 상황들은 우연하게도 소련의 붕괴와 함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바랴그함 입양[편집 | 원본 편집]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붉은 군대도 종말을 맞이하고 그 여파는 해군의 군함들에게도 미쳤다. 경제가 파탄 난 후생국가 러시아 연방은 건조가 진행중인 군함들의 건조를 취소시켰고 소련 말기 진행되던 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 항공모함의 건함도 쿠즈네초프함 한 척만 취역한 채 함체는 완공된 2번함 바랴그는 소련에서 분리된 우크라이나 소유가 되며 완공 직전 단계에서 건조가 종료되며 빈 껍데기 상태로 덩그러니 방치된다. 어차피 항모 보유에 대해 큰 관심도 없던 우크라이나는 이 바랴그를 해외 매각에 나서고 중국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중국은 친룩 홀딩스라는 홍콩의 유령회사를 이용해 노보로스크와 민스크 때 처럼[3] 바랴그도 마카오에서 해상 카지노 및 테마파크로 개조를 명분으로 항공모함을 단돈 2000만 달러를 지불하고 1998년 매입하게 되는데, 흑해에 묶여 있던 바랴그를 지구 반대편 중국까지 끌고 오기 위해선 보스포러스 해협의 통과가 불가피했다. 문제는 터키가 흑해 연안국의 보스포러스 해협과 관련한 몽트레 조약을 이유로 통과를 불허한다는 것, 그 좁은 보스포러스 해협은 여러 국가들이 접해 있는 지정학적 특성상 여러 이해관계들이 얽혀 있는 곳인데다 이 항공모함이 근 몇 년간 어떤 관리도 받지 못한 고철 수준의 함선이라 자칫 뭔 사고라도 치면 해협 봉쇄에, 그에 따른 사고 수습은 온전히 터키 몫이었으니 반대를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지만.
기껏 고생해서 항공모함을 구입했더니 들여오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자 중국은 결국 터키와 중국 간 관광 협정을 체결하는 등 터키에게 많은 혜택을 제공했다. 마침내 바랴그는 3년만에 보스포러스 해협을 지나 지구 반대편 새로운 집 중국을 향한 긴 항해에 나서게 된다. 이 과정에서도 터키와 같은 이유로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통과가 불허되어 지중해를 지나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해 케이프 타운을 지나는 기나긴 항해 끝에 마침내 2002년 중국의 대련 조선소에 도착하게 된다.
취역[편집 | 원본 편집]
당연하지만 중국은 바랴그를 마카오로 보낼 생각이 추호도 없었고 대련의 해군 조선소에서 대규모 개장에 들어간다. 중국 해군은 대련 해군 조선소에서 우선적으로 바랴그의 재생 작업에 들어갔고 아직 공정되지 않은 부분들을 추가로 건조하면서 전자장비 등을 중국제로 장착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쿠즈네초프급의 특징인 고유 무장 등을 떼어내고 함재기 운용에 치중하도록 개장되었다.
성능 및 기능[편집 | 원본 편집]
함재기[편집 | 원본 편집]
함재기로 수호이33의 복제형인 선양 J-15를 운용한다.[4] 역시 우크라이나에서 소련 시절 수호이33의 시제기인 T-10K[5]를 들여와 카피한 것이다. 러시아가 수호이27의 수출로 젠11의 탄생을 지켜봐야 했던 기억 때문에 중국에 전투기 수출을 자제하게 되었고 전략 병기인 항모에 탑재되는 함재기 수호이33을 더더욱 수출하려 하지 않았기에 이러한 방식으로 함재기를 생산한 것이다. 어쨌거나 수호이33을 도입한 셈이긴 하다. 모로 가나 서울은 갔으니….
수호이33의 카피지만 엔진과 전자장비는 중국제를 사용한다. 당연한 거지만 짝퉁을 만드는 데 지원을 해주는 건 러시아가 제대로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해줄 리 없으니 이 점들은 중국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젠 15의 레이더는 탐지거리 130~150킬로미터 대로 수호이33보다 길지만 탐지만 한다고 장땡은 아닌 것이 레이더에는 추적 능력과 정확한 목표 식별이 요구되고 중국제 레이더의 경우 이 성능이 떨어진다. 때문에 일각에선 KF-16보다 BVR 교전에서 열세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엔진으로, 러시아 수호이27계열에 다는 률카/새턴 엔진보다 떨어지는 중국제 카피 엔진을 달다 보니 기동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전투기 엔진이라는 것이 워낙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는 부분이라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에선 고성능 전투기 엔진 개발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결국 이 때문에 심각한 기동성 저하 문제가 발생하여 중국은 러시아에 지속적으로 수호이33과 미그29K의 수출을 종용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판매를 허가하지 않고 있다. 결국 중국은 전력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젠 15를 랴오닝에서 운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의 또 다른 차기 5세대 전투기인 FC-31 구잉의 함재기화도 거론되고 있지만 함재기화가 재설계에 가까운 어려운 작업인지라 중국 해군이 이를 결심한다 해도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동안 생기는 전력 손실은 불가피 할 것이다.
함재기는 최대 60대 까지 탑재가능 하지만 30대가 작전 적정선이다. 본 함급 쿠즈네초프보다 함재기 운용 능력이 줄어들었다.
비행갑판[편집 | 원본 편집]
함재기 이함시 경사진 갑판인 스키점프대를 사용한다. 동구권 항공모함의 전형적 특징인 스키점프대는 함수에 위치하고 있으며 15도 정도의 경사에 2개의 이함 포인트를 확보하고 있다. 이함 방식은 쿠즈네초프와 동일한 함재기의 자력활주다. 구간은 200미터로 이 구간을 최대 출력으로 가속한 뒤 스키점프대를 타고 날아오른다. 전투기가 스키점프대를 타고 이함하는 모습은 꽤 멋진 모습이지만 함재기가 이륙할 수 있는 최저 속도로 날아오르기 때문에 함재기 중량에 제한이 있다는 단점이 있어 서방권 항모에 비해 순수한 의미의 함재기 작전 능력은 매우 떨어진다. 과거 개장 전에는 스키점프대 부분에 12발의 P-800 그라니트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수직발사대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제거되었고 수많은 무장으로 도배되어 있던 갑판은 서방권 항모 수준으로 무장 능력을 낮추어 보다 항공모함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전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