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사고 전
오른쪽부터 1~4호기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福島第一原子力発電所事故(ふくしまだいいちげんしりょくはつでんしょじこ))는 일본후쿠시마현에서 발생한 원자력 사고로, 비등수형 원자로로 구성된 해당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국제 원자력 사건 척도(INES) 7등급을 받았다.

1 개괄[편집]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도호쿠 대지진에 의한 지진해일(쓰나미)로 노심냉각에 실패, 노심용융(멜트다운)이 일어난 사고다. 이 사고로 인하여 약 100경 베크렐 이상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노심용융이 발생한 원자로는 1호기, 2호기, 3호기로, 설계 결함으로 인해 지진해일에 대비하지 못하고, 직접적으로 지진해일을 맞아 비상 냉각계통의 전원을 상실하는 바람에 사고가 발생했다. 반면 4호기의 경우 정기 점검 시기에 들어갔기에, 원자로의 핵연료를 비운 상태로 사고를 면했고, 5호기 및 6호기는 북쪽으로 떨어진 부지에 위치하여 지진해일의 1차 반사파를 받았기 때문에 6호기의 전원이 살아남아, 냉각계통 전원 상실은 피했기에 화를 면했다.

2 경과[편집]

지진 발생전까지 1~3호기는 출력운전, 4~6호기는 예방정비를 위해 원자로 연료를 인출한 상태(4호기)이거나 냉온정지(5~6호기)한 상태였다.

2.1 3월 11일[편집]

14시 46분 도호쿠 대지진 발생
발생 직후 2분간(46분부터 48분까지) 각 중앙제어실에서 각 원자로의 긴급 정지와 비상 냉각장치용 발전기를 가동하게 된다. 정지상태였던 5, 6호기는 비상 발전기만 가동했지만, 1, 2, 3호기는 긴급 정지 및 주 터빈 정지, 비상 발전기 가동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다. 이 중 1호기는 52분에 비상노심냉각장치까지 가동했다. 이 비상노심냉각장치는 원자로 격납용기 외부에 위치, 격납장치 내부의 열을 파이프로 빼내어 외부에 설치된 저온의 물탱크를 통과시켜 물로 재응축, 격납용기 내부를 냉각하는 장치로, 일본에서 쓰던 초기 비등수형 원자로에 장비되는 장치였다. 이로 인한 폐열 및 수증기는 격납용기를 둘러싼 건물에 달린 배관 2개[1]를 이른다. 다만 냉각 장치의 작동으로 노심 온도가 많이 내려가면 절차상 원자로 보호를 위하여 냉각 장치를 정지하게 된다. 하여 1호기에서는 이 작업을 반복했다.
이 시기 외부 전원망이 대지진으로 파괴되며 외부 전원 공급이 중단된다. 이 때문에 비상용 디젤발전기를 돌려 비상 전원을 확보하게 된다(4호기는 발전기도 정비중). 이후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에 있던 담당자들은 일단 숨을 돌린다. 당장 대지진 발생 후의 조치는 일단 끝났다 생각했기 때문. 면진중요동에 도착한 발전소장은 경과를 지켜본다. NHK에서는 마침 츠나미 경보를 전파하며, 후쿠시마 현에는 3 m 정도의 츠나미가 올 것으로 예상했고, 소장은 5.7 m 높이의 방조제가 이를 막아줄 것으로 생각하여 당분간 추이를 지켜보게 된다.
15시 27분 도호쿠 대지진으로 인한 지진해일 제1파 도달
그러나, 지진해일이 미야기 현에 도달하면서, 지진해일의 규모가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라는게 밝혀진다. 통상적으로는 제1파가 가장 크지만, 도호쿠 대지진 자체가 연동형 지진으로 제1 붕괴의 규모가 제2 붕괴(본진의 가장 큰 파형)에 비해서 작았기 때문에, 제1파의 규모는 제2파보다는 작았다. 제1파로 인해 후쿠시마 해안에도 약 5 m가 넘는 지진해일이 도달하지만, 방조제에 의해 일단은 막히면서 일부 침수 정도의 피해만 발생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직후인데...
15시 35분 도호쿠 대지진으로 인한 지진해일 제2파 도달
제2파는 15 m가 넘는 규모의 지진해일이었고, 비상용 디젤 발전기 등 주요 시설이 침수되기 시작한다. 36분에는 6호기의 비상 발전기 3대 중 2대가 침수되었으며, 37분부터 41분까지에 걸쳐서 1 ~ 5호기의 외부 전원이 상실되기 시작한다. 이 중 1호기, 2호기에 대해서는 1호기가 먼저 외부 교류 전원 공급이 끊기며 전교류전원상실로 인한 스테이션 블랙아웃(SBO)을 선언했다. 다만 담당자들은 비상노심냉각장치의 밸브가 열려있으니 폐열이 냉각장치를 그래도 통과할 것이라고 추정했을 뿐이었다.
같은 중앙제어실을 공유하던 2호기에서는 외부 전력계 없이도 작동하는 격리계 냉각수 주입 장치(RCIC)를 가동시킨다. 그러나 가동 직후 2호기마저도 외부 교류 전원을 상실하며 스테이션 블랙아웃을 선언한다. 이후 계속 여진이 발생하면서 사태 정리가 계속 늦어지게 된다. 이미 이 시기 소장은 원자력 사고를 예감했고, 도쿄 전력 본부에 비상 전원을 위한 전원차의 지원을 요구한다. 그러나, 지진으로 인한 교통망 마비로 인해 전원차의 지원이 계속 늦어지게 된다.
15시 42분 원자력안전보안원 오프사이트센터 개소
소내정전으로 인해 원자력긴급사태(방사선비상)이 정부에 통보되어 자동으로 한국의 원자력방재센터에 상당하는 오프사이트센터가 가동되었다. 제1원전 반경 5km 내에 있었던 센터는 무엇 하나 되는 게 없었고 비상발전기도 멈춰 정전이 되자 22시에 후쿠시마 원자력센터 건물로 옮겼다. 전화 1회선을 제외하곤 여전히 되는 게 없었지만 그래도 전등이라도 있었다.
16시 44분 1호기 비상노심냉각장치의 문제 확인
그러나 1호기의 비상노심냉각장치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앞서 말한 건물 외부에 달려있는 폐열의 방출구("돼지코")를 확인한 결과, 김이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니라, 미약하게 뿜어져 나오는 것을 확인, 비상노심냉각장치가 과열되면서 냉각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시점에 비상용 배터리가 잠깐 동작하면서 원자로 내부의 수위가 확인되었는데, 16시 42분 시점에서 정상 수위보다 약 90 cm 저하된 상태였다. 약 8분 후인 50분 시점에서 약 120 cm 저하된 상태, 즉 8분마다 수위가 30 cm 내려가는 것으로 엄청난 수위 저하 속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정상 수위는 연료봉에서 약 340 cm 위에 있었으므로, 이 시점에서 이미 멜트다운은 예고되어 있던 상황. 단순 계산으로도 연료봉에서 약 220 cm 정도 남았던 16시 50분 시점에서 약 1시간만에 연료봉이 노출된다는 계산이 나오게 된다. 실제로는 과열된 물 때문에 더 빨리 내려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1호기에서는 비상용 배터리가 잠깐 잠깐씩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과정에서 비상노심냉각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확인했고, 이미 사고는 점점 더 진행되기 시작한다.
17시 29분 1호기 노심용융 시작
이 시점에서 이미 1호기의 수위 하강은 끝을 보였고, 결국 핵 연료가 공기 중에 노출되면서 과열로 인해 연료봉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또한 이후 노심용융물은 원자로 밑에 있는 계측용 파이프 내부를 녹이고 파이프 내부에 남거나 격납용기 바닥으로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7시 50분경에 담당자들이 1호기 격납용기 출입구에서 방사선을 검측했던 상황.
그러나 이 시각 이후에도, 정작 일본 정부에서는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지진 수습에도 바빴다고는 하지만, 일단 1차적으로 도쿄 전력의 책임자들이 후쿠시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알려 하지 않았던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19시 47분경 일본 정부 관방장관은 "원자로에는 문제가 없다"고 발표하기까지 한다.
20시 50분 후쿠시마 현청에서 원전 반경 2 km 이내 거주 주민에게 대피령을 내림
21시 23분 일본 정부에서 원전 반경 3 km 이내 거주 주민에게 대피령을, 10 km 이내 주민에게는 외출 금지령을 내림
당국자들은 후쿠시마 현청에 이 사실을 전파했고, 현청에서는 방사능이 누출될 것을 우려한다며 대피령을 내린다. 일본 정부에서도 비슷한 대응으로, 사태를 최대한 크지 않아보이게 말하며 주민들을 대피시킨다.
21시 51분 1호기 격납용기 출입구에서 1.2 mSv/h 계측
1호기 출입구에서 시간당 1.2 mSv의 높은 방사선량이 검측된다. 이 정도 방사선량은 1시간 조사되는 것만으로 이미 높은 방사선량에 노출된다 여겨지는 항공근무자들의 연간 방사선 조사량에 도달하는 것이며, 하루 있는 것만으로 전신 CT 스캔을 받는 수준에 도달하는 량이다. 이후 1호기에는 출입금지 조치가 이루어진다. 담당자들은 멜트다운이 일어났다고는 생각하면서도, 일단 가능한 부정하려 애쓰지만 이미 사태를 막을 수는 없단 걸 알았고, 격납용기 바깥으로의 누출이라도 막으려하기 시작한다.
23시 50분 1호기 격납용기내 압력 600 kPa 계측
그러나 그 것도 잠시, 1호기에서 23시 50분 계측한 결과 이미 원자로 격납용기의 설계한도압력을 돌파했다는 것이 밝혀진다.

2.2 3월 12일[편집]

0시 6분 1호기 비상방출 준비 지시
이대로 두었다가는 1호기 격납용기가 폭발해버린다는 사태를 낳을 수 있다고 판단한 소장은, 격납용기 내부의 압력을 낮추기 위해 비상방출을 준비할 것을 지시한다. 비상방출은 비등수형 원자로의 격납용기 하단을 둘러싼 물 파이프를 한 번 거쳐, 방사능 누출을 그나마 저감하여, 발전소 외부의 방출 파이프를 통해 내보내는 것이다. 즉 이미 이게 떨어진 상황에서 방사능 누출은 기정화되어 있던 것. 비상방출을 위해서는 직접 사람이 격납용기로 다가가 밸브를 열 필요가 있었다. 작업자들에게는 연간 방사선치를 무시한 채, 80 mSv로 한계를 맞춰둔 선량계를 지급했다. 비상방출 시도는 이후 8시간 뒤쯤에 이루어진다.
비슷한 시각, 비상용 발전차가 도착했으나 이어지는 여진과 지진해일 경보로 인하여 야간 작업에 실패하고, 주간으로 작업이 미루어진다.
4시경 소화수를 1호기에 주입 시도
이 시각에 도쿄 전력 본점 및 총리실과의 연락이 닿지만, 이미 현장에서는 멜트다운 및 비상상황이 일어났다고 알리고 있음에도 도쿄 전력 본점 및 총리실에서는 사태를 어떻게든 숨기고자하는 의도로 현장의 인식을 무시하기 시작한다. 발전소장의 조서에도 "이미 현장과 도쿄 간에는 엄청난 인식차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다"하는 것이 쓰여있을 정도.
5시 44분 일본 정부에서 원전 반경 10 km 이내 거주 주민에게 대피령을 내림
6시경 일본 국무총리가 후쿠시마로 출발해, 7시에 도착하여 이야기를 나눴지만, 발전소장은 이후 조서에서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더욱이 이 조치로 현장 작업자들 일부가 총리 의전을 위해 차출되면서 복구에 차질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
8시 3분 1호기 비상방출 지시, 그러나 실패함
앞서 8시간 전 비상방출 준비가 이루어진 뒤에 본격적으로 방출 지시가 내려진다. 제1밸브는 성공적으로 열렸다. 그러나 작업자들이 제2밸브에 접근했을 시점에 이미 조사당량은 900 mSv/h에 도달, 인간이 7시간 서있는 것만으로도 치사량에 도달하는 수치를 기록했다. 작업자들은 결국 비상방출에 실패하게 된다.
8시 13분 5호기와 6호기가 비상 전력을 공유하게 됨
동시에 도시바에서 5호기에 수중펌프를 가설하는 작업을 병행했다. 이 조치로 다행히 5호기의 멜트다운은 막게 되었다.
11시 36분 3호기 RCIC 격리계 비상 냉각수 주입 계통 정지
8시간 정도 버틴다는 비상전원도 오래가지는 못했고, 3호기에서 결국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12시 35분 3호기 비상노심냉각장치 가동
격리계 장치가 멈춘 후, 최소한의 전원이 살아있던 것을 이용해 고압수 주입 계통(HPCI)를 가동하게 된다.
14시 1분 1호기 비상방출 시작
앞서 6시간 전쯤 비상방출 제2밸브 접근에 실패했으나, 제1밸브는 열려있었기 때문에 외부에서 펌프를 연결하여 비상방출에 성공한다. 그나마 격납용기 채로 폭발하는 것을 막았다는 의의는 있으나, 이 조치로 외부에 방사성 누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5시 36분 1호기 원자로 건물이 수소폭발
이 시기 작업자들은 외부에서 전원 연결을 하고, 원자로 내 고압주수 준비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원자로 건물 내에 쌓인 수소가 폭발하면서 작업자들의 안전이 우려되었고 작업이 중단된다. 또한 이 폭발로 인해 다량의 방사능 물질이 누출되었으며(비상방출로 이미 누출된 상황이었지만), 2호기 원자로 건물 외벽이 손상되었다. 이는 나중에 방사능 물질의 누출을 가속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중앙제어실에도 방사선량이 증가하면서 최소한의 인원만 남긴 채 대피하게 된다.
18시 25분 일본 정부에서 원전 반경 20 km 이내 거주 주민에게 대피령을 내림
10 km 이내 대피령이 떨어진지 13시간 후, 3호기 비상방출 준비에 돌입하고 추가적인 방사능 누출이 우려되어 대피령을 확대했다. 10 km까지는 각종 절차가 사전에 수립되어 있었으나, 그 이상의 범위에 대해서는 사전정보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아 대피대상 행정구역부터 다시 산출했고, 동심원으로만 선을 그으면서 1개 시에 3개 속성이 걸치는 등 일대 혼란이 빚어졌다.
19시 4분 1호기 해수 주입 개시
펌프를 건물 소방 라인에 연결하여 첫 해수 주입을 시작했다. 20시 45분부터는 붕산수를 혼합하여 주입했다. 당초 이 작업은 낮시간대에 하청업체가 진행하기로 했으나, 수소폭발 당시 2명이 부상당하면서 하청업체가 결사반대, 도쿄전력 자치소방대가 직접 하게 되었다. 총리 관저는 해수염이 원자로에 부착되어 주수가 중단될 염려를 표했으나, 발전소장은 대충 얼버무리고 계속 해수를 주입했다.

2.3 3월 13일[편집]

2시 42분 3호기 비상노심냉각장치 수동 정지
전날 가동했던 비상노심냉각장치가 장시간 운전으로 과열되면서 효과가 없어졌다. 하여 수동 정지하고 냉각수 수동 주입 준비를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고압 주수를 위해 SR변을 열 필요가 있었으나, 전원 부족으로 바로 여는 것은 실패했다.
6시경 3호기 냉각수 해수 주입 준비 개시
이 시기에 작업자들의 자동차에서 차출한 자동차 배터리로 SR변 개방을 성공한다. 이후 시간당 약 20톤의 속도로 물을 주입했다. 그러나 이 당시 소방차에 의한 수동 고압 주수 계통이 완전하게 작동되지 않았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진다. 배관 도중의 분기부에서는 펌프가 작동해 물을 멈춰야하지만, 이 펌프가 멈추면서 총 4개소에서 물이 새는 바람에 실제로 물이 들어간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오히려 고압주수를 위한 SR변이 열려 압력이 빠지면서 물의 증발이 더 빨라졌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오전 중 3호기 멜트다운 시작
정확한 시각은 모르나, 오전 중에 멜트다운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SAMPSON 추정 10시 35분) 이미 13시경에 격납용기 출입구에서 고선량이 관측되었다는 작업자들의 증언이 있었다.
14시 31분 3호기 격납용기 출입구에서 50 mSv/h 계측
앞서 오전에 실시된 주수가 실패했고, SR변이 열리면서 압력이 빠졌다. 3호기의 멜트다운은 더욱 가속화되어 이 시기에는 이미 격납용기에서 고선량이 관측되게 된다. 이후 3호기도 수소폭발의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 중앙제어실은 외부 작업을 중지하도록 한다.

2.4 3월 14일[편집]

7시 20분 작업자들의 요구로 외부작업 재개
그러나 이 조치 이후 수소폭발이 일어나면서 재개 조치가 이루어진 경위에 대해서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9시 20분경 3호기 비상방출 개시
이 과정은 자세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3호기의 비상방출이 이 시각쯤부터 진행되기 시작했다.
11시 1분 3호기 원자로 건물이 수소폭발
폭발 10분 뒤 에다노 관방장관의 발표가 이어졌다. 3호기의 수소폭발은 1호기의 수소폭발보다 규모가 컸으며, 이 사고로 사상자(주수 준비중이던 자위대원 4명, 하청직원 3명 부상)도 발생했다.
12시경 2호기 수위 저하 확인
사고 초기에 격리계 냉각수 주입 장치(RCIC)를 가동했던 덕분에 2호기의 빠른 멜트다운은 막았으나, 연속 운전으로 인한 과열 · 피로 누적 때문에 냉각 효과가 줄어들었고, 수위가 저하되기 시작한다.
13시 25분 2호기 RCIC 냉각 능력 상실
다만 2호기는 문제가 더 심각했다. RCIC의 냉각 능력이 완전히 상실한 이상 냉각수를 주입하지 않으면 또 다시 다른 원자로처럼 멜트다운이 일어나는 것은 자명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격납용기의 압력은 더 올라갈텐데, 1호기 및 3호기와는 다르게, 3호기의 수소폭발 여파로 2호기의 비상방출 밸브는 모두 고장나버렸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정상적인 비상방출이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 작업자들은 이 때문에 3호기와 같이 SR변 개방 이후의 주수보다는, 방사능 유출 전에 최대한 정상적으로 비상방출을 시도하려 했다.
16시 15분 도쿄 전력 및 일본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SR변 개방 및 냉각수 주수 권고 조치
그러나 현장 작업자들의 이러한 판단은 무시되었다. 일본원자력안전위원회는 현장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채, 매뉴얼 대로의 조치를 시행할 것을 주문했다. 이 조치는 도쿄 전력에도 전달되었으며, 도쿄 전력의 지휘 계통을 통해 강제로 후쿠시마 원전 작업자들이 이 조치를 수행하도록 명령했다.
시간불명 원자력안전보안원 보안검사관 철수
사고 당일인 11에는 4~6호기의 정비로 보안검사관이 8명 있었다. 사고 이후 4명이 제1원전 면진중요동에 연락요원으로 잔류했었으나, 3호기 폭발 이후 공포에 질려 오프사이트센터로 철수했다. 이후 오프사이트센터가 실내 방사선량 상승으로 15일 후쿠시마현청으로 이전하면서 이는 가려졌고, 사고가 진정되는 22일까지 복귀하지 않았으며 정부는 도쿄전력이 하는 말만 곧이곧대로 들어야 했다.
18시 2분 2호기 SR변 개방 및 냉각수 주수 개시
그러나 결과는 3호기와 똑같았다. 이후 2호기의 냉각수 수위가 -370 cm, 즉 완전히 없는 상태에 도달했다.
19시 20분 2호기 주수 실패 원인 파악
3호기와 같은 이유도 있었지만, 더 심각한 이유가 있었다. 소방 펌프차의 장시간 운전으로 인한 연료 부족으로 펌프가 작동하지 않았던 것. 3호기는 물이라도 들어갔지만, 2호기는 아예 물도 거의 들어가지 않았던 셈. 이 시점에서 2호기의 멜트다운은 확정적이었다.
19시 57분 2호기 주수 주입 시작
작업자들은 그래도 주수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 조치는 이미 일어나는 멜트다운을 막지 못했다.
21시 9분 2호기 멜트다운 시작
아니나 다를까, 2호기에서도 멜트다운이 시작된다. 동시에 격납용기의 압력도 상승하기 시작했다.
23시 36분 2호기 격납용기 직접방출(드라이웰 방출) 지시, 그러나 실패함
앞서 말한 것과 같이 2호기는 정상적인 경로로의 비상방출이 어려웠다. 이 때문에 2호기의 격납용기에서의 방출은 원자로 격납용기 내부의 증기를 직접 방출하는 드라이웰 방출 방식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즉, 폭발만 없었다 할 뿐이지 격납용기 내부의 물질이 바깥으로 유출되는 것. 비상방출에 비해서 엄청난 양의 방사성 물질이 방출되므로, 정말 폭발이 더 위험한 경우에 사용되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직접방출 밸브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밸브를 움직일 수도 없었던 것이, 이미 격납용기 근처의 조사당량은 사람이 15분 서 있는 것만으로도 사망에 이르는 24 Sv/h에 이르러있었다.

2.5 3월 15일[편집]

3시 인력 철수 시도
현장 인원의 피로가 누적되고, 도쿄전력과 현장조직이 더 이상의 조치가 어려움을 깨닫고, 현장에서 철수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요시다 소장도 현장 인원을 소집해 철수 계획을 통보했다. 이 이야기가 총리 귀에 들어가, 총리가 사옥에 쳐들어가는 계기가 된다. 피로 누적 때문에 철수하긴 해야 했으니, 50여명을 잔류시키는 조건으로 나중에 부분적으로 철수했다.
5시 26분 사고대책통합본부 설치
도쿄전력 본사에 정부와 도쿄전력의 합동본부가 설치된다. 말이 좋아 합동이지, 도쿄전력과 보안원이 꿀먹은 벙어리처럼 행동하면서 총리관저는 TV로만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기에 보다못한 총리가 쳐들어간 것에 가깝다. 덕분에 4호기 폭발은 지상파 보도가 아니라 현장 보고로 알게 된다.
6시 10분 4호기 원자로 건물이 수소폭발
3호기 비상방출 라인을 공유하고 있어, 3호기 비상방출 때 해당 라인을 통해 3호기의 수소가 유입되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2호기 현장에서는 2호기 격납용기의 폭발으로 알았으나, 나중에 4호기 원자로 건물의 폭발이라고 알게 된다. 2호기 현장에서 바로 수소폭발이라고 알지 못했던 것은, 충격과 동시에 격납용기 (정확히는 격납용기 하부; 웨트웰 부분) 내부의 압력계가 0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다만 수소폭발만 일어난 것은 아니고, 이 충격으로 2호기의 격납용기 하부가 손상된 것은 후일 조사에서 거의 기정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로 웨트웰 인근에서 물이 새는 모습이 관측되었기 때문.
아무튼 2호기에서 손상이 시작되면서 방사성 물질의 유출량이 급격히 늘어났고, 피폭을 막기 위해 작업원들마저 작업이 일부 제한되기에 이른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및 여파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나, 사고 발생 자체는 이 시점까지로 잡는 경우가 많다. 이후 이루어지는 조치들은 대부분 방지 조치가 아닌 발생 이후 조치들이었다.
7시 55분 3호기 상부 증기 관측
사용후 핵연료 저장소의 과열로 냉각수가 끓고 있었다. 이에 대한 조치는 이틀 뒤에 취해진다.
9시 경 부지 정문에서 120 mSv/h 계측
바람 방향이 내륙으로 바뀌면서 막대한 방사성 물질이 육지로 퍼지기 시작한다. 주로 후타바정이 피해를 입었다.

2.6 3월 이후[편집]

3월 17일 첫 헬기 방수
오전 10시, 3호기 사용후 연료풀에 치누크의 물세례가 보기좋게 명중했다. 자위대 헬기를 통한 첫 방수였으며, 이를 성공하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3월 18일 도쿄소방청 기동구조대 투입
바닷바람으로 인해 헬기 방수로 충분한 효과를 얻지 못하자, 총리 관저의 요청으로 도쿄소방청이 해수를 직접 방수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3월 20일 1·2호기 관리용 전력 복구
3월 21일 5·6호기 관리용 전력 복구
3월 22일 3·4호기 관리용 전력 복구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에 외부 전력이 들어옴에 따라 20일 ~ 22일에 걸쳐 운영용 전력이 다시 투입되었다.
3월 25일 일본 정부에서 원전 반경 20~30 km 이내 거주 주민에게 대피 권고
15일 이후 원전에서 북서 방향으로는 30km 이내까지 고선량의 방사능이 수일째 지속되면서, 옥내대피로 지정되어 있었던 이 구간의 대피 권고가 떨어졌다. 사실 소개령이 떨어져야 맞지만, 행정소요가 과다함에 따라 대피 능력이 있는 이들에게 알아서 대피하라고 한 셈이다.
4월 2일 오염수 해양 유출
원자로에 지속적으로 주수하면서 넘치는 물이 터빈 건물 쪽으로 흘러나왔고, 그 중 2호기의 갱도쪽으로 고농도 오염수가 해안으로 누출되는 것이 오전 9시 순찰 중 발견되었다. 오염수 누출을 막는 데 5일이 걸렸다. 이후 수시로 오염수가 별별 곳으로 새어나왔다.
4월 22일 “계획적 피난구역” 발표
대피구역을 단순히 동심원으로만 그려나가서는 원전 북서 지역의 방사선량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원전 20km 바깥 지역 중 특정 행정구역을 지정하여 피난시키는 계획적 피난구역이 새로이 발표되었다. 5개 시정촌이 지정되었으며, 이들 지역에서는 1개월 이내 주민을 소개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10월 28일 1호기 밀봉
임시 구조물을 1호기에 둘러 씌웠다. 이를 통해 1호기에서 대기중으로 흩날리는 방사성 물질을 차폐하고, 외부 강우의 건물내 유입을 차단했다. 다만 1호기 사용후 핵연료 반출에는 장애물이 되므로 해당 시기가 도래하면 철거될 예정.
12월 16일 정부와 도쿄전력이 냉온 정지를 달성했다고 선언
일단 원자로 내부 온도를 100℃ 이하로 내리고, 부지 주변 방사능 수치가 1 mSv/year 이하를 달성함에 따라 냉온정지라고 표현했다.
2013년 3월 11일 2호기 외벽 파손 부위를 보수
사고 2년만에 2호기 외벽의 구멍을 막았다.

3 피해[편집]

2014년 기준 대피구역
  • 최대 900페타베크렐(Bq)에 달하는 방사성 물질 방출
  • 7개 현 111개 시정촌이 제염이 필요할 정도로 오염(일부 지역은 귀환곤란지역으로 지정)
  • 피난민 16만명 발생

도호쿠 대지진이 겹쳐 사회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쏟아지는 뉴스와 대량의 피난민이 엉켜 한때 일본이 몰락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몰린 상태였다. 도호쿠 대지진 쪽이 그럭저럭 안정되면서 후쿠시마의 명확한 상태가 서서히 드러났다.

사고 특성상 주민들이 피폭된 것은 분명하다. 사고 당시 1개 마을이 독단적으로 안정요오드제를 배포한 것을 제외하면 주민들에게 적절한 방사능방호약제가 배포되지 않았고, 방사성 구름의 움직임의 예측(SPEEDI)도 발표되지 않아 그 한가운데로 주민들이 피난하는 등 적절히 보호되지 않았기 때문. 2018년 12월 기준 피폭 지역의 아동 중 갑상선암에 감염된 아동이 18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진원에 가까웠던 토호쿠 전력오나가와 원자력 발전소는 후쿠시마 원전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했기에 더 심한 쓰나미에도 도리어 잘 버텼다. 이 때문에 도쿄 전력의 안이함이 더욱 비난받았다.

4 후폭풍[편집]

  • 조직 개편
    제일 먼저 도쿄전력의 안이한 행동이 도마에 올랐는 데, 이 행동의 이면에는 뒷짐지고 있는 규제당국(원자력안전보안원)이 있었다. 원자력안전보안원은 1999년 JCO사고의 후속조치로 발족한 원자력 규제당국인데, 원전을 적극 추진하는 경제산업성 산하에 있었기에 중립성이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또한 사고처리에 있어 총리 직속의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투트랙으로 가면서 시너지를 모으지 못했다. 결국 원자력안전보안원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통합되어 환경부 산하의 원자력규제위원회가 되었다.
  • 도쿄전력의 공기업화
    도쿄전력은 막대한 피해 보상금을 물고 시장공기업화(정부지분 54%)되었으며, 당초 검찰은 모든 책임자를 불기소 처분했지만, 최고 경영진 3명은 국민배심원단의 결정에 따라 기소되었으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2].
  • 원전 올스탑
    모든 원전의 운전을 중단하고, 후쿠시마 사고의 해석 후 도출된 새로운 안전 기준을 만족하는지 확인하고 지자체의 동의를 받아 재가동하고 있으며, 2019년 4월 현재 운전 가능한 37기 중 7기만이 운전허가를 받아 가동하고 있다. 또한 재가동 기준이 강화되면서 수명주기가 다가오는 원전이 줄줄이 폐로 수순을 밟으며 11기(후쿠시마 6기 제외)가 사고 이후에 2019년까지 영구 정지됐다. 마지막으로 3기 뿐이던 원전 계획(후쿠시마1 7·8호기 및 나미에·오다카 1호기)이 전면 백지화됐다. 건설중인 원전 3기도 완공이 불투명해졌다.
    선거로 선출되는 지자체장이 동의를 해줘야 가동할 수 있고, 정부의 결정은 법원에 의해 뒤집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재가동하려는 전력회사와 재가동을 막으려는 시민사회의 싸움이 치열하다. 규슈에서는 전력회사가 재가동 여론 조성을 위해 시청자 참여가 가능한 TV 프로그램에 조직된 메시지를 일제히 보낸것이 들통나기도 했다(九州電力やらせメール事件).
  • 후타바병원/도빌후타바
    원전 반경 5km 내에는 종합병원인 후타바병원과 노인요양병원인 "도빌후타바"가 있었다. 환자가 총 436명 있었으며, 12일 250명 대피때 원장을 제외한 모든 직원과 병세가 양호한 환자가 철수하고, 중환자 50여명을 포함해 200여명을 옮기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2번째 대피는 14일에 이뤄졌으며 자위대 장병 3천여명이 192명을 철수시켰다. 마지막으로 16일 35명이 철수하면서 병원 소개가 종료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는 데, 의료진이 1명도 포함되지 않고 중환자가 다수 포함된 2번째·3번째 대피진에서 후송 지연·의료기록 분실(아예 안 챙김) 등으로 인해 의료행위가 지연되어 5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5 제염과 부흥[편집]

후타바정

통상 한국-일본 지역은 편서풍이 꾸준히 불기 때문에 이번 사고에서도 방사능 물질이 대부분 태평양으로 날아가는 것을 기대해볼 수 있었으나, 얄궂게도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와 방사성 물질이 내륙으로 퍼져나갔으며 요코하마 이남에서도 미량의 방사능 물질이 발견되었다.

제염에서 당국이 정상 준위를 연간 20mSv로 잡고 있으나, 세계적으로 정상 준위로 잡는 기준이 연간 1mSv(종사자 연간 20mSv)임을 생각했을 때 상당히 높은 수치다. 이에 따른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나 예외로 규정하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 토양·건물 제염
    직접적으로 방사성 낙진이 내려앉은 원전 주변지역 뿐만 아니라 원거리에서도 강우 등으로 낙진이 씻겨내려가면서 빗물이 고이는 곳에 고준위 방사선이 발생하는 "핫스팟" 현상이 다수 발생되었다. 제염은 낙진이 쌓인 표토를 제거하고 다른 흙을 채우는 것이 주된 작업이고, 여기에 더해 시설물의 표면을 고압세척하는 등의 부가 작업을 한다.
    현장에서 제거한 오염토는 밀봉한 뒤 임시 야적장에 쌓아두어 보관했다. 원래 방침은 영구 처분장을 지정해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 이었지만, 님비 현상으로 마땅한 처분장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건축자재 등으로 재사용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으며, 원래 방침은 오염지역 내에서 사용하는 것이었지만 수도권(요코하마)에서 오염토가 발견되는 등 허술한 관리가 도마에 오른 상태.
    귀환곤란지역을 제외한 오염지역의 제염은 2018년 3월부로 모두 완료되었다. 고방사선으로 대피해제가 되지 않은 귀환곤란지역은 "특정부흥재생거점"으로 전환되어 2020년대 초까지 제염하며, 제염 후 5년간 자연적으로 방사선 준위가 정상수준(연간 누적 20mSv)까지 저감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 인프라 복구
    교통 인프라의 경우 낙진 구간을 지나는 주요 간선인 조반자동차도, 114번 국도, JR동일본 조반선이 승객 피폭 우려로 통제되었다. 조반자동차도와 117번 국도은 제염 후 완전복구되었고, 조반선은 해안가에서 내륙으로 선로 이설을 겸하여 복구 작업을 벌여 2020년 3월 완전개통하여 사고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왔다.
    사고 초기에는 비내린 다음날에 낙진을 함유한 강우가 상수원에 섞이면서 수돗물 방사능이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이 있었다. 2011년 4월 이후 준위 변화가 검측되지 않았다.
  • 농수산물의 유통
    도호쿠 지역 부흥과 묶어서 "먹어서 응원하자" 캠페인을 장려했다. 명목은 도호쿠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하지만 후쿠시마산 농수산물도 포함되면서 논란이 되었다. 일본 현지에서도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은 기피되고 있다[3].
    방사성 물질이 해안가로 대거 유출됨에 따라 일본 동해안에서 잡히는 모든 수산물의 유통이 한동안 금지되었으며, 전세계에서 일본산 식품의 신뢰도가 크게 추락해 매번 수출때마다 방사선을 측정해야 하는 것은 물론 수입국(한국 포함)도 깐깐해져 매번 수입때마다 전수조사를 벌여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면 반송해버리는 등 경제적 비용이 상당하다[4].

6 폐로 과정[편집]

Unit 4 of TEPCO's Fukushima Daiichi Nuclear Power Station (02813334).jpg

멜트다운 사고 이후 폐로 조치에 성공한 사례는 스리마일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외에는 없었다. 체르노빌 발전소는 폭발했고, 핵연료 제거절차 없이 석관으로 덮어놨을 뿐이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경우, 마스터 플랜 상으로는 40년의 기간을 할당해두었다. 다만 이 40년도 확정적인 것은 아니며 당초 2년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던 사용후 핵연료 철수조차 10년 이상 지난 2023년은 돼야 시작할 수 있을 것(1·2호기)으로 내다보고 있다. 고준위 방사능으로 작업 시간이 제한되고, 근로자도 구하기 어려워 기능실습생을 빼돌려 쓰다 들키는 등 작업 진척이 더딘 상태다.

진행상황 요약
1호기 2호기 3호기 4호기
사용후 핵연료 반출 착수 예정
(2023년 이후)
착수 예정
(2023년 이후)
종료
(21.02.28.)
종료
(14.12.21.)
압력용기 탐사 착수 예정 착수 예정 17.07.22. 해당
없음
연료 제거 착수 예정 착수 예정
(2021년 이후)
착수 예정
완전 철거 미정 미정 미정 미정

6.1 2010년대[편집]

2013년 3월 30일 냉각수 순환 시스템 구축
원전 내부에 고인 오염수를 정화하여 냉각수로 다시 투입하는 순환 시스템(ALPS)이 구축되었다. 다만 지하수가 계속 유입되어 투입하는 냉각수보다 배출되는 오염수가 월등히 많아 빠른 속도로 보관량이 증가해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물탱크 저장 상황은 도쿄전력 특별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2013년 11월 18일 4호기 사용후 핵연료 반출 시작
사고 당시 4호기는 정지 상태로 사용 중 핵연료를 사용후 핵연료 저장소에 보관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멜트다운은 피했으나, 다른 호기의 3배에 달하는 핵연료 다발이 있고 지진으로 인해 건물 구조가 약해져 붕괴 위험이 대두되면서 12년 4월부터 반출 준비를 시작했다.
2014년 1월 31일 5·6호기 폐지
12년 4월 막대한 피해를 입은 1~4호기가 먼저 폐지되고, 5~6호기도 서류상 폐지되면서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의 수명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2014년 12월 21일 4호기 사용후 핵연료 반출 완료
지진 당시 원자로와 격리된 핵연료 중 가장 양이 많았던 4호기의 사용후 핵연료를 사고 현장에서 전량 반출하는 데 성공했다.[5]
2015년 7월 28일 1호기 사용후 핵연료 반출 준비
1호기의 차폐 구조물을 일부 철거하고, 철거로 인한 방사능 준위의 변화가 있는지 관찰. 또한 사용후 핵연료 상부의 잔해를 정리.
2015년 8월 2일 3호기 사용후 핵연료 반출 준비
3호기 사용후 핵연료 저장소 상부의 잔해를 정리하고, 상부에 차폐 구조물을 세우기 시작해 사용후 핵연료 반출 준비를 시작했다.
2015년 9월 7일 2호기 사용후 핵연료 반출 준비
2호기의 외벽을 철거하여 사용후 핵연료로 반출할 통로를 확보.
2015년 10월 새로운 사무동 완공
지진으로 파손된 사무동 건물을 대신할 새로운 사무동이 완공되었다. 이전에는 면진중요동이나 제2원전의 사무동을 이용해왔다.
2015년 11월 9일 동토층 형성 완료
주변지역의 지하수가 발전소로 흘러들어와 새로운 오염수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부지 주변의 지하수층을 얼려 저지선을 형성했다.
2017년 7월 22일 3호기 격납용기 탐사 성공
원격 로봇을 이용해 3호기 격납용기 부근에 진입하여 1~3호기 중 처음으로 녹아내린 핵연료 촬영에 성공했다.[6]
2019년 4월 15일 3호기 사용후 핵연료 반출 개시
3호기 사용후 핵연료 수조 상부에 원통형의 차폐 구조물 및 크레인을 설치하여 반출을 시작했다. 총 566개 핵연료 다발이 반출될 예정이며 그중 52개는 미사용 핵연료다[7].

6.2 2020년대[편집]

2021년 2월 28일 3호기 사용후 핵연료 반출 완료
10개월에 걸쳐 566다발의 사용후 핵연료가 인출되었다.

6.3 오염수 배출 논란[편집]

이런 탱크가 1천개 이상 널려있다.

지하수나 빗물이 발전소로 들이쳐 녹아내린 핵연료와 접촉하여 오염수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아직까지는 발전소 부지 곳곳에 가설 탱크를 세워 오염수를 채우고 있으나, 언제까지고 오염수를 보관만 할 수 없기 때문에 오염수의 방류에 대한 논의가 끊임없이 이뤄져 왔다.

오염수를 그대로 보관한 것은 아니고, ALPS라는 시설로 정화한 처리수를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정화했지만 여전히 오염은 되어 있는 데, 피폭의 주요 원인이 되는 방사성 동위 원소는 대부분 분자량이 커서 걸러지지만 삼중수소는 분자량이 매우 작을 뿐더러 물의 수소와 치환되어 겉모습은 물과 같지만 인체에 유해한 삼중수가 되어버려서 물 분자를 원자로 쪼개지 않는 이상 정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중수소 오염문제 때문에 방류를 쉬이 결정하지 못했던 것이며, 오염수를 계속 이고 있는 것도 부담이 크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호시탐탐 오염수를 방류할 궁리만 하고 있다. 이미 바다에 방류할 것은 결정된 상태(해수에 희석하여 배출하는 방침)이고, 그 타이밍이 언제냐만 총리 관저의 결정 사안으로 남아있다.

오염수 방류는 수자원으로 먹고사는 한국 어민은 물론 일본 어민들도 당연히 좋게 보지는 않는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7 같이 보기[편집]

8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