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

황진
인물 정보
출생 1550년
사망 1593년 (44세)
국적 조선

황진(黃進, 1550년~1593년)은 조선 전기의 무신이다. 는 명보(明甫), 시호는 무민(武愍).

증조부가 생각보다 엄청난 사람인데, 바로 황희 정승이다. 즉, 조선 시대 최고의 영의정의 5대손이다. 임진왜란 당시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나간 조선 육군 장수들 중 홀로 빛나는 활약을 보인 명장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한국인에겐 인지도가 매우 낮다.

1 생애[편집]

1550년 지금의 남원군 주생면 영천에서 태어났다. 1572년에 무과에 급제, 선전관에 임명되어 함경도 지역에서 6년을 근무하게 된다.

1590년 자신의 친척뻘 되는 황윤길을 따라 조선통신사로서 일본에 간 후 일본의 동태를 살펴보며 일본이 곧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 생각하고 일본군들이 침략할 경우 칼로 쓸어버리겠다는 굳은 결심 하에 일본도 두 자루를 사서 조선에 돌아온다. 이때 친척이자 상관이었던 황윤길은 당시 일본에서 포르투갈에서 수입한 최첨단 신무기인 조총을 두 정 사들고 왔으니, 어찌 보면 친척끼리 닮은 구석이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일본에서 돌아온 황진은 제용감 주부를 거쳐 동복현감이 되었고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자신의 공무가 끝나면 말타기와 활쏘기 등 전쟁에 필요한 무예를 부지런히 익혔다. 이런 만반의 준비야말로 임진왜란 당시의 황진의 엄청난 활약의 원동력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터지고 경상도가 빛의 속도로 무너진 후(...) 일본군이 충청도전라도까지 단숨에 넘어오자 이광당시 전라도 관찰사. 권율도 도절제사로서 그의 밑에서 싸웠다.의 휘하로 전투에 참전해 맹활약을 펼친다. 단 이광의 이해할 수 없는 우라돌격 전술로 용인 전투에서 크게 참패, 남쪽으로 후퇴하다 진안에 침입한 일본군의 선봉장을 죽이고 이어 안덕원에 침입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사실 용인 전투는 한국사 4대 참패 중 하나로 불릴 정도로 말 그대로 너덜너덜하게 당해 도망치는 상황에서도 이 전과를 올린 것은 놀라운 것이다.

이후 왜병의 대군이 전라도의 진산군 외곽 이치 지역을 침범하자 권율의 독려로 훈련원 판관으로 동복현의 군사를 거느리고 전투에 참가. 이치성을 에워싸고 총에 맞아 부상을 입으면서까지 용맹히 맞아 크게 대승을 거두었다.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일컬어지는 한산도 대첩, 행주대첩, 진주대첩에 비하면 그렇게 눈에 띄는 전과가 없어서 이 전투가 뭐 그렇게 별건가 싶겠지만 당시 일본 측에서는 이 전투를 조선의 3대 전투 중 이치 전투를 단연 원톱으로 쳤다고. 즉 당시 이 전투에서의 승리에 대한 위상이 조선과 일본에게 있어 어떤 의미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후 선거이를 따라 수원에서 일본군에 맞아 싸웠고 이후 충청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안성에서 병사들을 훈련시켰다. 이후 죽산성에 집결해 있던 왜군이 안산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죽산성에서 기어나와 안성을 침략하자 어딜 감히 넘보냐는 듯 도리어 크게 무찔러 오히려 죽산성을 점령해 버린다(...) 그뿐만 아니라 성을 잃고 도망치는 일본군들을 상주까지 끈질기게 쫓아가서 완전히 궤멸시켰다.

이후 제2차 진주성 전투 때 진주성을 침략한 일본의 10만 대군을 맞아 용감히 항전했으나 어느 날 진주성 포대에서 머리를 내밀고 밖의 동향을 파악하던 도중 날아온 총알에 맞고 어이없게 전사한다. 지금까지의 활약을 보면 참으로 아쉬운 최후라 할 수 있다.

2 평가[편집]

임진왜란 초기 최고의 활약을 보인 육군 명장.

사실 임진왜란 당시의 최고의 육군 장수는 김시민, 최고의 해병대(?) 장수는 권율, 최고의 수군 장수이자 한국 역사상 최고의 장수였던 이순신이 있어서 상당히 묻힌 감이 있지만 이 사람의 활약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보면 알겠지만 죽산성 전투를 제외하면 대부분 누군가의 따까리로 활동했으며 자신이 직접 전두지휘해서 이긴 전투가 없고 보니 조금 애매한 감도 있다.콩라인 하지만 그의 활약을 결코 폄하해서는 안 되는 것이, 우선 이 사람의 전적을 보면 전적으로 이광의 경솔한 전술 때문에 도저히 이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용인 전투를 제외하면 진 전투가 거의 없다. 우선 이치 전투의 경우 상술했지만 당시 조선과 일본에게 있어서 몹시 중요한 전투였고 따라서 이 전투에서의 승리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졌는데 이 전투에서 크게 승리했다. 박시백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 황진을 평하기를, 바다에서의 이순신의 활약에까지 비견시키며 그의 용맹한 활약을 치켜세웠다. 그를 평가하자면, 직접 지휘하는 지휘관으로서도 탁월했지만 누군가의 명령을 받아 최전방에서 왜군을 써는 데에 특화되어 있던 전형적인 돌격대장이었다 할 수 있겠다.

황윤길도 그렇고 황진도 그렇고 황희 정승의 후손들은 대체로 맞는 말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외부 참조[편집]

4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