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환 (18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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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性煥.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1 생애[편집]

1884년 7월 7일 황해도 연백군 연안면 연성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개신교 전도사로, 1919년 2월 28일 연안읍 교회 목사 손창현(孫昌鉉)으로부터 기미독립선언서 20여 장을 받아 교인 7명에게 나눠줬다. 그러나 이 사실이 발각되면세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1919년 6월 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1] 이에 불복해 상고하면서, 상고취의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피고는 대정 8년(1919년) 3월 1일 본군 연안면에 사는 목사 손창현이 조선독립선언서 20장을 피고에게 보냄에 따라 뜻밖에 이것을 받아 7명에게 나눠 준 일로 보안법 위반이라 하여 해주 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처해지고 이를 불복하여 공소했는데 평양복심법원에서는 반년을 감하여 징역 1년에 처해졌으나 이를 억울하다고 하는 이유는, 피고는 교회의 수두인 목사의 명에 따른 것이고 자발에 의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일어난 민족자결문제가 공포된 후의 행동으로 개인의 요언, 망설에 기초한 것이 아님으로 죄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1919년 7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2] 출옥 후 조용히 지내던 그는 8.15 광복 후 서울로 이주했고, 1969년 3월 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홍성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8년 10월 20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그의 유해를 안장했다.

2 외부 링크[편집]

  • 국가기록원 - 독립운동관련 판결문
  • 독립유공자 공훈록[1]

3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