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천

홍석천
洪錫天
'현지에서 먹힐까' 제작 발표회 홍석천.jpg
2018년의 모습
인물 정보
출생 1971년 2월 3일 (53세)
대한민국 충청남도 청양군
학력 청양중학교 (졸업)
남대전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인문과학대학 (연극영화학과 / 학사)
종교 개신교
활동기간 1995년[1] ~ 현재

홍석천(洪錫天, 1971년 2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희극인이자 배우이다.

성소수자의 개념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2000년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연예계 사상 최초로 커밍아웃한 게이로 유명하다.[2]

커밍아웃 전[편집 | 원본 편집]

1974년 2월 3일 충청남도 청양군[3] 태생으로 청양중학교남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하여 적어도 학창 시절 까지는 고향인 청양에서 지내왔음을 알 수 있다.

학창 시절부터 교내 에어로빅 시범단원으로 활동하였고 군 복무 도중 전국노래자랑에 출전하여 우수상을 받고 연말결산에도 출연하는 등 탤런트로서의 재능을 보여주었으며, 결국 제대 후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들어가 학사 졸업을 한 뒤 1994년 KBS 생방송 TV정보센터의 리포터로 매스컴에 데뷔하게 된다.

홍석천의 1차 전성기를 열었던 작품은 MBC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이다. 여기서 그는 패션 디자이너으로 열연하여 "미워 죽겠어!"라는 유행어도 만드는 등, 주연이 아님에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커밍아웃 후[편집 | 원본 편집]

홍석천이 강제로 커밍아웃을 당한, 즉 '아웃팅'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다만, 본인이 커밍아웃을 하고자 하는 의지는 있었으나 그 루트가 본인이 예상한 루트도 아니였고 방법도 상당히 낯뜨거운 방법이였다.

사실, 홍석천은 데뷔 초부터 동성애자라는 정황이 주변 지인들에게 조금씩 퍼져 있던 상황이었다(단지 본인이 공인한 적이 없어 다들 굳이 캐내진 않았다).결국 본인이 2000년도에 녹화중이던 한 방송에서 직접 스스로 커밍아웃을 했다. 하지만 보수적 사회관이 강하던 2000년도 전후에 이 사실이 밝혀지면 파급력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고, 이에 당시 홍석천이 커밍아웃을 한 프로그램을 담당한 PD는 홍석천 본인이 공개해도 좋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변을 우려해 이 부분을 편집했고, 홍석천의 커밍아웃은 방송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참고로 홍석천이 굳이 2000년도에 커밍아웃을 한 까닭은 아무래도 그 때 본인 나이가 30대라 새출발을 한다는 자신감도 들었을 뿐더러 21세기로 접어들었으니 지금쯤 하면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랬다고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듣고 본 눈과 귀가 한둘이 아니였기 때문에 순식간에 소문이 퍼져나갔고 이 소문을 캐치한 여성중앙에서 그를 인터뷰하자 그는 인터뷰 자리에서 다시 한번 커밍아웃을 했다. 이번에는 이 소식이 제대로 잡지 지면에 실릴 예정이었고 본인은 물론 주변인들도 각오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작 홍석천의 커밍아웃 사실은 엉뚱한 제 3의 경로에서 터지게 되었다. 평소 그와 친분이 있던 일간스포츠의 기자가 이걸 캐치하고는, 홍석천 본인이 공인한 여성중앙 잡지가 발간되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쳐서 일간스포츠 신문 1면에 그 사실을 실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기사를 급하게 쓴 덕에 제목은 당사자에 대한 배려따윈 하나도 없이 순전히 눈길을 끌 자극성만 들어간채로 나와 "난 호모다.", "난 남자가 좋다." 같은 그야말로 자극성 투성이 제목으로 뽑혀나왔다.

이 사실이 밝혀진 이후 그를 향한 취재 열기는 무척이나 뜨거웠지만 그것과는 정 반대로 성적소수자를 터부시하는 사회적 관념이 강했던 대한민국의 사회상 때문에 그는 한동안 방송에 출연할 수 없었다.

이후 홍석천은 사실상 방송출연이 금지된 것이나 다름없었으나, 김수현 작가의 배려로 마직 김수현 작가가 진행중인 완전한 사랑에 동성애자 역으로 출연함으로서 방송계 명맥이 아주 끊기진 않았다. 또한 커밍아웃 당시 많은 인맥을 잃었으나 이의정과 같은 소중한 사람들이 그의 곁을 지켜주어 그가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실제로 이의정은 홍석천이 가장 먼저 커밍아웃을 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한다.

게다가 하늘이 도운건지 아니면 홍석천 본인의 의도대로 커밍아웃한게 주효했는지는 몰라도 홍석천의 커밍아웃의 결과로 대한민국 사회 내에서 동성애에 대한 시선이 전보다 상당히 누그러졌다. 이 시기에 브로크백 마운틴 같은 동성애를 소재로 한 작품이 대형 극장에 걸리는가 하면 김수현 작가가 동성애 요소가 담긴 인생은 아름다워를 찍는 등 점차 동성애 문화가 자연스럽게 유입되었다.

2007년을 기점으로 케이블 방송이 활발해지자 홍석천은 규제가 빡빡해 홍석천을 선호하지 않던 방송3사보다는 규제가 널널한 케이블 방송을 통해 방송계에 진출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으며, 여기서 친근한 이미지를 많이 어필하여 시청자들의 호감을 샀고 끝내는 2010년을 전후하여 다시 예전처럼 방송 3사에서도 활발히 출연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참고로 커밍아웃 직후 넷상에서는 그야말로 심심하면 씹는 안주거리가 되었으나, 홍석천은 이런 악플러들을 고소하지 않고 넘어가주겠노라 공언함으로서 대인배 이미지를 얻은 것도 인기에 한 몫 했다. 문희준이 시덥잖은 로커라고 개까이다가 악플러들을 고소하지 않아 대인배 이미지를 얻어 호감이 된 것과 같은 케이스.

긍정적 평가[편집 | 원본 편집]

일단 동성애자의 존재를 당당히 수면 위로 떠올리고 그 자신이 동성애자의 한사람으로서 수면 위에 나서 호감 이미지를 획득해 동성애자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을 희석시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그의 공로 중 하나이다. 참고로 홍석천은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아시아쪽에서도 커밍아웃을 거의 최초로 한 인물이며 이 때문에 미국 타임즈에서는 '아시아의 영웅'이라는 제목으로 홍석천을 소재로 기사를 썼다.

한편 홍석천은 동성애자라는 점을 단순히 자기 방송 컨셉으로서만 쓰는 것 뿐만 아니라 실제로 성적소수자들의 고충을 상담해주는 일도 개인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덕분에 그의 이미지와, 덩달아 동성애를 향한 인식도 나아지는 효과를 낳았다.

부정적 평가[편집 | 원본 편집]

사실 홍석천의 방송계 복귀가 주요했던 까닭은 자신의 게이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그것을 유머 소재로 만드는 등으로 대중에게 친근하게 어필했던 것이 주효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동성애를 웃기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4]

일례로 홍석천은 동성애자, 즉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자신이 여성상을 지닌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5] 이것 때문에 '게이 = 여성상을 지닌 남자'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심어줄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당연하지만 모든 게이가 다 홍석천처럼 호리호리한건 아니고, 우락부락 근육질에 콧수염까지 큼직하게 기른 그야말로 마초의 표본처럼 생긴 게이인 경우도 있는 등 각양각색이다.

그 외 활동[편집 | 원본 편집]

이태원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당연히 방송활동으로 바빠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종종 모습을 보이곤 하며 메뉴 개발에도 참여하는 모양이다. 장사가 잘 되어서 프랜차이즈로의 전환도 고려해보고 있다고 한다.

이 때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것인지 '나만의 레스토랑을 디자인하라'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레스토랑 관리 노하우도 들어 있지만, 홍석천 개인의 이야기도 들어 있어 홍서천에 대해 알고 싶다면 참고할만 하다.

GS25와 합작하여 홍라면, 도시락 등 몇몇 프랜차이즈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의 연예인 합작 편의점 상품들이 으레 그렇듯 본인은 그냥 광고모델일 뿐이고 개발과 판매는 전적으로 GS25가 한 것이긴 하지만, 가격 대비 맛과 양이 괜찮다는 평가를 받아 본인의 대인배 이미지와 겹쳐져 좋은 평을 듣고 있다. 참고로 홍라면 홍보문구가 심히 인상적인데 라면 먹고 갈래?

드라마[편집 | 원본 편집]

기타[편집 | 원본 편집]

  • 스킨헤드 스타일로도 유명한데, 탈모가 있어 일찌감치 머리를 아예 싹 밀어 버렸다고 한다.
  • 개신교 신자이다. 참고로 성소수자이면서 개신교 신자인 사람들이 꽤 있다. 주류 개신교에서 성소수자를 핍박하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아이러니. 물론 성소수자에 대해 열린 교회들도 있지만 적어도 한국 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소수에 비주류이다.
  • 군복무를 할 때, 보직은 방위였다. 홍석천이 방위가 된 까닭은 그가 무슨 질병을 가져서 그런건 아니고 동성애자인 것과는 더더욱 관계가 없다. 홍석천이 군 입대를 할 당시 청양군은 인구 감소 문제를 겪고 있었고, 당시 대한민국 국군은 인력 보급이 널널해 구태여 모든 남성을 다 현역으로 뽑을 이유가 없어 입영 기준을 널널하게 하고 있던 시기라, 홍석천은 인구가 적은 청양군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방위가 된 것이다. 그의 나이가 70년대 초중반 생임을 감안하면 지극히 당연한 일로, 이 시기에 태어난 남성들은 별 이유 없이 그냥 입영 대기하고 있다가 앞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면제까지 된 경우도 굉장히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메뉴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지만, 축농증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치료를 장기간 받다보니 미각이 상실된 상태라고 한다. 때문에 실제 요리할때는 미각이 둔한 탓에 다소 짜게 요리하는 경우가 많아 일부러 자기 입맛에 싱겁게 조리한다고 한다.
  • 대한민국에 태국 요리를 보급한 공신이기도 하다. 처음엔 순도 100% 리얼 태국 요리들을 선보였으나 고객들의 선호도가 떨어져 결국 한국식으로 적당히 어레인지를 하여 내놓았는데 평가가 좋았고 그런 홍석천의 레스토랑을 기점으로 태국 요리들이 서서히 보급되었다고.
  • 홍석천의 성향은 '올'이라고 한다.[6]
  • 본인이 이야기하기를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오빠"라고 한다.
  • 상당히 먼 8촌 친척으로 NCT태용이 있다. 정확히는 홍석천의 사촌누나의 아들의 사촌이 바로 태용. 원래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라고만 했었는데, 아직 가요계에 자리를 잡기 전이라서 안좋은 이미지가 생겨버릴까봐 함구하고 있었다고. 처음 이야기했을 땐 상당히 이슈가 되어서 "홍석천 조카"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7]

각주

  1. 공식적으로는 제4회 KBS 대학개그제에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보지만, 1994년에 KBS 《생방송 TV정보센터》의 리포터로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2. 게이를 논할 때 간혹 하리수가 언급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하리수는 동성애자도 아니고, 법적으로 남성도 아닌 트랜스여성이다.
  3. 청양고추의 본고장이다. 단, 현재 대한민국에서 청양고추라고 하는 것은 청양에서 재배된 고추뿐만이 아닌 그곳에서 유래된 고유한 품종의 고추 전반을 일컫는 말이라 청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재배했어도 같은 품종이면 다 청양고추다.
  4.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았다면 대중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5. 왜냐하면 남자를 좋아하는 건 여성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으니, 자신이 남자를 좋아한다는 '정당성'을 어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이것이기 때문이다.
  6. 탑은 성교 시 삽입을 하는 역할이고, 바텀은 삽입되는 역할이다. 올은 둘 다 가능한('동시에'가 아니다) 역할을 말한다.
  7. 홍석천의 '8촌' 친척 동생의 정체는?…"NCT 멤버 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