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홍명보
홍명보.jpg
인물 정보
출생 1969년 2월 12일 (55세)
서울 광진구
국적 대한민국
학력 고려대학교
종교 무종교
신체 181cm, 74kg
프로선수 경력
종목 축구
포지션 수비수(리베로)
소속팀 상주 상무 (1991~1992)
포항 스틸러스 (1992~1997)
쇼난 벨마레 (1997~1998)
가시와 레이솔 (1999~2002)
포항 스틸러스 (2002~2003)
LA 갤럭시 (2003~2004)
지도 대한민국 (2010~2014)
마치 두 명의 말디니가 서 있는 것 같다.
— 한 이탈리아 해설자, 세계 올스타전에서 파올로 말디니와 함께 경기를 조율하는 모습을 보며
나의 영혼은 항상 한국에 있다.
홍명보, J리그 지도자로 와달라는 일본 구단 관계자들에게
내 안에 칼이 하나 있다. 이 칼은 누구를 해치기 위함이 아닌 여러분을 지키기 위함이다. 너희는 나라를 위해서 죽어라. 내가 너희를 위해서 죽을 테니까.
홍명보, 런던 올림픽 당시 대표팀에게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다. 아시아에선 비슷한 선수조차 찾아볼 수 없다. 나조차도 그의 말을 따르며 볼을 찼다. 아쉽다. 그는 더 큰 무대로 갈 수 있었다.
나카타 히데토시
월드컵은 증명하는 자리다.
이영표, KBS의 해설위원

영원한 리베로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브론즈볼을 수상한 월드컵 100대 스타 중 하나

감독 괜히 맡았다가 역적으로 전락한 비운의 레전드 땅동님

개요[편집 | 원본 편집]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이자 전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전 원드컵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선수시절엔 한국역사상 손에 꼽을 스타이자 레전드였고 2002월드컵 4강신화의 주역이었으며 올림픽 감독시절엔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을 따내며 명장으로 평가받았으나 월드컵 감독 시절엔 한국 축구계의 흑역사의 주역으로 지목되며 죽창을 맞고 사퇴하였다.

선수경력[편집 | 원본 편집]

Hongmbpohang.jpg
포항 스틸러스에서 데뷔하였다.

1994 월드컵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1] AC밀란이나 FC바르셀로나 같은 세계적인 빅클럽이 러브콜을 보내왔지만 유럽진출을 부정적으로 보던 당시 한국축구의 분위기 때문에 성사되진 못했다.[2]

결국 유럽행이 좌절되고 J리그의 벨마레 히라츠카에 입단했으나 특별히 이렇다할 활약은 없었고 결국 가시와 레이솔에 싼값으로 팔려가지만 여기서 말 그대로 대히트를 쳤다. 굉장히 써먹기 어려운 홍명보의 플레이스타일의 특성상 팀이 홍명보에게 전술을 맞춰줘야 했는데 가시와는 홍명보에게 주장 자리까지 맡기며 전술을 맞춰주었고 말그대로 가시와의 황제로 군림하게 된다.

2002년 월드컵 땐 황선홍, 유상철, 김태영 같은 노땅(...)들과 함께 대후배들의 활약을 하드캐리하며 8강진출에 기여했고, 스페인전에서 승부차기에서 다섯번째 키커로 나와 골을 성공시킴으로서 4강진출의 주역이 되었으며 브론즈볼을 받음으로서 명실상부 2002월드컵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받게 된다.[3]

월드컵이 끝나고 포항으로 돌아왔지만 LA 갤럭시로 이적해 미국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된다.[4]

지도자 경력[편집 | 원본 편집]

2012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특유의 날카로운 두뇌와 카리스마로 한국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축구에서 동메달을 따게 된다.

그후 자진사퇴한 계약직 최강희 감독의 뒤를 이어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나 이게 2년 전의 그 명장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무책임하고 무능한 모습만 보여주며 죽창을 맞고 사퇴하게 된다.

이후 중국 슈퍼리그항저우 그린타운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근황[편집 | 원본 편집]

지금은 자선사업에만 전념하는듯하다. 홍명보자선축구에 대해서는 추가바람.

여담[편집 | 원본 편집]

  • 논란과는 별개로 굉장히 무뚝뚝한 외모와는 달리 대인적 인품은 좋은 편인데 박지성이 당시 올림픽 국가대표팀으로 신참으로 소집되었을 때 룸메이트로 홍명보로 지정되었을 때 무척 기뻐했지만[5]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가장 말 없기로 유명한(...) 두 선후배가 방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박지성이 굉장히 불편해했는데 어느날부터 홍 선배가 숙소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박지성이 잔 후에야 들어왔는데 이게 사실은 후배 박지성을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알고 감동했다고 한다.[6]

각주

  1. 우리나라가 이 월드컵에서 스페인과 독일을 상대로 각각 2골씩 넣었는데 이중 홍명보가 2골 1어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
  2. 참고로 홍명보의 대선배인 최순호유벤투스에서 엄청난 구애를 해왔었지만 비슷한 이유로 좌절되었었다. 이건 단순히 K리그의 이기심이 아니라 말 그대로 당시 한국 축구계 분위기가 이른바 "서양물" 먹는걸 부정적으로 보는 분위기였다.
  3. 골든볼이 올리버 칸(골키퍼), 실버볼이 호나우두(공격수)니깐 뭐....말디니 안습 이천수한테 뒤통수를 까이질 않나
  4. 이때 조금 잡음이 있었다.
  5. 박지성, 이채윤 공저, 『박지성 11살의 꿈 세계를 향한 도전』, 스코프
  6. 최용재, 『박지성-이영표가 말하는 '홍명보의 리더십'』, 아이뉴스24, 2012.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