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어스트 흐루베쉬

호어스트 흐루베쉬
Horst Hrubesch
Hrubesch.jpg
인물 정보
출생 1951년 4월 17일 (73세)
서독
국적 독일
신체 188cm, 88kg
프로선수 경력
종목 축구
포지션 공격수
소속팀 게르마니아 함 (1971)
하머 SpVg (1971~1972)
SC 베스트튀넨 (1972~1975)
로트-바이스 에센 (1975~1978)
함부르거 SV (1978~1983)
스탕다르 리에주 (1983~1985)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85~1986)
SC 베스트튀넨 (1987~1988)
지도 로트-바이스 에센 (1986~1987)
SC 베스트튀넨 (1987~1988)
VfL 볼프스부르크 (1988~1989)
FC 스와로브스키 티롤 (1992)
한자 로스톡 (1993)
디나모 드레스덴 (1994~1995)
오스트리아 빈 (1995~1996)
삼순스포르 (1997)
독일 U-21 (2000~)
마니가 바나나킥을 날리고 내가 헤딩하면 골이지.
— TV 인터뷰에서

헤딩 괴물(Kopfballungeheuer)[1][2]

클럽 경력[편집 | 원본 편집]

로트-바이스 에센(1975-1978)[편집 | 원본 편집]

흐루베쉬는 대기만성형 선수로 꼽히는데 24세가 되어서야 프로팀에 데뷔했다. 프로선수가 되기 전에는 아마추어팀에서 축구와 핸드볼을 병행했으며, 프로팀의 산하 유스를 거치지도 않았다. 에센으로 이적하기 전까지도 아마추어팀 SC 베스트튀넨에서 뛰고 있었는데, 현역선수로서 SC 베스트튀넨을 지도하던 베르너 로란트가 본인의 소속팀인 에센에게 추천했고, 흐루베쉬는 그렇게 프로선수가 되었다.[3] 에센에서의 활약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는데 처음에는 감독이 골만 넣는 선수라고 벤치에 앉혔으나 팬들의 인기가 좋았고 득점력이 탁월해서 결국 주전을 따내기도 했다. 분데스리가 48경기에서 38골을 기록했으며, 2부리그로 강등된 뒤에도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클럽의 주포로 활약했다.

함부르크(1978-1983)[편집 | 원본 편집]

에센 시절에는 헤딩을 잘 하고 골은 잘 넣지만 경기력은 아쉬운 선수라는 평이 있었으나 함부르크로 이적한 뒤 기량이 만개해 케빈 키건과 짝을 이뤄 함부르크를 분데스리가 우승으로 이끌었다.[4] 20대의 끝자락에 드디어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비록 리그와 유러피언컵에서 모두 준우승에 그쳤지만 1979/80시즌 후반기의 맹활약으로 일약 유럽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떠올랐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6위를 기록했다.[5] 이후 키건이 팀을 떠난 뒤에도 함부르크의 주포로 맹활약했고, 1981/82시즌에는 득점왕, 1982/83시즌에는 숙원이던 리그와 유러피언컵 더블을 달성한 뒤 팀을 떠났다. 이후 벨기에의 스탕다르 리에주에서 2시즌간 뛰다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했고, 부상 때문에 은퇴했다. 말년에는 은퇴 이후 SC 베스트튀넨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뛰기도 했다.

국가대표 경력[편집 | 원본 편집]

늦게 빛을 봤기 때문에 국가대표 경력이 매우 짧은 편이다. 1980년에 28세의 나이로 데뷔했으며 그것도 29세 생일 보름 전이었다. 그러나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경쟁자인 클라우스 피셔가 부상당해서 유로 1980에 주전으로 참가할 수 있었고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클라우스 알로프스와 함께 공격진을 구성하여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결승전에 혼자 2골을 넣어 우승시킨 것은 커리어 최고의 순간이라 할 만 하다.[6] 이후 1982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준우승한 뒤 은퇴를 선언했다. 3년간 A매치 21경기 출장이 전부고, 덕분에 당대의 위상에 비해 많이 회자되지 않는 편이다.

감독 경력[편집 | 원본 편집]

감독으로서도 뒤늦게 빛을 본 편이다. 여기저기서 감독을 하긴 했지만 특별히 인상적인 성과를 내지는 못했는데 유로 2000에서 에리히 리벡을 보좌하는 수석코치로 일했고, 이후 다양한 연령대의 독일 청소년대표팀의 감독을 맡고 있다. 2000년대 말에 비로소 성과를 내기 시작해 2008년과 2009년의 유럽 청소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특히 2009년의 U-21 대표팀은 성적이나 선수 면면을 봤을 때 대단히 인상적인 팀이었다.[7] 그런데 2015년 U-21 유로 4강전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해 사정없이 까이고 있다. 예선 광탈한 아드리온도 이렇게 까이지는 않았는데...

우승 경력[편집 | 원본 편집]

선수[편집 | 원본 편집]

함부르거 SV

  • 분데스리가 : 1978-79, 1981-82, 1982-83; 준우승 : 1979-80, 1980-81
  • 유러피언컵 : 1982-83; 준우승 : 1979-80
  • UEFA컵; 준우승 : 1981-82
  • 2.분데스리가 북부; 준우승 : 1977-78

스탕다르 리에주

  • 벨기에 컵; 준우승 : 1983-84

서독

감독[편집 | 원본 편집]

수상 경력[편집 | 원본 편집]

선수[편집 | 원본 편집]

통산 기록[편집 | 원본 편집]

시즌 클럽 리그 대륙 총계 비고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75-76 로트-바이스 에센 22 18 0 0 - - 22 18 분데스
1976-77 로트-바이스 에센 26 20 6 4 - - 32 24 분데스
1977-78 로트-바이스 에센 35 42 2 0 - - 37 42 독일 2부
1978-79 함부르거 SV 34 13 1 0 - - 35 13 분데스
1979-80 함부르거 SV 34 21 3 3 9 7 46 31 분데스
1980-81 함부르거 SV 29 17 5 7 6 7 40 31 분데스
1981-82 함부르거 SV 32 27 6 5 11 5 49 37 분데스
1982-83 함부르거 SV 30 18 4 2 8 2 42 22 분데스
1983-84 스탕다르 리에주 ? ? ? ? 2 1 ? ? 벨기에
1984-85 스탕다르 리에주 ? ? ? ? 0 0 ? ? 벨기에
1985-86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7 2 4 2 - - 21 4 분데스
종합 독일 259[8] 178[9] 31 23 34 21 333 222
종합 벨기에 43 17 ? ? 2 1 ? ?

각주

  1. 좋은 신체조건을 활용한 강력한 헤딩이 위력적이었는데 파울 브라이트너가 프리킥을 헤딩으로 시도하는 최초의 선수가 될 거라고 농담했을 정도.
  2. 하지만 헤딩만 잘할 것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발기술도 꽤 수준급이었다. 미로슬라프 클로제2002 월드컵에서의 기억 때문에 완전체 공격수가 된 뒤에도 헤딩만 잘하는 선수로 여겨지는 것과 비슷하다.
  3. 로란트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초대 감독이기도 하다.
  4. 하지만 키건보다는 위에서 언급된 라이트백 만프레트 칼츠와의 콤비가 유명하다.
  5. 바로 아래에도 나오지만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덕을 보긴 했다.
  6. 이 결승전이 흐루베쉬가 처음 골을 넣은 A매치다.
  7. 월드컵 우승멤버가 6명이다.
  8. 2부리그 포함
  9. 2부리그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