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

향교(鄕校)는 고려 말에서 조선 시대까지 있었던 관학[1] 교육기관이자 시설이다. 성균관 아랫 단계에 속하는 학과로 유교 성인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향교가 있는 지방의 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세워진 시설이다.

구조[편집 | 원본 편집]

통상 향교는 다음의 부속시설들로 이루어져 있다. 평지인 경우 대성전이 제일 북쪽에 위치하고 홍살문이 가장 남쪽에 배치되는 순서이나 향교가 자리한 여건에 따라 그 배치나 방위가 변경되기도 하였다.

  • 대성전 : 공자를 비롯한 유교 4성인과 10제자, 송조육현, 그리고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배향공간이다. 본래 유교 4성과 이들의 제자 10명과 송대 성리학자 6명을 포함한 21위의 위패가 있었던 것은 동일하나 동무와 서무에 우리나라 성현 18위와 중국 유학자 92위를 모셨으나 일제 강점기 이후 전국 유림의 대표였던 김창숙 선생이 문묘배향에 대한 조정작업을 추진하여 동무와 서무에 있던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대성전으로 들어오게 되고 중국 위패는 4성을 제외하고 모두 불태워 버렸고 이후 대성전에는 본래 있던 31위와 우리나라 성현 18위가 들어가서 총 93위가 봉안되게 되었다.
    • 전사청
  • 동무, 서무
  • 내삼문 : 배향공간과 학습공간을 구분하는 문이 된다.
  • 명륜당 :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강당.
  • 동재, 서재
  • 외삼문, 하마비 : 외삼문은 실질적인 향교의 정문이 되는 곳으로 이 문 바로 옆에 하마비가 자리하고 있다. 하마비는 성현의 위패가 모셔진 곳이므로 누구나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의미로 세워진 것.
  • 홍살문

기타[편집 | 원본 편집]

  • 향교가 있던 동리의 명칭이 교리(校里)가 되고 이것이 현대에도 그대로 남거나 교동이라는 지명으로 변화한 경우가 많다.
  • 향교 필수요소 중 하나인 명륜당의 이름을 따서 향교가 있던 동네의 이름이 명륜동이 된 경우도 있다.
  • 강릉 명륜고등학교의 이름이 향교 내 명륜당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향교 구성의 필수요소로 은행나무가 들어간다. 이는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친 것에서 유래하는데 이런 이유로 조선시대에는 공자와 관련되는 모든 교육기관에는 은행나무를 심으면서 자연스럽게 향교의 필수요소화가 되었다.

각주

  1. 오늘날의 국공립에 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