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가

향가(鄕歌)는 옛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향찰(鄕札)로 표기된 노래다. 향찰이라는 것은 한국어를 표시하기 위해서 한자의 음과 훈(뜻)을 빌려온 것으로, 그 당시 일정한 규칙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또, 이게 정리된 것이 이두

일제 강점기 당시 의외로 일본인들이 향가의 해석을 꽤 잘 했었는데, 이는 일본어의 한자가 음독과 훈독으로 구분되어서 그 부분을 한국의 향가에다가 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이 익숙하였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향가를 왜 배워야 하는가?[편집 | 원본 편집]

향가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중국의 한자를 변형해서 만든 향찰로 표기된 향가도 엄연히 한국 문학의 범위에 포함된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이다.

향가의 작가들[편집 | 원본 편집]

향가의 작가들은 크게 승려와 화랑으로 나뉜다. 왜냐? 간단하다. 한자는 어렵다. 획수도 많고 글자수도 천개가 넘을 정도로 어마어마하여 지금도 중국의 수많은 사람은 한자로 곶통을 받고 있다. 물론 향가는 순수 한문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우리말을 한자를 빌려 표기한 향찰을 사용했다. 하지만 향찰표기 또한 자못 번거로운 측면이 없잖아 있다. 그리하여 현존하는 향가작품의 작가들은 전문적으로 한문 또는 향찰을 배운 승려들이나, 귀족계층인 화랑이 주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하여 향가가 마냥 고위 계층의 전유물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이 위키문서의 이전 역사에는 평민이 향가를 창작하는 것은 꿈도 못 꿨을 것이라고 서술된 바 있으나, 향가는 신라 초기부터 융성히 창작되었고 심지어 고려시대인 12세기 창작된 향가계 고려가요(정과정, 도이장가 등)에 그 잔영이 남아있을 정도로 오랜 세월 향유된 갈래이다. 고려가요나 시조, 소설 등 다양한 갈래의 창작과 향유 역사를 살펴보면 초기에는 문자를 잘 아는 계층이 창작을 활발히 하다가 점차 작자층이 그 아래의 계층으로 넓어지는 특징을 보인다. 천 년을 넘게 이어져내려온 향가임을 생각한다면 작가층의 확대는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 또한 향가의 주 작가층이 승려와 화랑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현재 남아 있는 25수 남짓의 작품, 그 중에서도 10구체 향가에서나 들어맞는 이야기일 뿐이다. 실제 향가의 작가층은 화랑, 승려 외에도 평민, 여인 등을 포함한 여러 계층으로 보고 있다. 당장 4구체 향가 중 많이 알려져 있는 '서동요'나 '헌화가' 등을 보면 작자가 서동(백제 무왕이 되기 전)과 노옹(늙은 남자)로 알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이 작품들은 내용상으로도 사람들에게 구전되어 내려오던 민요적인 내용이 향가로 정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보았을 때 향가의 작자층이 화랑과 승려 같은 고위계층에만 국한된다는 것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유명한 향가들[편집 | 원본 편집]

유명한 향가들로는, 일단 신라의 설화 공주와 백제의 무왕[1]이 된 서동의 썸씽을 다룬 설화인 서동 설화에서 나온 서동요가 있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善化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夘乙

抱遣去如

다음은 전문가들이 번역한 것이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짝 맞추어 두고[2]

맛둥방을[3]

밤에 몰래 안고 가다.[4]

다음은 처용가이다.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 같은 내용이다. 간단히 위키식(?)으로 말하자면 옛날옛날 신라에 처용이라는 사람이 역신에게 아내를 네토라레 당하고 지은 8구체 향가라고 한다. 그리고 처용은 네토라레한 역신을 용서해 주었다. 이건 뭐 바보인지 대인배인지?

본문의 내용은 이렇다.

서라벌 밝은 달 아래

밤늦게까지 놀다가

집에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둘은 내 아내 것인데

둘은 누구 것인고?

본래 내 것이었는데

빼앗아 간 것을 어찌하리오.

마지막으로 유명한 것은 제망매가다. 대표적인 10구체 향가, 월명사라는 스님이 일찍 요절한 자신의 누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든 향가라고 한다.

원본은 이렇다.

生死路隠

此矣有阿米次肹伊遣

吾隐去内如辝叱都

毛如云遣去内尼叱古

於內秋察早隠風未

此矣彼矣浮良落尸葉如 / 一等隠枝良出古

去奴隠處毛冬乎丁

阿也

彌陁刹良逢乎吾 / 道修良待是古如

다음은 해석본이다.

살고 죽는 길은

이에 있으매 머뭇거리고

난 간다 말도

못 이르고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질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는구나

아아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날 나

도 닦아 기다리겠네

향가의 형식[편집 | 원본 편집]

향가의 형식은 크게 4, 8, 10구체로 나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구체는 바로 10구체이다. 전문가들이 평하길 가장 정제된 형식이라고 한다. 일단 10구체를 쓰는 방식은 4/4/2 형식이다. 이 4/4/2 형식이라는 것은…… 한시에서 나오는 형식과 비슷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고조라든지 심화라든지.

그런데 정말 특이한 것은 10구체의 마지막에서 나오는 2줄 짜리 낙구이다. 사실 위에 8줄은 넘어가도 된다. 왜 특이하느냐면, 낙구의 첫 부분은 대개 감탄사를 집어 넣는다. 분명 몇 명은 제망매가를 볼 수도 있고.

그런데 이런 방식이 한 참 뒤에 나오는 조선시대 시조의 종장 첫구에서도 똑같이 감탄사가 사용된다. 이것을 보고 전문가들은 향가의 낙구 감탄사가 조선시대 시조의 종장 첫구 감탄사의 유래라고 말하기도 한다.

존재가 알려진 향가[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서동이 무왕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만, 정설이 이것이므로+우리에게 익숙하므로 무왕으로 하겠다.
  2. 또는 남 그으기 얼어두고
  3. 또는 서동 방을
  4. 또는 밤에 알을 안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