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만

韓貞萬.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65년 9월 5일 황해도 평산군 문무면 문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 반발하여 황해도 평산군 도평산에서 의병을 일으킨 박정빈에게 가담해 심노술·김정환(金正煥)·인두정(印斗鼎)·변승준(邊承準)·신도희·신성보(愼成甫)와 함께 중대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그는 여러 전투에 참여해 많은 적을 죽였으며, 1910년 이후에는 김정안(金貞安)과 함께 이진룡 의병장의 부대에 합류하여 황해도 일대에서 계속 활약했다.

1910년 3월 3일 새벽, 한정만은 이진룡과 함께 부하 80여 명을 이끌고 계정역 서쪽 10리 쯤의 당동에 이르러 쉬고 있었다. 이때 예성강 오른쪽 기슭을 중심으로 수색나온 온정원 분견소 일본 헌병대 7명이 공격해오자, 그는 곧 고지를 점령하고 600m 지점에서 적병을 향해 사격했다. 적병은 30분간 응전하는 한편 개성·평양·금천의 각 분견소 헌병들과 합류하여 공격해 왔다. 이에 한정만과 이진룡은 부하를 이끌고 퇴각해 잠성, 계정역 사이를 지나면서 기차 선로에 돌을 걸쳐 놓아 기차를 탈선시켰다.

이후 이들은 계속하여 일군의 연락을 끊기 위하여 경의선로에 돌을 놓아 기차의 전복을 꾀했으며, 황해도 방면에서 싸웠다. 또한 산간지대에 기거하면서 평양 지대에 출몰하는 방식으로 경기, 강원, 함경, 평안도 일대에서 유격전을 전개했다. 그러나 1913년 9월 24일 끝내 헌병대에게 체포된 한정만은 고등법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1914년 3월 6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졋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한정만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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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