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호

한상호.jpg

韓相浩.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1 생애[편집]

함경북도 경성군 주을온면 약수동 출신이며, 1920년 재판기록에 21세로 기재되었으므로 1899년생으로 추정된다. 그는 일찍이 간도로 건너가 명동중학교를 졸압하고 와룡소학교 교사로서 만주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 노력했다. 1919년 3.1 운동윤준희·임국정·최이붕 등과 함께 철혈광복단(鐵血光復團)을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북로군정서에 가입했다. 1919년 9월 초, 철혈 광복단 핵심 간부인 김하석(金夏錫)의 지시에 따라 그와 윤준희·임국정·최이붕 등은 거액의 독립운동 자금을 일거에 획득할 방법을 모색했다. 그와 동지들은 용정의 조선은행 출장소의 현금을 탈취하기로 결의하고 은행 출장소 사무원인 전홍섭을 포섭하여 현금 수송에 대한 정보를 받았다.

1920년 1월, 한상호는 동지들과 함께 조슨은행 회령지점에서 용정으로 운반 중이던 현금 15만원을 화룡현 동양리에서 탈취하고 호송 중이던 일본 경찰을 사살했다. 이후 그는 동지들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으로 가서 체코슬로바키아제 무기를 다량 구입하여 북로군정서에 제공하였다. 북로군정서에서는 이 무기를 공급받아 독립군을 신무기로 무장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1920년 12월 일본 경찰의 밀정 엄인섭의 밀고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었고, 헌병대에서 모진 고문을 받은 뒤 청진형무소로 압송되었다.

이후 1920년 11월 4일 청진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1921년 2월 1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1921년 4월 4일 고등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다.[1] 1921년 8월 2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동지 윤준희, 임국정과 함께 교수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한상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66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그의 유해를 안장했다.

2 외부 링크[편집]

3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