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근

韓鳳根. 호는 금산(錦山).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1 생애[편집]

1894년 10월 23일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면 가곡동에서 아버지 한춘서(韓春瑞)와 어머니 김해출(金海出) 사이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만주 지린성으로 망명한 뒤 그곳에서 신흥무관학교에 재학해 군사학에 전념하다가 김원봉, 이종암(李鍾岩) 등 밀양 출신 인사들과 친교를 맺었다.

이후 1919년 11월 상하이에서 조국의 독립투쟁을 목적으로 의열단을 조직하고 단장에 김원봉을 추대하고 자신이 부단장을 맡았으며, 곽재기, 김상윤, 이종암, 윤자영이 참모부에 속했다. 1920년, 한봉근은 매국노와 일제 관헌을 처단하고 일제의 주요기관 파괴를 목적으로 김원봉, 신철휴 등과 상의하여 폭탄·권총·탄약 등을 입수하고자 노력했다. 이에 따라 이종암 등이 상하이에서 폭탄제조법을 익혔고, 곽재기, 이성우(李成宇) 등은 각종 무기와 폭약을 구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그는 입수된 무기를 국내로 반입하고 밀양에 잠입하여 밀양의 주요 관청을 폭파시키려 했다.

그러나 중도에 폭탄이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면서 계획은 실패했고, 그는 밀양폭탄사건 관계자로 체포되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방면되어 1921년 만주로 건너갔다. 일제 정보기록에 따르면, 그는 만주에서 귀순을 신청하고 있지만 조선의 독립을 '몽상'하고 있는 불령선인이었다고 한다.

1923년 12월,, 그는 중국 안동현에 있던 이륭양행(怡隆洋行) 지하창고에 보관 중이던 고성능 폭탄 36개와 권총 5자루, 혁명선언서 600여 매 등을 국내로 반입하고 1진의 김시현, 황옥 등을 파견했다. 그러나 의열단에 잠입해 있던 김모(金某)라는 자의 밀고로 이들이 모두 검거되자, 그는 2진으로 계획되었던 이병희(李炳熙)와 함께 안동으로 돌아왔다.

또한 1926년에는 김창숙 등 국내의 유림이 모금한 3,000원으로 권총과 실탄을 구입하여 동양척식회사를 폭파하고자 했다. 이 실행은 한봉근을 비롯하여 유우근(柳友槿)·이승춘(李承春) 그리고 나석주 등이 함께 추진했는데, 최종적으로 나석주가 단독으로 국내에 잠입하여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했다. 그 외에도 의열단의 여러 사건에 계속 관계했으나 1927년 2월 11일 상하이에서 급병에 걸려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한봉근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동생 한봉인 역시 의열단원으로 활동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