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

한국 성곽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수원 화성

1 개요[편집]

한국은 과거로부터 성곽의 나라라고 할 만큼 많은 성곽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로 그 기원은 청동기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청동기 시대 유적인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 성곽의 원시적 형태인 해자와 목책 등이 확인되면서 선사시대부터 취락단위로 성곽이 존재하였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2 특성[편집]

한국의 성은 산의 봉우리와 능선, 계곡에 성곽을 쌓고 지형적 약점을 보완하는 각종 시설물을 배치하였다.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옹성, 치성, 망루 등 별도의 시설물을 따로 축조하지 않고도 이러한 시설물의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축성되어 성곽 축조에 드는 노동력과 비용을 절감한 흔적이 보인다.

또한 한국의 성은 생활공간이 확보되는 지배층괴 피지배층의 공동 공간이었으므로 유사시 비전투력인 일반 백성들이 전투에 참여함으로씨 병력을 증가시킬 수 있었다. 많은 성곽(특히 산성) 내에서 학인 되는 여러 크기의 냇돌 무더기가 발견되는데 이는 전투기술을 습득히지 못한 어린이나 여성들을 포함한 백성들의 무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힘을 가정 적게들이고 적을 땅어할 수 있는 지형의 이점을 최대힌 휠용하여 평지성과 배후성의 배치를 갖추었다.

평지성의 경우 대개 앞쪽에 물을 이용해 천연의 저지선을 민들고 배후의 산에 산성을 동반하는 이른바 기각지세를 이루었다. 이러한 배치를 통해 하나의 성곽이 적의 공격 목표기 되면 다른 성들이 적의 배후를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방어력을 극대화 하기 위해 산성괴 평지까지를 포힘하는 산성과 나성을 결힘한 독특한 도성제도를 성립시키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성곽의 또 다른 특정은 돌을 이용한 축조기술의 발달을 들 수 있다. 물론 한국 지질 특성상 주변에 널린 암석이 화강암인지라 석재 자체는 매우 쉽게 구할 수 있었으나 화강암이라는 단단한 암질의 석재를 다루는 것은 과거에는 매우 어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축성방식이 협축식이건 내탁식이건 관계없이, 인공으로 다듬은 석재이건 자연석이건 재료에 관계없이 한국의 성벽은 성벽 바깥 면을 정교하게 짜맞추어 매우 견고한 성곽을 축조하였다.

성곽의 구조상으로 볼 때도 우리나리의 성곽은 부대시설의 배치에있어서 산의 능선을 최대로 이용하였으며 매우 독특한 형식의 시설물도 갖추고 있다. 계곡의 중앙부엔 수문과 성문을 설치하여 통행을 편리하게 하였고, 성문은 홍예식, 평거식, 계단식, 현문, S자로 굽어드는 문, 암문 등 다양한 형식의 문을 갖추었다. 이외에 각종 양식의 옹성과 수구도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이 다양한 성곽 시설물의 존재는 그만큼 기술 응용 에 있어서 지형과 각 시설물의 기능을 최적으로 조화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3 발전[편집]

고대국가가 성립되면서 왕경을 포함하는 도성제가 성립되었으며 한국적인 형태로 정형을 이루게 되었다. 삼국은 모두 강이나 하천을 낀 평지성과 배후에 산성을 구축한 특별한 전통을 갖추었다. 북방에서 영토의 확장과 국력의 증강을 꾀하였던 고구려는 일찍부터 축성술이 빌달 하였으며 삼국시대 이래 우리나리 산성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고구려 초기의 성곽은 대부분 험준한 지세를 이용하여 산꼭대기에서부터 골찌기에 걸쳐 정연하게 성돌을 쌓아올린 형태로 평지성인 왕성과 배후에 자리한 산성이 하나의 세트를 이루다가 평양 천도 이후 산성과 평지성이 결합된 새로운 형식의 도성체제를 갖추었다. 이외에 고구려는 교통로의 요충지에 해당히는 협곡에 차단성을 쌓고 높은 산정에 군사적 조망과 봉수대의 기능을 히는 보루등 기능적측면을 강조한 성곽을 많이 축조하였다

삼국 중에서 가장 많은 성곽을 축조한 것으로 알려진 백제는 궁성을 포함하여 배후의 산과 시가지를 포함하는 나성을 갖춘 독특한 도성 체제를 구축하였는데 이러한 나성은 고려와 조선에도 이어졌다. 또한 백제는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토성을 많이 축조한 편이며 이들 성곽 양식은 후대 외축내탁의 석성 축조 방식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신라는 비록 삼국 가운데 가장 늦게 성장하였으나 견고한 성곽 축조를 통해 삼국 통일을 이룩하였다.통일신라시대에는 오소경이 정립되띤서 낮은 구릉의 읍성괴 그 배후의 산성으로 이루어지는 배치가 정형화 된다 실제 중원경(현 충주지역)에는 평지의 충주읍성괴 배후의 충주산성 대림산성이 축조되고, 현재의 청주에 해당하는 서원경에는 청주읍성과 배후의 우암산성, 상당산성이, 남원경에 해당하는 남원경에는 남원읍성교룡산성이 각기 짝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성향은 고구려식 산성 제도가 남쪽으로 확대되면서 도읍의 기본적인 구성은 물론 지방 도시끼지 같은 계획하에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통일신라시대에 완성을 본 축성술은 고려시대가 되면서 읍성산성이 분리되는 양상이 두드러지게 되었고 산성은 대규모의 대피용으로 이용되었다. 이렇게 읍성과 산성이 분리되면서 산성은 보다 험히고 높은 곳에 축조되는 대신 성벽의 높이기 낯아지고 성벽의 너비가 좁아지는 특성이 나타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외서는 성곽의 변화기 크게 일어났다. 조선 초기에는 국경지대에 성곽 축조가 집중되었고 내륙에는 읍성이 대대적으토 축조, 정비되면서 내륙에 자리한 산성의 가능이 점차 약해지게 되었다. 또한 화약과 화포의 시용이 증가하띤서 성곽의 성벽이 낮아지고 옹성과 치성, 해자를 동반히는 시설들이 증가하였지만 규모가 큰 산성만을 주로 사용하면서 기존에 사용되던 작은 규모의 산성들은 폐성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모습은 결과적으로 왜란과 호란에서 많은 허점을 드러내게 되었고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도성의 방비가 강조되었다. 남한산성, 북한산성, 강화도 일대에 대대적인 성곽 정비가 단행되는 등 한양을 중심으로 한 경기지역의 성곽과 행궁이 강화된 것이 이 시기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축조된 수원 화성은 한국 성곽 기술의 총체적 집합제리고 할 수 있다. 또한 조선 후기에 축조되거나 보수한 성곽을 보면 화약무기 사용을 고려하여 성벽에 여장과 총안구를 설치하면서 이전에 축조된 성곽과의 양식 차이를 보여준다.

도성(읍성 포함)과 산성 이외에도 우리니리에는 장성도 함께 축조되었다. 기록상으로는 백제가 북방의 침입을 저지히가 위해 쌓은 청목령~서해에 이르는 장성이 가장 앞선 기록으로 나타나며 이후 고구려가 천리장성을 쌓았고 신라는 패강장성과 동북장성, 관문성을,고려시대에는 압록강 입구부터 동해안의 정평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쌓았다. 이들 장성은 산성들을 연결하는 구조로 중국의 장성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세종때 입록강과 두만강 방면 행성의 축조료 이어지는 등 역시 후대까지 계속되었다

4 분류[편집]

4.1 축성 재료에 따른 분류[편집]

  • 목책성 : 목책을 쌓아서 만든 성. 선사시대 초기의 성곽은 대개 이런 형태로 시작하였다.
    • 목책도니성 : 목책을 세우고 겉면에 진흙을 발라 불에 약한 목책의 내화성을 올린 성
  • 토성 : 흙으로 쌓은 성
  • 석성 : 돌로 쌓은 성
  • 토석혼축성 : 토성 기반 위에 돌을 쌓거나 외벽을 돌로 만든 성. 전통적인 한국 축성방식은 이 경우가 많다.
  • 전축성 : 벽돌로 쌓은 성. 한국내 성의 경우 완전한 전축성은 없고 수원 화성의 경우 일부 시설물들[1]이 전축성에 해당한다.
  • 교축성 : 성벽 일부의 재료를 달리하거나 혼합하여 축조한 성벽이다. 수원 화성이 대표적 사례

4.2 성이 있는 지형에 따른 분류[편집]

4.3 성의 기능에 따른 분류[편집]

  • 도성 : 국가의 수도가 있는 곳. 한양도성이나 반월성이 해당한다.
    • 궁성 : 궁궐을 둘러싼 성. 한국의 경우는 성이라기 보다는 궁궐을 둘러싼 담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 행재성 : 왕이 행차하는 행궁이 자리한 성. 수원화성, 남한산성, 북한산성, 강화산성이 해당한다. 이외에 이괄의 난 당시 선조가 피난갔던 공산성 역시 한시적으로 행궁이 자리하기도 하였었다.
  • 읍성 : 지방 행정의 중심지가 되는 곳에 자리한 성
  • 창성 : 국가에서 지은 창고(군량, 물자, 세곡, 무기고 등)가 있고 이를 지키기 위해 쌓은 성
  • 군사적 목적의 성
    • 수영성 : 수군 기지인 수영이 주둔하고 있던 성. 리브레 위키에서는 편의상 하위 단계에 해당하는 진성에 포함하여 분류하였다.
    • 병영성 : 육군 기지인 병영이 주둔하고 있던 성. 현존 병영성은 강진의 전라병영성과 울산의 울산병영성이 남아있으며 그 외에 상당산성, 남한산성[2], 북한산성[3]은 산성이자 병영성의 역할을, 공산성, 진주성, 해미읍성은 읍성과 병영성의 역할을 함께 수행하였다
    • 진성 : 군사기지 목적으로 쌓은 성으로 대규모 부대가 주둔하는 병영성과 달리 주요 길목 인근[4]의 감제고지 부근에 상대적으로 소규모로 건설되었다.
    • 관문성(關門城)[5] : 주요 길목의 관문이 되는 곳에 쌓은 성. 현존 관문성의 대표 사례로는 조령 관문이 있다.
    • 왜성: 임진왜란 당시 일본 수군이 군사적 목적으로 축조한 성

5 축성 방법[편집]

  • 축성법
    • 내탁법 : 성벽을 축조할 때 성의 안쪽을 단단히 하기 위해 속을 토사로 채워넣고 겉을 돌로 쌓아올리는 방식. 주로 평지에 성을 쌓을 때 사용하는 방식으로 성의 안쪽 경사는 완경사로, 바깥쪽은 급경사로 둔다. 겉을 돌로 쌓지 않고 내탁만 할 경우는 토성이 되며 돌로 성의 바깥쪽을 둘러칠 경우는 외축내탁식의 석성이라 한다. 보통 바깥 성벽만 돌로 쌓고 내부는 비탈진 언덕이나 산, 흙을 경사지게 두기 때문에 편축법이라고도 한다.
    • 보축법 : 성벽을 축조하기 어려운 지형에 성벽이 연결될 수 있도록 기존 지형 사이를 메워가며 축조하는 방식과 높은 성벽의 하부를 보강하기 위해 아랫쪽에 성벽을 덧대어 축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 삭토법 : 산 정상부에 위치한 산성에서 많이 나타나는 방법으로 자연적인 급사면을 깎아내어 성채로 이용한다. 외부는 ㄴ자에 가까운 방식으로 경사면을 깎아내고 다시 그 깎아낸 흙을 성체의 낮은 부분을 보완하는데 사용하여 바깥쪽은 높고 안쪽은 상대적으로 낮은 벽면을 구성하게 된다.
    • 판축법 : 기초를 단단히 하기 위해 땅을 파고 돌, 흙 등을 펴서 다지는 공법. 성벽의 축조시 일정하게 목재 등으로 거푸집을 만들고 그 안에 흙을 넣어 펴고 다져넣은 뒤 다시 흙을 채워넣고 다지기를 반복하는 토성 축조 공법으로 튓채움 공법이라고도 한다. 참고로 판은 목재로 만드는 거푸집 벽면을 의미하고 축은 흙을 다져넣는 도구를 의미한다.
    • 협축법 : 성을 쌓을 때 중간에 흙이나 돌을 먼저 넣고 성체의 안쪽과 바깥쪽 양측에서 돌이나 벽돌을 쌓아 외벽을 마무리하는 공법이다. 이 경우 내탁식 성벽과 달리 성 내부도 수직에 가까운 경사도를 가지게 되어 군데군데 계단을 두거나 내부 성벽에 단차를 두는 방식으로 건설한다.
  • 돌 쌓는 법(석축법)
    • 거친돌쌓기 : 석재의 거친 면을 다듬지 않고 접합면만 대강 다듬어 쌓는 방식. 마름돌쌓기라고도 한다.
    • 고임돌쌓기 : 메쌓기로 하는 축성에서 돌의 접촉부분에 잔돌을 고이거나 끼워넣어 성벽의 빈 틈을 메꾸는 방법
    • 규형쌓기 : 성을 쌇을 때 위로 올라가면서 점차 규(圭)자 모양으로 기울기를 조절하여 위쪽 성벽이 거의 수직이 되도록 쌓는 방법으로 궁형쌓기라고도 한다.
    • 그랭이쌓기 : 성벽 축조시 하단 석재의 윗면에 맞추어 상단 석재의 아랫쪽을 깎아내거나 줄눈을 맞추기 위하여 하단 석재의 윗면을 깎아내어 빈틈이 없도록 쌓는 방법. 이 방식으로 축조하면 성돌간 마찰면이 증가하여 성벽 자체의 강도가 증가한다.
    • 네모막돌바른층쌓기 : 막돌면을 다듬지 않고 접합면만 네모직선으로 다듬어 성돌의 가로줄눈이 일직선이 되도록 쌓는 법
    • 네모막돌쌓기 : 막돌의 접합면을 대강 네모지게 직선으로 다듬어 쌓는 법
    • 네모돌완자쌓기 : 성돌을 네모모양으로 다듬어 수직, 수평으로 쌓되 줄눈이 전체적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돌쌓기법. 각돌의 크기 비율은 1:2:3정도가 된다.
    • 네모막돌층지어쌓기 : 막돌의 접합면을 직선으로 다듬고 수평줄눈은 부분적으로 직선으로 이어지게 하되 가끔 엇갈리게 하고 다른 곳에서는 일직선 수평줄눈이 나타나게 쌓는 방법
    • 다듬돌쌓기 : 평탄하게 다듬은 돌을 쌓는 것으로 접합면도 일직선으로 다듬어 쓴다
    • 마름돌바른층쌓기네모난 마름돌의 면을 다듬지 않고 접합부만 직각직선으로 다듬어 가로줄눈이 벽면 전체에 이어지게 쌓는 방식
    • 마름돌완자쌓기 : 마름돌을 수평, 수직줄눈이 되게 접합면을 직각의 직선으로 다듬어 쌓데 벽면 전체로 이어지는 수평줄눈이 없게 쌓는 방식
    • 막돌쌓기 : 다듬지 않은 돌을 접합면을 다듬지 않고 쌓는 방식
    • 막돌찰쌓기 : 다듬지 않은 돌을 접합부에 회(일종의 시멘트)를 써서 쌓는 방식
    • 막돌층지어쌓기 : 막돌의 접합면을 네모 직선으로 다듬어 쌓되 특정 높이가 되면 모두 수평가로줄눈이 되도록 쌓는 법
    • 메쌓기 : 석재의 접합부를 서로 잘 맞게 다듬고 줄눈에 회를 쓰지 않고 맞대어 쌓는 방법. 빈 틈에는 잡석 등을 다져넣는데 건성쌓기라고도 한다.
    • 무사석축 : 네모반듯하게 다듬은 큰 돌을 쌓는 방법. 화성과 한양도성에서 쉽게 볼 수 있다.
    • 물림쌓기 : 성벽을 쌓아올릴 때 성돌의 단을 조금씩 들여 넣으면서 쌓는 방식. 들여쌓기나 굽도리형식이라고도 한다.
    • 바른층막쌓기 : 일정 간격으로 수평줄눈이 있게 하되 그 사이는 줄눈을 흐트려 쌓는 방식
    • 바른층쌓기 : 석축시 모든 단의 수평줄눈이 일직선이 되게 쌓는 일. 성돌의 크기가 전체적으로 일정해야 한다.
    • 받침막돌쌓기 : 네모막돌을 완자쌓기로 하는 방법
    • 사괴석쌓기 : 20cm내외의 육면체 모양의 돌을 쌓는 것으로 줄눈을 두드러지게 한다. 주로 담장이나 여장을 쌓을 때 사용한다.
    • 엇물려쌓기 : 성돌이 이탈하지 않도록 면석과 적심석이 서로 엇갈려 맞물리도록 쌓는 방법
    • 유단경사쌓기 : 성벽 축조시 단차를 두어 성벽을 쌓는 것으로 성벽의 기초지반이 약하거나 성벽을 쌓은 뒤 그 위에 성벽을 증축할 때 사용하는 방법으로 산성의 계곡이나 습지 등에 성벽의 하중을 고려하여 쌓은 방식이다.
    • 찰쌓기 : 돌을 쌓을 때 접합부에 회반죽과 같은 접착제를 사용하여 쌓는 방식. 사춤쌓기라고도 한다.
    • 퇴물림쌓기 : 성벽을 쌓을 때 틀의 아랫단에서 윗단으로 올라갈 대 조금씩 안쪽으로 성벽을 들여넣어 쌓는 방식
    • 허튼층쌓기 : 돌쌇기의 가로줄눈이 직선으로 되지 않게 불규칙한 돌을 흐트려 쌓는 방식

6 용어[편집]

  • 공심돈 : 속을 비운 돈대. 한국에는 수원 화성에만 존재한다.
  • 성문 : 성의 출입구가 되는 문
  • 수구(은구) / 수문 : 성 안의 물을 배수하기 위한 시설물. 수량이 적을 경우 수구(은구)를 사용하지만 하천단위일 경우 홍예를 사용한 수문을 사용한다. 홍예의 갯수에 따라 ~간이라 표시하는 경우가 일반적.
  • 암문
  • 여장
  • 옹성
  • 장대 : 성곽 내 지휘초소의 역할을 하는 곳. 보통 주변을 한번에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세워진다.
  • 적대
  • 포루/포사
  • 포루

7 성 목록[편집]

현재 대한민국 내에는 2,182곳의 성곽 유적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어있다. 이는 현 대한민국 영역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북한지역의 경우 현재 정확한 실태 파악은 어려운 상태이다. 단, 이 숫자는 문헌에 기록된 자료에 근거한 것으로 후대에 멸실되어 사라지거나 퇴락하여 흔적만 남은 것, 서로 다른 기록이 중복된 성곽까지 포함한 것으로 온전히 보존된 것은 그보다는 적다.

8 각주

  1. 동북공심돈이나 각종 포루들
  2. 수어청 부대가 주둔
  3. 훈련도감 부대가 주둔
  4. 보통은 바닷가나 강가의 나루터가 많다
  5. 경주에 있는 장성인 관문성과는 무관하다
문화재청.png
이 문서의 일부는 문화재청한국성곽 용어사전 문서 2007년 발간 특정판을 원출처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