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개신교

1 개요[편집]

한국의 개신교는 한국의 전체 인구 중에서 19.7%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종교이며[1] 2005년 조사 당시에는 1995년 대비 1.6% 감소한 것으로 조사되었지만, 2015년 조사 결과에서는 다시 증가하여 불교와 천주교를 뛰어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종교집단으로 조사되었다.[2] 대체로 경제개발기인 1970~80년대에 비약적인 성장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199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정체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2000년대에 감소세를 찍었다가 2010년대부터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통상 한국사회에서는 "기독교=개신교"의 등식으로 통하는 경우가 많은데 엄밀한 의미에서는 잘못된 것이다. 기독교(基督敎)는 크리스트교(그리스도교/Chirst)의 한자 음차이며,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하는 종교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지 개신교 계열 종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2 신학적 성향[편집]

대체적으로 한국의 개신교는 영미권이나 네덜란드[3]에서 유래한 근본주의개혁주의 신학 노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물론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 쪽을 따르는 경우나 신정통주의, 에큐메니컬 운동을 하는 교회나 교파도 있지만, 한국 내의 전체적인 흐름 내에서 이들은 소수파의 위치를 차지하여 다수파로부터는 이단시를 뛰어넘어[4] 완전히 아웃 오브 안중으로 취급당하고 있다. 그냥 서로 이단시하는 정도도 아니고 완전히 다른 종교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노선을 표방하는 목사 본인들 스스로도 한국 개신교는 단일한 실체가 아니며 서로 다른 두 개의 종교라고 하거나 저들은 맘몬을 숭배하는 이단일 뿐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또 한 가지 한국 개신교만의 특이점으로는 전 교단, 교파의 "장로교화"를 들 수 있다. 이는 교회 내부 정치 시스템에서 "장로"라는 직책 문제인데, 본래 이 직분은 침례교나 감리교에는 없는 직책이지만 어지간한 규모의 침례교나 감리교에 가 보면 장로라는 직분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눈에 띈다. 원래 감리교에서 '장로'라는 것은 목사를 두 직급으로 나눠서 '집사목사'와 '장로목사'로 구분하는 호칭이었으며(신학 과정을 이수하고 안수를 받으면 집사목사가 되고, 짬을 쌓아서 장로목사로 올라가는 것이다) 일반 교인은 남녀 막론하고 '집사'와 '권사'까지만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침례교에서는 장로란 건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장로교가 뜨다 보니까 감리교와 침례교에서도 이걸 도입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내 교회들의 상당수가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것도 하나의 특이점.[5]

3 사회적 시각[편집]

시대별로 한국의 개신교만큼 급격한 인식변화를 겪은 종교나 종파도 없을 것이다. 초기 개신교 전래기에는 서양문물을 수용하는 통로의 역할이 컸으며, 1910년대 당시에는 애국하는 개신교 교회=애국 지사들의 모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해방 직후에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문물을 가장 앞서서 수용하는 문화 전파자와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였었으며, 경제개발시기 급격한 이촌향도를 겪던 시기에는 도시 선교를 통하여서 빈민구제 및 일반 대중들의 마음의 안식처 역할을 주로 감당하였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한국교회의 타락상들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하며 2010년대에 들어서는 2, 30대 청년층들의 교회 이탈 및 개신교에 대해서 더 이상 호의적이지 않은 사회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이유는 시대가 변해서라기 보다는 개신교 내부에 그 동안 누적되어 있던 모순점과 각종 병크들이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빠른 유통망을 통해서 순식간에 일반에 알려지면서 과거에는 아무도 몰랐을 얘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어버리는 점 이라 할 수 있다.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궁금하면 500원 개독교 항목과 아래 나오는 단락 을 참조하자.

4 주요 교단[편집]

간혹 각 교단별로 이단시비가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한기총이나 한교연 또는 KNCC에 가입했거나 과거에 이들 단체에서 활동했던 교단을 기준으로 기재한다.

  • 장로교계열 : 장로교는 3차에 걸친 큰 분열 이후 완전히 사분오열되어서 100개가 넘는 군소교단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다 기재하기는 어렵다. 아래는 자체 신학교나 대학을 가지고 있는 교단만 기재한다. 총회신학연구원, 총회신학연구소 같은 정체불명의 사설기관들의 경우 거의 다 장로교 계열이며 이렇게 난립한 곳을 모두 파악하는 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수준
  • 감리교 계열
    • 기독교대한감리회 : 사실상 한국 감리교회의 압도적 대다수는 이 교단이 차지한다.
    • 예수교대한감리회 : 장로교였으면 자체 대학이 없는 관계로 나가리가 되었을 것이다. 한기총에 가입한 교단이긴 하지만 거의 공기 수준으로 존재감이 없는 군소교단이다.

※대한예수교감리회라고 이름붙인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이는 정명석을 교주로 하는 JMS계열의 교회이다.

  • 침례교 계열
    • 기독교한국침례회 : 침례신학대학교
    • 성서침례친교회 : 특정한 교단이라기 보다는 말 그대로 침례교의 개교회주의에 충실한 교회들의 모임이다. 자신들끼리 모이는 일명 교단 총회도 교단이나 총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친교회라는 말을 사용하는 수준. 위의 기독교한국침례회보다 미국 남침례교에 더 가까운 성향이라고 봐도 될 정도이다.

※이외에 대한예수교침례회(박옥수파)[6], 기독교복음침례회(권신찬, 유병언파)는 흔히들 구원파라고 하는 교단으로 정통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간주되고 있다.

  • 성결교
  • 오순절계열
    •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 흔히 순복음교회라고 하는 곳이다. 다음 두 개의 교단이 있다.
      •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여의도) : 여의도 순복음교회와 거기서 분립되어 나간 교회들로 이루어진 교단
      •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서대문) : 여의도 순복음교회와 무관한 순복음교회들로 이루어진 교단
    • 예수교대한하나님의성회 : 한기총과 KNCC 어느 쪽에도 단 한 차례도 가입한 적이 없지만 정통 교단으로 인정받고 있는 교단이다. 기하성에서 분리되어 나온 이후 한동안 메이저 교단 가운데 하나였으나 주요 대형교회 중 하나인 은혜와진리교회가 기하성으로 복귀하면서 현재 교단 규모는 위의 예수교대한감리회처럼 거의 존재감이 없는 상황이다.
  • 복음교회
    • 기독교대한복음교회 : 한국 자생교단.
  • 기타 : 사실 역사나 교회사적으로 보면 이쪽이 더 오래된 교단들인데 어째 한국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 루터교 : 개신교의 장자격이다. 장로교의 교단들이 장자교단이라는 용어를 쓰기를 즐겨하는데 사실 교회사적으로 보면 루터교 앞에서는 데꿀멍 해야 한다.근데 장로교도 스코틀랜드하고 네덜란드에서 쌓은 짬을 생각하면 거의 막상막하
    • 성공회
    • 구세군
    • 퀘이커 : 한국에 극소수 존재한다.
    • 메노나이트 : 침례교 가운데 급진파인 재침례파(재세례파)인데, 한국에는 독자 교단은 없고 기독교한국침례회 교단에 소속된 침례교회의 목사들 가운데 메노나이트 노선을 표방하는 목사들의 모임만 있다.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가 그것으로 산하에 '대장간'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5 역사[편집]

5.1 초기 진입기[편집]

한국의 개신교는 통상 1885년 선교사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한국에 들어온 것을 시작점으로 본다. 그러나 귀츨라프의 밀입국 선교와, 하멜과 벨테브레가 한국에 표착한 것 등을 생각하면, 서구의 개신교인과 접촉한 것은 그 이전부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최초의 순교자라고 하여서 토마스 목사를 내세우는데 이 사람이 얽힌 사건이 제너럴 셔먼 호 사건인 것을 생각하면 그냥 순교자라고 추켜세우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존재한다.

5.2 일제강점기[편집]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하게 드러났으며 개신교인들이 직접적인 독립운동이나 민족계몽운동의 모습으로 이러한 성향을 많이 드러냈었다. 그러나 105인 사건으로 무고한 개신교 지도자들이 일제에 의해 탄압을 당하고 교회 역시 일제의 감시 대상이 되자 사건 이후 교계의 지도자였던 외국인 선교사들은 정교분리를 구실로 교회 차원에서의 개신교인들의 정치참여나 독립운동을 사실상 금지하거나 무관심하게 돌리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후 3.1 운동에서 추가적으로 탄압을 더 받게 된 개신교는 독립운동이나 일제에 저항할 생각은 거의 하지 않게 되었으며 실제 이런 순응하는 자세로 태세변환을 한 개신교는 1930년대 이후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앞장서서 동조하는 집단이 되었다.

1930년대 개신교의 주일예배의 내용을 보면 주일예배의 명칭 자체가 애국예배였으며 예배 맨 첫머리에는 기미가요 봉창과 황국신민선서의 제창으로 시작하였다. 또한 황거요배(동방요배로 알려져 있다)라고 하여 예배 도중 도쿄 궁성 방향으로 허리를 90도로 구부려 일왕에 대한 충성의 의지를 표명하였으며 이어서 대동아전쟁 필승기원 묵도를 시작하고 그 다음에 일반적인 예배가 2부순서로 따라오는 방식이었다. 또한 예배 이후 단체로 가서 교회나 총회 차원에서 신사참배를 한 것은 덤이고 신사가 멀다 싶은 경우에는 아예 교회 예배당 안에 이동용 신사를 두고 절을 하기도 하였었다. 이러한 것으로 모자라서 구약의 선지서나 요한계시록과 같은 내용은 아예 설교 주제로 삼지 않는 수준까지 가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개신교 500년사뿐 아니라 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교회가 앞장서서 우상숭배 행위를 한 전무후무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

이러한 모습을 두고 개신교 지도자들은 당시 일제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지만 당시 기록과 증언, 1차 사료 등을 살펴보면 마지못하 한 경우는 없고 오히려 솔선수범하여 이러한 행위를 한 경우가 당시 주류 개신교의 행태였다. 이걸로 모자라서인지 조선기독교와 일본기독교의 통합까지 시도했었다.

물론 이런 와중에 주기철, 손양원 등 일부 기독교인들은 일제의 정책에 반대하여 옥고를 치르거나 순교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였고 이마저도 당시 주류 개신교에서 출교당하거나 면직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5.3 해방 이후~한국전쟁기[편집]

5.4 군사정권기[편집]

5.5 민주화 이후[편집]

6 연표[편집]

한국의 개신교/연표 참조

7 문제점[편집]

7.1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편집]

1940년대 춘원 이광수가 개신교에 가한 비판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7][8]

(1) 한국교회는 너무 권위적이고 계층적이다. 꼭 양반-상놈 하던 시대처럼 목사, 장로와 평신도 간의 계층구조가 심하다.
(2) 한국교회는 세상과 교회를 이분화해서 교회에만 치중하고 평신도의 소명인 세상일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는 외면한다.
(3) 상당수 목사들의 교육수준이 형편없다.
(4) 비합리적이고 미신적인 신앙의 내용이 너무 많다. 기도가 만병통치약인 줄 안다. 한민족을 계몽하자면서 미신적 신앙을 전수하니 이게 웬말이냐.
(5) 구교, 신교 합치면 100년이 넘는 선교역사를 가졌는데 어째 한국교회는 제 소리, 제 신앙고백이 없고 다 가져온 것이냐. 진정 은혜체험하고 하나님 만났으면 시편 한 편, 주체적 신앙고백 한 줄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
(6)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민족적 정체성이 없다.
(7) 선교사들과 그들이 인정하는 몇몇 한국인 목회자들이 성서해석의 독점권을 가진다. 다양하게 성서를 연구하는 자발적인 그리스도인 모임이 없다. 기껏 유교의 독재를 벗어났는데 새로이 독재자를 만난 기분이다.
(8) 한국 기독교는 너무 감정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신비적인 체험만을 강조한다. 도대체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초월적 신앙의 적용 부분을 발견할 수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비도덕과 개인주의와 독재와 비합리성, 그리고 피안적인 모습 때문에 한국교회에 더는 흥미가 없노라, 그래서 기독교를 떠나노라.
— 춘원 이광수, "금일 조선 야소교회의 결점"과 "신생활론" 중

거의 10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도 이 문제는 크게 바뀌지 않은 듯 싶다. 실제로 21세기 관점에다가 적용해 보면 다음과 같이 된다.
1. 현대에도 장로 임직을 하려면 꽤 많은 헌금을 해야 하고, 교회 내에 목사와 장로의 권위가 상당히 강하다. 교회세습이 일어나는 원인 중 하나가 지나치게 강한 목사의 권위이다.
2. 아직도 교회 내에서는 세상과 교회를 구분짓는 이분법, 이원론적 사고가 강하다. 한국기독학생회의 EDM논쟁도 이와 관련된 것.
3. 이미 한국 내 신학대학들의 신학과의 입시 경쟁률과 입결은 처참한 수준이다. 바로 옆에 붙어있는 전문대한테도 입결이 밀리는 수준.
4. 신사도 운동과 같은 것이 한국 교회의 주류에 상당히 빠르게 흡수되고 뿌리내린걸 생각하면 쉽다.
5. 간혹 한국교회만의 신앙고백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늘 묻혀버린다. 그나마 있는 신앙고백인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조차 제대로 안가르치는 판인데 뭘....
6. 2015년에 주한 미국 대사가 피습당하는 사건이 있자 부채춤을 춘 것이 어디서 온 사람들이더라?
7. 일단 신학 사조가 죄다 개혁주의 또는 근본주의 일색이다. 아예 근본주의 신학을 한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겨지는 정도. 성서비평학이나 역사비평 얘기를 하면 자유주의자나 이단으로 몰아세운다. 그러다 보니 설교의 수준이 표절 또는 돌고 도는 예화설교가 범람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8. 4번과 같은 이유이다. 뭔지 궁금하면 신사도 운동 항목 참조.

7.2 심각한 수준의 기복주의 신앙[편집]

기복주의 신앙이라는 것은 복을 받는 것이 신앙의 이유가 되는 것으로 사실 어떤 종교이건 간에 종교 생활에 있어서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한국의 개신교는 그 기복의 정도가 너무 심하게 막 나가서 종교 자체의 가르침과 동떨어진 상황에 이르러 있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2010년대에 들어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도 아니고, 1970년대 금관의 예수가 나오던 시기부터 주류 교회가 복 받는 것만 추구하고 사회문제나 구조악에 대해서 침묵하는 상황에 대한 비판이 계속해서 나왔던 상당히 오래 묵은 이야기인데도 여전하다는 것이 비극. 이러니 실제 예수의 가르침과는 100만광년쯤 떨어져 있는 "삼박자 구원론"이나 신사도 운동 같은 것이 성행하고 있는 상황.

7.3 청년층의 이탈속도 가속화[편집]

2010년대 들어서 한국의 개신교는 20대 청년층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헬조선이라는 말 못지 않게 교회 내의 상황도 청년층 입장에서는 "헬처치"인 셈. 이봐 예수천당이라며? 2015년 갤럽의 조사 결과 20대 기독교 인구는 다른 연령대층에 비해 두드러지게 적은 18%정도로 조사되고 있으며, 이는 2005년의 23%에 비해서 10퍼센트포인트나 낮아진 수치이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원인은 교회의 현실을 보면 처참해지는데 실제 20대 청년층들의 삶에 필요한 것에 대하서 교회는 완전히 동문서답의 응답을 하고 있는 상황. 즉 기도할 수 있고 교회 나오면 모든 삶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떠들고는 있는데 막상 청년들이 느끼는 교회는 자신들의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각종 사회조사기관에서 20대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진로나 적성문제가 가장 큰 상황인데 교회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기껏해야 기도모임과 성경공부가 전부인 상황. 즉, 삼포세대, 혹은 오포세대 등으로 표현되는 2010년대의 20대의 상황에 대해서 전혀 이해를 하고 있지 못하고 그럴 의지도 없어보이는 상황이다. 결국 이러한 상황의 지속은 2020년경 개신교 교인 숫자의 급속 감소와[9] 함께 교회 다니는 것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쪽팔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7.4 실제 사례[편집]

이로 인해 일어나는 실제 사례들이 궁금하다면 다음의 항목들을 참조하자.

8 각주

  1. 2015년 통계청 종교인구 센서스 결과
  2. 2015년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 19.7%, 천주교 7.9%, 불교 15.5%로 나타났다.
  3. 의외로 네덜란드는 근본주의까진 아니지만 꽤나 종교 면에서 보수적인 색채를 풍겼던 나라였다.
  4. 단 공식적으로 이단 딱지가 붙은 것은 아니다 다만 2017년에 기장 섬돌향린교회를 예장합동에서 이단 판정하려 했던 일이 있었다.
  5. 다만 이런 사례는 해외에서도 찾을 수 있긴 하다. 이를테면 네덜란드 바이블벨트 지역의 교회들이 대부분 'gereformeerde'란 단어를 달고 있다던가...
  6. 자체적으로는 IYF 기쁜소식선교회라는 이름을 더 많이 사용한다
  7. 실제로 춘원 이광수는 한때 진지한 개신교 신자였으나. 그는 아래와 같은 예리한 비판의 글을 두 개 남기고는 불교도가 되어버렸다
  8. 백소영, "우리의 사랑이 義롭기 위하여-한국교회가 무교회로부터 배워야 할 것들-", 73-74쪽, 대한기독교서회
  9. 1997년 이후 출생자 세대 자체가 12만명이 줄어들어버리는 인구감소가 심각한 인구절벽 세대인데 거기에 비율까지 줄어들어 한국교회 자체의 인구수가 2~3년 사이에 30만 이상 쪼그라들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