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플라톤(/ˈpleɪtoʊ/; 그리스어: Πλάτων, Plátōn "넓은"; 기원전 428년(427년) 또는 424년(423년) – 기원전 348년(347년))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다. 플라톤은 서양 철학의 주요 사상가로, 서양 최초의 고등 교육 기관인 아카데미아를 아테네에 설립했다. 그는 스승인 소크라테스, 그의 가장 유명한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서양 철학과 과학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기도 하다. 영국의 철학자인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플라톤에 대해 "유럽의 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각주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정치학, 철학, 논리학, 윤리학, 수사학, 종교, 수학 등의 다양한 주제를 가르치는 데 쓰이고 있다. 그의 사상은 플라토닉 러브, 이데아론, 다섯 가지의 정부 형태 등으로 대표된다. 이 중 이데아론은 추상적인 사물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제공해, 플라톤주의의 시초가 되었다. 3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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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유년기와 교육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플라톤은 아테네에서 부유하고 정치적으로 활발한 가문 출신으로, 고대 기록들은 그를 밝고 겸손한 수재로 묘사한다. 그는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당대 최고의 교육자들로부터 문법, 음악, 체육, 철학 교육을 받았다.

플라톤의 실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 고대 그리스의 작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에 따르면, 플라톤의 실명은 할아버지의 이름에서 따온 아리스토클레스였다고 한다. 하지만, 기원전 605년 고대 그리스의 집정관이었던 아르스토클레스와 플라톤의 아버지인 아리스톤의 관계는 밝혀진 바가 없다. 플라톤은 "넓은"이라는 의미를 가진 그리스 단어로, 덩치가 큰 플라톤의 별명이었다는 가설도 있다.

그는 이후 이탈리아, 시실리, 이집트, 리비아 등지를 여행하다 40세의 나이로 아테네에 돌아와 아카데미아를 설립해,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뛰어난 후학을 양성했다.

사상[편집 | 원본 편집]

정치[편집 | 원본 편집]

플라톤을 대표하는 사상은 <국가>에서 나오는 철인통치(哲人統治)일 것이다. 그는 이상적인 국가를 위해서는 생산, 국방, 지배의 세 계급이 서로 자신의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선의 이데아를 체현하는 철인(哲人)鐵人과는 다르다 鐵人과는 즉,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철학자로 번역되기는 하지만, 여기서의 철인은 이성적 사고를 할 줄 아는 지적 엘리트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애초부터 이런 철인왕 후보를 골라내어 어렸을 때부터 엘리트 교육을 시킬 것과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을 막기 위해 사유재산과 가정을 가지는 것도 금지할 것을 주장했다.

이런 플라톤의 철인통치론은 엘리트주의적인 성격때문에 나치 등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로서 이용되기도 하였고, 이것은 후대에 들어 칼 포퍼에 의해 비판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수천년 전의 사상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전체주의로 비판하는 것은 시대착오(anachronism)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형이상학[편집 | 원본 편집]

플라톤의 철학에 대한 서술 중 가장 두드러지는 개념은 이데아(idea)의 개념이다. 플라톤은 세계에 존재하는 사물들은 항상 변화를 겪고 종전의 것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존재가 되는 현상을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어 변화하지 않는 개념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실제의 사물들이 있는 '현상계'와 사물들의 개념이 존재하는 '이데아'라는 가상세계로 구성된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주장함으로서 이 모순을 타파하고자 하였다. ‘현상의 세계’에서 ‘이데아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찾기 위해 명상하고 사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화편[편집 | 원본 편집]

플라톤의 저작은 위서로 분류되거나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되는 것을 제외하면 26~7편으로 추정되는데, 그 중 한 편을 제외한 대부분이 대화 형식을 띠고 있어 『대화편』이라고 불리고 있다. 다수의 저작에서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대화를 주도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스승의 가르침이 플라톤의 사상의 근간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저작들은 집필 시기에 따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뉜다.

초기 저작은 플라톤이 40세, 즉 처음 시켈리아를 방문하기 이전까지 집필한 것으로서 주로 덕(德)에 대해서 논하는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에우티프론』 등이 이에 속한다.

중기 저작은 플라톤이 아카데미아를 세울 무렵부터 60세에 이를 때까지 저술한 것으로 추정되는 저작들로서 플라톤의 사상의 근간인 이데아론이 등장하고 문예 작품으로서 가장 원숙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향연』, 『파이돈』, 『메논』 등이 이에 속한다.

후기 저작은 플라톤이 67세의 나이로 세 번째 시켈리아 방문에서 귀환한 이후 80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쓴 저술들로서 『티마이오스』, 『크리티아스』, 『소피스트』, 『정치가』, 『필레보스』 등이 이에 속한다.[1]

번역본[편집 | 원본 편집]

플라톤의 번역본은 여러 종류가 있다. 이미 대한민국에는 1973년 최민홍의 번역으로 플라톤 전집이 나왔다.[2] 최명관과 조우현 역본은 70~80년대를 풍미했었으며, 최명관 역본은 현재까지도 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중역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현 시점에서 믿고 읽을 만한 전문가의 원전 번역은 세 종류 (박종현, 천병희, 정암학당) 이다. 책에 따라서는 괜찮은 번역본이 더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일단 이 세 역본은 어떤 대화편이든 신뢰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박종현과 정암학당 역본이 보다 학술적이고, 천병희 역본이 보다 대중적이라고 평할 수 있다.

천병희는 2019년 플라톤 전집을 간행하였다. 천병희는 처음부터 플라톤 전집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으며 그 결과 전집 기획을 가장 늦게 했지만, 가장 빠른 속도로 전집을 완성하였다. 박종현은 90년대에 플라톤 전집을 기획하였으나 함께 하기로 했던 다른 번역자들이 시간을 내지 못하면서 현재까지 완성되지 못하고 있다. 정암학당은 2000년대 후반에 2010년 완간을 목표로 위작까지 포함한 전집을 기획하였으나, 중간에 출판사가 이제이북스에서 아카넷으로 변경되고 공동 윤독을 도입하면서 완간일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그러나 번역의 상당수가 완료되었고 <국가>, <이온·히피아스 1·2>, <정치가>, <파르메니데스>, <위서 및 소품> 5종만을 남겨둔 상황이다. 계획대로 된다면, 한국은 2020년대에는 최대 3종의 플라톤 전집을 보유하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현재까지 간행된 책을 음영처리한 아래의 표가 도움이 될 것이다. (2020년 7월 10일 업데이트)

스테파누스 쪽번호 박종현 천병희 정암학당
(1권) 2a–16a 에우티프론
17a–42a 소크라테스의 변론 소크라테스의 변명
43a–54e 크리톤
57a–118a 파이돈
121a–131a 테아게스[3]
132a–139a 사랑하는 사람들[4]
142a–210d 테아이테토스
216a–268b 소피스트[5]
271a–307c 에우튀데모스
309a–362a 프로타고라스
363a–376c 소 히피아스[6]
383a–440e 크라튈로스
447a–527e 고르기아스
530a–542b 이온
(2권) 11a–67b 필레보스
70a–100b 메논
103a–135e 알키비아데스 1[7]
138a–151c 알키비아데스 2[8]
153a–176d 카르미데스
178a–201c 라케스
203a–223b 리시스 뤼시스
225a–232c 히파르코스[9]
234a–249e 메넥세노스
257a–311c 정치가
313a–321d 미노스[10]
327a–621d 국가·政體 국가
624a–969d 법률[11]
973a–992e 에피노미스[12]
(3권) 17a–92c 티마이오스
106a–121c 크리티아스
126a–166c 파르메니데스
172a–223d 향연
227a–279c 파이드로스
281a–304e 대 히피아스[13]
309a–363e 서한집 편지들[14]
364a–372a 악시오코스[15]
372a–375d 정의에 관하여[16]
376a–379d 미덕에 관하여[17]
380a–386b 데모도코스[18]
387b–391d 시쉬포스[19]
392a–406a 에뤽시아스[20]
406a–410e 클레이토폰[21]
411a–416a 정의들[22]

플라톤에 관한 어록[편집 | 원본 편집]

유럽의 철학적 전통을 가장 확실하고 일반적으로 특징짓는다면, 그것은 그 전통이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학자들이 그의 글에서 의심스럽게 추출한 체계적인 사고방식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플라톤의 글에 흩어져 있는 일반적인 개념들이 얼마나 풍부하게 해석되는지 암시하고자 이를 언급한 것이다.[23]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각주

  1. 플라톤 『향연』 (해제), 김인곤, 2005,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 단, 이 번역본은 1903년 간행된 기무라 다카타로의 일역본을 저본으로 삼은 것이 거의 확실하다. 기무라 다카타로는 조엩의 영역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아랍어->영어->일본어->한국어를 거친 번역본이었던 셈이다. 김주일, <개화 이후 현재까지 서양 고대철학 번역 현황과 문제점> 참조
  3. 일반적으로 위작으로 여겨진다.
  4. 일반적으로 위작으로 여겨진다.
  5. 박종현 역본에서는 소피스테스
  6. 천병희 역본에서는 힙피아스 1
  7. 위작 논란이 있다.
  8. 일반적으로 위작으로 여겨진다.
  9. 천병희 역본에서는 힙파르코스. 일반적으로 위작으로 여겨진다.
  10. 일반적으로 위작으로 여겨진다. 박종현 역 <법률>에 부록으로 실려있다.
  11. 정암학당본은 특이하게도 플라톤 전집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 번역총서의 일환으로 나남에서 나왔다. 이미 2001년부터 국가 지원을 받아 번역이 시작되었기에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12. 일반적으로 위작으로 여겨진다. 박종현 역 <법률>에 부록으로 실려있다.
  13. 천병희 역본에서는 힙피아스 2. 위작 논란이 있다.
  14. 위작 논란이 있다.
  15. 고대로부터 위작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전승되는 고대 그리스 필사본의 기본이 되는 트라쉴로스 편집본에 포함되지 않았다.
  16. 고대로부터 위작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전승되는 고대 그리스 필사본의 기본이 되는 트라쉴로스 편집본에 포함되지 않았다.
  17. 고대로부터 위작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전승되는 고대 그리스 필사본의 기본이 되는 트라쉴로스 편집본에 포함되지 않았다.
  18. 고대로부터 위작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전승되는 고대 그리스 필사본의 기본이 되는 트라쉴로스 편집본에 포함되지 않았다.
  19. 고대로부터 위작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전승되는 고대 그리스 필사본의 기본이 되는 트라쉴로스 편집본에 포함되지 않았다.
  20. 고대로부터 위작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전승되는 고대 그리스 필사본의 기본이 되는 트라쉴로스 편집본에 포함되지 않았다.
  21. 위작 논란이 있다.
  22. 고대로부터 위작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전승되는 고대 그리스 필사본의 기본이 되는 트라쉴로스 편집본에 포함되지 않았다.
  23.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저, 『과정과 실재(PROCESS AND REALITY) : AN ESSAY IN COSMOLOGY』, 2nd, New York, The Free Press, 1979,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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