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ở)는 베트남 요리쌀국수에 해당하는 부류이다. 혹은 베트남 쌀국수라고도 한다. 기원은 북부지방으로, 수도 하노이 근교의 해안도시인 남딘(Nam Định) 방식의 퍼가 특히 유명하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베트남에서는 소가 귀중한 일꾼인지라 식문화에서도 소고기를 이용한 요리가 드문 편인데, 퍼의 경우는 퍼보(소고기탕면)가 기본형태이다. 또한 '퍼'라는, 옛부터 쌀국수를 지칭하던 '분[1]'과 일부러 다른 단어를 쓰는 점에서도 이 요리가 외부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데, 퍼의 기원설 중 하나인 프랑스 요리 포토푀(Pot-au-feu)에서 '푀'부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분이 가장 강력하게 뒷받침 한다. 퍼가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 또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경으로 상당히 늦은 편인데, 이 시기는 베트남의 프랑스 식민지배 시대이다.[2] 결론적으로 퍼가 프랑스 식문화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 졌다는 것은 크게 부정하기 어렵다.

훗날 일본 제국프랑스 지배하에 있던 베트남을 털고, 이어진 1945년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이 베트남을 둘로 쪼개어 승전국인 중화민국과 프랑스에게 양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화민국은 그 직후에 터진 국공내전으로 베트남을 관리하기 어려워지자 호치민(사회주의파)에게 북부 베트남을 양도했고, 인도차이나 전쟁을 통해 호치민 세력은 남부 베트남의 프랑스 세력(자유시장파)을 내쫓는데 성공했다. 이때 북부에서 즐겨먹던 퍼가 남쪽까지 퍼져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빈 집과도 같았던 남베트남에 미국이 베트남의 공산화를 저지한다는 이유로 지배하에 두려는 시도(베트남 전쟁)를 하였다. 1975년까지 이어지는 이 전란을 피하기 위해 수많은 베트남인이 베트남을 등졌는데, 그 덕에 퍼를 전 세계로 널리 퍼트릴 수 있었다.

한국에는 동남아 여행이 최고급 여흥으로 여겨지던 1990년대 초에 처음 도입되었다가, 역시나 익숙하지 않은 향신료의 거부감으로 인해 화제가 되지 못한 채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던 차,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 경에 향신료를 크게 줄이고 육향만을 남긴 퍼가 당시 유행하던 웰빙바람을 타고 도입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고, 현재진행형으로 동남아 요리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상차림[편집 | 원본 편집]

퍼는 별다른 보조음식이 불필요한 한그릇 음식이다. 다만 내올때는 퍼와 함께 향신채소(숙주[3]고수풀을 포함)와 라임, 해선장, 느억짬, 설탕, 칠리 소스, 분태땅콩 등을 곁들여 내며, 취향에 따라 간을 맞춘다.

고명으로 얹어진 고기는 따로 양념장을 만들어 찍어먹어도 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이 원하는대로 원하는 타이밍에 즐기면 된다. 퍼의 고기 또한 냉면의 수육고명과 같은 개념으로 얹은 것이기 때문.

바리에이션[편집 | 원본 편집]

  • 퍼 보
  • 퍼 가

각주

  1. 이것 또한 남중국의 언어로 국수(펀, 粉)를 의미하는 것에서 전래된 단어이다.
  2. 앞서 언급한 남딘은 베트남에 처음 기독교가 전파된 곳이기도 하다.
  3. 한국에서는 숙주를 아예 면 아래에 잔뜩 깔아두고 먹는 경향이 있는데, 기본은 고명 수준으로 약간씩만 얹어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