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에렌페스트

파울 에렌페스트
Paul Ehrenfest
Paul Ehrenfest.jpg
인물 정보
출생 1880.01.18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비엔나
사망 1933.09.25(향년 53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적 오스트리아(~1922), 네덜란드(1922~)
이론물리학, 지도교수: 루드비히 볼츠만

파울 에렌페스트는 오스트리아계 물리학자로 통계역학과 양자역학에 기여하였다.

상세[편집 | 원본 편집]

에렌페스트는 1880년 1월 18일에 비엔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래는 비엔나 기술원(Vienna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화학을 전공하였으나 동시에 비엔나 대학에서 루드비히 볼츠만열역학 강의를 수강하였고 그 과정에서 이론물리학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1901년에 에렌페스트는 괴팅겐 대학으로 떠났으며 나중에 아내가 되는 타티야나 아파나세바(Tatyana Afanasyeva)[1]를 만나게 된다. 1904년 6월 23일에 비엔나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그해 12월에 결혼하였다. 1906년에 9월 5일에 비엔나를 떠나 괴팅겐으로 돌아갔고 9월 6일 그의 지도교수였던 루드비히 볼츠만이 자살하여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볼츠만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기존에 볼츠만이 담당하던 통계역학 관련 논문 검토는 에렌페스트가 담당하게 되었다. 1907년에 에렌페스트 가족은 러시아의 상트페테부르크로 떠났고 거기서 러시아의 물리학자 아브람 이페(Abram Ioffe)와 친구가 되었다. 1912년에 네덜란드의 레이덴 대학의 교수직을 맡았다. 1927년에 5차 솔베이 학회에 참석하였으며 에렌페스트 정리를 발표하였다. 1931년 5월 즈음부터 에렌페스트는 우울증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였으며 1932년 8월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그를 걱정하여 레이덴 대학에 에렌페스트의 업무 부담을 줄여주기를 바란다는 요청을 담은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운증후군을 가진 그의 막내아들 와시크(Wassik, 1918 ~1933)을 돌보는 것을 점점 힘겨워하던 도중 1933년 9월 25일에 그의 아들 와시크를 총으로 쏘아 죽이고 자살했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 2명의 딸과 2명의 아들이 있었다. 막내 아들은 전술한 와시크이며 장녀인 타타아나 에렌페스트(Tatyana Pavlovna Ehrenfest, 1905 ~ 1964)는 어머니를 따라 수학자가 되었고 장남인 파울 에렌페스트 2세(1915 ~ 1939)는 아버지를 따라 물리학자가 되었으며 차녀인 앤 에렌페스트(1910 ~ 1979)는 작가였다.
  1. 러시아 제국의 키예프(현재 우크라니아의 키이우) 출신의 수학자. 1964년에 네덜란드에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