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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김해 김씨'''(金海 金氏)는 [[경상남도]] [[김해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다. [[금관가야]](金官伽倻)의 [[수로왕]](金首露)을 시조로 한다.',
1 => '',
2 => ' == 본관 정보 ==',
3 => '* 본관: 김해 김씨',
4 => '* 관향: [[경상남도]] [[김해시]]',
5 => '* 시조: [[수로왕|김수로]](金首露)',
6 => '* 중시조:[[김유신]](金庾信)',
7 => '* 집성촌:[[경상남도]] [[창원시]]·[[진주시]]·[[창녕군]]·[[김해시]]·[[하동군]] <br />[[경상북도]] [[포항시]]·[[김천시]]·[[청도군]]·[[상주시]]·[[고령군]] <br />[[경기도]] [[성남시]]·[[수원시]]·[[시흥시]]·[[용인시]]·[[여주시]]·[[안성시]] <br />[[충청남도]] [[부여군]]·[[공주시]]·[[논산시]]·[[보령시]]',
8 => '<br />[[전라남도]] [[신안군]]·[[영암군]]·[[진도군]]·[[영광군]]·[[해남군]] <br />[[전라북도]] [[장수군]]·[[남원시]]·[[고창군]]·[[부안군]] <br />[[함경북도]] [[나진시]]·[[경성군]]·[[명천군]]',
9 => '* 인물 : [[김상좌]], [[김보]], [[김유 (14세기)|김유]], [[김저 (고려)|김저]], [[김수연 (조선)|김수연]], [[김극일 (조선)|김극일]], [[김일손]], [[김대유 (조선)|김대유]], [[김축]], [[김완 (1577년)|김완]], [[김경서]], [[공빈 김씨]], [[김예직]], [[김우항]], [[김홍도]], [[김만덕]], [[김대건]], [[김원봉]], [[김두봉]], [[김약수]], [[김상옥 (1890년)|김상옥]], [[김무정]], [[김준연]], [[김현철 (1901년)|김현철]], [[김철호 (1905년)|김철호]], [[김성곤 (1913년)|김성곤]], [[김종오]], [[김수영]], [[김대중]], [[김종필]], [[김상현 (1935년)|김상현]], [[김일 (프로레슬링 선수)|김일]], [[김지하]], [[김주열]], [[남진 (가수)|남진]], [[김홍신]], [[김훈 (소설가)|김훈]], [[김상곤]], [[김명곤]], [[김부겸]], [[김두겸]], [[김영춘 (1962년)|김영춘]], [[김병만]], [[김종국]], [[정우 (가수)|김정우]], [[도영|김동영]], [[영훈 (1997년)|김영훈]]',
10 => '* 년도: 2015',
11 => '* 인구: 4,456,700명',
12 => '',
13 => '== 역사 ==',
14 => '[[가락국]]의 [[수로왕]](首露王)을 시조로 하고, 흥무대왕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로 한다. 아도간, 여도간, 피도간, 오도간, 유수간, 유천간, 신천간, 오천간, 신귀간의 아홉 명의 촌장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 자주색 밧줄에 붉은 보자기에 쌓인 금합이 [[구지봉]]에 강림하고 여섯개 황금 알 중에 제일 먼저 나온 아이를 수로(首露)라 하고 가락국의 왕이 되니 김해김씨의 시조가 된다. 이후 후손들이 가락국이 세워진 김해를 본관으로 삼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5 => '',
16 => '금관가야는 5세기 [[광개토태왕]]의 남정 이후 급속히 쇠퇴하게 된다. 532년(법흥왕 19년) 신라에 투항하여 진골 귀족이 된 가락국의 마지막 왕으로 김유신의 증조부가 되는 [[구형왕|구형왕]](仇衡王)은 신라에 투항함으로써 상등의 작위를 받고, 금관국을 식읍으로 받았으며. 그의 세 아들 중 차남 [[김무력]](金武力)이 [[신라]]에서 장군이 되어 [[관산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최고의 관등인 각간(角干)을 지냈고, 신라의 한강유역을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의 아들 [[김서현]](金舒玄)은 백제와 여려번의 전투에서 공을 세워 대양주도독(大梁州都督)을 지냈고, 고구려 낭비성을 함락시키고 각간(角干)으로 제수 받았으며, 김서현의 딸 문희(文姬)는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과 혼인하여 [[문명왕후]](文明王后)가 되었다. 김서현의 아들 [[김유신]](金庾信)은 무열왕과 함께 삼국통일의 대업(大業)을 달성한 명장(名將)으로 무열왕의 딸 지소부인(智炤夫人)과 혼인했으며, 태대각간(太大角干)에 이르렀고, 사후에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존되었다. 김해김씨는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번성해 왔다. 이런 신김씨의 위세가 쇠퇴한 계기는 [[780년]] [[혜공왕]]이 피살당하는 것으로 무열왕계 왕통이 단절되고 [[선덕왕]]의 [[내물왕|내물왕계]]가 왕위를 잇게 되면서부터 다른 진골 귀족들로부터도 다시금 경원 당하면서 심지어 6두품으로 추락했다.<ref>김유신의 적손인 김윤중(金允中)이 성덕왕 때 일반귀족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김유신의 현손 김장청(金長淸) 역시, 집사부의 말단직 집사랑(執事郞)을 지냈을 뿐이다. 김융(金融)의 난과 관련 있어 보인다.</ref><ref>김웅원(金雄元)이 [[이사도]]의 난을 진압하고 이어 [[김헌창]]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우고 [[신무왕]]의 사돈이 된 것으로 보아 몰락하였던 [[김유신]]의 가계가 다시 부흥한 것으로 보인다.</ref>',
17 => '',
18 => '[[진성여왕]] 때에 [[신라]]가 혼탁하여 [[김상좌]](金商佐)가 [[왕건]]에게 위탁해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워 삼중대광(三重大匡) 개국원훈(開國元勳)에 올른 이래 그 후손들이 문무 명신을 배출한 삼한갑족으로 위세를 떨쳤다. 고려 시대에만도 정승급 15명을 비롯하여, 명신·공신 10여 명과 장군 8명, 제학 11명 등 숱한 인물을 배출했다.',
19 => '',
20 =>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대게 조선 개국에 반대하는 고려 충신들이 많았으며 [[무오사화]](戊午士禍)<ref>조선 연산군대 탁영 [[김일손]](金馹孫)의 사초에 수록한 「조의제문(弔義帝文)」(세조의 왕위찬탈을 비판한 내용)을 빌미로 훈구세력에 의해 일어난 사화</ref><ref>연산조의 학자 [[성현 (조선)|성현]]은 『용재총화』에서「옛날에는 성했다가 지금은 쇠한」씨족을 지적하는 가운데 김해김씨를 하나로 들고 있다.</ref>를 비롯한 정치적 사건들에 휘말려 쇠락을 면치 못했다.',
21 => '',
22 => '[[김희철 (1519년)|김희철]](金希哲)의 딸이 [[선조 (조선)|선조]](宣祖)의 후궁 [[공빈 김씨]](恭嬪 金氏)가 되면서 김희철은 [[부원군|국구]](國舅)로서 해령부원군(海寧府院君)에 봉해졌고, 아들 [[광해군]](光海君)이 왕으로 즉위한 후 공성왕후(恭聖王后)로 추존되었으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다시 후궁으로 강등되었다.',
23 => '',
24 => '역대 정승에서도 숙종조의 [[김우항]](金宇抗) 한 사람뿐이었다. 조선시대 유일한, 그리고 최후의 정승이었다.',
25 => '',
26 => '== 본관 ==',
27 => '[[김해]](金海)는 경상남도 [[김해시]](金海市)의 지명이다. [[낙동강]](洛東江) 하구 남서쪽에 위치하여 [[가락국]](駕洛國)의 중심지로 발전하여 왔다. [[532년]](신라 법흥왕 19) 신라에 병합되어 금관군(金官郡)이 되었다. [[680년]](문무왕 20)에 금관소경(金官小京)이 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 김해소경(金海小京)으로 바꾸어 양주(良州)의 관할로 두었다. [[940년]](고려 태조 23) 김해부(金海府)로 개칭되었고 임해현(臨海縣)으로 다시 강등되었다가 곧 임해군으로 승격되었다. [[995년]](성종 14)에 김해안동도호부(金海安東都護府)로 개칭하여 영동도(嶺東道)에 속하였다가 [[1012년]](현종 4) 김해군방어사로 강등되었으나 [[1018년]]부터는 의안군(義安郡: 昌原)·함안군(咸安郡)·칠원현(漆原縣: 漆原面)·웅신현(熊神縣: 鎭海)등을 영현으로 삼았다. [[1270년]](원종 11) 방어사(防禦使) [[김훤]]이 인접지역인 밀성(密城)의 난을 평정하여 김녕도호부(金寧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1293년]](충렬왕 19) 현으로 강등되었다. [[1308년]] 금주목(金州牧)으로 승격하였으나 [[1310년]](충선왕 2) 김해부(金海府)로 격하되었다. [[1413년]](태종 13) 김해도호부로 승격되어 세조 때 진(鎭)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김해군이 되었고, [[1981년]] 김해읍이 김해시로 승격하여 분리되었으며, [[1995년]]에는 김해군을 통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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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 '== 세계도 ==',
30 => '{|border=0 cellpadding=7 cellspacing=0 style="border-color:gray; font-size: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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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 '|[[김수로왕|태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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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 '太祖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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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 '|[[거등왕|도왕]] 道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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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 '|[[노리부|김세종]] 金世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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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 => '|[[김관 (고려)|김관]] 金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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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 => ''''版圖判書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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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4 => '|김절경 金晢卿',
595 => '|[[김목경 (고려)|김목경]] 金牧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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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 => '== 분파 ==',
613 => '김해김씨는 신라김씨의 알지계(閼智系)와 함께 우리나라 김씨의 양대산맥을 이루어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번성하여 왔다. 특히 김해김씨는 족세(族勢)가 크게 번창해짐에 따라 148여파로 분파(分派) 되었다.',
614 => '그 중 직계종파는 [[김목경 (고려)|김목경]]을 파조로 하는 경파(京派), 김익경을 파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 김관을 파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가 있다. 여기에 경파, 사군파, 삼현파마다 각각 세부적인 인물을 중조로 하여 총 24개의 공파로 구분되어 있는 등 계보가 복잡하다.',
615 => '* 종파',
616 => '** '''경파(京派), 금녕군파(金寧君派)''' - [[김목경 (고려)|김목경]](金牧卿)',
617 => '*** 참판공파(參判公派): 김영견(金永堅)',
618 => '*** 횡성공파(橫城公派): 김영서(金永瑞)',
619 => '*** 안경공파(安敬公派): [[김영정 (조선)|김영정]](金永貞)',
620 => '*** 석성공파(石城公派): 김영순(金永純)',
621 => '*** 호참공파(戶參公派): 김진서(金震敍)',
622 => '*** 참찬공파(參贊公派): 김달문(金達門)',
623 => '*** 봉상공파(奉常公派): 김현문(金顯門)',
624 => '*** 밀직사공파(密直使公派): 김창문(金昌門)',
625 => '*** 문간공파(文簡公派): 김저(金著)',
626 => '*** 밀직공파(密直公派): 김수(金秀)',
627 => '***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김란(金蘭)',
628 => '** '''사군파(四君派), 감무공파(監務公派)''' - 김익경(金益卿)',
629 => '*** ①생원공파(生員公派): 김련(金鍊)',
630 => '*** 도총관공파(都摠管公派): 김추(金錘)',
631 => '*** ②생원공파(生員公派): 김구(金銶)',
632 => '*** 찬성공파(贊成公派): 김석(金錫)',
633 => '*** 상서공파(尙書公派): 김감(金鑑)',
634 => '*** 공간공파(恭簡公派): 김조(金銚)',
635 => '** '''삼현파(三賢派), 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 - [[김관 (고려)|김관]](金管)',
636 => '*** 군수공파(郡守公派): 김건(金建)',
637 => '*** 참판공파(參判公派): 김맹(金孟)',
638 => '*** 한림공파(翰林公派): 김용(金勇)',
639 => '*** 진사공파(進士公派): 김순(金順)',
640 => '*** 녹사공파(錄士公派): 김인(金靭)',
641 => '*** 진의공파(進義公派): 김현(金鉉)',
642 => '*** 통덕랑공파(通德郞公派): 김무(金武)',
643 => '* 천여(天與)계',
644 => '** 첨정공파(僉正公派) - 김덕휴(金德休)',
645 => '* 진의(進意)계',
646 => '** 운은공파(雲隱公派) - 김대진(金大震',
647 => '** 문경공파(文敬公派) - [[김탁 (고려)|김탁]](金琢)',
648 => '** 부사공파(府使公派) - 김근(金瑾)',
649 => '** 한림공파(翰林公派) - 김관(金鑧)',
650 => '** 충정공파(忠貞公派) - 김구(金玖)',
651 => '** 도사공파(都事公派) - 김련(金璉)',
652 => '** 승정공파(承政公派) - 김현(金現)',
653 => '** 휴은공파(休隱公派) - 김호(金琥)',
654 => '** 장사군파(長沙郡派) - 김선(金璇)',
655 => '** 대제학공파(大提學公派) - 김득하(金得河)',
656 => '** 도총관공파(都總管公派) - 김경신(金敬臣)',
657 => '** 판윤공파(判尹公派) - 김경보(金敬輔)',
658 => '* 상현(商賢)계',
659 => '** 판전공파(判典公派) - 김명택(金明澤)',
660 => '** 판서공파(判書公派) - 김불비(金不比)',
661 => '**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 - [[김만희 (조선)|김만희]](金萬希)',
662 => '** 참봉공파(参奉公派) - 김인서(金鱗瑞)',
663 => '** 충정공파(忠精公派) - 김이장(金以障)',
664 => '** 승정공파(承政公派) - 김종정(金宗貞)',
665 => '** 부호군공파(副護軍公派) - 김천익(金天翼)',
666 => '** 판결사공파(判決事公派) - 김을동(金乙棟)',
667 => '** 진사공파(眞士公派) - 김문(金汶)',
668 => '* 상인(商寅)계',
669 => '** 유수공파(留守公派) - 김운(金蕓)',
670 => '* 정국(定國)계',
671 => '** 판서공파(判書公派) - 김유공(金維公)',
672 => '** 부호군공파(副護軍公派) - 김거공(金巨公)',
673 => '** 승사랑공파(承仕郞公派) - 김지서(金之瑞)',
674 => '** 부정공파(副正公派) - 김평(金平)',
675 => '*** 양의공파(襄毅公派) - [[김경서]](金景瑞)',
676 => '** 판서공파(判書公派) - 김첨검(金添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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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8 => '== 항렬자 ==',
679 => '* 경파(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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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 => '!17세<br>67세!!18세<br>68세!!19세<br>69세!!20세<br>70세!!21세<br>71세!!22세<br>72세!!23세<br>73세!!24세<br>74세!!25세<br>75세!!26세<br>76세!!27세<br>77세!!28세<br>78세!!29세<br>79세!!30세<br>80세!!31세<br>81세!!32세<br>82세!!33세<br>8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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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4 => '!17세<br>67세!!18세<br>68세!!19세<br>69세!!20세<br>70세!!21세<br>71세!!22세<br>72세!!23세<br>73세!!24세<br>74세!!25세<br>75세!!26세<br>76세!!27세<br>77세!!28세<br>78세!!29세<br>79세!!30세<br>80세!!31세<br>81세!!32세<br>82세!!33세<br>83세!!34세<br>84세!!35세<br>85세!!36세<br>86세!!37세<br>87세!!38세<br>8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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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6 => '|align="left"|석(錫)||口태(泰)||상(相)||口현(炫)||재(在)||口호(鎬)||영(永)||口식(植)||형(炯)||口규(奎)||용(鎔)||口순(淳)||동(東)||口훈(勳)||중(重)||口회(會)||원(源)||口주(柱)||찬(燦)||口기(基)||종(鍾)||口섭(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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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1 => '* 삼현파(三賢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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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5 => '!16세<br>64세 !!17세<br>65세 !!18세<br>66세 !!19세<br>67세 !!20세<br>68세 !!21세<br>69세 !!22세<br>70세 !!23세<br>71세 !!24세<br>72세 !!25세<br>73세 !!26세<br>74세 !!27세<br>75세 !!28세<br>76세 !!29세<br>77세 !!30세<br>78세 !!31세<br>79세 !!32세<br>80세 !!33세<br>81세 !!34세<br>82세 !!35세<br>83세 !!36세<br>8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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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 => '|align="left"|현(顯)||재(再)||국(國)<br />口규(圭)||창(昌)||口두(斗)||용(容)||口곤(坤)||종(鍾)<br />진(鎭)||口수(洙)<br />口태(泰)||상(相)<br />동(東)||口희(熙)<br />口환(煥)||<br />정(廷)<br />재(在)||口호(鎬)<br />口진(鎭)||영(永)<br />문(汶)||口근(根)<br />口표(杓)||병(炳)<br />경(炅)||口채(埰)<br />口기(基)||석(錫)<br />명(銘)||홍(洪)<br />순(淳)||주(柱)<br />계(桂)||口하(夏)<br />口열(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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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 => '* 한림공파(翰林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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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 => '!19세<br>72세 !!20세<br>73세 !!21세<br>74세 !!22세<br>75세 !!23세<br>76세 !!24세<br>77세 !!25세<br>78세 !!26세<br>79세 !!27세<br>80세 !!28세<br>81세 !!29세<br>82세 !!30세<br>83세 !!31세<br>84세!!32세<br>8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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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 => '|align="left"|口원(源)||봉(鳳)||口병(炳)||녕(寧)||口성(成)||범(範)||口강(康)||재(宰)||口정(廷)||규(揆)||口만(萬)||원(元)||口병(柄)||口정(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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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 => '* 문경공파(文敬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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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3 => '!17세<br>71세 !!18세<br>72세 !!19세<br>73세 !!20세<br>74세 !!21세<br>75세 !!22세<br>76세 !!23세<br>77세 !!24세<br>78세 !!25세<br>79세 !!26세<br>80세 !!27세<br>81세 !!28세<br>82세 !!29세<br>83세!!30세<br>84세!!31세<br>85세!!32세<br>8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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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5 => '|align="left"|항(抗)||口후(厚)||하(夏)||口관(寬)||영(永)||口모(模)||희(熙)||口재(載)||용(鏞)||口태(泰)||래(來)||口섭(燮)||규(奎)||口련(鍊)||홍(洪)||口표(杓)',
7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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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 => '{{col-end}}',
729 => '',
730 => '== 과거 급제자 ==',
731 =>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문과 128명, 무과 536명, 사마시 471명, 역과 59명, 의과 39명, 음양과 15명, 율과 33명, 주학 8명이다.',
732 => '',
733 => '== 인물 ==',
734 => '{{참고|분류:김해 김씨}}',
735 => '=== 신라 ===',
736 => '* '''[[김무력]](金武力)''': 가야국 제10대 구형왕(仇衡王)의 셋쩨왕자. 가야가 신라에 병합되고 아찬(阿湌)으로 신주군주(新州軍主)가 되었고,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군사 삼만여명을 도륙하고 [[백제 성왕]]을 사로 잡았다. 최고의 벼슬인 각간(角干) 까지 올랐다.',
737 => '* '''[[김서현]](金舒玄)''': 김무력(金武力)의 아들. 대량주총관(大良州總管)으로 백제와 여러번 싸워 이기고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함락(陷落)시키고 각간(角干)에 올랐다.',
738 => '* '''[[김유신]](金庾信)''': 가야국의 시조 수로왕(首露王)의 12세손. 660년에 당나라의 [[소정방]]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키고, 668년에 고구려를 정벌한 후 당나라 군사를 축출하는 데 힘써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다졌다. 벼슬이 태대각간(太大角干)에 이르었으며 사후 흥무대왕(興武大王)에 추존되었다.',
739 => '* '''[[김흠순]](金欽純)''': 김유신(金庾信)의 아우. [[황산벌 전투]]와 [[백제 부흥 운동]] 진압에 참전하였고, 고구려와의 전쟁에서는 대당 총관(大幢摠管)이 되어 출정하는 등 삼국 통일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이후 당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외교 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740 => '* '''[[김삼광]](金三光)''': 김유신(金庾信)의 맏아들. 666년에 [[당나라]]에 숙위로 파견을 갔고 당나라 장수 [[유인궤]](劉仁軌)와 함께 [[고구려]]를 정벌했다.',
741 => '* '''[[김반굴]](金盤屈)''': 김흠순(金欽純)의 아들이자 김유신(金庾信)의 조카이자 사위. [[황산벌 전투]]에서 충효(忠孝)를 다할 것을 맹세하고,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분전 끝에 전사하였다.',
742 => '* '''[[김시득]](金施得)''': 김유신(金庾信)의 서자. 기벌포(伎伐浦)에서 당나라의 장군 [[설인귀]](薛仁貴)와 대적하여 당나라 수군과의 22회 해전 모두 승리해 4,000여 명을 살상해 당군을 격퇴하였다.',
743 => '* '''[[김원술]](金元述)''': 김유신(金庾信)의 차남. [[석문 전투]]에 출전했으나 패전하고 살아서 돌아와서 이에 격노한 부모에게 버림 받아 [[태백산]]에 은신해 있을 때 [[매소성]](買肖城)으로 당군이 쳐들어 올때 죽을 각오로 전장에서 싸워 승전을 이끌었다.',
744 => '* '''[[김영윤 (신라)|김영윤]](金令胤)''': 김흠순(金欽純)의 손자이자 김반굴(金盤屈)의 아들. 고구려의 잔적들이 [[익산토성|보덕성]]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러 갔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745 => '* '''[[김암]](金巖)''': 김유신(金庾信)의 적손(嫡孫)인 김윤중(金允中)의 서손(庶孫). 당나라에서 방술(方術)을 익혀 그 재주가 뛰어났으며, 779년(혜공왕 15)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을 때 [[고닌 천황]](光仁天皇)이 그의 재주가 탐나 억류했다.',
746 => '* '''[[김웅원]](金雄元)''': 김유신(金庾信)의 현손. 완산주도독을 지냈고 순천장군으로 당나라 [[이사도]](李師道)의 난과 [[김헌창]](金憲昌)의 난을 평정한 명장이다.',
747 => '=== 고려 ===',
748 => '* '''[[김상좌]](金商佐)''': 수로왕(首露王)의 23세손. 고려 개국의 원훈이며[[진성여왕]] 때에 [[신라]]가 혼탁하여 김상좌가 [[왕건]](王建)에게 위탁해 고려 개국을 도운 공으로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올랐다.',
749 => '* '''[[김보]](金普)''': 김목경(金牧卿)의 맏아들. [[공민왕]](恭愍王)이 세자 때 국가(國家)의 사절로서 중국(中國)의 북경(北京)에 갈 때 시종(侍從)한 공으로 일등공신(一等功臣)의 호(號)를 받았다. ',
750 => '* '''[[김유 (14세기)|김유]](金庾)''': 강릉도병마사로서 홍건적을 격파하고 개경(開京)을 수복하고 김용(金鏞)의 난을 진압했으며 탐라의 목호(牧胡)를 토벌했다.',
751 => '* '''[[김저 (고려)|김저]](金佇)''': 시중 [[최영]](崔瑩)의 생질. 전부령 정득후(鄭得厚)와 함께, 폐왕 [[고려 우왕|우왕]]을 만나 [[태조 (조선)|이성계]]를 살해하라는 부탁을 받고, 이성계의 집에 잠입하여 암살하려다 실패해 ‘김저의 옥사’가 일어났다.',
752 => '* '''[[김진문]](金振門)''': 김익경(金益卿)의 손자. 고려말에 예의판서(禮儀判書)를 거쳐 대제학(大提學)에 올랐으나 [[조선]]이 개국하자 관직을 버리고 [[이색]](李穡), [[박자검]](朴自儉) 등과 함께 은둔 생활하여 절의를 지켰다.',
753 => '',
754 => '=== 조선 ===',
755 => '* '''김조(金銚)''': 김진문(金振門)의 아들. 세종 때 집현전수찬을 거쳐 예조판서에 올랐으며, 직제학에 역임할 때 [[장영실]](蔣英實)과 함께 간의대, 자격루, 혼천의 등을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756 => '* '''[[김수연 (조선)|김수연]](金壽延)''': 조선 전기 장군으로 [[김종서 (1383년)|김종서]] 등과 더불어 6진을 개척하고 [[계유정난]]으로 [[조선 단종|단종]]이 유배지 영월에서 비참하게 죽자 6일간 단식 끝에 자결한 충신이다.',
757 => '* '''김자정(金自貞)''': 김조(金銚)의 아들. 예조 참의를 거쳐, 벼슬이 공조 판서에 이르렀다. 성종 8년(1477)에 재가(再嫁) 금지의 논의가 있자 재가를 허락할 것을 주장하였고, [[노사신]]ㆍ[[강희맹]] 등과 함께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하였다.',
758 => '* '''[[김극일 (조선)|김극일]](金克一)''': 김관(金管)의 현손. 어릴 때부터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님을 섬겼으며 어머니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 낫게 해 드리고, 아버지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변을 맛보았다고 전해진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시묘살이를 할 때 호랑이가 옆을 지켰다. 사시(私諡)는 절효(節孝)이다.',
759 => '* '''[[김일손]](金馹孫)''': 김극일(金克一)의 손자. 성종 17년(1486)에 문과에 급제하고, 이조 정랑을 지냈다. 춘추관 사관(史官)으로 있으면서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에, [[이극돈]]의 비행(非行)을 그대로 쓰고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실었다고 하여 [[무오사화]] 때에 처형되었다.',
760 => '* '''[[김대유 (조선)|김대유]](金大有)''': [[김일손]](金馹孫)의 조카이며 김준손(金駿孫)의 아들. [[무오사화]]에 김일손이 참수 당하자 아버지와 함께 호남에 유배되었다가 중종 때 풀려나와 3개월간 칠원현감(漆原縣監)을 마지막 벼슬로 사직하고 청도의 운문산에 들어갔다.',
761 => '* '''김현성(金玄成)''': [[광해군]] 때 폐모론에 불참하여 면직되자 청빈하게 여생을 마쳤으며, 시·서·화에 두루 능하였는데, 그림보다는 글씨에 뛰어났으며 특히 시에 능하였다고 한다. 대표작으로 이충무공수군대첩비문(李忠武公水軍大捷碑文)이 있다.',
762 => '* '''[[김경서]](金景瑞)''': [[임진왜란]] 때 [[평양성]] 탈환에 큰 공을 세웠고, 명나라의 요청으로 [[강홍립]](姜弘立)과 후금 정벌 위해 출전하여 심하(深河)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763 => '* '''김극희(金克禧)''': 김진문(金振門)의 6세손.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막하에서 전공을 세우고, [[한산도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
764 => '* '''[[김축]](金軸)''':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솔과 후학을 거느리고 [[권율]](權慄)의 막하에 들어가 [[웅치 전투]], [[이치 전투]]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웠다. 또 다시 [[김천일]](金千鎰)의 막하에서 활약하다 이듬해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대를 이을 큰아들만 집에 남기고 집안의 남자들이 모두 출진하여 6충, 1효, 4열부를 배출하였다.',
765 => '* '''[[김완 (1577년)|김완]](金完)''': 김극희(金克禧)의 조카이자 김극조(金克祧)의 아들. [[임진왜란]] 때에 남원대첩에 전공을 세우고, [[이괄의 난]]을 평정하여 [[진무공신]]에 올랐다. 그 뒤 부총관ㆍ전라 우수사를 거쳐 훈련원 도정, 황해도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766 => '* '''김여준(金汝峻)''': 김완(金完)의 조카. 볼모로 잡혀가는 [[봉림대군]](鳳林大君) · [[소현세자]](昭顯世子) · [[인평대군]](麟坪大君)을 호종한 무신. 중국 심양(瀋陽)에 갈 때 옥하관(玉河關)에서 「월명비안(月明飛雁)」의 시를 읊은 것으로 유명하다.',
767 => '* '''김덕승(金德承)''': 여러 벼슬을 거쳐 목사(牧使)에 이르렀는데, 경사(經史) ·운서(韻書)를 연구하여 중국어에 능통했고, 글씨와 그림에도 능했다. ',
768 => '* '''[[김예직]](金禮直)''': [[임진왜란]] 때 [[선조 (조선)|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했으며,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를 역임했다.',
769 => '* '''[[김우항]](金宇杭)''': [[조선 숙종]] 때 우의정. [[신임사화]] 때에 화를 입었다.',
770 => '* '''[[김홍도]](金弘道)''': [[조선 영조]] 때 풍속화의 대가. 도화서 화원이 된 후 왕세손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정조 (조선)|정조]]의 어진(御眞)을 그렸다.',
771 => '* '''[[김만덕]](金萬德)''': 조선후기 제주의 거상. 자신의 전 재산을 풀어 당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던 제주도민을 도왔다.',
772 => '* '''김천택(金天澤)''': 《해동가요》를 남기고 《청구영언》를 집필한 가인',
773 => '* '''삼의당김씨(三宜堂金氏)''': 조선 후기의 여류시인',
774 => '* '''[[김대건]](金大建)''':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교회 신부. 세례명은 안드레아. [[마카오]]에서 신학을 배우고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1846년]] [[병오박해]]로 순교.',
775 => '=== 일제강점기 ===',
776 => '* '''[[김두봉]](金枓奉)''': 광문회(光文會)에서 조선어사전 《말모이》 편찬 사업에도 참여한 한글학자. '태항산의 호랑이'라 불리며 [[조선의용대]]를 이끌어 일본군과 맞써 싸운 항일운동가.',
777 => '* '''[[김원봉]](金元鳳)''': [[의열단]]을 조직하여 일제에 항거하였고, [[광복군]] 부사령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 등을 지낸 독립운동가',
778 => '* '''[[김상옥 (1890년)|김상옥]](金相玉)''': 1923년에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격전 끝에 자결한 독립운동가',
779 => '* '''[[김약수]](金若水)''': 본명은 두전(枓佺)이다. 김두봉(金枓奉)과 6촌지간이다. [[조선노동공제회]], [[조선노동총동맹]] 창설에 참여한 노동운동가. 정부 수립 후 초대 [[국회부의장]] 역임.',
780 => '* '''[[김무정]](金武亭)''': 일제강점기 팔로군 포병단 단장, [[조선의용군]] 총사령관으로 활동한 항일운동가.',
781 => '* '''김일두(金一斗)''': 대한유생독립단(大韓儒生獨立團) 단장,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통신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782 => '* '''[[김시범]](金時範)''': [[조천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자 [[제주 4·3 사건]] 희생자이다. ',
783 => '* '''김장환(金章煥)''': 서울의 [[휘문고등학교|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귀향해 [[조천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784 => '* '''[[김영랑]](金永郞)''': 독립운동가이자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언덕에 바로 누워」·「독을 차고」 등을 저술한 시인',
785 => '=== 대한민국 ===',
786 => '* '''[[김준연]](金俊淵)''':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사임한 독립운동가. 광복 후 법무부 장관ㆍ제헌의원ㆍ국회의원 역임',
787 => '* '''[[김주열]](金朱烈)''': 1960년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실종되고 사망한 채로 발견되어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788 => '* '''[[김현철 (1901년)|김현철]](金顯哲)''':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위원. 각 부처 장관을 지낸 내각수반',
789 => '* '''[[김철호 (1905년)|김철호]](金喆浩)''': [[기아그룹]] 창업주',
790 => '* '''[[김성곤 (1913년)|김성곤]](金成坤)''': 전 국회의원, [[쌍용그룹]] 창업주',
791 => '* '''[[김종오]](金鍾五)''': [[한국전쟁]] 제6사단장으로 [[백마고지 전투]] 지휘. 제15대 육군참모총장',
792 => '* '''[[김대중]](金大中)''': 대한민국 제 15대 대통령. 한국인 최초 노벨평화상을 수여하였다.',
793 => '* '''[[김종필]](金鍾泌)''': 초대 중앙정보부장으로 정계 입문한 9선 의원. 대한민국 제11·31대 국무총리. ',
794 => '* '''[[김일 (프로레슬링 선수)|김 일]] (金 一)''': 한국의 프로레슬링 선수',
795 => '* '''[[김수영]](金洙暎)''': 한국의 시인. [[한국 전쟁]]과 [[4·19혁명]]의 경험으로 자유를 추구한 저항 시인 대표작으로 『눈』, 『풀』이 있다.',
796 => '* '''[[김지하]](金芝河)''': 한국의 시인. 1970년대 '타는 목마름', '오적(五賊)'으로 유명한 저항 시인',
797 => '* '''[[남진 (가수)|남진]](南珍)''': 한국의 가수로 1970년대 가요계 이끌었다. 대표곡으로 『님과 함께』가 있다.',
798 => '* '''[[김홍신]](金洪信)''': 한국의 소설가이자 제15·16대 국회의원. 대표작으로 『김홍신의 대발해』가 있다.',
799 => '* '''[[김훈 (소설가)|김훈]](金薰)''': 한국의 소설가로 대표작으로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칼의 노래』가 있다.',
800 => '* '''[[김부겸]](金富謙)''': 제16·17·18·20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문재인 정부]]의 [[행정안전부]] 장관과 제47대 국무총리 역임.',
801 => '* '''[[김임식]](金任植)''' :제6.8,9,10대 국회의원을 지냈고,동의대학교 설립',
802 => '* '''[[김병만]](金炳萬)''': 한국의 코미디언. [[KBS 개그콘서트]] 《[[달인]]》과 SBS 《[[정글의 법칙]]》으로 히트를 친다.',
803 => '* '''[[김종국 (가수)|김종국(]]金鍾國)''': 한국의 가수 겸 방송인으로 부르지만 [[터보 (대한민국의 음악 그룹)|터보]]의 구성원중 한명이다',
804 => '',
805 => '== 사당 ==',
806 => '* [[수로왕릉|숭선전]](崇善殿) : 시조 [[수로왕]]·보주태후 휘 [[허황옥|황옥]] 배향',
807 => '* [[수로왕릉|숭안전]](崇安殿) : 가락 2대 ~ 9대 왕과 왕후 배향',
808 => '* [[덕양전]](德讓殿) : [[양왕]]·계화왕후 배향',
809 => '* [[경주 김유신묘|숭무전]](崇武殿) : 흥무왕 [[김유신]]·[[지소부인]] 배향',
810 => '',
811 => '== 왕실과의 인척 관계 ==',
812 => '=== 신라 ===',
813 => '* 신라 아양공주(진흥왕의 차녀) 부마 [[김무력]]<ref>금관가야의 마지막 국왕인 구형왕의 셋째 아들이자, 김서현의 아버지이며, 김유신의 할아버지이다.</ref>',
814 => '* 신라 [[태종무열왕]] 왕비 [[문명왕후]]',
815 => '* 신라 [[태종무열왕]] 후궁 [[보희|영창부인]]',
816 => '* 신라 [[지소부인|지소공주]](태종무열왕 3녀) 부마 [[김유신]]',
817 => '* 신라 [[문무왕]] 후궁 신광부인',
818 => '* 보로전군(진평왕의 서자) 정비 작광부인',
819 => '* 신라 [[성덕왕]] 왕비 [[성정왕후]]<ref>김유신의 아우 김흠순의 손녀로 보고 있다. </ref>',
820 => '* 신라 월성군부인 김씨(신무왕의 딸) 부마 [[김경주 (신라)|김경주]]<ref>김유신의 5대손이자 잡찬 김웅원의 아들이다.</ref>',
821 => '',
822 => '=== 조선 ===',
823 => '* [[조선 선조]] 후궁 [[공빈 김씨]](공성왕후)',
824 => '* [[조선 선조]] 후궁 [[순빈 김씨]]',
825 => '* [[인평대군]](인조의 3남) 첩실',
826 => '* [[조선 헌종]] 후궁 [[숙의 김씨 (헌종)|숙의 김씨]]',
827 => '* [[조선 철종]] 후궁 [[숙의 김씨 (철종)|숙의 김씨]]',
828 => '',
829 => '== 인구 ==',
830 => '* 2000년 1,295,080가구 4,124,934명',
831 => '* 2015년 4,456,700명',
832 => '',
833 =>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성씨이며, 김씨 중에서도 가장 많은 41.7%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 [[서울]] 81만 5천 783명, [[부산]] 40만 7천 41명, [[대구]] 19만 9천 252명, [[인천]] 20만 7천 736명, [[광주]] 14만 8천 736명, [[대전]] 9만 6천 887명, [[울산]] 10만 4천 627명, [[경기도|경기]] 71만 8천 661명, [[강원]] 10만 7천 612명, [[충북]] 8만 6천 978명, [[충남]] 14만 151명, [[전북]] 17만 3천 712명, [[전남]] 26만 8천 525명, [[경북]] 23만 7천 826명, [[경남]] 35만 12명, [[제주특별자치도|제주]] 6만 1천 395명이다. 부산과 경남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834 => '',
835 => '== 구분 ==',
836 => '신라계 김해 김씨는 [[김녕 김씨]]라고 하여 가야계 김해 김씨와 구분한다. 또는 사성 김해 김씨는 [[우록 김씨]]라고 한다.',
837 => '',
838 => '== 분가 ==',
839 => '* [[허씨]] - 가락국 수로왕비 [[허황옥]](許黃玉)을 연원으로 삼는 성씨다.',
840 => '* [[인천 이씨]] - [[허황옥]]의 23세손 이허기(李許奇)를 득성조라고 하고 상서좌복야 [[이허겸]](李許謙)을 시조로 하며 [[태인 허씨]]에서 분관되었다.',
841 => '* 금릉 김씨 - 금관가야 [[구형왕]](仇衡王)의 셋째 아들 김무득(金武得)을 시조로 한다.',
842 => '* [[진주 김씨|진주 김씨(가락계)]] - [[김유신]]의 차남 [[김원술]]을 후예라는 설이 있다.',
843 => '* 무장 김씨 - 시조는 [[김수로왕]]의 후손 충절공 김선(金璇)이다. 일부 후손들은 김해 김씨 장사군파로 칭하고 있다.',
844 => '',
845 => '== 분적설 ==',
846 => '* 남양 김씨 - [[김수로왕]]의 후예로써 [[고려 의종]] 때 사람인 김적(金適)을 시조로 한다.',
847 => '* [[웅천 김씨]] - [[조선]]조에서 수의부위에 오른 김중재(金重材)를 일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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