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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후 새 문서의 위키텍스트 (new_wikitext) | '이 문서는 상호교차적 평가가 있어, 권위가 있는 유일한 물증인 조선왕조실록에서 [[정조(조선)]]이 성웅 이순신을 영의정으로 수여하려는 기록에서 나온 것만 기반되어, 매우 취약함을 밝혀둔다.
허나, 문제는 이 문구가 이후 일제시대나 20세기까지 그 진면목에 대한 인식이 드물었다는 점에서 엄청난 충격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이것이 허구라고 주장하는 세력들 중 대다수가 이순신이 살아생전 속한 정치적 집단인 조선왕조와 그 조정으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이 있었다는 망상이란 환각에 빠진 것이 아닌가란 생각을 할 정도로 당시 조선왕실이나 조정이 권력욕에 빠져 있음을 대놓고 부정한 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에 있는 유명수군도독을 증명하는 가지고 있는 유물들이 명에서 정규로 내려진 것이 아니라고 확인한 권위자마저도 그것이 진린이 개인적으로 한 것이란 반청숭명시절에 만들었다는 가설보다도 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추측성 발언이 내놓는 형국이다.
그리고, 조선후기 성웅을 극찬한 이들도 가만히 보면, 그 중국 영웅들이 속한 집단에서 죄없이 핍박받고 지원은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억지 논리가 아주 꼬박꼬박 박았다. 사실 성웅이란 이명도 업적에는 제대로 기리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충무공이란 호칭도 죽은 직후가 아닌 청한테 깨지고 나서야 부여된 것으로 이 때문에 반청숭명으로 유명수군도독이란 단어가 붙어졌다란 말이 나오기는 하는데,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성웅을 능멸하고 뜯어먹으려는 아귀같은 막장이나 막장 후손들이 죽어라하고, 자신이 핍박한 것을 자기 조상이 뒤질 매국노짓거리는 죽어라하고, 부정했다.
거기에 정조는 다름아닌 궁에서 나간 혼수용품이 다시 궁으로 들어온 혜경궁 홍씨의 아들이다. 즉, 선조가 부계와 모계에서 영향을 끼치는 군주 임에도 위 단어가 나온 뜻을 전혀 몰랐을까? 실록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면 또 모를 일이다. 정조 역시 극찬을 하면서도 성웅이 겪은 시련에 대해서는 그 원인도 그 결과도 단 하나도 지적없이 침묵일 뿐이다.
21세기 들어, 이러한 명칭이 주목을 받은 것은 군사소설가로 알려진 김경진, 윤민혁, 안병도 공저로 시작된 임진왜란이다. 이미 명량해전을 그린 격류가 있었으니, 노무현 정권 나팔수라 평가되는 정연주에 의해 억지로 진행된 불멸의 이순신이 심각한 역사왜곡으로 인해, 위 임진왜란은 그에 대항하는 포지션으로 밀고 나갔다. 허나, 이 당시에는 원균 명장설이란 역겨움과의 싸움이다보니, 물증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으로 인해, 사그라 들었다.
물론, 이 문서를 처음 작성하는 글쓴이 역시 원균 명장설에 허우적 거리는 말기이었으니, 그 단어가 지니는 의의와 조선 후기에 대한 요약이 어떻게 끝나는지를 전혀 인지하기 힘들었다는 점에서 지금도 답답할 따름이다.
다시 이러한 논의를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재에도 대체역사에서 나름 영향력이 있는 [[슈타인호프]]가 10년간의 준비기간을 통해, 연재한 [[이순신의 나라]]였다. 여기에서는 원 역사에서는 죽은 뒤가 되는 1598년 1월에 명에서 내려진 것으로 설정되었다. 허나, 그 관직명이 조정에서 열거된 뒤에 나온 정치적 해석들은 모르고 보았다면, 엄청난 설정으로 보일 정도로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었다.
앞서도 서술되었지만, 이순신에 대한 극찬을 사대주의 및 모화사상에 허우적 거리는 기득권의 표현이라 하지만, 성웅과 같은 시대에 있었던 지도층에 대한 지적을 하나도 없이 포기한 지도층들을 어떻게 방관하면서, 유명수군도독이 조작이란 말이 쉽게 나올까? 그것도 살아 생전 모친. 자신한테는 증조모 권위를 세우려 한 조부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는 더욱이 오늘날 융건릉에 부친 사도 세자를 안장하려고, 계획도시 수원화성을 만들어, 이주시키는 인물이었는데 말이다.
부족한 견해이지만, 실존한 유물이 조작되지 않고, 후대에도 보수하려다 극심하게 훼손된 것이 아님을 전제로 본다면 다음과 같다.
명에서는 유명수군도독을 살아생전에 내렸을 것이다. 허나, 정식이 아닌 개인적이란 핑계를 넣도록 많은 변형이 있었을 것이다. 이를 토대로 성웅이 역성혁명을 일으켜도 되고, 조선을 분열시키라고 해도 되었을 것이다. 물론, 위 이순신의 나라처럼 조선수군을 명수군 기반으로 하려는 의도로서 할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허나, 조선 조정은 물론이고, 그 이전에 어떠한 시련에서도 반역은 생각도 안 했던 이순신은 이를 열거하지 않는 것이 조선을 안정시킬 유일한 방법임을 알고, 이를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적이라 해도 자신의 허물이나 충효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하려는 훈련장으로 일기를 섰다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한 타당성이 있다. 더욱이 명으로서는 상당히 껄끄러운 일을 자기네 기록에 올렸을까? 세종 시기에도 명에서 진행된 고문 방법들이 귀국한 명 황실에서 일한 조선인 궁녀들 증언에 의해, 낱낱이 기록되었는데, 명에는 없다고 해서 조선왕조실록이 거짓을 했겠는가? 조명 양 국한테는 껄끄러운 일 그 자체란 것도 생각해야 한다.
또한 정조 자체도 심환지와 비밀 편지로 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논란은 사그라든다고도 그리고, 이 항목이 거짓이 될 가능성도 높다. 허나, 원균 명장설이 어떠한 권위에도 지적할 수 있는 힘이 없는 어용들의 레퍼토리임을 기억한다면, 이 단어에 대한 논의는 이제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할 이유는 엄청나다. 대한민국이란 정치적 집단이 생존할 힘이 이 진위여부에 대한 상호 검증적 인식. 권력에 굴복하지 않은 인식에서 비로소 그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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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상호교차적 평가가 있어, 권위가 있는 유일한 물증인 조선왕조실록에서 [[정조(조선)]]이 성웅 이순신을 영의정으로 수여하려는 기록에서 나온 것만 기반되어, 매우 취약함을 밝혀둔다.
+허나, 문제는 이 문구가 이후 일제시대나 20세기까지 그 진면목에 대한 인식이 드물었다는 점에서 엄청난 충격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이것이 허구라고 주장하는 세력들 중 대다수가 이순신이 살아생전 속한 정치적 집단인 조선왕조와 그 조정으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이 있었다는 망상이란 환각에 빠진 것이 아닌가란 생각을 할 정도로 당시 조선왕실이나 조정이 권력욕에 빠져 있음을 대놓고 부정한 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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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에 있는 유명수군도독을 증명하는 가지고 있는 유물들이 명에서 정규로 내려진 것이 아니라고 확인한 권위자마저도 그것이 진린이 개인적으로 한 것이란 반청숭명시절에 만들었다는 가설보다도 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추측성 발언이 내놓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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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선후기 성웅을 극찬한 이들도 가만히 보면, 그 중국 영웅들이 속한 집단에서 죄없이 핍박받고 지원은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억지 논리가 아주 꼬박꼬박 박았다. 사실 성웅이란 이명도 업적에는 제대로 기리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충무공이란 호칭도 죽은 직후가 아닌 청한테 깨지고 나서야 부여된 것으로 이 때문에 반청숭명으로 유명수군도독이란 단어가 붙어졌다란 말이 나오기는 하는데,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성웅을 능멸하고 뜯어먹으려는 아귀같은 막장이나 막장 후손들이 죽어라하고, 자신이 핍박한 것을 자기 조상이 뒤질 매국노짓거리는 죽어라하고,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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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정조는 다름아닌 궁에서 나간 혼수용품이 다시 궁으로 들어온 혜경궁 홍씨의 아들이다. 즉, 선조가 부계와 모계에서 영향을 끼치는 군주 임에도 위 단어가 나온 뜻을 전혀 몰랐을까? 실록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면 또 모를 일이다. 정조 역시 극찬을 하면서도 성웅이 겪은 시련에 대해서는 그 원인도 그 결과도 단 하나도 지적없이 침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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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들어, 이러한 명칭이 주목을 받은 것은 군사소설가로 알려진 김경진, 윤민혁, 안병도 공저로 시작된 임진왜란이다. 이미 명량해전을 그린 격류가 있었으니, 노무현 정권 나팔수라 평가되는 정연주에 의해 억지로 진행된 불멸의 이순신이 심각한 역사왜곡으로 인해, 위 임진왜란은 그에 대항하는 포지션으로 밀고 나갔다. 허나, 이 당시에는 원균 명장설이란 역겨움과의 싸움이다보니, 물증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으로 인해, 사그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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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문서를 처음 작성하는 글쓴이 역시 원균 명장설에 허우적 거리는 말기이었으니, 그 단어가 지니는 의의와 조선 후기에 대한 요약이 어떻게 끝나는지를 전혀 인지하기 힘들었다는 점에서 지금도 답답할 따름이다.
+ 다시 이러한 논의를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재에도 대체역사에서 나름 영향력이 있는 [[슈타인호프]]가 10년간의 준비기간을 통해, 연재한 [[이순신의 나라]]였다. 여기에서는 원 역사에서는 죽은 뒤가 되는 1598년 1월에 명에서 내려진 것으로 설정되었다. 허나, 그 관직명이 조정에서 열거된 뒤에 나온 정치적 해석들은 모르고 보았다면, 엄청난 설정으로 보일 정도로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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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도 서술되었지만, 이순신에 대한 극찬을 사대주의 및 모화사상에 허우적 거리는 기득권의 표현이라 하지만, 성웅과 같은 시대에 있었던 지도층에 대한 지적을 하나도 없이 포기한 지도층들을 어떻게 방관하면서, 유명수군도독이 조작이란 말이 쉽게 나올까? 그것도 살아 생전 모친. 자신한테는 증조모 권위를 세우려 한 조부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는 더욱이 오늘날 융건릉에 부친 사도 세자를 안장하려고, 계획도시 수원화성을 만들어, 이주시키는 인물이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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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견해이지만, 실존한 유물이 조작되지 않고, 후대에도 보수하려다 극심하게 훼손된 것이 아님을 전제로 본다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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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에서는 유명수군도독을 살아생전에 내렸을 것이다. 허나, 정식이 아닌 개인적이란 핑계를 넣도록 많은 변형이 있었을 것이다. 이를 토대로 성웅이 역성혁명을 일으켜도 되고, 조선을 분열시키라고 해도 되었을 것이다. 물론, 위 이순신의 나라처럼 조선수군을 명수군 기반으로 하려는 의도로서 할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 허나, 조선 조정은 물론이고, 그 이전에 어떠한 시련에서도 반역은 생각도 안 했던 이순신은 이를 열거하지 않는 것이 조선을 안정시킬 유일한 방법임을 알고, 이를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적이라 해도 자신의 허물이나 충효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하려는 훈련장으로 일기를 섰다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한 타당성이 있다. 더욱이 명으로서는 상당히 껄끄러운 일을 자기네 기록에 올렸을까? 세종 시기에도 명에서 진행된 고문 방법들이 귀국한 명 황실에서 일한 조선인 궁녀들 증언에 의해, 낱낱이 기록되었는데, 명에는 없다고 해서 조선왕조실록이 거짓을 했겠는가? 조명 양 국한테는 껄끄러운 일 그 자체란 것도 생각해야 한다.
+또한 정조 자체도 심환지와 비밀 편지로 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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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은 사그라든다고도 그리고, 이 항목이 거짓이 될 가능성도 높다. 허나, 원균 명장설이 어떠한 권위에도 지적할 수 있는 힘이 없는 어용들의 레퍼토리임을 기억한다면, 이 단어에 대한 논의는 이제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할 이유는 엄청나다. 대한민국이란 정치적 집단이 생존할 힘이 이 진위여부에 대한 상호 검증적 인식. 권력에 굴복하지 않은 인식에서 비로소 그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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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이 문서는 상호교차적 평가가 있어, 권위가 있는 유일한 물증인 조선왕조실록에서 [[정조(조선)]]이 성웅 이순신을 영의정으로 수여하려는 기록에서 나온 것만 기반되어, 매우 취약함을 밝혀둔다.',
1 => '허나, 문제는 이 문구가 이후 일제시대나 20세기까지 그 진면목에 대한 인식이 드물었다는 점에서 엄청난 충격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이것이 허구라고 주장하는 세력들 중 대다수가 이순신이 살아생전 속한 정치적 집단인 조선왕조와 그 조정으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이 있었다는 망상이란 환각에 빠진 것이 아닌가란 생각을 할 정도로 당시 조선왕실이나 조정이 권력욕에 빠져 있음을 대놓고 부정한 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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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현재 국내에 있는 유명수군도독을 증명하는 가지고 있는 유물들이 명에서 정규로 내려진 것이 아니라고 확인한 권위자마저도 그것이 진린이 개인적으로 한 것이란 반청숭명시절에 만들었다는 가설보다도 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추측성 발언이 내놓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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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그리고, 조선후기 성웅을 극찬한 이들도 가만히 보면, 그 중국 영웅들이 속한 집단에서 죄없이 핍박받고 지원은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억지 논리가 아주 꼬박꼬박 박았다. 사실 성웅이란 이명도 업적에는 제대로 기리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충무공이란 호칭도 죽은 직후가 아닌 청한테 깨지고 나서야 부여된 것으로 이 때문에 반청숭명으로 유명수군도독이란 단어가 붙어졌다란 말이 나오기는 하는데,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성웅을 능멸하고 뜯어먹으려는 아귀같은 막장이나 막장 후손들이 죽어라하고, 자신이 핍박한 것을 자기 조상이 뒤질 매국노짓거리는 죽어라하고,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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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거기에 정조는 다름아닌 궁에서 나간 혼수용품이 다시 궁으로 들어온 혜경궁 홍씨의 아들이다. 즉, 선조가 부계와 모계에서 영향을 끼치는 군주 임에도 위 단어가 나온 뜻을 전혀 몰랐을까? 실록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면 또 모를 일이다. 정조 역시 극찬을 하면서도 성웅이 겪은 시련에 대해서는 그 원인도 그 결과도 단 하나도 지적없이 침묵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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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21세기 들어, 이러한 명칭이 주목을 받은 것은 군사소설가로 알려진 김경진, 윤민혁, 안병도 공저로 시작된 임진왜란이다. 이미 명량해전을 그린 격류가 있었으니, 노무현 정권 나팔수라 평가되는 정연주에 의해 억지로 진행된 불멸의 이순신이 심각한 역사왜곡으로 인해, 위 임진왜란은 그에 대항하는 포지션으로 밀고 나갔다. 허나, 이 당시에는 원균 명장설이란 역겨움과의 싸움이다보니, 물증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으로 인해, 사그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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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물론, 이 문서를 처음 작성하는 글쓴이 역시 원균 명장설에 허우적 거리는 말기이었으니, 그 단어가 지니는 의의와 조선 후기에 대한 요약이 어떻게 끝나는지를 전혀 인지하기 힘들었다는 점에서 지금도 답답할 따름이다.',
12 => ' 다시 이러한 논의를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재에도 대체역사에서 나름 영향력이 있는 [[슈타인호프]]가 10년간의 준비기간을 통해, 연재한 [[이순신의 나라]]였다. 여기에서는 원 역사에서는 죽은 뒤가 되는 1598년 1월에 명에서 내려진 것으로 설정되었다. 허나, 그 관직명이 조정에서 열거된 뒤에 나온 정치적 해석들은 모르고 보았다면, 엄청난 설정으로 보일 정도로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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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앞서도 서술되었지만, 이순신에 대한 극찬을 사대주의 및 모화사상에 허우적 거리는 기득권의 표현이라 하지만, 성웅과 같은 시대에 있었던 지도층에 대한 지적을 하나도 없이 포기한 지도층들을 어떻게 방관하면서, 유명수군도독이 조작이란 말이 쉽게 나올까? 그것도 살아 생전 모친. 자신한테는 증조모 권위를 세우려 한 조부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는 더욱이 오늘날 융건릉에 부친 사도 세자를 안장하려고, 계획도시 수원화성을 만들어, 이주시키는 인물이었는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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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 허나, 조선 조정은 물론이고, 그 이전에 어떠한 시련에서도 반역은 생각도 안 했던 이순신은 이를 열거하지 않는 것이 조선을 안정시킬 유일한 방법임을 알고, 이를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적이라 해도 자신의 허물이나 충효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하려는 훈련장으로 일기를 섰다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한 타당성이 있다. 더욱이 명으로서는 상당히 껄끄러운 일을 자기네 기록에 올렸을까? 세종 시기에도 명에서 진행된 고문 방법들이 귀국한 명 황실에서 일한 조선인 궁녀들 증언에 의해, 낱낱이 기록되었는데, 명에는 없다고 해서 조선왕조실록이 거짓을 했겠는가? 조명 양 국한테는 껄끄러운 일 그 자체란 것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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