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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일 (금) 01:14: Ferdinando (토론 | 기여)님이 학살에서 "edit" 동작을 수행하여 필터 0이(가) 작동했습니다. 조치: 불허; 필터 설명: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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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 문화대혁명과 소수민족 탄압 등으로 수백만이 희생됬다... 다만 저 수치에 수천만이 포함되 있는건 정책실패인 대약진운동 때문이다. 대약진운동은 의도적인 정책실패였기 때문에 학살이라 볼수있다
 
== 개요 ==
虐殺 한자로는 모질 학에 죽일 살을 쓴다. 국어사전의 의미는 가혹하게 마구 죽임.
일반적으로 단기간에 이루어진 대량 살인, 대규모 집단살해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인다.
 
== 학살 목록 ==
== 학살자 목록 ==
[[파일:학살.jpg|섬네일]]
 
 
왼쪽부터 :
*[[야쿠부 고원]] : [[나이지리아]] 독재자. 군사 쿠데타로 집권. 부족간 분쟁과정에서 학살을 자행. 특히 [[비아프라 전쟁]] 당시 벌인 학살은 악명이 높다.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 [[에티오피아]] 황제가 매우 아끼던 장교지만 쿠데타로 제정을 폐지 후 공화정을 수립, 공산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고위층을 대상으로 숙청을 자행한 바 있다.
*[[김일성]] : 한국전쟁을 일으켜 죽은 사람이 최소 150만에서 많게는 600만까지 나오며, 그를 제외해도 북한에서 정치범수용소 등을 통해 수십만 명을 학살했다.
*[[폴 포트]] : [[킬링필드]]로 학살당한 사람만 최소 1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스마일 엔베르]] : 1차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 국방장관. [[아르메니아 학살]] 명령을 내림.
*[[도조 히데키]] :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동남아, 중국, 미군 포로 수백만 명을 학살했다.
*[[레오폴드 2세]] : [[콩고]]를 개인 사유지로 가지고 있었고, 경영 과정에서 할당량을 못 채운 노동자의 팔을 잘랐고, 또 다시 못 채우면 사형에 처하여 남은 할당량은 동료에게 이전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히틀러의 대선배격
*[[아돌프 히틀러]] : 유대인,집시,장애인,소련군 포로 등을 학살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제3제국의 인종정책으로 인한 학살.<ref>이에 대해 다른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독소전쟁에서 사망한 민간인이 2000만 이상이나 되는데 여기에 홀로코스트까지 포함하면 3000만은 넘는다는 것이다.
이에대해서는 먼저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수부터 보자.
홀로코스트는 유대인 약 590만, 소련군 포로 200만(이 학살의 경우는 포로로 잡아가서 죽인거 보다 포로를 잡지 않고 죽인게 대부분이다 와펜SS에서 저지른 일임), 폴란드인 2백만, 집시 최대 150만.. 이것만 더하면 약 1240만명 정도고.
 
여기에 각종 정치범 사상범등을 집어 넣어서 보는 경향이 있고. 즉, 소련의 전사상자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따지지 않은 것이고,
전사상에 대한 이런 저런 이유를 안 따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ref><ref>첫째. 사실 전사자 문제에 대해서는 "학살" 이라고 볼수 없는 개념이 있으며 당연하지만 소련인을 죽인것과 비인도적 학살을 단행한 것은 틀리다. 즉, 소련인 2000만에 대한 주장은 단순한 학살 개념이 아니고 저항군운동이나 기타 여러가지 여건을 모두 포함한 것으로 국제법상으로 보면 이건 전쟁범죄나 학살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볼수 있다. 뭐 당연히 무자비한 폭력이나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문제는 저 소련인 2천만의 죽음은 애석하게도 실은 스탈린의 책임도 피할수 없는 문제이다. -_-
그나마 저정도인 이유는 사실 독일군의 당시 현황에 있었는데, 주 공세를 펴는 부대가 국방군이었을 경우 의외로 전사는 많아도 가혹행위로 학살되지는 않았다고 한다.(물론 그 후에 포로수용에서 죽은 건 함정이니지만..) 문제는 그놈의 와펜 SS의 경우는 포로에 대한 잔혹행위를 하거나 처형하는 경우가 하도 많았고 때문에 반대로 이 와펜 SS때문에 독일군 포로들도 몸성하게 돌아간 경우가 적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당시 소련의 전사 및 실종자는 약 760만으로 집계되고, 따라서 2000만 중에서 민간인은 약 1240만 정도로 볼수 있는데 이들이 죽은 이유는 "전쟁때문이지만 학살은 아닌것" 이다. 즉, 홀로코스트의 기준이 문제인거임. 여기서 약간의 뉘앙스의 전달을  잘못 받아들인 사람이 "독일 국방의 무오설을 주장하는것이냐?"라고 썻는데, 국방군의 "무오"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루프트바페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고. 게르니카 학살의 책임이 있다고 할수 있으니까. 단지, 와펜SS에 비교해서 덜 죽였다는 소리다.
 
뒤집어 말하면 단순한 결론이다.
 
물론 독일육군 자체가 "무결점 집단"은 아니다만, 정확히 말하면 선전성이나 SS와 달리 인종주의 정책을 직접 입안하고 시행하는 주체는 아니었다. 이에 대해서 분명 SS와 협력하여 가혹행위에 연루된 것부터 하여 포로 처형등에 관여한 일은 있었던 것으로 볼수 있지만, 애초에 친위대보다는 인종적 문제로 인한 학살을 벌일 개연성이 적었던 거다.
 
단지 이에 대해서 루프트바페를 선상에 넣고 같은 경우로 보자면 어쩔수 없는 경우이만, 정확히 하자면 "개중에 그나마 나은 축"에 속하긴 했다 정도로 요약하겠다. </ref><ref>둘째. 또한 소련의 "민간인 피해"가 크다는 반증은 반대로 "저항군 활동(파르티잔)"이 활성화 되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만, 독일군의 경우는 이에 대해서 아주 가혹했으며 또한 독일측에 붙은 비 공산주의자들이 자경대를 만들어서 나치에 협력해 많은 수를 죽였다. 게다가 당시 독일의 전략은 말그대로 "밀어버리는" 방법이었고 때문에 사실상 학살이나 가혹행위보다 더 많은 숫자가 굶거나 얼어죽은 것으로 볼수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학살책임"이 전제되지 않는 것이지.
여기서 "굶거나 얼어죽은 것을 포함 안시키면 스탈린의 우크라이나 대기근같은건 보통 학살 통계에 넣는 이유가?"라고 의문점을 제시할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스탈린의 경우 "정책"으로 인한 것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히틀러와의 차이점은 "내국"의 문제이기 때문에 책임 소재가 명확한 거고.
게다가 스탈린의 경우는 본인의 전략적 실패로 털어먹은 것도 상당해서 사실상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도 있고. 독소전의 소련의 저력중 가장 눈에 띄는 하나를 보자면 솔직히 개인적으로 그렇거니와.. "저러고도 이겼다"는 자체가 신기하다는 거다. 어떤 의미로는 주코브 같은 지휘관들도 있었던 반면 대숙청 이후에 지휘부가 제대로 형성 안된 소련군의 문제로 인해서 그냥 "갈아넣은" 경우도 많았고...
무엇보다 그 문제 많은 정치장교 시스템도 개선하지 못하고 돌리다가 1944년에 이르러서야 정치장교들이 군사교육을 제대로 받고 임관하던 걸 보면 참으로 이긴게 신기할 지경이니까.
바꿔 말하면, 홀로코스트나 다른 문제가 "명확한" 문제인 이유는 일단 "독일군 영역"에서 벌어진 학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기준이 "전쟁범죄"로 바뀌지만, 대약진운동이나 강제이주에 의한 사상문제는 "전쟁범죄"의 기준을 벗어나기 때문에 기준이 다른 것으로 볼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한다.
전시에 적군을 죽이는 것 자체가 범죄가 아니다. 게다가 적국 국민에게 구호의 의무도 없었을 테고.</ref>
*[[이오시프 스탈린]] : [[대숙청]],[[홀로도모르]],[[굴라그]]에서의 학살과 정책실패<ref>스탈린의 경우 정책실패가 포함되었지만 마오쩌뚱과 다른 것은 그의 공업화정책이 매우 의도적이어서 애초부터 희생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오쩌뚱이 '''비의도적''' 정책실패라면 스탈린은 '''비인도적''' 정책실패라고 해야겠다.</ref> , 소수민족 강제이주 등<ref>여기서 스탈린의 학살 수치에 독소전쟁의 사망자가 포함되 과장되었다는 주장도 종종나온다.
허나 대숙청이나 기타 여건으로 인해서 스탈린 치하에 죽은 사람들의 숫자는 어마무시하다. 떼로 쳐형된 것도 히틀러의 쌍벽을 이루고. 허나 이 경우도 "공인된 숫자"는 대략 970만 정도로 볼수 있다. 즉, 이게 스탈린의 딜레마인데, 이 스탈린식 숙청극의 경우는 NKVD, 즉 KGB 조직에 의해서 관리되고 숙청된 경우라서 독소전 피해 숫자로 보기엔 무리하고 생각된다. 이유가.. 일단 독소전의 민간인 피해 최대 수치는 2500만 정도이다. 따라서 스탈린이 제멋에 죽인 사람들을 대입해 보면 결국 전사 760만을 합쳐서 사실상 3200만 정도로 볼수 있으므로 애저녁에 저 수치를 넘어가는 바다. 오히려 저 수치는 그냥 굴라그에 몰아 넣은 정치범을 학살한 숫자로 보는게 맞다.(참고로 솔제니친과 같은 "스탈린 비판자들의 주장"을 실제로 대입해 보면 문제는 우크라이나 대기근에 의한 사망만 보더라도 이미 1100만 이상의 사망이 나온 상태이다. 따라서 도저히 수치가 맞지 않는데, 이유는 솔제니친의 주장은 우크라이나 대기근이 스탈린의 학살에 들어가지 않으며 발진티푸스의 문제로 많은 이들이 죽은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허나 이 문제는 사실 스탈린의 정책실패, 특히나 과도한 공업화 몰빵으로 상대적으로 도시는 덜 죽어가는데 농촌은 작살났던 당시의 문제에서 비롯했다고 보기 때문에 중국의 대약진 운동과 같은 일종의 내정 대실패에 해당하는 것이고 당연히 스탈린에게 책임을 지워야 할 문제이긴 하다.)</ref> <ref>정리하면... 첫째. 소련정부 발표 등을 근거로 추산한 대숙청부터 우크라이나 대기근 등의 경우를 합친 사망자수는 대략 970만 정도 된다. </ref><ref>둘째. 문제는 여기서 대부분의 기록이 누락 되었다는 점. 특히나 대숙청 기간중에 죽어간 사람들의 문제라든가(이 경우는 적당한 기록도 없이 그냥 강제 이주 당하다가 기찻간에서 죽으면 시체를 쌓아 버렸다고 하므로..) 소련에서 NKVD(KGB)의 집계로 "처형" 당한 사람만 60만인 관계로...(그다음에 가족은 굴라그 에 끌려가서 거기서 죽었겠지...) 사실상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ref><ref>셋째. 독소전 사망자는 2000만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학계에서는 1500~2500만 사이로 주장되고 있으며(전사 제외) 따라서 그 기록을 생각해 보면 "독소전 사상자를 포함해서 2000만을 죽였다고 보기엔 기록이 애매한 점"이 많다. 결론적으로 아마 저 그림을 만든 사람은 "스탈린에 의해서 학살된 사람들의 최대치"를 기준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히틀러에 의해서 학살된 사람들이 경우도 1300만정도가 평균인데 반해서 1700만을 주장했기 때문에 통설로 주장되는 최대치를 기용한 것으로 보인다. </ref><ref>여기서 "공식 사망자 수는 후루쇼프때 나왔고 후루쇼프는 스탈린 격하운동을 벌인 사람인데 왜 축소된 것인가?"라고 의문을 제시할수도 있다. 이 경우 후르시쵸프도 어쩔수 없는 영역이 있었다. 특히나 대숙청 기간간의 문제의 경우 스탈린의 학살을 인정해 버리면 생기는 문제는 소수민족간의 민족갈등 문제가 있을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스탈린을 깐 건 사실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한계란게 있었다. 소련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ref><ref> 참고로 말하자면... 또 첫째.970만 주장이 후르시초프때 처음 나오긴 했다지만, 사실 이후 숫자가 계속 들쭉 날쭉 했었다. 이건 여러 이유가 있지만 "사상자수를 선선히 인정하고 싶어도 못하는 그들만의 사정 문제가 있어서라고 할수 있는데.. 먼저 대부분 굴라그등의 문제와 엮여 있는 것이 NKVD, 즉 KGB 였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 진위에 대해서는 적절한 통제가 가해지던 것이 사실이고...</ref> <ref> 둘째.후르시초프가 스탈린을 아무리 깠어도 그는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 이었던거다. 그의 아젠다는 결국 헝가리의 반공봉기에 대한 개입이나 베를린 장벽의 조성에서 엿볼수 있는데, 스탈린에 대한 비판적 성격을 가진 반면 그 역시도 "소련이라는 국가체제"를 유지하는데는 별 의심이 없었다고 보시면 된다.
따라서 스탈린을 깔만큼은 깠지만 감출만큼은 감췄다고 보면 되겠다.).</ref>
*[[마오쩌둥]] : 문화대혁명과 소수민족 탄압 등으로 수백만이 희생됬다... 다만 저 수치에 수천만이 포함되 있는건 정책실패인 대약진운동 때문이다. 대약진운동은 비의도적인 정책실패였기 때문에 학살이라 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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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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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요 == 虐殺 한자로는 모질 학에 죽일 살을 쓴다. 국어사전의 의미는 가혹하게 마구 죽임. 일반적으로 단기간에 이루어진 대량 살인, 대규모 집단살해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인다. == 학살 목록 == == 학살자 목록 == [[파일:학살.jpg|섬네일]] 왼쪽부터 : *[[야쿠부 고원]] : [[나이지리아]] 독재자. 군사 쿠데타로 집권. 부족간 분쟁과정에서 학살을 자행. 특히 [[비아프라 전쟁]] 당시 벌인 학살은 악명이 높다.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 [[에티오피아]] 황제가 매우 아끼던 장교지만 쿠데타로 제정을 폐지 후 공화정을 수립, 공산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고위층을 대상으로 숙청을 자행한 바 있다. *[[김일성]] : 한국전쟁을 일으켜 죽은 사람이 최소 150만에서 많게는 600만까지 나오며, 그를 제외해도 북한에서 정치범수용소 등을 통해 수십만 명을 학살했다. *[[폴 포트]] : [[킬링필드]]로 학살당한 사람만 최소 1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스마일 엔베르]] : 1차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 국방장관. [[아르메니아 학살]] 명령을 내림. *[[도조 히데키]] :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동남아, 중국, 미군 포로 수백만 명을 학살했다. *[[레오폴드 2세]] : [[콩고]]를 개인 사유지로 가지고 있었고, 경영 과정에서 할당량을 못 채운 노동자의 팔을 잘랐고, 또 다시 못 채우면 사형에 처하여 남은 할당량은 동료에게 이전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히틀러의 대선배격 *[[아돌프 히틀러]] : 유대인,집시,장애인,소련군 포로 등을 학살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제3제국의 인종정책으로 인한 학살.<ref>이에 대해 다른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독소전쟁에서 사망한 민간인이 2000만 이상이나 되는데 여기에 홀로코스트까지 포함하면 3000만은 넘는다는 것이다. 이에대해서는 먼저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수부터 보자. 홀로코스트는 유대인 약 590만, 소련군 포로 200만(이 학살의 경우는 포로로 잡아가서 죽인거 보다 포로를 잡지 않고 죽인게 대부분이다 와펜SS에서 저지른 일임), 폴란드인 2백만, 집시 최대 150만.. 이것만 더하면 약 1240만명 정도고. 여기에 각종 정치범 사상범등을 집어 넣어서 보는 경향이 있고. 즉, 소련의 전사상자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따지지 않은 것이고, 전사상에 대한 이런 저런 이유를 안 따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ref><ref>첫째. 사실 전사자 문제에 대해서는 "학살" 이라고 볼수 없는 개념이 있으며 당연하지만 소련인을 죽인것과 비인도적 학살을 단행한 것은 틀리다. 즉, 소련인 2000만에 대한 주장은 단순한 학살 개념이 아니고 저항군운동이나 기타 여러가지 여건을 모두 포함한 것으로 국제법상으로 보면 이건 전쟁범죄나 학살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볼수 있다. 뭐 당연히 무자비한 폭력이나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문제는 저 소련인 2천만의 죽음은 애석하게도 실은 스탈린의 책임도 피할수 없는 문제이다. -_- 그나마 저정도인 이유는 사실 독일군의 당시 현황에 있었는데, 주 공세를 펴는 부대가 국방군이었을 경우 의외로 전사는 많아도 가혹행위로 학살되지는 않았다고 한다.(물론 그 후에 포로수용에서 죽은 건 함정이니지만..) 문제는 그놈의 와펜 SS의 경우는 포로에 대한 잔혹행위를 하거나 처형하는 경우가 하도 많았고 때문에 반대로 이 와펜 SS때문에 독일군 포로들도 몸성하게 돌아간 경우가 적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당시 소련의 전사 및 실종자는 약 760만으로 집계되고, 따라서 2000만 중에서 민간인은 약 1240만 정도로 볼수 있는데 이들이 죽은 이유는 "전쟁때문이지만 학살은 아닌것" 이다. 즉, 홀로코스트의 기준이 문제인거임. 여기서 약간의 뉘앙스의 전달을 잘못 받아들인 사람이 "독일 국방의 무오설을 주장하는것이냐?"라고 썻는데, 국방군의 "무오"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루프트바페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고. 게르니카 학살의 책임이 있다고 할수 있으니까. 단지, 와펜SS에 비교해서 덜 죽였다는 소리다. 뒤집어 말하면 단순한 결론이다. 물론 독일육군 자체가 "무결점 집단"은 아니다만, 정확히 말하면 선전성이나 SS와 달리 인종주의 정책을 직접 입안하고 시행하는 주체는 아니었다. 이에 대해서 분명 SS와 협력하여 가혹행위에 연루된 것부터 하여 포로 처형등에 관여한 일은 있었던 것으로 볼수 있지만, 애초에 친위대보다는 인종적 문제로 인한 학살을 벌일 개연성이 적었던 거다. 단지 이에 대해서 루프트바페를 선상에 넣고 같은 경우로 보자면 어쩔수 없는 경우이만, 정확히 하자면 "개중에 그나마 나은 축"에 속하긴 했다 정도로 요약하겠다. </ref><ref>둘째. 또한 소련의 "민간인 피해"가 크다는 반증은 반대로 "저항군 활동(파르티잔)"이 활성화 되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만, 독일군의 경우는 이에 대해서 아주 가혹했으며 또한 독일측에 붙은 비 공산주의자들이 자경대를 만들어서 나치에 협력해 많은 수를 죽였다. 게다가 당시 독일의 전략은 말그대로 "밀어버리는" 방법이었고 때문에 사실상 학살이나 가혹행위보다 더 많은 숫자가 굶거나 얼어죽은 것으로 볼수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학살책임"이 전제되지 않는 것이지. 여기서 "굶거나 얼어죽은 것을 포함 안시키면 스탈린의 우크라이나 대기근같은건 보통 학살 통계에 넣는 이유가?"라고 의문점을 제시할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스탈린의 경우 "정책"으로 인한 것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히틀러와의 차이점은 "내국"의 문제이기 때문에 책임 소재가 명확한 거고. 게다가 스탈린의 경우는 본인의 전략적 실패로 털어먹은 것도 상당해서 사실상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도 있고. 독소전의 소련의 저력중 가장 눈에 띄는 하나를 보자면 솔직히 개인적으로 그렇거니와.. "저러고도 이겼다"는 자체가 신기하다는 거다. 어떤 의미로는 주코브 같은 지휘관들도 있었던 반면 대숙청 이후에 지휘부가 제대로 형성 안된 소련군의 문제로 인해서 그냥 "갈아넣은" 경우도 많았고... 무엇보다 그 문제 많은 정치장교 시스템도 개선하지 못하고 돌리다가 1944년에 이르러서야 정치장교들이 군사교육을 제대로 받고 임관하던 걸 보면 참으로 이긴게 신기할 지경이니까. 바꿔 말하면, 홀로코스트나 다른 문제가 "명확한" 문제인 이유는 일단 "독일군 영역"에서 벌어진 학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기준이 "전쟁범죄"로 바뀌지만, 대약진운동이나 강제이주에 의한 사상문제는 "전쟁범죄"의 기준을 벗어나기 때문에 기준이 다른 것으로 볼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한다. 전시에 적군을 죽이는 것 자체가 범죄가 아니다. 게다가 적국 국민에게 구호의 의무도 없었을 테고.</ref> *[[이오시프 스탈린]] : [[대숙청]],[[홀로도모르]],[[굴라그]]에서의 학살과 정책실패<ref>스탈린의 경우 정책실패가 포함되었지만 마오쩌뚱과 다른 것은 그의 공업화정책이 매우 의도적이어서 애초부터 희생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오쩌뚱이 '''비의도적''' 정책실패라면 스탈린은 '''비인도적''' 정책실패라고 해야겠다.</ref> , 소수민족 강제이주 등<ref>여기서 스탈린의 학살 수치에 독소전쟁의 사망자가 포함되 과장되었다는 주장도 종종나온다. 허나 대숙청이나 기타 여건으로 인해서 스탈린 치하에 죽은 사람들의 숫자는 어마무시하다. 떼로 쳐형된 것도 히틀러의 쌍벽을 이루고. 허나 이 경우도 "공인된 숫자"는 대략 970만 정도로 볼수 있다. 즉, 이게 스탈린의 딜레마인데, 이 스탈린식 숙청극의 경우는 NKVD, 즉 KGB 조직에 의해서 관리되고 숙청된 경우라서 독소전 피해 숫자로 보기엔 무리하고 생각된다. 이유가.. 일단 독소전의 민간인 피해 최대 수치는 2500만 정도이다. 따라서 스탈린이 제멋에 죽인 사람들을 대입해 보면 결국 전사 760만을 합쳐서 사실상 3200만 정도로 볼수 있으므로 애저녁에 저 수치를 넘어가는 바다. 오히려 저 수치는 그냥 굴라그에 몰아 넣은 정치범을 학살한 숫자로 보는게 맞다.(참고로 솔제니친과 같은 "스탈린 비판자들의 주장"을 실제로 대입해 보면 문제는 우크라이나 대기근에 의한 사망만 보더라도 이미 1100만 이상의 사망이 나온 상태이다. 따라서 도저히 수치가 맞지 않는데, 이유는 솔제니친의 주장은 우크라이나 대기근이 스탈린의 학살에 들어가지 않으며 발진티푸스의 문제로 많은 이들이 죽은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허나 이 문제는 사실 스탈린의 정책실패, 특히나 과도한 공업화 몰빵으로 상대적으로 도시는 덜 죽어가는데 농촌은 작살났던 당시의 문제에서 비롯했다고 보기 때문에 중국의 대약진 운동과 같은 일종의 내정 대실패에 해당하는 것이고 당연히 스탈린에게 책임을 지워야 할 문제이긴 하다.)</ref> <ref>정리하면... 첫째. 소련정부 발표 등을 근거로 추산한 대숙청부터 우크라이나 대기근 등의 경우를 합친 사망자수는 대략 970만 정도 된다. </ref><ref>둘째. 문제는 여기서 대부분의 기록이 누락 되었다는 점. 특히나 대숙청 기간중에 죽어간 사람들의 문제라든가(이 경우는 적당한 기록도 없이 그냥 강제 이주 당하다가 기찻간에서 죽으면 시체를 쌓아 버렸다고 하므로..) 소련에서 NKVD(KGB)의 집계로 "처형" 당한 사람만 60만인 관계로...(그다음에 가족은 굴라그 에 끌려가서 거기서 죽었겠지...) 사실상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ref><ref>셋째. 독소전 사망자는 2000만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학계에서는 1500~2500만 사이로 주장되고 있으며(전사 제외) 따라서 그 기록을 생각해 보면 "독소전 사상자를 포함해서 2000만을 죽였다고 보기엔 기록이 애매한 점"이 많다. 결론적으로 아마 저 그림을 만든 사람은 "스탈린에 의해서 학살된 사람들의 최대치"를 기준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히틀러에 의해서 학살된 사람들이 경우도 1300만정도가 평균인데 반해서 1700만을 주장했기 때문에 통설로 주장되는 최대치를 기용한 것으로 보인다. </ref><ref>여기서 "공식 사망자 수는 후루쇼프때 나왔고 후루쇼프는 스탈린 격하운동을 벌인 사람인데 왜 축소된 것인가?"라고 의문을 제시할수도 있다. 이 경우 후르시쵸프도 어쩔수 없는 영역이 있었다. 특히나 대숙청 기간간의 문제의 경우 스탈린의 학살을 인정해 버리면 생기는 문제는 소수민족간의 민족갈등 문제가 있을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스탈린을 깐 건 사실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한계란게 있었다. 소련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ref><ref> 참고로 말하자면... 또 첫째.970만 주장이 후르시초프때 처음 나오긴 했다지만, 사실 이후 숫자가 계속 들쭉 날쭉 했었다. 이건 여러 이유가 있지만 "사상자수를 선선히 인정하고 싶어도 못하는 그들만의 사정 문제가 있어서라고 할수 있는데.. 먼저 대부분 굴라그등의 문제와 엮여 있는 것이 NKVD, 즉 KGB 였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 진위에 대해서는 적절한 통제가 가해지던 것이 사실이고...</ref> <ref> 둘째.후르시초프가 스탈린을 아무리 깠어도 그는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 이었던거다. 그의 아젠다는 결국 헝가리의 반공봉기에 대한 개입이나 베를린 장벽의 조성에서 엿볼수 있는데, 스탈린에 대한 비판적 성격을 가진 반면 그 역시도 "소련이라는 국가체제"를 유지하는데는 별 의심이 없었다고 보시면 된다. 따라서 스탈린을 깔만큼은 깠지만 감출만큼은 감췄다고 보면 되겠다.).</ref> *[[마오쩌둥]] : 문화대혁명과 소수민족 탄압 등으로 수백만이 희생됬다... 다만 저 수치에 수천만이 포함되 있는건 정책실패인 대약진운동 때문이다. 대약진운동은 비의도적인 정책실패였기 때문에 학살이라 보기 힘들다. {{각주}} [[분류: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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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 문화대혁명과 소수민족 탄압 등으로 수백만이 희생됬다... 다만 저 수치에 수천만이 포함되 있는건 정책실패인 대약진운동 때문이다. 대약진운동은 의도적인 정책실패였기 때문에 학살이라 볼수있다 {{각주}} [[분류: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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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 +1,4 @@ - - -== 개요 == -虐殺 한자로는 모질 학에 죽일 살을 쓴다. 국어사전의 의미는 가혹하게 마구 죽임. -일반적으로 단기간에 이루어진 대량 살인, 대규모 집단살해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인다. - -== 학살 목록 == -== 학살자 목록 == -[[파일:학살.jpg|섬네일]] - - -왼쪽부터 : -*[[야쿠부 고원]] : [[나이지리아]] 독재자. 군사 쿠데타로 집권. 부족간 분쟁과정에서 학살을 자행. 특히 [[비아프라 전쟁]] 당시 벌인 학살은 악명이 높다.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 [[에티오피아]] 황제가 매우 아끼던 장교지만 쿠데타로 제정을 폐지 후 공화정을 수립, 공산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고위층을 대상으로 숙청을 자행한 바 있다. -*[[김일성]] : 한국전쟁을 일으켜 죽은 사람이 최소 150만에서 많게는 600만까지 나오며, 그를 제외해도 북한에서 정치범수용소 등을 통해 수십만 명을 학살했다. -*[[폴 포트]] : [[킬링필드]]로 학살당한 사람만 최소 1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스마일 엔베르]] : 1차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 국방장관. [[아르메니아 학살]] 명령을 내림. -*[[도조 히데키]] :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동남아, 중국, 미군 포로 수백만 명을 학살했다. -*[[레오폴드 2세]] : [[콩고]]를 개인 사유지로 가지고 있었고, 경영 과정에서 할당량을 못 채운 노동자의 팔을 잘랐고, 또 다시 못 채우면 사형에 처하여 남은 할당량은 동료에게 이전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히틀러의 대선배격 -*[[아돌프 히틀러]] : 유대인,집시,장애인,소련군 포로 등을 학살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제3제국의 인종정책으로 인한 학살.<ref>이에 대해 다른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독소전쟁에서 사망한 민간인이 2000만 이상이나 되는데 여기에 홀로코스트까지 포함하면 3000만은 넘는다는 것이다. -이에대해서는 먼저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수부터 보자. -홀로코스트는 유대인 약 590만, 소련군 포로 200만(이 학살의 경우는 포로로 잡아가서 죽인거 보다 포로를 잡지 않고 죽인게 대부분이다 와펜SS에서 저지른 일임), 폴란드인 2백만, 집시 최대 150만.. 이것만 더하면 약 1240만명 정도고. - -여기에 각종 정치범 사상범등을 집어 넣어서 보는 경향이 있고. 즉, 소련의 전사상자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따지지 않은 것이고, -전사상에 대한 이런 저런 이유를 안 따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ref><ref>첫째. 사실 전사자 문제에 대해서는 "학살" 이라고 볼수 없는 개념이 있으며 당연하지만 소련인을 죽인것과 비인도적 학살을 단행한 것은 틀리다. 즉, 소련인 2000만에 대한 주장은 단순한 학살 개념이 아니고 저항군운동이나 기타 여러가지 여건을 모두 포함한 것으로 국제법상으로 보면 이건 전쟁범죄나 학살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볼수 있다. 뭐 당연히 무자비한 폭력이나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문제는 저 소련인 2천만의 죽음은 애석하게도 실은 스탈린의 책임도 피할수 없는 문제이다. -_- -그나마 저정도인 이유는 사실 독일군의 당시 현황에 있었는데, 주 공세를 펴는 부대가 국방군이었을 경우 의외로 전사는 많아도 가혹행위로 학살되지는 않았다고 한다.(물론 그 후에 포로수용에서 죽은 건 함정이니지만..) 문제는 그놈의 와펜 SS의 경우는 포로에 대한 잔혹행위를 하거나 처형하는 경우가 하도 많았고 때문에 반대로 이 와펜 SS때문에 독일군 포로들도 몸성하게 돌아간 경우가 적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당시 소련의 전사 및 실종자는 약 760만으로 집계되고, 따라서 2000만 중에서 민간인은 약 1240만 정도로 볼수 있는데 이들이 죽은 이유는 "전쟁때문이지만 학살은 아닌것" 이다. 즉, 홀로코스트의 기준이 문제인거임. 여기서 약간의 뉘앙스의 전달을 잘못 받아들인 사람이 "독일 국방의 무오설을 주장하는것이냐?"라고 썻는데, 국방군의 "무오"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루프트바페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고. 게르니카 학살의 책임이 있다고 할수 있으니까. 단지, 와펜SS에 비교해서 덜 죽였다는 소리다. - -뒤집어 말하면 단순한 결론이다. - -물론 독일육군 자체가 "무결점 집단"은 아니다만, 정확히 말하면 선전성이나 SS와 달리 인종주의 정책을 직접 입안하고 시행하는 주체는 아니었다. 이에 대해서 분명 SS와 협력하여 가혹행위에 연루된 것부터 하여 포로 처형등에 관여한 일은 있었던 것으로 볼수 있지만, 애초에 친위대보다는 인종적 문제로 인한 학살을 벌일 개연성이 적었던 거다. - -단지 이에 대해서 루프트바페를 선상에 넣고 같은 경우로 보자면 어쩔수 없는 경우이만, 정확히 하자면 "개중에 그나마 나은 축"에 속하긴 했다 정도로 요약하겠다. </ref><ref>둘째. 또한 소련의 "민간인 피해"가 크다는 반증은 반대로 "저항군 활동(파르티잔)"이 활성화 되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만, 독일군의 경우는 이에 대해서 아주 가혹했으며 또한 독일측에 붙은 비 공산주의자들이 자경대를 만들어서 나치에 협력해 많은 수를 죽였다. 게다가 당시 독일의 전략은 말그대로 "밀어버리는" 방법이었고 때문에 사실상 학살이나 가혹행위보다 더 많은 숫자가 굶거나 얼어죽은 것으로 볼수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학살책임"이 전제되지 않는 것이지. -여기서 "굶거나 얼어죽은 것을 포함 안시키면 스탈린의 우크라이나 대기근같은건 보통 학살 통계에 넣는 이유가?"라고 의문점을 제시할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스탈린의 경우 "정책"으로 인한 것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히틀러와의 차이점은 "내국"의 문제이기 때문에 책임 소재가 명확한 거고. -게다가 스탈린의 경우는 본인의 전략적 실패로 털어먹은 것도 상당해서 사실상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도 있고. 독소전의 소련의 저력중 가장 눈에 띄는 하나를 보자면 솔직히 개인적으로 그렇거니와.. "저러고도 이겼다"는 자체가 신기하다는 거다. 어떤 의미로는 주코브 같은 지휘관들도 있었던 반면 대숙청 이후에 지휘부가 제대로 형성 안된 소련군의 문제로 인해서 그냥 "갈아넣은" 경우도 많았고... -무엇보다 그 문제 많은 정치장교 시스템도 개선하지 못하고 돌리다가 1944년에 이르러서야 정치장교들이 군사교육을 제대로 받고 임관하던 걸 보면 참으로 이긴게 신기할 지경이니까. -바꿔 말하면, 홀로코스트나 다른 문제가 "명확한" 문제인 이유는 일단 "독일군 영역"에서 벌어진 학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기준이 "전쟁범죄"로 바뀌지만, 대약진운동이나 강제이주에 의한 사상문제는 "전쟁범죄"의 기준을 벗어나기 때문에 기준이 다른 것으로 볼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한다. -전시에 적군을 죽이는 것 자체가 범죄가 아니다. 게다가 적국 국민에게 구호의 의무도 없었을 테고.</ref> -*[[이오시프 스탈린]] : [[대숙청]],[[홀로도모르]],[[굴라그]]에서의 학살과 정책실패<ref>스탈린의 경우 정책실패가 포함되었지만 마오쩌뚱과 다른 것은 그의 공업화정책이 매우 의도적이어서 애초부터 희생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오쩌뚱이 '''비의도적''' 정책실패라면 스탈린은 '''비인도적''' 정책실패라고 해야겠다.</ref> , 소수민족 강제이주 등<ref>여기서 스탈린의 학살 수치에 독소전쟁의 사망자가 포함되 과장되었다는 주장도 종종나온다. -허나 대숙청이나 기타 여건으로 인해서 스탈린 치하에 죽은 사람들의 숫자는 어마무시하다. 떼로 쳐형된 것도 히틀러의 쌍벽을 이루고. 허나 이 경우도 "공인된 숫자"는 대략 970만 정도로 볼수 있다. 즉, 이게 스탈린의 딜레마인데, 이 스탈린식 숙청극의 경우는 NKVD, 즉 KGB 조직에 의해서 관리되고 숙청된 경우라서 독소전 피해 숫자로 보기엔 무리하고 생각된다. 이유가.. 일단 독소전의 민간인 피해 최대 수치는 2500만 정도이다. 따라서 스탈린이 제멋에 죽인 사람들을 대입해 보면 결국 전사 760만을 합쳐서 사실상 3200만 정도로 볼수 있으므로 애저녁에 저 수치를 넘어가는 바다. 오히려 저 수치는 그냥 굴라그에 몰아 넣은 정치범을 학살한 숫자로 보는게 맞다.(참고로 솔제니친과 같은 "스탈린 비판자들의 주장"을 실제로 대입해 보면 문제는 우크라이나 대기근에 의한 사망만 보더라도 이미 1100만 이상의 사망이 나온 상태이다. 따라서 도저히 수치가 맞지 않는데, 이유는 솔제니친의 주장은 우크라이나 대기근이 스탈린의 학살에 들어가지 않으며 발진티푸스의 문제로 많은 이들이 죽은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허나 이 문제는 사실 스탈린의 정책실패, 특히나 과도한 공업화 몰빵으로 상대적으로 도시는 덜 죽어가는데 농촌은 작살났던 당시의 문제에서 비롯했다고 보기 때문에 중국의 대약진 운동과 같은 일종의 내정 대실패에 해당하는 것이고 당연히 스탈린에게 책임을 지워야 할 문제이긴 하다.)</ref> <ref>정리하면... 첫째. 소련정부 발표 등을 근거로 추산한 대숙청부터 우크라이나 대기근 등의 경우를 합친 사망자수는 대략 970만 정도 된다. </ref><ref>둘째. 문제는 여기서 대부분의 기록이 누락 되었다는 점. 특히나 대숙청 기간중에 죽어간 사람들의 문제라든가(이 경우는 적당한 기록도 없이 그냥 강제 이주 당하다가 기찻간에서 죽으면 시체를 쌓아 버렸다고 하므로..) 소련에서 NKVD(KGB)의 집계로 "처형" 당한 사람만 60만인 관계로...(그다음에 가족은 굴라그 에 끌려가서 거기서 죽었겠지...) 사실상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ref><ref>셋째. 독소전 사망자는 2000만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학계에서는 1500~2500만 사이로 주장되고 있으며(전사 제외) 따라서 그 기록을 생각해 보면 "독소전 사상자를 포함해서 2000만을 죽였다고 보기엔 기록이 애매한 점"이 많다. 결론적으로 아마 저 그림을 만든 사람은 "스탈린에 의해서 학살된 사람들의 최대치"를 기준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히틀러에 의해서 학살된 사람들이 경우도 1300만정도가 평균인데 반해서 1700만을 주장했기 때문에 통설로 주장되는 최대치를 기용한 것으로 보인다. </ref><ref>여기서 "공식 사망자 수는 후루쇼프때 나왔고 후루쇼프는 스탈린 격하운동을 벌인 사람인데 왜 축소된 것인가?"라고 의문을 제시할수도 있다. 이 경우 후르시쵸프도 어쩔수 없는 영역이 있었다. 특히나 대숙청 기간간의 문제의 경우 스탈린의 학살을 인정해 버리면 생기는 문제는 소수민족간의 민족갈등 문제가 있을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스탈린을 깐 건 사실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한계란게 있었다. 소련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ref><ref> 참고로 말하자면... 또 첫째.970만 주장이 후르시초프때 처음 나오긴 했다지만, 사실 이후 숫자가 계속 들쭉 날쭉 했었다. 이건 여러 이유가 있지만 "사상자수를 선선히 인정하고 싶어도 못하는 그들만의 사정 문제가 있어서라고 할수 있는데.. 먼저 대부분 굴라그등의 문제와 엮여 있는 것이 NKVD, 즉 KGB 였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 진위에 대해서는 적절한 통제가 가해지던 것이 사실이고...</ref> <ref> 둘째.후르시초프가 스탈린을 아무리 깠어도 그는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 이었던거다. 그의 아젠다는 결국 헝가리의 반공봉기에 대한 개입이나 베를린 장벽의 조성에서 엿볼수 있는데, 스탈린에 대한 비판적 성격을 가진 반면 그 역시도 "소련이라는 국가체제"를 유지하는데는 별 의심이 없었다고 보시면 된다. -따라서 스탈린을 깔만큼은 깠지만 감출만큼은 감췄다고 보면 되겠다.).</ref> -*[[마오쩌둥]] : 문화대혁명과 소수민족 탄압 등으로 수백만이 희생됬다... 다만 저 수치에 수천만이 포함되 있는건 정책실패인 대약진운동 때문이다. 대약진운동은 비의도적인 정책실패였기 때문에 학살이라 보기 힘들다. - - +*[[마오쩌둥]] : 문화대혁명과 소수민족 탄압 등으로 수백만이 희생됬다... 다만 저 수치에 수천만이 포함되 있는건 정책실패인 대약진운동 때문이다. 대약진운동은 의도적인 정책실패였기 때문에 학살이라 볼수있다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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