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의 한 길로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작곡가이며 음악 감독, 시인, 서예가인 박종화1990년에 발표한 민중가요. 힘차고 강렬한 사운드와 투쟁 의지를 불태우는 가사 때문에 1990년대 초반 학생운동 현장에서 정말정말정말정말 사랑받은 곡이다.

가사[편집 | 원본 편집]

1절
역사의 부름 앞에 부끄러운 자 되어
조국을 등질 수 없어 나로부터 가노라
풀 한 포기 하나도 자유로울 수 없는
식민의 땅 아들아 어서 일어나거라

후렴
붉은 태양 떠올라 깃발이 서면
탄압의 총소리 나를 부르는 함성
나서거라 투쟁의 한 길로 산산이 부서지거라
그대 따라 이 내 몸도 투쟁의 한 길로

2절
기쁠 때 같이 웃고 슬픔은 나눠 가져
우리 모두 더불어 사는 새 날 위해 나가자
이 땅의 청년들아 너와 내가 하나 되어
향그러운 우리 강산 손을 잡고 달려가자

설명[편집 | 원본 편집]

광주 출신으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고, 전남대 82학번으로서 적극적으로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민중가요 작곡가 박종화의 대표곡 중 하나이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노래운동이 대학가로 확산되면서 학생운동가 출신의 아티스트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박종화. 이 곡 역시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보다는 학생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가사 자체가 청년 대학생들을 화자 혹은 청자로 설정하여 쓰였고, 실제로 학생운동 현장에서 널리 불렸다.

1991년 분신정국 당시에는 학생운동 현장에서 문자 그대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경찰 곤봉에 머리를 맞고 세상을 떠난 강경대 열사가 생전에 가장 즐겨 불렀던 노래라 하여 당시 추모 분위기를 타고 빠르게 퍼져나간 것을 주요 이유로 꼽는다. 다만 가사의 내용이 지나치게 청년학생의 범위에 국한된 관계로 노동운동, 농민운동, 빈민운동 등으로 확산되어 나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가사에 등장하는 '조국을 등질 수 없어', '식민의 땅 아들아', '향그러운 우리 강산' 등의 시어에서 알 수 있듯이 NL 성향이 강한 곡이다. 특히 '향그러운 우리 강산' 같은 시어는 민족 개념을 지배계급의 프로파간다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하는 PD나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국경선을 넘어선 노동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강조하는 IST의 입장에서 보기엔 굉장히 껄끄러운 표현이다. 그런 속에서도 민족주의적 경향이 학생운동권 전반에 강하게 깔려 있었던 관계로 분신정국에서 그렇게 큰 인기를 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