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모필레 전투

이방인이여, 가서 라케다이몬[1] 사람들에게 전하시오.
우리는 조국의 명에 따라 이 곳에 누워 있노라고.
Ὦ ξεῖν', ἀγγέλλειν Λακεδαιμονίοις ὅτι τῇδε
κείμεθα, τοῖς κείνων ῥήμασι πειθόμενοι.

— 시모니데스의 비문
테르모필레 전투
Μάχη των Θερμοπυλών
제2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날짜
기원전 480년 8월 또는 9월
장소
그리스 남부 테르모필레 협곡
교전국
그리스 연합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
지휘관
레오니다스 1세†
데모필로스†
크세르크세스 1세
마르도니오스
히다르네스
병력
스파르타인 300명
테스피아이인 700명
테베인 400명
그 외 수 백명
-
피해 규모
- -
결과
페르시아군의 승리
페르시아의 보이오티아 점령

테르모필레 전투(영어: Battle of Thermopylae)는 제2차 페르시아 전쟁 중 기원전 480년 8월 또는 9월에 벌어진 그리스 연합과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 간의 전투이다. 사령관이자 스파르타(라케다이몬) 국왕 레오니다스 1세를 비롯하여, 이 전투에 참전한 그리스 연합군 대부분이 전멸했다.

테르모필레는 그리스어로 '뜨거운 문'이라는 뜻으로 인근에 온천이 있어서 붙은 지명이다.

배경[편집 | 원본 편집]

크세르크세스는 사절을 스파르타로 보내 항복할 것을 권유했다. 협력만 잘 해준다면 '페르시아인의 친구'로서 지금 가지고 있는 땅보다 더 비옥한 땅을 줄 것이라는 제안 또한 잊지 않았다. 무기를 내려놓으면 목숨을 보장하겠는 말에 레오니다스 1세는 이렇게 응수했다.

직접 와서 가져가시오!
Μολών λαβέ![2]

발단[편집 | 원본 편집]

헤로도토스의 <역사> 7권 '폴리힘니아(Polyhymnia)'에 의하면 레오니다스는 그리스 연합군을 이끌고 행군하기 전 델포이에서 이러한 신탁을 받았다고 한다.

오, 광대한 라케다이몬(스파르타)에 살아가는 이들이여!
카르네이아 제전[3]을 받들어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들의 영광스러운 도시가 페르세우스의 자손들[4]에게 초토화되거나,
위대한 헤라클레스의 후손인 왕[5]을 잃은 슬픔에

온 라코니아인들이 애도하게 되리라.

이 신탁을 해석하면 스파르타에게 주어진 운명은 총 세 가지였다.

  1. 카르네이아 제전을 열고 출병하지 않는다.
  2. 출병하여 스파르타의 도시가 파괴된다.
  3. 출병하여 스파르타의 왕이 죽는다.

전투의 결과를 생각하면 실로 굉장한 신탁이 아닐 수 없다.

전개[편집 | 원본 편집]

결과[편집 | 원본 편집]

의의[편집 | 원본 편집]

대중 매체[편집 | 원본 편집]

  • This is Sparta~!!그래픽 노블 및 영화 300에서 이 전투를 다뤘다. 고증은 생각하지 않는 쪽이 좋지만.

각주

  1. 스파르타와 라코니아 일대를 가리키는 스파르타의 정식 명칭.
  2. '몰론 라베' 정도로 발음한다.
  3. 스파르타의 국가 제전 중 하나로, 아폴로 카르네우스를 기리는 종교 축제. 스파르타 법률 상 이 기간 동안에는 그 어떠한 군사적 행동도 금지되었다.
  4. 아케메네스 왕조의 창시자인 아케메네스(하캄마니쉬)는 그리스의 영웅 페르세우스의 아들이자 제우스의 손자라는 전설이 있다.
  5. 대대로 스파르타의 왕은 헤라클레스의 직계 혈통이라는 전설이 있다. 공교롭게도 테르모필레 협곡 서쪽 인근에는 헤라클레스가 최후를 맞이한 오이타 산이 위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