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매미

태풍 매미
MAEMI.png
태풍 정보
발생 2003년 9월 6일
소멸 2003년 9월 13일
최대풍속 54.0 m/s (10분 평균)
최저기압 910.0 hPa
영향지역 대한민국
인명피해 135명
재산피해 4조 8,750억원
Maemi 12sep1224 utc.gif

2002년태풍 루사에 이어 2003년 초가을 대한민국을 강타한 네임드 태풍. 매미는 북한에서 제출한 이름으로 우리가 아는 그 매미가 맞다. 워낙에 큰 피해를 내어 버린 바람에 그 이름은 영구제명 되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 북한에서 제출한 무지개(MUJIGAE)로 대체되었다. 막대한 피해를 입은 탓에 매미부터 초가을에 발생하는 태풍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 상륙한 태풍 중에서 이 태풍보다 강력했던 태풍은 사라밖에 없었으며, 발생 시기와 상륙 당시 한반도를 통과하는 경로 역시 매미와 사라는 꽤 유사한 패턴을 보여주었다.

발생에서 소멸까지[편집 | 원본 편집]

2003년 9월 4일 새벽에 발생한 열대저기압이 9월 6일 오후 3시에 괌 부근에서 태풍 매미로 모습을 바꾸었다. 진행 속도가 느린 탓에 기상청에서는 앞으로의 진행도 느릴 것이라 판단했으나 9월 9일에 남중국해에 접하더니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9월 10일에 중심 기압 910hPa, 중심 풍속 75m/s를 찍으며 카테고리 5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최대로 성장한 매미는 진로를 서에서 동으로 틀면서 북상했고, 경로상의 일본 미야코섬과 대한민국 남부 지방에 상륙해 큰 피해를 입혔다. 제주도를 스쳐 지나갈때에는 최대 풍속 60m/s를 기록했는 데, 풍속계의 측정한계치여서 실제로는 더 높았을 것이다. 중형 크기로 대한민국 경상남도 고성군에 상륙한 매미는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남동임해공업지역으로 이어진 마산-진해-부산을 차례로 타격하고 경상북도 울주군 해상으로 빠져나가 2003년 9월 14일 홋카이도 북해상에서 소멸했다.

경로 요약[편집 | 원본 편집]

2003년 9월 6일 15시경 북서쪽 약 400㎞ 부근 해상에서 TS급으로 발달하하면서 태풍의 이름이 부여되었다. 이후 9월 8일 03시경 강한 열대폭풍(STS)으로 발달하고, 9일 09시경 강도는 ‘강’, 크기는 ‘중형’인 TY급(중심기압 960hPa)으로 급속도로 발달하였다. 9월 11일 새벽 태풍은 중심기압이 910hPa로 크게 발달하면서 최성기를 이루었고, 같은 날 09시경 전향한 후 11일 15시경 22㎞/h의 속도로 점차 빠르게 북진하였다.

9월 11일 21시경 이 태풍은 점차 약화되면서[1] 12일 06시경 제주도 서귀포 남남서쪽 약 420㎞ 부근 해상에서 약 30㎞/h의 빠른 속도로 북북동진을 하면서 한반도 방향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9월 12일 15시경 제주도 서귀포 남동쪽 약 75㎞ 부근 해상까지 접근하여 17시경 제주도 동쪽 해상을 통과하면서 최대순간풍속이 60m/s로 우리나라 관측(1904년)이래 최대순간풍속 극값을 경신하였으며, 이후 급속도로 경상남도 남해 해상으로 북상하면서 19시경 여수의 최대순간풍속이 49.2m/s 여수기상대 창설(1942년 2월)이후 극값을 경신하였다.기록 파괴자

9월 12일 20시경 경상남도 사천시 부근 해안으로 상륙하였으며, 이 때의 추정 중심기압은 약 954hPa, 중심부근 최대풍속은 약 40m/s로 강한 바람과 함께 많은 비를 동반하였고, 특히 거제도 부이에 기록된 파고는 약 17m였으며, 이 파도는 그대로 마산항 일대에 폭풍해일을 일으켜서 쑥대밭을 만들었다. 상륙 이후에는 북북동진하여 경상남도 함안을 거쳐 13일 02시 30분경 울진 부근 해안을 통해 동해상으로 진출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강원도 영동지방지리산 일대에 집중호우를 유발하였다. 한반도 이후에도 꽤 강한 세력을 유지하면서 북상하다가 일본 훗카이도 인근 해상에서 열대저기압으로 약화되면서 태풍의 일생을 마치게 되었다.

참고로 이와 유사한 경로를 가진 태풍은 1959년 14호 태풍이 있다.

특징[편집 | 원본 편집]

강한 세력 유지 원인[편집 | 원본 편집]

루사 당시와 마찬가지로 강한 태풍의 유지 원인은 동중국해상 및 남해상의 높은 수온대의 존재로 분석된다. 태풍이 북상할 때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으로 다소 느리게 진행하면서 11일 새벽에 동중국해상에서 최대로 발달(910hPa)하였고, 우리나라 남해상 부근 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약 3℃가 높아(약 28℃정도),지속적으로 해상에서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었던 것.

집중호우와 폭풍의 원인[편집 | 원본 편집]

집중호우와 폭풍의 원인은 태풍의 강도와 진행방향 및 지형적 요인으로 분석된다. 영남지방의 주 강수 시간대는 12일 19시에서 21시 사이로 태풍의 직접적인 영향, 태풍 진행방향의 우측에 위치, 지형적인 효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강원도 영동지방의 주 강수시간대는 12일 22시에서 13일 03시 사이로 이 지역은 주로 북동기류가 유입되면서 지형적인 원인에 의해 많은 강수 현상을 보여주었다.[2] 특히, 남해안 상륙 시 태풍의 중심기압은 약 954hPa로 주변 기압계와 비교하여 상당히 큰 기압차이를 보여서 기압경도력(기압이 서로 차이나는 경사도)이 매우 강했으며, 이에 따라 약 40m/s 이상의 매우 강한 바람이 관측되었다.

태풍해일[편집 | 원본 편집]

하필이면 만조시간대와 태풍 상륙시간대가 겹쳐서 태풍해일의 피해도 엄청나게 발생하였다. 태풍이 남해안에 상륙하던 시기의 9월 12일 마산항의 만조시각은 22시 05분이었으며, 태풍의 상륙시간은 같은 날 20시경으로 만조시간과 태풍의 상륙시간이 거의 일치하였던 것. 이로 인해 만조로 인해 마산항의 해수면은 지속적으로 상승중인 상황에서 중심기압이 945hPa인 강한 태풍이 들어오면서 해수면이 평상시 대비 약 60cm이상이 높아져버렸으며, 여기에 순간최대풍속 40m/s의 강풍이 지속적으로 불어오면서 마산항을 비롯한 남해안 여러 지역의 해안가에 엄청난 해일피해를 입히게 되었던 것이다.

피해상황[편집 | 원본 편집]

태풍 매미는 사상자 130명, 재산피해 4조 2225억여 원의 막대한 손실을 안기고 지나갔다. 이외에 9천 채의 가옥이 파괴되었고, 특히 전선의 파괴가 극심하였다. 873개의 도로와 30개의 다리가 무너졌고, 489대의 차량이 침수되었으며, 15158ha의 농지가 붕괴되고 침수되었다 물론 피해액만 봐서는 앞선 루사보다는 못하지만 2년 연속으로 같은 지점을 두들겨 맞은 영남지방강원도 영동지방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강원도 영동지방은 루사 당시 워낙에 휩쓸어 버린 바람에 재산피해액이 줄어든 것일지도 모를 정도.(실제로 강원도 영동지방은 예산 투입의 지연으로 루사로 인한 도로나 교량 등의 복구를 다 하지 못한 상황에서 또 다시 매미에게 두들겨 맞았었다)

마산시의 피해[편집 | 원본 편집]

마산항의 만조 시각과 태풍 상륙이 겹치는 바람에 마산항 매립지 일대가 큰 피해를 입었다. 마산시에서만 사망자 18명, 부상자 30여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하였으며, 6천억원 가량의 재산피해가 발생하였다. 특히나 지형상 마산항은 해일의 피해가 거의 발생하기 어려운 지점인데도 이런 피해가 발생한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실제로 마산항은 개항 이래로 이때까지 단 한번도 해일피해를 입지 않았던 항구였다.

마산항에 태풍 해일이 내습하면서 항구에 적체되어 있던 통나무 더미들을 휩쓸었고, 이 통나무 더미들이 지하상가로 유입되면서 출입구를 봉쇄해 탈출을 할 수 없는 곳이 속출했다. 부산광역시 해안가에도 해일이 내습했으나 시청의 적절한 대피령으로 인명피해는 최소화 할 수 있었다.

당시 진해시의 경우에는 해안가 바로 옆의 해군기초군사학교(현 기군단)에 해일이 덮치면서 일시적으로 훈련 일정이 중단되기도 하였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당시 1층을 내무실로 쓰지 않아서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었다는 것. 대신에 태풍 뒷처리를 훈련병들이 해야 했었다.

각주

  1. 막상 약화되었다고 하지만 애초에 워낙에 센 녀석이어서 약화된게 약화된게 아니었다
  2. 태풍이 몰고 들어온 비구름이 죄다 태백산맥 일대에 걸려서 비구름이 차곡차곡 쌓이는 현상이 발생했었다. 이는 루사 당시 강원도 영동지방에 있었던 집중호우의 원인과 동일한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