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드라마)


  • 방송 시간: 토, 일요일 밤 9:50 ~ 10:40 → 9:45 ~ 10:35
  • 방송 기간: 2000년 4월 1일 ~ 2002년 2월 24일
  • 극본: 이환경
  • 해설: 김종성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역사 드라마계의 끝판왕. 60% 시청률을 달성한 마지막 드라마.

그리고 필수요소계의 양대산맥

KBS1TV에서 방영한 사극으로 2000년 4월 1일 ~ 2002년 2월 24일까지 방영하였다. 야인시대 작품을 맡은 이환경이 맡았다. 최초의 후삼국시대 드라마라서 그 의의가 큰 데, 거기에 첫 스타트를 시청률 60%로 달성해버렸다.

왕건역은 최수종이 맡았는 데, 장차 그가 맡은 배역들을 생각해보면... 그와 동시에 야인이 되기 전 단계로 폭군이 되어야 했던 김영철궁예역을 맡았다. 다행히 야인시대에서는 마주하지 않았긴 하지만.

2020년 10월-11월 사이 KBS Drama 유튜브에서 1회부터 200회까지 풀타임 정주행을 시전했다! 말 그대로 1회부터 200회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으로 실시간 방영을 했다. 당시 채팅창에는 오프닝과 엔딩 BGM 남성 코러스를 마구니 합창단이라고 부르는 밈이 돌기도 했다. 지금, 누가 노랫소리를 내었는가? 12월 2일 또 다시 종영까지 실시간 연속 방영을 시작했다.[1]

주요 인물[편집 | 원본 편집]

  • 궁예
    신라 왕족들의 난에서 피하여 세달사로 피신한 귀족 출신 승려였다. 그가 성인이 되고, 세달사를 떠나기 전 도선과의 대화에서 그는 "세상을 훔쳐서 백성들에게 주려고 한다. 이것이 어찌 도적질이라 하겠습니까?"라 대답하자, 도선은 "눈이 반쪽 밖에 없으니 세상이 반쪽으로만 보이는구나"라며, 그의 미래를 "세상을 얻겠으나 복이 박하니 얻은 들 무슨 소용이냐" 라며 점쳐준다. 하지만, 궁예는 세달사를 나와 양길, 기훤을 지나오며 덕을 쌓았고, 그 덕택에 복지겸, 환선길, 이흔암, 은부 등과 같은 장수들을 등용, 고려를 세우게 된다. 그러면서 왕건을 장군으로 등용하고, 후백제를 견제하면서 고려를 운영하는데, 도중 등용된 아지태와 억울하게 죽은 석총의 저주의 때문인지 없던 질병이 생겨, 성격이 포악해지고 신망을 잃어간다. 결국 복지겸과 4기장의 주도 아래 왕건을 주축으로 한 역성혁명을 일으켜, 나라를 잃게 되고 마지막에는 은부에게 자신을 죽이라 명하면서 왕건에게 자신보다 아우가 나았다며 대업을 이루라 말하고 죽는다.
  • 종간
    세달사에서부터 궁예를 여러가지로 도와준 사람이며, 고려를 세울 때는 어느 직책도 받지 않고 '내원'이라는 곳에 머물었다. 그 때문에 궁예는 종간을 '내원'이라 부르는데, 가끔씩 '사형'이라 부르기도 한다. 궁예의 책사로서 국정을 도왔고, 그가 어긋난 길을 가려고 할 때마다 시정을 도왔으며, '은부'와 함께 궁예의 양 팔을 담당했다. 그러나, 아지태 사건으로 궁예가 포악해지고 병들어 지쳐가면서, 궁예를 아지태를 만나기 이전으로 돌리려고 하나, 왕건이 일으킨 역성혁명에서 자결하고 만다.
  • 아지태
    조정을 혼란속에 몰아 넣고, 궁예를 조종하여 북벌을 시행하여 대국을 건설하려는 야망을 가진 인물. 초기에는 그저 군사계통에 관심이 있는 학자로서의 이미지를 보여주나, 가면 갈 수록 궁예의 건강을 역이용하여 북벌을 끊임 없이 강조하고, 그 과정에서 궁예를 신적 존재로 훌륭하게 묘사하면서, 궁예의 신임을 얻으나, 아지태의 역모를 고발한 장수들에 의하여 역모로 잡히고, 궁예를 욕하며 결국 쳐형된다.
  • 복지겸
    양길의 부하였으나, 친우 은부가 궁예편으로 돌아서는 그 때에 양길의 세력에서 나오기를 종용당한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여기서 잘 빠져나와도, 반역을 모의 했다고 죽을 것이고[2], 그렇게 하지 못하면 궁예의 편에 선 사람들에게 죽을 것이니, 궁예에게 약조를 받아내고[3] 궁예의 편에 선다. 기마부대를 이끄는 장수이지만, 전투보다는 주로 경호실장에 어울리는 직책을 수행하였으며 책사와 함께 전략을 세우는 등 역할을 하였다.
    그러는 한편, 궁예가 포악해짐으로 왕건을 주축으로 하여 배현경, 홍유, 신숭겸과 함께 왕건에게 혁명을 일으킬 것을 여러 번 논하였으며, 왕건은 결국 주변사람들이 한데 모여 혁명을 일으키라는 말에 수긍하며, 역성혁명의 주축으로 나아간다. 이후 일어나는 반역자를 잘 눈여겨 보고 있다가, 반역에 곧 잘 대응하여 왕건의 왕권 보호에 일조하기도 했다.
  • 왕건
    왕씨 가문의 호족, 왕륭의 아들이다. 송악 출신으로, 어릴 적 서라벌로 가는 길에 마석두라는 도적 대장과 도적때가 나타났을 시점에, 관군이었던 견훤과 길을 떠나고 있던 궁예, 종간과 마주하게 된다. 이후 성인이 되어 도선비기를 읽고, 그것을 이해하여 미래를 내다보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서 자신이 왕씨 가문의 가주가 된다. 송악에 있으면서 능산과 박술희가 찾아오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무술 사부인 변사부와 유금필이 대항하여 겨루다가 결판이 나지 않았으나, 왕건은 이들의 무예 실력을 보고 감탄하여 술자리를 마련하고 의형제를 맺는다.
    그러나 강장자의 딸 연화와 연애 도중, 강장자와 종간의 개입으로 결혼이 무산되고 연화는 궁예와 혼인하게 된다.[4][5] 그 트라우마로 긴 기간동안 여자를 마주 하기 어려워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야말로 역사속의 NTR 당연히 왕건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후 궁예가 송악으로 천도를 결심하고, 왕건은 본격적으로 장군으로서 고려 소속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장군으로서 그 위용이 높아지면서, 조정에는 왕건을 축출하려는 내원파와 왕건을 지지하는 왕건파, 그 둘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파로 나뉘는데 은부, 금대, 내원이 내원파의 주축으로, 복지겸, 신숭겸, 홍유, 배현경 등 장수들이 왕건을 밀어주는 등 조정에 혼란이 조금씩 찾아온다. 그럴때마다 궁예는 왕건을 자신의 아우라 하며 감싸기를 반복한다. 그러던 중 궁예가 날로 포악해짐으로 복지겸을 포함한 4기장이 왕건에게 혁명을 일으키자고 몇 번을 청하니, 왕건이 이를 받아들이고 궁예를 추격하지만 궁예는 자결을 택하고 죽어가면서 왕건에게 대업을 이루라 대답한다.
    이후 왕이 되어 이름을 고려라 고치고, 궁예와 다르게 신라와 손을 잡으며, 북방으로 뻗기 전에 삼한을 통일하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세우면서 나라를 운영하기에 이른다.
  • 최응
    드라마에서는 신동으로 궁예가 죽이라고 명한 사람이었으나, 어머니가 몰래 키웠다고 나온다. 10대 중반에 조정에 출사하여, 궁예의 신임을 크게 얻은 뒤로는 궁예의 옆에 머물면서 각종 기록과 조언의 역할로 임하게 된다. 궁예가 포악해지는 것을 아주 가까이 느끼면서, 가능하면 그의 행동에는 문제 삼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도 궁예가 결국 자리를 잃을 것임을 눈치채고 있었고, 왕건의 역성혁명과 함께 배신한다. 이후 왕건의 책사로서 복지겸과 함께 중요한 인물이 된다. 허나, 해몽과 천문학의 신동이라 불리는 최지몽이[6] 발탁되면서 점점 건강이 나빠지더니 결국 30대에 죽게 된다.
  • 유금필
    고려의 장수로 왕건 휘하에 있다가 어느 날 신숭겸과 박술희가 송악으로 찾아와 대련을 신청하여, 대련 이후 왕건이 주최한 술자리에서 의형제를 맺는다. 이 때부터 왕건을 형님으로 모시게 된다. 궁예 집권 당시에는 왕건 다음으로 두각을 보이는 행보를 보이다가, 왕건 집권에서부터 그 저력을 맘껏 보여주는데, 출신지가 북방 민족인데다 북방 민족을 휘하로 군림하고 있는 상황이라, 북방 민족을 전쟁에 투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북방 민족들이 예의가 없는 모습을 보여서 왕식렴과 갈등이 일어나는 등 갈등도 겪는다. 백제의 장수들과 전면전을 겨룰때에도, 그 기개와 힘이 뛰어나서 애술이 유금필과 겨루고 나서 몇 번 밀리자 그 이후부터는 유금필 이야기만 나오면 눈 뒤집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 견훤
    후백제를 세운 인물로 아자개의 아들이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어머니는 새엄마로, 계모와는 사이가 좋지 않게 나온다. 아자개는 이름도 바꾸고, 신라편에서 일하면서, 자신을 떠나려고 하는 견훤을 여러 번 꾸짖으나 견훤은 듣지 않았고, 아자개는 "나갈꺼면 영원히 볼 생각도 하지 말라"고 역정을 낸다. 그러나, 견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떠났으며 그 과정에서 동생인 능애가 따라오게 된다. 견훤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후백제를 건국하고, 그 과정에서 능환의 도움으로 신라 3최인 최승우가 당나라에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드라마에서는 자신들의 신하를 보내 최승우를 등용하려 했으나, 번번히 실패. 결과적으로 본인이 나서서 무릎을 꿇고 최승우를 원하니, 그가 방에서 나와 견훤에게 죄를 고백하며 힘써 일하겠다고 대답한다.
    이후 최승우의 능력에 감탄하면서 그의 직위를 높게 주었으며, 능환과 함께 견훤의 책사로서 활약하게 된다. 하지만, 견훤은 자식을 교육하는데는 시원찮았으며 그것이 곧 조정의 갈등과 부부사이의 불화, 자식간의 불화로 이어졌다. 그 사이 고려가 흔들릴 때에는 두어번의 승리를 맛 보았으나, 고려가 마음을 다 잡고 백제의 빈틈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하필이면 건강이 나빠진 견훤은 판단력을 점차 잃어간다. 조정에서는 견훤의 건강으로 인해 후계자 싸움이 번번히 일어나게 되고, 끝끝내 신검을 주축으로 한 혁명반란이 일어나 왕의 자리를 잃어버린다.
    마지막에는 신검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과 함께, 백제를 버릴 수 없는 마음에 고려로 가는 것에 망설이지만, 신검을 죽이기 위해서는 답은 고려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견훤은[7] 야간에 탈출하여 고려로 투항하고, 왕건은 옛날 일은 이미 다 지나갔고 자신은 견훤을 모시고 싶었다면서 성대하게 맞이한다. 그리고 곧 전쟁을 일으켜, 신검을 치고 항복을 받아낸다. 하지만, 등창이 심해진 견훤은 마지막으로 신검 형제의 최후를 듣고서 결국 죽게 된다.
  • 신검
    견훤의 아들이자 열 손가락 깨물지도 않았는데 겁나게 아픈 자식 중 하나. 성인 이전에는 그럭저럭 문제 없이 잘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나,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책사들의 간언도 싸그리 무시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하다가 다 말아 먹는다. 사실상 고려의 첩자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트롤링을 많이하며, 그래서 견훤의 신임을 거의 받지를 못 한다. 마지막에는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의 왕권을 빼앗고 견훤의 배다른 자식 금강을 죽였으며, 아버지를 절에 포박시키고 나라를 운영하려다가, 견훤이 야간에 탈출하고 고려군에 투항하여 전쟁에 참가하는 바람에, 병사들이 사기를 잃고 일제히 투항했다.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항복한다.
  • 아자개
    견훤의 아버지로 사불성의 성주이다. 신라로부터 독립하여 자치적으로 사불성을 운영하다가, 견훤을 만류함에도 떠난 뒤로부터는 견훤과도 사이가 틀어진다. 그러는 중 고려 장수 박술희가 아자개를 상부 어른이자 대장군으로 모시면서[8], 점차 친고려로 마음을 잡게 되고, 부용을 살릴 수 있는 천년삼을 아자개에게 바침으로서[9], 아자개의 마음은 완전히 고려를 향하게 된다. 이 때문에 사실상 사불성은 고려의 영지처럼 되어버리고, 아버지를 끝내 공격 할 수 없는 견훤은 좌절한다. 드라마에서는 견훤이 죽기 전까지도 족히 살아 있었으며, 견훤을 고려로 투항시키기 위하여 편지도 써주는 등 고려를 위해 도움을 준다.
  • 도선대사
    도선비기의 집필자로서 이름 있는 대승이다. 여러 승려들이 도선비기에 대해서 궁금해하면, 크게 꾸짖는 레파토리가 일반적이다. 다만, 가끔씩 미래에 대하여 흘리는 말을 하는데, 알듯 모르듯 말하기 때문에 책사 정도의 능력자가 아니라면 화를 내기 쉬울 정도로 알려준다.

[편집 | 원본 편집]

저 자를 죽이라고 하였느니라!!!

하필이면 야인시대 관련 배우들의 작품이 발굴되면서 태조 왕건까지도 마수가 뻗쳤다. 주요 발굴 대사는 당연하게도 김영철이 연기한 궁예. 하필 야인시대 김두한도 이 쪽이 연기를 해서 둘의 대사를 섞는 심영물이 등장했다! 이를테면

"저 자를 죽이라고 하였느니라!!! 저 자는 공산당이다!!! 저 자를 죽여라 저 자를!!!"

기타[편집 | 원본 편집]

  • 최근에는 뜸뜸히 유튜브에 작품을 일부 편집하여 올리는 유튜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밈화 덕택인 듯 하다...
  • 당연한 것이지만, 태조 왕건도 역사 고증 관련한 문제에서 피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 견훤의 배 다른 자식 금강이 성을 함락하는 전투 당시 화살이 눈에 박혀 이 화살을 빼 달린 눈알을 먹는 것이 심의에 걸려 경고를 받기도 했다.

각주

  1. 2021년 2월 9일에 또 다시 연속 스트리밍을 시작했다.
  2. 양길의 성격상 거의 죽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3. 만약, 궁예가 지금처럼 하지 않고 포악해지면 반란을 일으켜도 뭐라 하지 않겠느냐 묻는다.
  4. 강장자는 상당히 탐욕적인 인간으로 그려진다.
  5. 드라마 속에서 종간은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이 있다고 하는데, 그 예견에 따르면 왕건이 궁예의 자리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에, 왕건을 어떻게든 축출 할 필요성이 있었다.
  6. 왕건이 붙여 준 이름이다.
  7. 이와중에 살아 있는 아자개가 견훤에게 고려로 투항 할 것을 권유하는 편지를 써주었다.
  8. 왕건이 그렇게 하자는 뜻도 있었고, 신료들이 견훤왕과 사이를 틀어서 중립으로만 만들어도 고려에 이득이라고 생각하여 행한 계책이긴 하다.
  9. 이로인해 부용은 얼마 못 가서 죽고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