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바인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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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1941년 동안 사용한 국기.

탄누 투바(Танну-Тува)는 1921년에서 1944년까지 존재하던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정식 국명은 투바 인민공화국(Тувинская Народная Республика)이었다.

1944년 소련에게 투바 자치주(Тувинская автономная область)로 합병되어 1961년 투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 공화국(Тувинская Автономная Советская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я Республика)으로 승격되어 현재 러시아에 속한 투바 공화국으로 이르고 있다.

면적은 170,500 km²이며, 작은 편에 속하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독립이전[편집 | 원본 편집]

1690년오이라트-몽골계의 유목국가인 준가르를 외몽골에 내쫓아, 그 지역을 청의 복속하에 두고 러시아와의 국경조약을 맺으면서 그때부터 확실히 청의 영토가 되었으며, 청은 그 지역을 탕누우량하이(唐努烏梁海)라 불리었으며, 청나라에 이 지역에 선후로 오기(五旗)를 설치하고 모두 48좌령(佐領)[1]을 관할했다.

허나 신해혁명으로 청이 망하고 중국이 혼란해지자, 제정 러시아는 그 지역을 을근 슬쩍 보호령으로 편입했다.

하지만 제정 러시아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정권이 붕괴되면서 또 다시 혼란해지고 그를 틈타 중국군이 다시 점령을 했지만, 러시아의 적백내전와중 백군 잔당에 의해 다시 점령되었다. 이것도 얼마안가 소비에트 러시아에 의해 점령당했다.[2] 그리고, 그 지역의 공산주의자들이 소련의 지원하에 1921년에 독립을 하게 되었다.

독립 그 이후[편집 | 원본 편집]

그렇게 외세로부터 독립했지만 소련과 그 이웃인 몽골만이 이 나라의 독립을 인정했으며 소련의 영향권하에 있었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은 몽골과 함께 아직도 중국 영토라 생각하고 있었다.

초대 총리 쿨라르 돈둑(Куулар Дондук)는 티베트 불교+공산주의 이념을 섥은 국가를 만들고자 했지만 1929년 소련에 끌려가서 처형당했으며 수천명 의 티베트 불교 신자들과 샤먼들이 처형당해 종교 및 신앙의 탄압이 점점 세져갔다.

2차대전과 소련의 합병[편집 | 원본 편집]

탄누투바는 1941년 6월 25일 독일에 선전포고해 참전했으며, 소련을 돕고자 의용 전차부대와 보병연대, 기병대를 보냈고, 투바인중 일부는 붉은군대에 입대했다.[3][4]

그뒤 1944년, 소련에게 합병 당했는데 그 원인은 본래 대략 두 가지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1. 스탈린은 소련 중심으로 위성국들을 빙 둘러 그들로 이루어진 벽을 세우려 했는데, 투바는 벽 내에 있었서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2. 신강 군벌이 온갖 삽질과 어설픈 양다리로 인해 1944년 중국에 합병당해서 과거엔 중국의 영토였던 적이 인지라[5] 이후 일어날지 안 날지 불확실한 중국과의 영토문제를 미리 피하기 위해 아예 소유권을 굳히려는 차에 탄누투바 의장이 요청해서 합병당했다.

요청한 이유는 두 번째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 추측되며, 안치마-토카가 어떻게 소련에 개입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는 판이다.

그렇게 탄누투바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투바의 인구[편집 | 원본 편집]

투바의 인구
1918년 1931년 1944년 1958년
투바인 48,000 64,900 81,100 98,000
러시아인+나머지 12,000 17,300 14,300 73,900
총계 60,000 82,200 95,400 171,900

그래도 지금은 인구 30만 정도로 늘어났지만, 1980년대 이후로 30년 동안 30만으로 정체된게 문제이다.

사족이지만 소련 붕괴 이후 투바에서 러시아인들이 지속적으로 빠져나가는데 이는 러시아내 시베리아 자치지역에도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야깃거리[편집 | 원본 편집]

세계 최초의 선출직 여성 국가원수를 배출했다. 이름은 헤르텍 아므르비토브나 안치마-토카(Хертек Амырбитовна Анчимаа-Тока). 엘리트 출신이고 1940년 총리가 되었다고 하며, 이후 서기장 살차크 토카와 결혼하였고 합병 후, 그녀는 지역 행정 위원회의 부의장으로서 일하였고, 또 투바 장관 회의의 부의장으로서 사회 복지, 문화, 스포츠, 선전을 책임졌으나, 합병이전 당시엔 무자비하게 숙청해서인지 별로 좋은 평을 듣지는 못하는 듯 그녀는 1972년에 은퇴하였고, 2008년 11월 4일 96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 지역의 대다수 민족인 투바인은 튀르크계 민족이고 몽골과의 차이가 의외로 좀 많지만[6] 몽골의 영향을 받아 인근의 부랴트 공화국 및 동유럽 구석의 칼미크 공화국과 더불어 독실한 불교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합병 이후 세워진 투바 공화국은 러시아에서 살인이 가장 잦은 지역이다. 10만 명 당 살인사건의 발생 빈도는 53.9명으로 러시아 평균의 4배. 더욱이 2005년에는 10만 명당 90.7명이라는 장난아닌 수치를 보여줬다.

파인만과 투바[편집 | 원본 편집]

탄누투바의 우표 파인만이 본 우표가 이것일 것이다.

어릴 적에 리처드 파인만우표 수집을 자주 했는데 어쩌다가 탄누투바의 우표를 본 적이 있으며, 특이한 모양과 키질이 워낙 자음만 이뤄져 있어서 그것을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그래서 자음만으로 이루어진 키질(Kyzyl, Кызыл)이라는 도시를 꼭 가보고 싶어 했으나, 자신의 직위와 명성을 이용해 사적인 걸 해결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엄청난 근성을 보여줬고 시간이 흘러[7] 소련에서 여행허가를 받게 되었으나 안타갑게도 이미 그가 암으로 죽은 후였다. 그래서 그를 대신해 그의 절친인 랄프 레이튼이 투바라는 도시에 가게 되었으며, 그는 다른 현지인에게 삶과 꿈의 비밀을 건내줘서 죽었으나, 친구가 대신에 꿈을 이루게 된 셈이 되었다.[8] 크즐에 있는 아시아의 중심이라는 기념비엔 그를 기린 비문이 씌여져 있다.

이 이야기에 관한 건 그의 절친 랄프 레이튼이 쓴 저서인 《투바: 리처드 파인만의 마지막 여행》이 있다

어느 한 용자의 활약[편집 | 원본 편집]

제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게임 하츠 오브 아이언 시리즈에서 투바 인민공화국이 등장한다. 원래는 역사대로 소련에 이벤트로 먹히는 최약소국 중 하나지만 유로파 유니버설리스 시리즈다음 카페의 어느 한 용자(미하일)가 이 나라로 개발칸 하나에 기술진[9]이 투바 광산회사 하나 밖에 없고 기술이 열악한 상황에서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과 SSBN(핵잠수함) 10척을 뽑아[10]서 영국에도 핵 날리고 미국 전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코민테른[11]에 승리를 안기는 근성넘치는 막장 플레이[12]로 인해 과거 2대갤과 유로파 카페엔 전설적이면서도 정신나간 의미로 유명해졌었는데 지금은 묻혀진지 오래다.[13]

각주

  1. 좌령은 몽골 팔기제도의 최저조직단위
  2. 여담이지만, 이때 탕누우량하이의 동부 9좌령이 뜯겨 몽골의 영토가 되었다.
  3. 이중에 2명의 소련 연방영웅을 배출했다. 하지만 1명은 전쟁중 실종당해 생전에 받지 못했다.
  4. 투바인 중대는 곳곳에 있는 우크라이나 마을들과 리우네 시의 해방에 기여했다. 그곳엔 투바 기병중대의 이름을 딴 거리가 소련 붕괴후인 현재도 남아 있다.
  5. 지금도 중화민국(대만)에서는 투바 지역까지 지네땅이라 주장중이다.
  6. 언어부터 차이나고 집은 게르마냥 돌아나지 않고 통나무집을 짓고 살고 있다.
  7. 이를테면 그는 직접 투바어를 배워 편지를 쓴다든가, 투바 문화 전시회를 여는 등등……
  8. 덤으로, 2009년 파인만의 딸인 미첼 파인만이 2009년 갔다고 한다.
  9. 근데 DH에선 투바대학이 테크진으로 추가해서 2개다.
  10. 근데 거기가 본래 내륙국인지라 진수도 못하고 실전에 써먹지 못한 게 함정
  11. 하츠 오브 아이언 시리즈엔 주 동맹세력은 연합국, 코민테른, 추축국 3세력이 있다.
  12. 허나, 그 막장 플레이를 보여준 사람은 그걸 미친 짓이라고 회고했으며, 플레이 하느라 전기료와 방학 남은 기간을 소비해버렸다.
  13. 이를테면 탄누투바 치면 연관 검색어에 '핵개발'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