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예프급 항공모함

키예프급 항공 중순양함
Тяжелеы авианесущие крейсера
проекта 1143 《Крецет》
Novorossijsk Kiev-class 1986.jpg
선박 정보
종류 항공모함/항공기 탑재 중순양함
운영 소련 해군
진수 1972년(키예프)
취역 1975년(키예프)
퇴역 1996년(바쿠)
사용연도 1975~1996[1]
생산량 4척
제원
엔진 KVN-98/64 보일러×8
TV-12-3 증기 터빈×4
4축 스크루 프로펠러
속도 32.5노트
무장 P-500 바잘트 2연장 발사대 ×4
2연장 M-11 함대공 미사일 발사대 ×2(미사일 72발)
76밀리 함포 ×2
533밀리 10연장 어뢰발사관
RBU-6000 ×2 대잠 로켓 발사기
AK-630 ×8
RPK-1 2연장 대잠 미사일 발사기 ×2
항공기 30× Yak-38, Ka-27/32
전장 273.1m
선폭 49.2m/52.9m(바쿠)
흘수 8.95m
배수량 30,530톤 41,370톤(만재)

키예프급 항공 중순양함《Проекта 1143 Крецет》은 소련항공모함이자 항공기를 탑재한 유도탄 중순양함이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소련 해군의 체펠린

소련은 2차 세계대전 이전 전간기부터 항공모함 건조를 시도해 왔으나 번번히 불발되고 만다. 러시아 제국 시절 계획된 순양전함 이즈마일급 순양전함을 항공모함으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전간기에 있었지만 이뤄지진 못했고 심지언 2차대전 종전 후 전리품으로 취득한 독일의 그라프 체펠린을 개수하여 소련 해군에 편입할 계획까지 있었지만, 이 역시 실현되지 못한다.

그러나 세계대전의 종전과 동서 대립의 질서가 자리잡는 냉전기, 대양에서 미 해군의 해상 패권을 견제하고 광활한 연안을 방어하고자 했던 소련 해군에게 있어 항공력을 투사할 대형 함정의 존재은 필연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항공모함이란 것을 단 한번도 건조해 보지 못한 소련에게 다른것도 아니고 새로운 주력함인 항공모함을 건조하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

이미 항모를 운용했던 열강들은 적국이 되어 협력을 받을수도 없었으므로 자체적으로 개발에 나서게 된 소련은 항공모함의 방향성을 적성 대잠 항공세력의 견제와 동시에 대잠 항공기를 운용하여 잠수함대를 지원하고 탑재된 함재 전투기는 함대 방공을 제공하는 개념의 함정으로 구상되었다. 여기서 항공대는 함대를 지원하는 성격이 강했고 상대 항모와 함대를 타격하는 것은 함재기가 아닌 항모 자체의 화력으로, 일명 미사일 시대의 항공전함 같은 개념의 함정이 나오게 된다.

당시 처했던 상황과 항모 운용 경험이 없었던 소련 해군은 이런 과도기적 개발 과정을 거쳐야 했고 항공순양함이란 개념으로 정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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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급 항공순양함

그렇게 건조되어 1967년 취역한 프로젝트 1123 모스크바급 항공 순양함[2]은 소련 항공모함 개발의 초석으로 함체 절반이 넓은 비행갑으로 구성되어 전방에서는 무장을, 후방에선 대잠 헬기를 운용하는 헬리콥터 모함이었다. 모스크바급 같은 헬리콥터 모함들은 타국에도 보편적으로 존재하였고 특이한 사항은 없었으나 소련은 모스크바급 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항모 기술 습득의 장으로 삼는다.[3]

건조[편집 | 원본 편집]

이렇게 습득된 기술을 바탕으로 소련은 본격적인 고정익 운용이 가능한 항공모함 개발을 진행하게 된다.

여기에 영국의 수직 이착륙기 해리어의 성공적인 운용과 함께 시 해리어의 개발로 함재 전투기의 운용 유연성이 넓어지는 것을 확인한 소련 당국은 소련식 수직 이착륙기 개발을 진행했고 여기에 맞춰 프로젝트 1123 모스크바급 항공 순양함의 개량형인 프로젝트 1123.3을 구상한다. 이후 1970년 프로젝트 1123.3이 승인되었고 해당 계획은 프로젝트 1143으로 발전하게 된다.

운용[편집 | 원본 편집]

구축함 엘리어트와 민스크

1975년 키예프가 취역하여 소련 해군은 반세기 가까이 염원하던 항공모함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배치된 키예프는 북방함대에 배치되어 북해와 대서양에서의 활동을 시작했고 그 뒤를 이어 1978년 2번함 민스크가 취역하여 11월 태평양 함대에 합류했다. 노보로시스크는 1982년에 취역한 다음 키예프와 함께 북방 함대에 배치되었었지만 후에 태평양 함대로 소속이 변경되어 민스크와 함께 동북아 해역에서 활동한다.

북방 함대에 배속된 키예프는 곧 나토의 가장 큰 해상 위협 중 하나가 되었고 북해 연안에서 다수의 훈련에 참여하며 이들을 견제하였다. 그리고 대서양과 유럽 해역을 담당했기에 키예프급은 지중해까지 순양 작전 범위에 포함하였고 알제리와 같이 아프리카 연안에서도 작전을 진행했다.

민스크는 인도양까지 진출하여 아랍권 해역까지 작전 범위어 두었고 1980년 중월전쟁에 대한 대(對) 중국 견제로 민스크가 남중국해에서 작전을 진행했고 베트남 캄라인 만에 기항하며 오늘날 미군 핵항모와 동등한 역할을 했다. 이는 같은 태평양 함대에 배치된 노보로시스크도 마찬가리였다. 노보로시스크는 1983년 10월부터 북방 함대에서 태평양 함대로의 배치 전환이 진행되어 1984년 대서양과 인도양을 거친 노보로시스크 전대는 인도에 기항한 다음 동아시아로 항해를 이어갔고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에 기항함으로써 배치 전환을 완료했다.

한편 4번함인 바쿠는 이전 3척과 달리 설계를 부분 변경하는 과정을 거쳤고 이에 80년대 말인 1987년이 되어서야 취역하게 된다. 바쿠는 북방 함대에 배치되어 노보로시스크의 빈자리를 메꾸는 역할을 하였고 1988년 항공대를 비롯한 작전 능력을 획득하게 된다.

키예프급은 운용 중 결함품인 함재기 야크38 때문에 잦은 항공기 관련 사고를 겪기도 했으며 때문에 태평양 함대에서는 야크38의 함상 운용을 중단하기도 했고 1980년대 말로 갈수록 회전익기의 비율이 높아지는, 헬리콥터 모함화 되는 경향을 보인다.

최후[편집 | 원본 편집]

그러나 1991년, 소련 붕괴하는 거대한 사건 속에 막강했던 소련 해군 전력은 산산히 흩어지게 된다. 소련 해체로 들어선 러시아 연방의 해군, 러시아 해군은 그 일련의 사건 속에서도 키예프급 항공모함 4척을 그대로 넘겨받게 되었으나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정도로 나라 사정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제대로 된 운용은 커녕 현상 유지조차 불가능했던 실정이었다.

거기에 소련 말부터 붕괴 직후까지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했던 항모들의 상태 역시 문제가 많았는데, 이미 소련 붕괴 1년 전(1990) 키예프는 화재 사고로 도크에 들어가 있던 상태였다. 거기에 노보로시스크마저 1993년 화재가 발생해 함체에 심각한 피해를 입어 수리를 시도했으나 당시 상황으론 회생이 불가능했기에 1994년 퇴역이 결정된다.

이미 이 시점에서 키예프급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고 독에 들어가 있던 두 키예프급을 이어 민스크도 퇴역이 결정되며 바쿠만이 러시아 해군에 남아있게 된다.

결국 일선에서 반발이 있었으나 러시아는 바쿠를 제외한 나머지 3척을 처분하고자 고철로 경매에 내놓았다. 전략 병기인 항모를 고철로 타국에 판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만큼 러시아의 사정은 절망적이었고 곧 키예프가 1993년 중국의 회사를 통해 매입되어 톈진 시에서 테마파크로 개장된다. 현재도 키예프 테마파크는 운용중에 있으며 유일하게 외형을 유지한 채 관리되고 있는 최후의 키예프급이다.

그러나 태평양 함대 소속 민스크와 노보로시스크는 의외의 곳으로 팔려가게 되는데, 당시 매물로 나온 두 항모를 눈여겨보고 있던 대한민국의 회사 영유통은 러시아 퇴역 장성들이 만든 콤파스 사와 접촉했고 33개의 업체들과 치열한 경매 끝에 민스크와 노보로시스크를 매입한다. 여기에 국정원 등, 한국 정부가 개입하였다는 얘기가 있으나 항모 구매는 순전히 민간업체에서 이뤄낸 것이었고 국정원과 국방부는 항모 반입을 위한 영유통의 지원 요청을 받고서야 매입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낙찰 소식이 알려지고 1994년 러시아가 판매를 승인하자 동시에 주변국의 견제가 가해지기 시작했다. 그 중 일본의 견제는 노골적이어서 각종 언론 플레이를 통한 훼방놓기를 시전했고 이 때문에 레이더와 미사일 발사 체계 같은 시설들을 보존한 채 들여올수 있었지만 일련의 사건들 탓에 그러지 못했다는 말도 있다. 또한 이런 해체 작업으로 본래 인도 일정보다 늦어지게 됐다.

아무튼 마지막 항해 끝에 예인선에 이끌려 온 민스크와 노보로시스크는 포항에 기항하게 되고 곧이어 고철로 해체될 예정이었으나 이미 이 시점에서 무장과 전자장비, 기관처럼 군함으로 기능할수 있는 부분들은 제거된 껍데기었다.

그러나 두 항모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민단체, 그것도 항공모함을 국내에서 해체한다는데 반발한 환경단체의 반발로 두 척의 항모는 표류하는 신세가 되어 국내 항구를 전전하게 되는데, 환경단체는 유해 물질을 포함 핵항모를 국내에서 해체한다는 사실을 유포하여 불안감을 키웠고 해체 일정은 또다시 늘어지게 된다.[4]

결국 반발과 일정에 못이겨 민스크는 중국의 업체에 재 매각 되었고 노보로시스크만 남게 되었지만 노보로시스크는 논란 속에서도 포항 앞바다에서 정상적으로 해체 작업이 진행되어 그 생을 마쳤다.

그리고 수많은 논란 속에 종착지를 찾은 민스크도 장강 하류에 정박, 키예프와 마찬가지로 테마파크로의 개조 끝에 민스크 월드란 이름으로 개장하여 운영했지만 2006년 업체의 재정난으로 폐장하였고 현재 장강 하류 대교에서 방치된 채 녹슬고 있다.

한편, 마지막까지 러시아 해군에 남아있던 바쿠는 아제르바이잔이 남남이 됨에 따라 함명을 어드미럴 고르쉬코프로 변경하였다.

그러나 고르쉬코프마저도 1994년 발생한 보일러 폭발사고로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개수 작업 후 예비역으로 전환되어 사실상의 퇴역 처분을 받는다. 러시아 해군에서는 재취역을 희망했으나 간신히 운용해오던 고르쉬코프를 복귀시키기엔 부담이 너무 컸고 이대로 자매함들과 비슷하게 고철로 처분될 운명으로 보였다.

그런데 마침 새로운 주인의 등장으로 고르쉬코프의 미래는 반전되니, 항모 비크란트의 퇴역을 앞두고 항모가 급했던 인도 해군이 그 주인공이었다.

1995년 러시아와 접촉한 인도는 의견 차이로 협상을 중단했으나 1998년 진행된 재 협상에선 고정익 항공기를 운용 가능한 정규 항모로의 개장을 러시아에서 제시하였고 2004년 도입 계약이 체결됨에 따라 고르쉬코프는 함재기로 미그29K 24대를 운용하는, 쿠즈네초프급의 축소형으로 대개장에 들어간다.

이후 이야기는 INS 비크라마디티야 참조.

설계 및 성능[편집 | 원본 편집]

선수의 중무장과 경사갑판의 조합

키예프급은 약 30여기의 함재기를 탑재한 항모로 여기엔 함재 전투기 야크38을 비롯해 대잠 초계 임무를 띄는 회전익 항공기(헬기)Ka-27/32가 편성된다.

일단 함재기 수량만으론 서방권의 경~중형 항모 수준의 항공기 운용능력을 갖춘 준수한 수준의 항공모함으로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함상 항공기의 핵심인 함재 전투기 때문이었다. 키예프급의 함상에서 운용될 주력 함재 전투기로는 수직 이착륙기인 야크38(Yak-38)을 운용하였고 별도의 이착함 장비가 없이 비행갑판 하나만 달랑 놓인 키예프급으로썬 최선의 선택이었다.

물론 수직이착륙기가 문제가 된 것은 아니다. 소련은 영국 해군에서 활약하던 해리어처럼 야크38을 운용하기 바랬지만 이 야크38이란 놈은 해리어라는 걸작에 근접하긴 커녕 제대로 나는 것조차 힘들었던 물건이었다.

이착함 하는 야크38
운용중인 ka27

무엇보다 낮은 추력으로 무장과 항속거리 면에서 결함이 많은 기종이었던 야크38은 실전에서 가용 가능한 무장이라곤 단거리 공대공미사일 2발, 또는 무유도 폭탄 2개 뿐으로 제대로 된 함재 전투기의 기능을 수행하긴 불가능했고 잦은 결함으로 전천후 작전이 불가한, 실전 배치로는 실격품인 물건이었다.

그러나 당장 쓸수 있는 함재기는 야크38 뿐이었고 울며 겨자먹기로 운용을 이어갈수밖에 없었던 소련 해군은 배치 후반으로 갈수록 전투기 대신 회전익 항공기의 비율을 늘려 나갔고 후반 키예프급은 대잠 헬기 항모에 가깝게 운용되었다.

만일 함재기만 목표한 대로 나오기만 해 주었다면 미군의 슈퍼케리어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였겠지만 영국의 경항모 인빈시블은 물론, 중형 정규 허미즈나 프랑스의 클레망소급 항공모함의 항공능력을 보유할수도 있었겠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물론 키예프급은 과무장된 무장 배치로 인해 동급 정규 항모에 비하면 배치된 수량만 엇비슷할 뿐 실질적인 운용능력은 떨어졌겠지만, 그 잠재력을 함재기가 깎아먹은 것은 분명하다.

아무튼 키예프급에게 있어 함재 전투기는 중요한 사항이나 그에 못지 않게 대잠, 초계 임무를 수행하는 함재 헬기들 역시 중요한 핵심 전력이었다. 키예프급이 운용하던 헬기는 Ka-27 대잠 초계헬기 및 Ka-32 다목적 헬기로 기존 모스크바급 항공 순양함보다 대형화된 선체로 다수의 대잠 헬기들을 운용할수 있었다.

소련은 자국 수상함대에게 요구한 임무 중 가장 중요한 사항이 잠수함대를 지원해 대서양과 유럽 연안에서 전략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항공모함은 함재 전투기를 이용해 서방권의 대잠 항공세력을 견제 및 구축하고 보유한 대잠 헬기들이 잠수함대를 지원하는 개념으로 운용되었기에 요격 기능을 갖춘 함재 전투기로 원해에서 대잠 항공세력을 견제하고 보유한 헬기로 적 잠수함을 색출해 아군 잠수함대를 지원하는, 목표한 전략대로의 운용은 달성하긴 했다.

대신 빈약한 함재전투기의 성능으로 대잠 헬기 세력을 엄호하는데는 한계가 분명했다.

야크141

소련은 여기에 야크38의 개량형이자 새로 개발중이던 수직이착륙기 야크141의 배치를 추진하여 키예프급과 차기 항모의 함재기로 운용하려 했다. 야크141은 야크38의 낮은 출력을 개선하고 플라이 바이 와이어, 나름 쓸만한 전자장비, 그리고 무장 능력도 동시기 4세대 전투기와 동급의 기체였지만 소련의 붕괴로 인하여 바쿠의 함상에서 시험 이착함을 한 것 이외에는 정식 운용까지 진행되지 못했다.

P-500 바잘트
키예프의 바잘트 발사관

그러나 이는 키예프급의 일면에 불과한 것이었다. 정식 분류가 항공 '중순양함' 이라는 호칭이 헛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키예프급은 단독으로 대 수상 전투와 방공, 그리고 적 잠수함 위협에 대응하는 다목적 순양함의 성격을 띄고 있었다.

그런 일면의 대표로써 키예프급은 적 주력함을 직접 타격하는 무장에 많은 키예프부터 노보로시스크까지 주 무장으론 2연장의 P-500 바잘트 초음속 대함미사일이 수납된 연장 발사관 4기를 선수에 배치하여 총 8발의 대함미사일로 적 항공모함을 겨냥했다.

해당 바잘트 미사일은 소형 전투기에 근접하는 크기로 탄두 중량이 최대 500 킬로그램에서 1톤에 달하는 초대형 대함 미사일이었다. 그만큼 사거리도 길어 550킬로미터의 사거리에 마하 2~3의 초음속으로 해상을 질주하며 원거리에서 적함을 공격할수 있었고 빠른 속도 탓에 대응 시간이 짧아 요격도 어려워, 당시 서방권의 함대 방공망으론 난감한 상대였다. 거기다 요격에 실패할 경우 무지막지한 중량의 탄두가 초음속으로 선체를 꿰뚫어 버리니 미국의 슈퍼케리어라도 중파 이상의 피해를 각오해야 했다.[5]

키예프급이 이같은 무장을 갖춘 이유는 항모의 항공대는 지원 역할을 수행하며 항모 자체는 보유한 대함 무장으로 적 주력함을 상대한다는 교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름만 항공 순양함이 아닌게 소련은 키예프급에 대전기 항공전함과 비슷한 역할을 맡긴 셈이었다. 또한 미국에 비해 열세였던 소련 해군은 단 한척의 수상함이 아쉬웠던 상황이었고 항모가 순양함의 역할까지 동시에 떠맡아 숫적 열세를 극복하고자 함 역시 무시할순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후계함인 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 항공모함에게로 이어지게 된다.

한편 대형 순양함으로서 키예프급은 강력한 타격력을 발휘해 적 주력함을 파괴하는 것 뿐만 아니라 아군 함대를 엄호하는 능력도 요구받았다.

M-11 미사일과 발사대, 키예프급은 발사대 2기를 운용했다.

항공기와 미사일이 주도하는 현대 해전에서 함대 전체에 위협이 되는 비행체를 요격하는 함대 방공이 그것으로, M-11 중거리 대공미사일 76발로 무장한 키예프급은 55km 내외 중거리에서 접근하는 위협 비행체를 추적해 파괴할수 있는 방공망을 구축, 해당 함대는 적성 비행체에 대한 방공 우산을 제공받아 그 아래서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여기에 함대 방공망을 넘어 근거리 접근 및 자함이 위협받는 상황이 되면 오사M 해상형 방공체계(바쿠의 경우 토르 방공체계의 해상형으로 수직발사대에서 발사된다)로 10~12km 내외 범위에 들어온 항공기 또는 미사일을 격추한다. 그리고 여기까지 뚫고 근접한 미사일은 6문의(바쿠는 8문) 30밀리 AK-630 CIWS가 최종적으로 파괴하여 저지하는 다층 구조의 방공망을 형성하였다.

또한 적의 잠수함으로부터 함대를 보호하고 적 잠수함을 추적, 파괴할수 있도록 당시 기준 강력한 대잠 무장을 갖추고도 있었다.

주력 대잠 무장으론 원거리에서 적 잠수함을 공격할수 있도록 폭뢰를 탑재한 대잠 로켓 RPK-1이 쓰였는데, 아스록이나 홍상어 같이 정밀 유도 기능은 없지만 간단한 관성 유도 기능을 갖춘 로켓은 10~24km 의 잠수함에 폭뢰를 떨굴수 있었다. 여기까지 보면 평범한 대잠 로켓이지만 해당 탄두는 10킬로톤의 핵탄두로써 반경 1.5km의 살상 범위를 갖는 무식한 물건이었다.

바쿠의 RBU-12000

물론 보다 상식적인 무장도 탑재하여 기능적으로 동일하나 비교적 근거리인 3km 대의 사거리와 통상 탄두 폭뢰를 투하하는 10연장 RBU-12000 발사기를 2기 배치하여 근접한 적 잠수함의 위로 폭뢰 세례를 줄수도 있었다. 또한 10연장 533밀리 어뢰를 탑재해 직접 잠수함과 수상함에도 타격을 가하는게 가능했다.

이러한 모습에서 볼수 있듯 키예프급은 소련의 다른 순양함인 모스크바급 순양함 또는 키로프급 원자력 순양함과 본질적으로 같은 종류인 다목적 순양함으로 운용되었고 단순히 이들 순양함 비행갑판만 올려놓은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270미터가 넘는 거함이지만 핵추진 대신 재래식 추진을 사용하였고 후계함인 쿠즈네초프처럼 중유 보일러를 이용한 증기 터빈 추진 방식을 사용하는 함정이다. 8개의 KVN-98/64 중유 보일러가 생성하는 고압 증기는 TV-12-3 증기 터빈 4개를 작동해 4축 스크루 프로펠러를 돌리는데, 최대 속도는 32.5노트에 달했다.

동형함[편집 | 원본 편집]

번호 함명 진수 취역 퇴역 상태
1143.1 키예프 1972. 12. 26 1975. 12. 28 1993. 6. 30 테마파크
1143.2 민스크 1975. 9. 30 1978. 9. 27 1993. 6. 30 테마파크(폐업)
1143.3 노보로시스크 1978. 12. 26 1982. 9. 14 1993. 6. 30 해체
1143.4 바쿠 1982. 4. 1 1987. 12. 11 2004 인도 해군 비크라마디티야

키예프[편집 | 원본 편집]

Kiev 1987 DN-SN-87-07363r.jpg

프로젝트 1143.1, 함명은 우크라이나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 키예프(현 키이우)시의 이름을 땄다.

키예프급의 초도함으로 1975년 취역 후 소련 북방함대에 배치되어 현역 시절에는 북해와 대서양 방면에서 작전하였고 있다금 지중해로 전개되기도 하였다. 이후 소련 붕괴로 1996년 퇴역한 키예프는 1997년 중국의 어느 회사에 팔려 2004년부터 텐진 시 연안에서 테마파크로 개장되어 운영중에 있다.

민스크[편집 | 원본 편집]

Minsk aircraft carrier.jpg

프로젝트 1143.2, 함명은 벨라루스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 민스크 시의 이름을 땄다.

2번함으로 1978년 취역히여 태평양 함대에 배치된 민스크는 동북아 해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1970년대 말에서 1980년 남중국해에 전개된 민스크는 베트남에 기항해 당시 중월전쟁을 일으킨 중국을 압박하기도 했고 베트남군과 연합 훈련을 전개하였다. 소련 붕괴 후 민스크는 퇴역하여 고철로 처분되었고 경매 끝에 대한민국의 (주) 영유통에 팔려 3번함 노보로시스크와 함께 포항에 기항한다.

그러나 환경단체의 반발과 주변국의 견제로 전전하던 민스크는 결국 중국 측에 재매입 되었고 첫째 키예프와 마찬가지로 테마파크로 개장되어 현재 대련에 위치하고 있으나 2006년 운용 적자로 폐장하여 장강 하류에서 방치되고 있다.

노보로시스크[편집 | 원본 편집]

Kiev-class Novorossiysk DD-ST-85-06598 r.jpg

프로젝트 1143.3, 함명은 러시아의 흑해 연안 도시 노보로시스크 시의 이름을 땄다.

1972년 12월에 진수되어 1982년 9월에 배치되어 원래 북방함대에서 운용되었으나 이후 태평양 함대로 재배치된다. 이후 동북아 해역에서 주로 작전하였으며 동해와 일본 근해에서 활동하며 해상자위대와 자주 접촉하곤 하였다. 1993년에는 기관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하여 큰 피해를 입었고 1995년 고철로 퇴역하게 되는데, 경매에 나와 역시 (주)영유통에 민스크와 함께 묶여 팔리게 된다.

그러나 환경단체의 반발과 주변국의 견제로 전전하던 노보로시스크와 민스크는 쉽사리 해체 작업에 들어가지 못하고 방치되었으나 최종적으로 민스크만 중국으로 재판매 된 대신 노보로시스크는 정상적으로 국내에서 해체되었다.

중요 장비들이 다 제거되어 들어왔으므로 재생 가능성 및 기술 습득용으로의 가치는 크지 않았다는 평가였지만 해체 당시 관계자들이 입회하기도 했고 이후 등장한 KCVX 초기안[6]이 한국형 키예프급이나 다름없는 외형임을 볼때 어느 정도 습득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바쿠[편집 | 원본 편집]

Carrier Baku.jpg

프로젝트 1143.4, 함명은 아제르바이잔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 바쿠 시에서 따 왔다.

마지막으로 건조된 키예프급으로 이전 자매함들과 설계 면에서 차이를 보이며 별개의 하위 함급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가장 큰 변경점은 무장의 배치로 기존 P-500 바잘트 연장 발사관 4개소를 6개소로 증설해 탑재 수량이 12발로 증가하였고 중거리 함대공 무장을 철거한 대신 개함 방공 무장을 오사 방공 체계의 해상형 대신 토르 방공 체계의 해상형 킨잘을 체택한 것 등을 꼽을 수 있다. 또한 바쿠는 신형 수직이착륙기인 야크141을 갑판에서 시험 이착륙 시켜본 경험도 있어 여러 면에서 자매함들과 차별되는 모습을 보인다.

아무튼 바쿠는 1987년 취역하여 소련 붕괴 후에도 러시아 해군에 남아 있었던 유일한 키예프급으로 러시아 해군에선 어드미럴 고르시코프로 개명된다.

이후 6명의 사상자를 낸 1995년의 보일러 폭발사고로 퇴역하였고 방치되던 바쿠는 인도에 매각이 결정되며 2004년 개조에 들어가 스키점프대와 강제 착함장비를 갖춘 CATOBAR 형식 정규 항모로 개장되어 쿠즈네초프급과 유사한 외형이 되었고 고르시코프 대신 비크라마디티야라는 새 이름까지 얻게 된다.

개장된 비크라마디티야는 2013년 인도 해군이 인수하였고 현재 인도 해군에서 운용중에 있다. 이후의 이야기는 INS 비크라마디티야를 참조할 것.

관련[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개장된 바쿠, 즉 현 비크라마디티야는 현역.
  2. 슬라바급이라고도 했던 모스크바급 순양함과는 별개 함선이다.
  3. 이탈리아의 비토리오 베네토급 항공순양함 프랑스의 잔 다르크급 헬기 순양함 등이 있으며 소련은 우리 해군이 독도함을 운용하며 관련 기술을 습득한 것처럼 모스크바급을 통해 건조, 운용 노하우를 축척하려 했다.
  4. 아래서 언급하겠지만 키예프급은 재래식 추진으로 증기터빈 기관을 사용하는데, 이거 핵추진은 커녕 2차 대전 전함들이 사용하던 증기터빈 기관과 기능적으로 동일하다. 애초에 소련, 그리고 러시아는 지금껏 단 한번도 핵항모를 보유하지 못했다.
  5. 마하 2~3이면 1분 안에 50~60km 를 주파한다. 그 1분 안에 결판을 보아야 하는데 실제 미사일을 탐지 가능한 거리는 더 안팤이므로 대응 절차를 갖추고 요격 미사일이 비행 및 착탄하는 시간까지 따지면 겨우 1,2번의 기회밖에 없다.
  6. 일명 김영삼 항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