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스 알로프스

클라우스 알로프스
Klaus Allofs
K allofs.jpg
인물 정보
출생 1956년 12월 5일 (67세)
서독 뒤셀도르프
국적 독일
신체 174cm, 73kg
프로선수 경력
종목 축구
포지션 공격수
소속팀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1975~1981)
1. FC 쾰른 (1981~1987)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1987~1989)
FC 지롱댕 드 보르도 (1989~1990)
베르더 브레멘 (1990~1993)
지도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1998~1999)
베르더 브레멘 (단장) (1999~2012)
VfL 볼프스부르크 (단장) (2012~)

미스터 DFB-포칼(Mr. DFB-Pokal)[1]

클럽 경력[편집 | 원본 편집]

포르투나 뒤셀도르프(1975-1981)[편집 | 원본 편집]

어렸을 적에 동생인 토마스 알로프스와 함께 TuS 게레스하임이라는 클럽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그러다 1975년에 뒤셀도르프에서 가장 큰 클럽인 1부리그의 포르투나로 이적했고, 이곳에서 데뷔했다.[2] 2번째 시즌인 1976/77시즌부터 주전 자리를 꿰찼는데 당초에는 미드필더와 윙으로 더 많이 뛰었다. 1978/79시즌부터 새 감독인 한스-디터 티펜하우어에 의해 공격수로 포지션을 변경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했다. 33경기 22골로 득점왕을 차지했고, DFB-포칼 우승, UEFA 컵위너스컵에서 준우승을 거두는 인상적인 시즌을 보냈으며, 79/80시즌에는 포칼에서 득점왕을 차지하고 2연패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러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소속팀 포르투나 뒤셀도르프는 계속 중위권에 머무르고 말았다.

쾰른(1981-1987)[편집 | 원본 편집]

1981년에 쾰른으로 이적하는데, 이적료 225만 마르크는 당시 분데스리가 최고 기록이었다.[3][4] 이적하자마자 리그에서 준우승을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새 포지션 문제로 크게 부진한 시즌이었다. 하지만 이후 윙포워드로 뛰면서 반등에 성공했고, 1985년부터 다시 중앙공격수로 뛰면서 2번째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85/86시즌에는 리그에서 크게 부진한 대신 UEFA컵에서 9경기 9골로 득점왕을 차지하고 결승까지 올랐다.

프랑스에서 보낸 3년(1987-1990)[편집 | 원본 편집]

1986/87시즌이 끝나고 프랑스로 떠났는데, 행선지는 당시 각지의 스타플레이어들을 수집하고 있던 마르세유였다.[5] 첫시즌에는 괜찮은 활약을 보였지만 우승하지 못했고, 2번째 시즌에는 팀이 우승을 차지했지만 본인이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컵에서 경기당 1득점으로 맹활약하긴 했지만 입지가 좁아졌고, 결국 보르도로 팀을 옮겼다. 비록 우승은 다시 마르세유가 차지했지만, 보르도를 2위까지 끌어올리고 독일로 복귀했다.

브레멘(1990-1993)[편집 | 원본 편집]

알로프스의 새로운 행선지는 브레멘이었는데, 포르투나의 지휘봉을 잡았었던 오토 레하겔이 팀을 이끌고 있었다. 브레멘에서 알로프스는 매년 우승트로피를 하나씩 챙겼고, 특히 경험해보지 못했던 분데스리가와 컵위너스컵 우승도 차지할 수 있었다. 브레멘에 합류할 때 이미 33세였기에 오래 활약하지는 못했지만 첫시즌에는 주전으로 윈턴 루퍼와 콤비를 이뤘으며, 컵위너스컵에서 우승할 때는 결승전에서 골을 넣기도 했다. 대신 분데스리가 우승은 꽁으로 먹었다

국가대표 경력[편집 | 원본 편집]

1978년에 체코슬로바키아를 상대로 데뷔했고, 1988년까지 대표팀에서 활동하며 7번 주장 완장을 달기도 했다. 커리어에서 가장 화려했던 대회는 유로 1980으로 우승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여 득점왕도 차지했다.[6] 그러나 이후의 커리어는 아쉬움이 남는데 1982 월드컵은 리그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선발되지 못했고, 유로 1984는 3경기 모두 풀타임으로 뛰었으나 팀이 부진하여 탈락하고 말았다. 대신 마지막 대회인 1986 월드컵에서는 모든 경기에 출전해 2골을 기록하는 등 팀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감독 경력[편집 | 원본 편집]

1998/99시즌에 2부리그 포르투나의 감독으로 취임했으나 10경기 연속 무승을 기록하는 등 크게 부진했고, 꼴찌로 추락한 끝에 1999년 4월에 경질당했다.[7] 그러나 끔찍한 감독생활과는 달리 단장으로는 대단한 경력을 쌓았는데, 1999년 10월에 브레멘에 합류하여 토마스 샤프와 함께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팀을 이끌었다.[8] 2012년 11월에 사실상 전권을 부여받고 볼프스부르크로 옮겼다. 부자 팀으로 가더니 돈을 막 쓴다는 평도 있으나 돈을 마구 써본 적이 있어야지 단시간 내에 팀의 전력을 상승시켰다는 점에서 전반적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우승 경력[편집 | 원본 편집]

선수[편집 | 원본 편집]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1. FC 쾰른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 리그 1 : 1988-89
  • 쿠프 드 프랑스 : 1988-89

FC 지롱댕 드 보르도

베르더 브레멘

서독

수상 경력[편집 | 원본 편집]

선수[편집 | 원본 편집]

통산 기록[편집 | 원본 편집]

시즌 클럽 리그 대륙 총계 비고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75-76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12 0 2 1 - - 14 1 분데스
1976-77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33 7 2 0 - - 35 7 분데스
1977-78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30 7 8 4 - - 38 11 분데스
1978-79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33 22 7 2 9 3 49 27 분데스
1979-80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28 16 7 9 2 0 37 25 분데스
1980-81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33 19 5 2 6 1 44 22 분데스
1981-82 1. FC 쾰른 30 9 1 0 - - 31 9 분데스
1982-83 1. FC 쾰른 24 12 5 1 6 4 35 17 분데스
1983-84 1. FC 쾰른 34 20 3 1 4 4 41 25 분데스
1984-85 1. FC 쾰른 32 26 2 3 8 1 42 30 분데스
1985-86 1. FC 쾰른 24 7 2 4 9 9 35 20 분데스
1986-87 1. FC 쾰른 33 14 3 5 - - 36 19 분데스
1987-88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31 13 1 0 8 4 40 17 리그 1
1988-89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2 7 10 10 - - 32 17 리그 1
1989-90 FC 지롱댕 드 보르도 37 14 3 6 - - 40 20 리그 1
1990-91 베르더 브레멘 30 10 7 4 - - 37 14 분데스
1991-92 베르더 브레멘 32 8 3 1 6 2 41 11 분데스
1992-93 베르더 브레멘 16 0 4 3 6[9] 1[10] 26 4 분데스
종합 독일 424 177 61 39 56[11] 25[12] 541 241
종합 프랑스 90 34 14 16 8 4 112 64

각주

  1. 3개의 클럽에서 우승한 3명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도합 4번 우승했다. 이후 단장으로 3번의 우승을 추가해 총 7번 우승을 경험했다. 슈바이니는 선수로만 7번인데?
  2. 토마스 역시 포르투나에서 1군 데뷔를 했으며, 알로프스 형제는 나란히 포르투나 역대 베스트11로 선정되었다.
  3. 트랜스퍼마르크트에 따르면 클라우스 알로프스의 이적료보다 토니 우드콕의 이적료가 더 높은 것으로 나오는데 환율 때문이다.
  4. 이 기록은 1984년에 로타 마테우스가 240만 마르크로 경신했다.
  5. 분데스리가에서는 1년 앞서 카를하인츠 푀르스터가 마르세유로 향했다.
  6.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8강 조별리그부터 본선으로 쳐줬고, 우승팀도 4경기밖에 치르지 않았다. 덕분에 3득점으로도 단독 득점왕이 될 수 있었다.
  7. 포르투나는 결국 강등당했다.
  8. 사실 알로프스의 직책은 단장으로 번역하는 Sportdirektor가 아니었지만 복잡한 보드진의 구성과 모호한 역할배분 때문에 커리어를 통째로 묶어 단순하게 단장이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비단 알로프스 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구단관계자들에게도 적용되는 얘기다.
  9. UEFA 슈퍼컵 포함
  10. UEFA 슈퍼컵 포함
  11. UEFA 슈퍼컵 포함
  12. UEFA 슈퍼컵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