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밥

컵밥(Cupbap 혹은 Cupbab)은 한국 요리에서 분류하는 덮밥(혹은 비빔밥)의 일종으로, 2000년대 중후반에 나타나고 2010년대에 유행하여 하나의 음식문화로 정착된, 한국식 퓨전 요리이자 신 메뉴이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컵밥의 발상지는 서울특별시 동작구노량진이다. 컵밥의 선조인 포장마차식 김치볶음밥은 2004년경에 처음 나타났는데, 당시의 노량진은 IMF 사태와 그 후폭풍으로 고용 불안정이 심각해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인 직종으로 손꼽히는 공무원을 목표로 모인 고시원 동네로 유명했다.

고시원은 최소한의 공간만을 낸 곳이라 별다른 조리시설이 구비되어 있지 않았고,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해야 살아남는 현대사회의 선비에겐 밥 하나 먹자고 일반음식점에서 죽치고 앉아있거나 할 시간적 및 금전적 여유 또한 용서되지 않았다. 때문에 노량진에는 노점상과 패스트푸드와 편의점, 저가판 한식부페를 포함한 한국식 밥집등이 발달했는데, 그나마 밥다운 밥을 먹을 수 있었던 곳은 가성비가 애매한 그 밥집밖에 없었다. 이마저도 지갑이 부담스러워서 자주 가지 못하는 고시생도 있었고, 이들의 밥바라기는 더욱 심화되었다.

이 틈새시장을 노려서 분식류가 대세였던 노점상(포장마차) 중 하나가 돌연 김치볶음밥을 싼 값에 취급하여 밥이 고픈 가난한 고시생들을 공략했고, 그 예상이 적중하여 큰 인기를 끌게 된다. 미리 만들어둔 것이니 빠르게 제공할 수 있고, 받은 자리에서 바로 먹고 가거나 그냥 포장해올 수 있다보니 취식시간도 매우 짧아서 더욱 인기가 많았다. 이걸 지켜본 수많은 노점상들이 따라하여 분식에서 밥으로 업종변경을 하였고, 그대로 수도권 전철 노량진역 앞 거리는 자연스레 '김치볶음밥 거리'가 되었는데, 빠른 회전율과 효율성 및 편의성을 위해 하나같이 컵에 담아다 팔았기에 정식 명칭보다 '컵밥'이라는 별명으로 주로 불렸고[1], 이내 컵밥이 정식 명칭으로 정착하였다.

경쟁이 격화되면 발전도 자연스레 따른다. 노점상들은 단순히 김치볶음밥만을 만들어 파는데 그치지 않고 계란후라이를 얹어주거나, 베이컨 혹은 비엔나 소세지 등을 구워주거나, 김치 덮밥이나 제육 덮밥 등으로 바꾸거나 하는 식으로 차별화를 꾀하였다. 개중에는 치즈를 뿌리기도 하고, 자취생의 친구라 하는 스팸이나 참치, 옥수수 캔 등을 활용하기도 하고, 학생이 뭘 좋아할 지 몰라서 아예 이것저것 죄다 얹어서 내오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다보니 초창기엔 백중백이 가성비로 승부하는 컵밥이었지만, 정착기인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거의 한 끼 밥값 수준으로 올라간 무시무시한 것도 심심찮게 서식하고 있다.

위기의 컵밥[편집 | 원본 편집]

하지만 이런 흥행을 높으신 분들이 가만둘리가 없었다. 컵밥에 저작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정 메이커인 것도 아니기 때문에, 곧장 즉석 식품을 다루는 회사와 편의점의 표적이 되었다. 가장 먼저 나선 곳은 편의점으로선 훼미리마트(2007년, 現 CU)이고, 식품회사로서는 비락(2012년)이었다. 당시의 컵밥은 노량진 고시생 말고는 잘 모르는 향토음식에 가까웠기 때문에 처음으로 전국에 컵밥이라는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되려 이런 즉석식 컵밥이 원조인 줄 아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이다.

문제는 즉석식품의 공정상 한계로 내용물이 상당히 창렬했다는 것. 초창기 형태인 볶음밥 컵밥은 새(鳥)모이에 비유될 정도로 양이 적었고, 덮밥형 컵밥의 경우는 내용물에 건더기가 거의 전무하고 소스 일색인 것이 많아서 컵밥의 이미지가 상당히 나빠지는데도 일조하였다.

한편으로 원조쪽 컵밥에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점차 쌓이기 시작하였다. 차별화를 가지고 치킨 게임을 벌인 끝에 컵밥은 사실상 레토르트 식품으로 덮은 볶음김치 덮밥에 가까운 형태가 되었는데, 가격은 가격대로 비싸지고 위장 건강에도 부담스러울 정도의 기름진 음식이 되어버린지라 원초 취지였던 집밥의 이미지는 거의 희석되어 버린게 원인이었다.

그 다음 찾아온 악재는 2010년대 초기에 강행되던 서울특별시의 노점상 정리사업에, 컵밥 거리도 피해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당시 노점상들의 관행도 큰 원인제공을 했는데, 관청에 사업신고를 하는 일반 상점과는 달리 사람이 다니는 보도를 무단으로 점거하여 운영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시절[2]인지라 대중들의 노점상에 대한 지지도마저 유치파와 철거파가 갈렸기 때문이다. 그간 쌓아온 각종 식중독, 감염병원균 사고로 인해 식품 위생 요구치가 급격히 높아지는 시기이기도 했고, 뒷세계의 포장마차 체인본부에 대한 의심도도 높아지던 상황이었는지라, 노점상 일괄정리에 찬성하는 쪽에 더욱 기울어지고 있었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컵밥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겹쳐져, 2010년대 중반에는 거의 대부분이 축출되고 말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컵밥의 대체재가 이 시기에 대거 등장하였다. 즉석 도시락이 정체되어 있던 와중에 편의점 도시락의 질이 2000년대와는 차원이 다르도록 높아졌고, 컵밥의 가격이 기존 분식집 메뉴의 물가 수준까지 다다르자 주요 수요층이 도로 일반식당으로 회귀 및 분산되었으며, 결정적으로 한 끼로 먹을 수 있는 음료[3]밥버거 등이 이 시기에 등장하였다.

진격의 컵밥[편집 | 원본 편집]

특징[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비슷하거나 더 이른 시기에 떡볶이, 슬러시(슬러쉬), 닭강정 등도 이런 식으로 컵에 담아 파는 경우가 많았고, 이때도 본래 명칭보다는 컵볶이, 컵슬러시, 컵강정 등의 별칭으로 주로 불렸다.
  2.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적어도 당시는 구청/시청 인가 노점상이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전이었다.
  3. 고칼로리 바리에이션 커피나 쩐쭈나이차(버블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