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가 (항공모함)

정보
함종, 함급 항공모함, 단일함
건조 시작 1920년 6월 19일(토사급 전함)
항공모함으로 전환 1923년 11월 21일
진수식 1921년 11월 17일(토사급 전함)
취역일 1929년 11월 30일
대개장 기간 1933년 10월 20일~1935년 6월 25일
최후 1942년 6월 4일 미드웨이 해전에서 격침
세부 제원 (1935)
기본배수량 38,813톤
만재배수량 42,541톤
전장 247m
전폭 32.5m
흘수 9.5m
속력 28.1노트
항속거리 15노트 기준으로 19,000km
동력기관 4축 함본식 증기 터빈
승조원 1,708명
무장 20cm 50구경장 3식 함포 10문
12cm 45구경장 10식 대공포 16문(2x8
25mm 96식 기관포 22정(2x11)
장갑 측면:152mm
갑판:38mm
함재기 총 90기 (통상 72기+예비 18기)
A6M 21기
D3A 27기
B5N 27기

카가(加賀)는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일본 해군이 운용했던 정규 항공모함이다.

카가는 아카기와 같이 원래는 토사급 전함 2번함 카가로 건조하려고 했다. 그러나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체결되면서 전함 건조가 취소되었고, 선체는 버려지다시피 했다. 그러다 아카기와 같이 1923년 11월 21일, 항공모함 개조 명령이 내려졌고, 1928년에는 완전히 항공모함으로 개조되었다. 개조될 당시에는 아카기처럼 3단 갑판을 가지고 있었지만, 1933년부터 1935년까지 대개장을 거쳐 하나의 갑판으로 통합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여 주변 해역 정찰 임무에 투입되었으며, 1939년에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지 2년 뒤 1941년 12월 7일,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고, 진주만 공습에 참가하여 많은 군함을 격침시켰다. 이후 라바울 항공전, 자바섬 침공 등에서 활약을하다가 6개월 뒤, 미드웨이 해전에서 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와 함께 바다속으로 가라앉았다.

성능 및 설계[편집 | 원본 편집]

카가는 아카기와 같이 버려진 전함의 선체를 가지고 개조한 항공모함이기 때문에 일부 성능은 아카기와 거의 같다. 어느 정도 부족한 부분은 아카기를 참고해도 좋다.

사실 원래 카가는 토사급 전함 2번함으로 건조될 예정이었다. 토사급 전함은 16인치 45구경장 연장포를 5기 장착했으며, 배수량은 약 40,000톤 정도 되는 전함이었다. 하지만 1922년에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체결되면서 전함 계획은 완전히 취소된다. 50%가량 완성된 토사는 표적함으로 전환되었으며, 카가는 건조 도중에 버려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항공전력을 메꾸기 위해 항공모함으로 전환하는 명령이 내려졌다. 1923년 개조를 시작한 지 5년만에 항공모함으로 전환을 성공했다. 처음에는 아카기처럼 계단식 3단 갑판과 전방에 8인치 주포를 달았다.

3단 갑판[편집 | 원본 편집]

카가는 아카기와 같이 건조 당시에는 계단식 3단 갑판과 8인치 주포를 달았다. 하지만 이는 문제로 작용했다. 우선 8인치 주포를 단 이유가 항공모함이 단독으로 다닐 때 통상파괴 또는 중순양함 대용(!), 방어를 목적으로 8인치 주포를 달았는데, 문제는 카가가 장갑이 거의 없는 물건이었는데다가[1] 후방에서 최전방의 제공권을 잡아야 할 항공모함에게 통상파괴전을 수행하라니 임무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덤으로 일본의 데미지 컨트롤 또한 안좋아서 한번 구축함의 포탄에 측면에 피격되기 시작하면 속속 터져나가기 일수였다. 이는 1933년 실시된 대개장때 철거된다.
3단 갑판은 일본군이 "더 많은 항공갑판을 통해 항공모함의 이착륙을 더 빠르게 할 수 있다"라는 발상으로 하단의 2개 갑판은 이륙, 최상단 갑판은 착륙용으로 사용해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좁고 짧은 상단 갑판을 이용해야 했다. 밑의 2개 갑판을 이용하자니 함재기를 놓아둘 공간이 없고, 하부갑판에 맞바람이 제대로 들어오지 못해 이륙 자체가 안됐다. [2] 또한 엘레베이터도 3개의 층을 공용으로 사용하니 효율성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결국 1933년에 대개장을 실시하여 1935년에는 갑판을 1개로 통합했다.

또한 하향 연돌도 문제였는데, 아카기보다 심했다고 한다. 아카기는 우현 중앙에 연돌을 달았지만, 카가는 3단 갑판 시절때는 연돌이 후방을 향하여 길게 늘여져 있었다. 이렇게 되면 연돌에서 나오는 매연이 항공모함 후방을 가려 착륙을 할 때 시야확보가 안되었고, 착륙을 할 때마다 후방에 난기류가 생겨 착륙을 하다가 추락을 하는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덤으로 이 연돌때문에 실내 온도가 40도로 올라가 카가의 선원들을 개고생시켰으며, 이질 등의 각종 질병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래서 생긴 별명이 바다 독수리 꼬치구이 제조기였다. 이런 후방 연돌은 1935년 대개장때 아카기처럼 우현 중앙으로 옳기는 것으로 그나마 난기류와 시야확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함생[편집 | 원본 편집]

중일전쟁[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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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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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완전히 없는 건 아니다. 카가는 현측장갑이 152mm였는데, 이는 토사급 전함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면서 장갑수치를 줄인 것이다.
  2. 함재기는 맞바람을 많이 맞아야 저속에서도 제대로 이륙할 수 있다. 비행기가 나는 원리를 한번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