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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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는 전라도와 경기도 사이에 있다. 서쪽은 바다에 닿았고, 동쪽은 경상도와 경계가 맞닿았다. 그리고 동북쪽 모퉁이가 되는 충주 등은 강원도의 남쪽으로 불쑥 들어가 있다. 남쪽의 반은 차령 남쪽에 위치하여 전라도에 가깝고, 반은 차령 북편에 있어 경기도와 이웃이다. 물산은 영남과 호남에 미치지 못하나 산천이 평평하고 아름다우며, 서울에 가까운 남쪽에 있어 사대부들이 모여 사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여러 대를 서울에 살면서 이 도에 전답과 주택을 마련하여 생활의 근본으로 삼지 않은 집이 없다. 또 서울과 가까워 풍속에 큰 차이가 없으므로 터를 고르면 가장 살 만하다.
— 택리지-팔도총론-충청도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통적 지역 구분 명칭 중 하나로 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충청남도, 충청북도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흔히 중부권 혹은 충청권으로 통칭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지역의 어원이 되는 호수는 제천의림지를 의미한다.[1]

2 버라이어티한 지역 명칭 변경의 역사[편집]

현대에는 통상 이 지역을 충청도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데 의외로 타 권역에 비해 명칭 변경이 잦았던 동네에 해당한다. 특히 조선시대 이러한 명칭의 변경이 잦았는데 이는 역모죄나 강상죄에 대해서는 출신 지역에까지 연대책임을 물리는 방식으로 상당히 강력하게 대응하던 조선 정책의 영향이기도 하다 절대 이 지역에서 역모나 강상죄가 많았다는 것이 아니다 참고로 명칭 변경의 역사를 보면 전통적으로 충주-청주-공주-홍주(홍성)의 순서로 서열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백제 멸망 이후 당나라가 웅진도독부를 설치
  • 756년 신라 경덕왕 16년 : 웅주도독부 설치
  • 995년 고려 성종 14년 : 현재의 충남, 충북의 권역과 비슷하게 중원도, 하남도로 개편
  • 1106년 예종 원년 : 중원도, 하남도, 관내도를 합쳐 양광충청주도(길다...)라는 명칭을 사용. 충청이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사용됨.
  • 1172년 명종 2년 : 하남도가 분리되어 양광도로 변경
  • 1356년 공민왕 4년 : 충청도로 명칭 변경
  • 1395년 태조 4년 : 영광주 예속 군현을 경기도와 충청도로 분할
  • 1505년 연산군 11년 : 환관 김처선의 본관인 전의가 강등되고 고향이었던 청주가 이웃 고을로 편입되면서 청주 대신 공주의 앞자리를 따서 충공도로 개칭
  • 1506년 중종 원년 : 중종반정 이후 충청도로 명칭 환원
  • 1540년 중종 35년 : 충주목에서 원주 출신 유석이 부친살해를 하려고 하였으나 미수에 그침. 강상죄에 해당하는 죄로 충주목이 예성부로 강등되며너 청공도로 명칭 변경
  • 1541년 중종 36년 : 강상죄를 저지른 유석이 충주와 연고가 없는 것이 문제가 되어 예성부를 다시 충주목으로 환원, 명칭도 충청도로 다시 변경
  • 1549년 명종 4년 : 이홍윤 옥사사건으로 충주목이 유신현으로 강등되고 홍주목[2]의 이름을 따서 청홍도로 명칭 변경
  • 1567년 선조 원년 : 유신현을 다시 충주목으로 회복시키면서 충청도로 명칭 환원
  • 1611년 광해군 3년 : 청주에서 역모가 발생하여 청주가 서원현으로 강등되면서 충홍도로 명칭 변경
  • 1613년 광해군 5년 : 칠서의 변에 충주사람 유인발이 연류되어 충주목이 충원군으로 강등, 공홍도로 명칭 변경
  • 1623년 인조 원년 : 인조반정 이후 공홍도를 충청도로 회복
  • 1628년 인조 6년 : 괴산과 충주에서 역모사건이 발생, 충주를 충원군으로 강등, 공청도로 변경
  • 1646년 인조 24년 : 공주에서 역모가 일어나 공주목을 공산현으로 강등, 공청도를 다시 홍청도로 변경
  • 1653년 효종 4년 : 강등되었던 충원군을 10년만에 충주목으로 회복시키면서 충청도로 명칭 환원
  • 1658년 효종 9년 : 청주에서 노비가 주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청주를 서원현으로 강등, 충홍도로 명칭 변경
  • 1661년 현종 2년 : 홍주에서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가 훼손되는 일이 발생하여 홍주목을 홍양현으로 강등, 충공도로 명칭 변경
  • 1662년 현종 3년 : 충공도의 명칭을 충청도로 다시 고침
  • 1680년 숙종 6년 : 충청도의 명칭을 다시 공청도로 고침
  • 1681년 숙종 7년 : 청주사람 박상한이 올린 기우제의 축문에 임금을 비난하는 구절이 있어 역모죄로 참수, 청주목을 서원현으로 강등, 공청도 내에 청풍부가 있어 도 이름은 그대로 두었으나 청풍부가 본래 계수관[3]이 아니었다는 것이 나중에 확인되어 공청도를 공홍도로 변경
  • 1689년 숙종 15년 : 충원현을 충주목으로 승격하면서 공홍도를 충홍도로 고침
  • 1689년 숙종 15년 : 기우제 축문 덕분에 역모죄로 죽었던 박상한이 신원되어 서원현을 청주목으로 다시 승격, 충홍도를 충청도로 변경
  • 1735년 영조 11년 : 충주, 청주, 나주, 원주의 4개 고을에서 반역이 일어나 4개 목을 모두 강등시킴, 덕분에 충청도의 명칭이 공홍도로 변경
  • 1747년 영조 23년 : 공홍도를 충청도로 회복
  • 1777년 정조 원년 : 홍상범이 반역을 모의한 것이 드러나 처형하며 그의 모친의 고향인 청주목을 서원현으로 강등, 공충도로 명칭 변경
  • 1778년 정조 2년 : 공주사람 심혁이 역모를 꾸며 공주를 공산현으로 강등, 공충도를 다시 홍충도로 명칭 변경
  • 1779년 정조 3년 : 홍충도를 다시 충청도로 회복시킴
  • 1804년 순조 4년 : 16자 흉언을 지은 죄로 청주사람 한해옥을 처형하고 청주목을 서원현으로 강등, 공충도로 명칭 변경
  • 1813년 순조 13년 : 강등 10년만에 서원현이 다시 청주목으로 승격되면서 충청도 명칭 회복
  • 1817년 순조 17년 : 충주목을 충원현으로 강등, 공청도로 명칭 변경
  • 1826년 순조 26년 : 충원현을 10년만에 다시 승격시키면서 명칭도 충청도로 회복
  • 1826년 순조 26년 : 청주의 아전 출신인 박형서가 괘서[4]를 투척하여 박형서는 처형되고 청주목이 서원현으로 강등, 공충도로 명칭 변경
  • 1835년 헌종 원년 : 명칭을 충청도로 회복시킴
  • 1862년 철종 13년 : 역적 김순성의 고향이라 하여 청주목을 서원현으로 강등, 공충도로 명칭 변경
  • 1871년 고종 8년 : 서원현이 10년만에 다시 청주목으로 승격되어 공충도 명칭을 충청도로 되돌림

3 호서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기관[편집]

4 참조[편집]

5 각주

  1. 연려실기술의 기록
  2. 홍성군
  3. 도와 군현 사이의 중간적 역할을 하는 행정구역으로 일반 수령보다 직급이 높았음
  4. 시국을 비판하는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