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식 (1850년)

崔東植.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50년생으로 알려졌지만 출생지는 알 수 없다. 그는 1904년 6월경 대한제국 감찰을 역임했으며, 10여 명의 인사들과 함께 일제의 황무지개척권 요구를 반대하기 위해 소청을 설치하고 전국을 순회하며 황무지개척권 허가 반대 운동을 호소하고 궐문 밖에서 허가반대상소를 올리자는 통문을 돌렸다. 그 후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을사오적을 처형하라는 상소를 올리다 체포되어 몇 달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나철, 오기호 등이 을사오적 처단을 위해 당원을 모집하자 즉각 가담했으며, 1907년 음력 2월 초순 나철의 처단 계획에 따라 실행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 후 2월 12일 을사오적이 공무 차 출근하는 길목에 동지들과 함께 매복한 뒤 사동 노상에서 권중현을 저격했으나 적중하지 못했다. 이후 동지들이 차례로 잡히자 무고한 사람에게 화가 돌아갈 것을 우려해 자현장(自現狀)을 작성, 나철·오기호 등과 같이 자수했다.

1907년 7월 3일 평리원에서 열린 재판에 회부된 그는 나라를 팔아먹은 다섯 대신은 그냥 두고 이를 처단하려고 했던 사람에게 중죄를 가하는 것은 모순되었음을 역설하다가 유배형 10년을 선고받고 진도로 유배되었다.[1]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최동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