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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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jpg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Chernobyl disaster)는 1986년 4월 26일 1시 24분에 소련 우크라이나 SSR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폭발에 의한 방사능 누출 사고를 말한다. 이 사고로 발전소에서 누출된 방사성 강하물이 우크라이나 SSR과 벨라루스 SSR, 러시아 SFSR 등에 떨어져 심각한 방사능 오염을 초래했다. 사고 후 소련 정부의 대응 지연에 따라 피해가 광범위화되어 최악의 원자력 사고가 되었다.

사고 진행[편집 | 원본 편집]

4월 25일[편집 | 원본 편집]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한 가지 점검이 예정되어 있었다. 발전소-변전소간 전력 공급이 끊길 경우(소외정전) 원자로 자동차단신호가 들어와 발전이 중지되어 발전소의 운용 전력도 같이 날아가는 데(소내정전), 이를 커버할 수 있는 비상발전기는 쓸만한 출력을 내려면 좀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터빈의 관성을 이용해 발전을 하여 비상발전기가 가동할 때까지 얼마나 시간을 벌어줄지 시험을 해볼 예정이었으며, 이미 다른 RBMK 노형에서 다수 실행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새벽 1시경부터 3200MW에서 원자로 출력을 낮추고 비상노심냉각장치(ECCS)를 차단하는 등 실험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14시에 변전소에서 전력을 공급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실험 절차가 중지되고 다시 출력을 높였다. 이 과정에서 Xe-135가 축적되기 시작한다.

IAEA 자문회에서 발행한 최초 보고서(INSAG-1)에는 당시 운영팀이 임의로 ECCS를 차단했다고 기술했으나, 실제로는 실험 절차 자체가 이런 구조였으며 당국의 책임을 피하고 일선 기술진에게 누명을 덮어씌우고 싶어했던 소련 당국의 프로파간다에 의해 잘못 기재된 것이다. 이후 내용이 보충된 INSAG-7에서는 제대로 수정되었다. 사실 ECCS가 있었어도 결과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23시 10분
변전소의 전력 공급 요청이 끝나서 실험을 다시 재개했다. 1600MW에서 감발을 시작했다.

4월 26일[편집 | 원본 편집]

폭발 순간을 재현한 《Chernobyl》(2019)

0시 5분
4호기의 출력을 720MW에서 낮추는 과정에서 급격히 30MW까지 떨어져서 운전실에서 일대 혼란이 있었다. 실험은 원자로 출력 700MW에서 진행되어야 했기 때문에 제어봉을 거두어 들여 다시 출력을 높이는 데, 전날 축적된 Xe-135가 중성자를 흡수하여 출력이 200MW에서 정체되는 현상이 발생된다.
1시 3분
열출력이 200MW에서 안정화되었다. 통상 제어봉을 16개 가량 삽입하고 운전하나 삽입된 제어봉은 6개에 불과하고, 출력이 목표치에 미치지 못함에도 실험은 계속되었다. 냉각수 펌프 2개를 추가 가동하여 열용량에 비해 냉각수 유량이 늘어나 노심의 수위가 높아졌다.
1시 22분
원자로가 안정된 것처럼 보였지만, 운용 컴퓨터는 초임계 가능성을 우려해 원자로를 정지해야 한다는 권고를 발행했다. 그러나 운용원들은 실험절차만 믿고 해당 메시지를 무시했다.
1시 23분 04초
실험이 시작되어 터빈으로 향하는 증기 공급이 중단되었다. 터빈이 느려지면서 발전소 내부 전력도 감소했으며 냉각 계통의 냉각수 유량도 15%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에 따라 노심의 온도가 올라가 냉각수가 끓기 시작했으며, 중성자를 잡아줄 냉각수도, 제어봉도 없었으니 핵반응 속도가 급격히 오르기 시작한다.
1시 23분 40초
운전실에서 원자로 정지를 결정하고 제어봉을 투입한다. 이것이 이상을 눈치채고 실험 중지를 결정한 것인지, 실험 절차의 일부였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확실한 것은 RBMK의 설계 결함으로 원자로 정지 버튼이 거꾸로 기폭 버튼이 되었다는 점이다.
실험 과정에서 다량의 제어봉을 꺼내둔 상태라 모두 삽입하는 데에는 18초라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고 제어봉이 투입되면서 냉각재인 물이 밀려나 양의 피드백이 작렬, 핵분열이 가속화되었다. Xe-135의 중성자 흡수 능력도 떨어지면서 원자로가 폭주하기 시작해서 30만MW까지 출력이 치솟았다. 노심의 냉각수가 죄다 증기로 바뀌어 반응로를 압박하기 시작하고 핵연료도 녹아내렸다.
1시 24분
과다한 증기의 압력을 못 견딘 반응로가 순수한 증기압에 의해 1번, 증기와 핵연료의 반응에서 형성된 수소로 인해 수소폭발 1번, 총 2번에 걸쳐 폭발, 발전소 건물을 뚫고 주변에 막대한 방사능 물질을 흩뿌렸고, 감속재인 흑연도 흩어져 산발적인 화재로 이어졌다.
2시 54분
소방대가 도착하여 화재 진압이 시작된다. 화재는 열흘이 지나서야 완전 진압되었다. 초기 소방대는 방호장비 없이 진화에 투입돼 심하게 피폭되었다. 화재는 5시경 진압된다.
6시
실내대피가 실시된다. 주민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교육기관의 운영도 중단되었다. 동시기에 갑상선 방호약품(아이오딘) 배포가 개시되었다.
21시 41분
진화 작업에 쓰인 물이 인화성 물질인 수소와 가연성 물질인 산소로 분해되면서 축적된 증기가 폭발해서 500m에 달하는 불기둥을 만들어냈고, 방사성 물질이 분출됐다.

주민 소개[편집 | 원본 편집]

대형사고에도 불구하고 실내대피조차 새벽 6시가 되어서야 발령되는 등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소련 정부는 26일 밤의 폭발이 터지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으며 우선 27일 14시부터 약 5만명에 달하는 프리피야트, 야노프 지역의 주민 소개가 개시되었다.

30일에는 반경 10km내의 주민 소개가 개시되었으며, 5월 3일에는 반경 30km내의 주민 소개가 시작되었다. 그해 8월까지 총 13만 5천명이 터전을 떠나야만 했다.

원인[편집 | 원본 편집]

RBMK 노형은 설계결함을 안고 있었다.

특히 제어봉 설계에 문제가 있었는 데, 제어봉을 위로 빼는 설계를 취하면서, 제어봉이 빈자리에는 감속재인 흑연봉이 대신 들어오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핵분열을 방해하는 제어봉이 빠지면 이를 촉진시키는 흑연봉이 들어와서 효율이 높아지는 구조였는 데, 흑연봉이 제어봉보다 짧아서 원자로 내의 핵분열 분포를 불균형하게 만들었다.

흑연봉이 원자로 중앙부에만 위치하니 상부와 하부는 물의 영향을 받아 핵분열이 감소하고, 중앙부만 핵분열이 왕성해지는 구조가 되었다. 이때 제어봉을 삽입할 경우 흑연봉이 하부로 이동하면서 물이 붙잡고 있었던 하부의 핵분열을 순간적으로 증폭시킬 수 있었으며, 다른 원전에서 2회나 이런 사고를 냈지만 보안에 부쳐져 운전원들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 설계결함 때문에 제어봉을 한번에 삽입하는 비상정지 시퀀스가 핵분열을 순간적으로 증폭시키는 기폭 시퀀스가 된 것이다.

피해[편집 | 원본 편집]

  • 최대 5.3엑사베크렐에 달하는 방사성 물질 유출
  • 벨라루스 국토의 33%가 고준위 방사선 지역으로 변모
  • 피난민 135,000명 발생

다른 것도 아니고 압력용기가 통째로 폭발해버리면서 핵연료를 비롯한 고준위 방사성 물질이 사방팔방에 번졌다.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와 낙진이 북쪽으로 퍼지면서 벨라루스에 고준위 방사성 물질이 낙하했으며, 이 지역은 현재까지도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소련 정부는 사건을 숨기기에 급급했는 데, 방사능 물질이 바람을 타고 스웨덴까지 날아가 스웨덴 정부가 강력 항의하자 그제서야 마지못해 인정했다. 스웨덴의 한 원자력 발전소 출근 시간에 직원이 들어가는 데 고방사능이 검출되면서 이를 역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

폐로는 포기[편집 | 원본 편집]

  • 오염수 펌핑 작업
    우라늄이 녹아내려 발전소 바닥에 고여있는 오염수와 접촉할 경우 거대한 수소폭발을 또 다시 맞이할 수 있었으므로, 이를 차단하기 위해 결사대 3명을 오염수가 가득찬 현장으로 내려보냈다. 결사대는 기적적으로 밸브를 열고 귀환했으며, 피폭도 심하지 않았다.
    한편 지하수에 노심이 접촉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광부들을 석탄광산에서 징집하여 현장에 급파했다. 고온, 고방사선의 환경에서 광부들은 보호복도 없이 지하로 파들어가 거대한 공동을 만들어냈다. 당초 계획은 액체 질소를 이용해 동토층을 만드는 것이었으나, 계획이 잘 진행되지 않아 대신 콘크리트로 떼웠다. 후일 이 작업은 굳이 필요없었다고 여겨지지만, 당시에는 뭐라도 해야 했을 것이다.
  • 바이오 로봇
    사고 현장의 정리가 필요했지만 치사량을 훌쩍 넘는 방사능이 실시간으로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에 현장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독일에서 무인 로봇을 지원받았지만 애초에 방사선량을 속여서 알려줬기 때문에 방호가 충분하지 않아 반도체 회로가 망가지면서 금방 멈췄다. 결국 인력으로 할 수밖에 없었고 작업자의 피폭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련 정부는 인해전술을 쓰기로 한다.
    그런데 전국의 핵 관련 시설에서 방사능 방호복을 싹싹 긁어모아도 턱없이 부족했는 데, 임시 방편으로 방사능 방호가 가장 잘 되는 납판을 줄줄이 우비에 꿰어 그걸 입고 투입되었다. 물론 막대한 방사능 때문에 작업 가용 시간은 불과 30초에 불과했고 우르르 들어가서 돌무더기 몇 개 치우고 우르르 나와서 다음 팀에게 방사능 방호복을 인계한 뒤 우르르 들어가는 식으로 진행했다.
  • 석관
    2017년 완공한 석관
    가장 좋은 방법은 체르노빌을 통째로 없애는 것이지만, 고준위 방사성 물질이 곳곳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폐로 작업자들이 장시간 머무를 수 없어 그냥 4호기를 봉인하기로 하고, 1986년에 콘트리트 석관으로 밀봉해 4호기의 방사능이 봉인되었다. 4호기는 서류상으로 “정지”상태일 뿐이며 1986년의 석관은 2017년 완공된 아치 석관 내부에 있다. 아치 석관(철제)은 100년 이상 버틸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1]

소련 붕괴 이후 나머지 3개 호기는 우크라이나 전력 사정을 핑계로 계속 가동되었는 데, 1991년 화재사고로 2호기가 정지되고,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1호기가 1996년, 3호기가 2000년에 정지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