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피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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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피격사건
사건 정보
날짜 2010년 3월 26일
장소 백령도 인근 해상
원인 북한 잠수정의 천안함 습격
인명피해 사망 46명
구조 58명

천안함 피격사건2010년 3월 26일 금요일 21시 22분경에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경계작전 임무를 수항하던 해군 제2함대 소속 초계함인 천안함북한 잠수정어뢰 공격을 받아 폭침해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전사하고 58명이 구조된 사건이다.

배경[편집 | 원본 편집]

사건이 일어났던 2010년 3~4월 백령도 해역의 기상은 예년과 다르게 기온이 낮으면서도 강풍과 함께 비가 오는 현상을 보였고 3월 24일 남해상을 지나는 기압골에 영향받아 백령도 해상의 기상은 구름이 많았다. 이날 12:00를 기하여 "3월 25일 오전부터 3월 26일 오전까지 전 해상에 강풍(북서~북동퐁 25~35노트)과 함께 3~4m의 높은 파고가 예상된다"는 기상통보 제14호가 발표되기도 했다. 3월 25일은 서해 전 해상에 풍랑주의보 제17호가 있었고, 백령도 기지에 강풍주의보 제30호가 발표됐다. 이런 이유로 서해를 경비하던 함정들이 피항(避航)했다. 사건 발생일인 3월 26일은 이동성 고기압에 영향받아 대체로 날씨가 맑았다. 그러나 해상은 전에 발표된 풍랑주의보 영향으로 야간까지 파도가 높게 일었다. 백령도 어선들은 3월 26일 오전 일시적 기상호전으로 조업을 위하여 출항했찌만 높은 파도때문에 오후부터 출항이 통제되기도 했다. 야간에는 맑은 날씨에 남서풍이 20~25노트로 불고 파고는 2~2.5m였고 월광은 78%였다.[1]

백령도 해역의 바닥을 이루고 있는 물질(底質) 대부분 모래질 펄로 형성되어 있기에 물이 탁하고 수중가시거리가 30cm 미만이어서 수중물체의 육안식별이 제한된다.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에는 70여m의 해저골이 길게 형성되어 있어 유속이 강하다.[2]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들은 당시 백령도 인근 해역의 작전환경이 해군 작전에 미치는 영향을 다음처럼 평가했다.

첫째, 높은 파고와 강풍을 동반한 기상은 수상 및 상륙함정의 작전을 제한시키지만, 잠수함(정) 활동은 파고 및 강풍에 크게 제한을 받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백령도 연안 가까이에는 일부 수중 장애물이 있었으나 수상함정의 안전 기동에는 제한을 주지 않는다. 셋째, 큰 조석 간만의 차이, 빠른 조류, 탁한 물로 인한 수중 시계의 제한 등은 북한잠수함(정)의 침투에 영향을 주지만 극복 불가능한 요소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는 아군의 대잠탐지 및 수중활동을 제한한다. 넷째, 조류속도는 북한 잠수함(정)의 어뢰운용 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으나, 기뢰부설 시에는 정밀부설을 위해 저속운항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 대한민국 정부,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 27~28쪽

사건전개[편집 | 원본 편집]

대한민국 국군은 대청해전 이후 합동참모본부, 해군작전사령부 및 제2함대사령부에선 수차례에 걸쳐 경계강화를 지시를 내렸다. 그 기간이 길어지면서도 북한군이 특이활동을 하지 않자 "부대운용과 경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2010년 2월 18일 경계강화를 해제했다. 그 뒤에 북한선박의 미식별 첩보와 해상 기상불량 때문에 제2함대사령부 차원에서 경계강화 지시를 수차례 내렸다. 2010년 1월 하순 북한군이 서해 북방한계선 부근에 해안포 및 장사정포 사격을 가해오자 "북한군의 해안포·장사정포·지대함유도탄을 이용한 도발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이에 대한 대비에 중점을 두게 되"었고 이 때문에 북한군의 잠수함(정)에 대한 대비태세가 상대적으로 감소했다. 그러다 당시“북한군의 모선 및 잠수정 일부가 기지에서 식별되지 않고 있으며 해상활동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첩보가 합참쪽으로 전파됐다. 그러나 "예전에도 이와 같은 일이 수시로 있었기 때문에 통상적인 활동으로 판단"하여 평시 경계태세를 유지했다. [3]

천안함(PCC-772)은 사건당시 북서쪽으로 6.7노트 속도로 기동하면서도 통상으로 하는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당시 승조원 104명에서 야간 당직근무장 29명이 함교 등에 위치하여 정상 근무 중이고 함장과 기관장 같은 비근무자는 평상 근무복이나 간편복 차림으로 각자 업무를 보거나 휴식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3월 26일 21:22 경 백령도 연화리 서남방 2.5km 해상에서 천안함은 북한 잠수함에게 피격됐다. 강력한 폭발음이 나면서 천안함은 두 동강으로 절단됐고 함미가 먼저 침몰했다. 정전과 동시에 함체 일부 격실에 기름과 바닷물이 들어왔고 우현으로 90도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침몰됐다. [4]

생존자들은“좌측 후미에서 꽝! 꽈∼아앙!(1~2초간) 소리와 함께 정전이 되면서 몸이 30cm∼1m 정도 떴다가 우측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5]

천안함 피격에 따른 침몰 경과 [6]

일시 내용
3.26 21:22 천안함, 백령도 서남방에서 피격
21:24 21:24:18부터 함수와 함미 분리
21:28 함미 완전 침몰
21:58 해군 고속정 3척 현장 도착, 인명구조 시작
23:13 해양경찰-501함 등에 의해 승조원 58명 구조(천안함에서 이함)
3.27 13:37 함수 완전 침몰

합동조사단은 21시 21분 57초로 피격된 걸로 결론을 냈다. 합동조사단에 따른 천안함 피격 시각 추정 근거는 이렇다. [7]

① 해안 초소 TOD에 녹화된 시각 - 21:23경
② 해군 전술지휘통제체계(KNTDS)19)상의 천안함 발신신호 중단 시각 - 21:21:57
③ 백령도 지진파 관측소의 지진파 감지 시각 - 21:21:58
④ 천안함의 마지막 국제상선망 교신 시간 - 21:19:30∼21:20:03
⑤ 백령도 초병의 관측(폭 20~30m, 높이 100m의 흰색 섬광불빛) 시각 - 21:23
⑥ 천안함 승조원(상병)의 마지막 휴대전화 통화 시각 - 21:21:47

관련 항목[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대한민국 정보,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 26쪽
  2. 대한민국 정부,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 26~27쪽
  3. 대한민국 정부,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 34쪽
  4. 대한민국 정부,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 36쪽
  5. 대한민국 정부,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 37쪽
  6. 대한민국 정부,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 37쪽
  7. 대한민국 정부,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 38~39쪽